뇌가 42일간 숙취? 예능발 '거짓정보'는 어떻게 '지식'이 되나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8.11.28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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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에서 '뇌가 술에서 깨려면 42일이 걸린다'는 글이 돌았다. 몸이 숙취에서 깨어나는 시간과 다르게 뇌는 오랜 시간동안 알코올의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아시아경제는 2018년 11월 19일 '[과학을읽다]뇌가 술에서 깨는 시간 '42일''이라는 기사(아카이브)를 내보냈다. 알코올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기사였다. 중요내용은 아래와 같다. 

2차, 3차를 가지 않고 소주 한 병 정도에서 술자리를 그쳤다면, 알코올은 얼마만에 분해될까요? 간이 알코올을 분해하는 데는 5~6시간 정도면 되지만 뇌가 알코올을 완전히 분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42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알코올 분해능력이 떨어져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체중이 가벼운 사람도 시간이 더 걸립니다. 

한국 기사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기사에도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그럼 42일이라는 시간은 어디서 나왔을까? 3월 14일 케이블 채널 히스토리에서 만든 예능프로그램 <말술클럽>에서 나왔다. 방송에서 술전문가를 자처한 영화감독 장진은 패널들에게 뇌가 술이 깨려면 며칠이 걸리는지 물어봤고 42일이 걸린다고 답했다. 예능프로그램이라도 지식을 전달한다면 정확한 '소스'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근거는 없고 주장만 있다.이 정도는 '그나마 양반'이다.

 

 

<말술클럽> 방영 뒤 언론이 받아쓰기를 시작했다. 3월 19일 인사이트는 '"한번 술 마시고 자극받은 뇌는 42일 동안 비정상이다"'라는 제목으로, 위키트리는 '술 마시고 자극받은 뇌, 며칠이 지나야 정상으로 되돌아올까'란 제목으로 기사를 냈다. 방송프로그램을 검증없이 받아쓰기만 하는 유사언론들의 익숙한 행태다. 이들 언론의 신뢰도가 워낙 낮기 때문에 이 내용을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8개월 뒤 나름 공신력 있는 경제지 아시아경제가 이 내용을 기사로 썼다. 무려 '과학을 읽다'란 제목을 달고서다. 우스운 사실은 인사이트가 아시아경제 기사를 받아 '소주 한 병 마시고 쌓인 알코올 뇌에서 분해되는데 '42일' 걸린다'는 기사를 쓴 것이다. 인사이트 기사를 참조한 아시아경제 기사를 다시 인사이트가 베껴 쓴 것이다. 이 기사가 포털에 노출되면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뇌 42일 숙취설'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히스토리 채널의 <말술클럽> 화면 캡쳐.

그러면 '뇌 42일 숙취설'은 사실일까? 원칙적으로 주장의 입증 책임은 주장을 한 사람에게 있다. 장진 감독이나 히스토리 채널 PD, 인사이트와 아시아경제 기자가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묻는다고 이들이 답변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필자가 직접 연구보고서를 찾았다.

과도한 음주가 뇌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은 여러 기사와 연구에서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이 기사에서 검증하려는 것은 뇌가 술에서 깨기까지 42일(6주)가 걸린다는 근거자료다. 포브스가 2018년 8월 27일에 발행한 기사 'How Long Does It Take For The Brain To Recover From Drinking? Science Says Longer Than We Think'에 따르면, 술에 취한 뇌가 (몸이 깨더라도)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시간, 어쩌면 하루 이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술을 마시면 해독을 위해 몸이 물을 필요로하기 때문에 일부 뇌에 있는 물까지 끌어서 쓰게되고 뇌는 수분부족에 노출이 된다. 결과적으로 뇌를 감싸는 얇은 막이 수축이 된다. 몸은 마그네슘, 칼륨, 나트륨 등 각종 영양소가 부족해지고, 몸이 알코올로부터 회복을 하더라도 수축된 뇌가 바로 원상회복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뇌가 술이 깨기까지는 수시간에서 하루 이상을 필요로 한다.

라이브사이언스닷컴이 2012년 10월 16일에 발행한 Alcoholics' Brains Recover Quickly After Detox 기사에 따르면 알코올중독자가 금주하면 14일 이내에 수축됐던 뇌가 빠르게 원상복구가 된다. 뇌 조직 손상으로 기억 상실, 집중력 저하, 충동성 행동을 보이는 알코올중독환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뇌의 영역에 따라 회복 속도가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뇌기능이 개선되는 2주 금주는 알코올중독자에게 해당된다. 

2007년 1월에 발표된 알코올 중독에서 금욕과 관련된 초기 뇌 회복의 징후(Manifestations of early brain recovery associated with abstinence from alcoholism) 연구에 따르면, 알코올중독자 15명을 대상으로 6~7주간 단기 금주 후 상태를 추적한 결과, 수축된 뇌가 전체 부피의 2% 정도 증가(원상회복)됐으며 다양한 뇌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기 금주라도 효과가 있는 것을 보여준 연구라는데 의의가 있다. 여기서 금주기간으로 설정한 6~7주는 장진이 말한 42일과 대체로 일치한다. 하지만 이 연구는 단순히 뇌가 술이 깨는 것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다른 연구처럼 만성적인 알코올 남용으로 인한 중독자들의 손상된 뇌가 40여일간 금주로 얼마나 회복되는지를 측정한 것이다. 

종합하면 술에 취한 일반인 뇌가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일반적으로 몸이 술에서 깬 이후 서너시간에서 하루 정도 더 걸린다. 알코올 중독자의 경우 짧으면 2주간 금주 후에도 손상된 뇌가 부분적으로 회복되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6주 정도 금주를 했을 때도 각종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이들의 뇌는 이미 알코올로 손상된 상태기 때문에 완벽하게 정상으로 돌아오기 힘들다. 따라서 (일반인의) 자극받은 뇌가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42일(6주)이 걸린다는 장진 감독과 언론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필자는 뇌과학 전문가가 아니며 세상의 모든 알코올-뇌 연구를 검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 증거가 나올 경우 결론은 변경될 수 있다.) 

여러 미디어에서 음식과 약품, 과학정보에 대한 지식을 제공하는 정재훈 약사는 본인의 페이스북에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상호인용하는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 정도면 한국의 일부 언론사는 가짜뉴스 생산공장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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