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인가 조롱인가...중의적인 김여정의 DVD 제스처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20.07.13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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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1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글자 기준 3400자 분량의 긴 담화였습니다, 개인적인 생각과 전망을 밝힌 형식이 눈에 띄었습니다. 김여정 부부장은 조미수뇌회담과 같은 일은 올해에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모를 일이기도 하다. 두 수뇌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김 부부장은 "가능하다면 앞으로 독립절기념행사를 수록한 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으려 한다는데 대하여 위원장동지로부터 허락을 받았다"고도 말했습니다. 미 독립기념일 행사 DVD 달라는 김여정,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1. DVD의 열린 해석

왜 김여정이 뜬금없이 DVD를 언급했는지에 대해서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일단 북한이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 DVD도 구하지 못할 정도로 능력없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수사인 것은 분명합니다. 첫 번째는 독립기념일 DVD를 명분으로 접촉을 재개하겠다는 우호적 제스처라는 해석입니다. 김 부부장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에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원한다는 인사를 전하라고 했다며 재선을 기원하는 표현을 한 것이 그 방증이라는 겁니다.

두 번째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조롱이라는 분석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우려 때문에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74일 독립기념일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재선을 위해 무리수를 뒀는데,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감상해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김여정은조미(북미) 수뇌회담(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시사하게 된 미국 사람들의 심리 변화를 TV보도를 통해 흥미롭게 시청하는 것은 아침 식사 시간의 심심풀이로서는 그저 그만이었다"며 조소섞인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번 담화가 전체적으로 충돌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겁니다일부러 해석을 다양하게 할 수 있도록 DVD라는 오브제를 이용한 것으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2. 미국에 보낸 비싼 청구서

김여정은세 번째 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뒤로 가서 김여정은 "미국이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우리가 받아들여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쓰레기 같은 볼턴이 예언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해줄(10월 정상회담을 개최해줄) 필요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오락가락 표현은 정상회담의 대가가 녹록치 않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겁니다. 북미 정상회담은 트럼프에게는 유리하지만 북한에게는 불리하기 때문에 해서는 안되고, 조건이 충족되어야지만 할 수 있는 있다는 겁니다.

김여정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타방(다른 국가)의 많은 변화, 불가역적인 중대 조치들이 동시에 취해져야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못한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여정은 "미 국무성이 대화 의지를 피력하는가 하면 대통령까지 나서서 우리 지도부와의 좋은 관계를 거듭 밝히며 조미수뇌회담 가능성까지 시사하는 마당에서, 미 국방장관이라는 사람은 또다시 그 무슨 'CVID'를 운운하며 우리 국가를 향해 '불량배국가'라는 적대적 발언을 숨기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발언을 종합해보면, 미국의 이중플레이에 대한 지적을 하며 진정 대화를 하려면 진정성 있는 카드를 가지고 오라는 메시지입니다. 그 카드는 단순히 북한에 대한 제재 해제 수준이 아니라, 불가역적인 조치, 예를 들면 북미수교와 평화협정 정도의 카드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북한은 이미 두 차례 딜이 깨진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웬만한 카드로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고, 확실하게 가능성 있을 때만 움직일 것입니다. 북미 모두 서로 먼저 움직여주길 기대하는 상황에서 이 둘이 만나게 다리를 놓는 것은 결국 한국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3. 또 격상된 김여정

이번 담화는 여러모로 형식파괴가 눈에 띕니다. 일단 매우 길다는 것, 그리고 김여정이 개인의 생각을 밝혔다는 점입니다. 북한 공식 담화에서 나는이라는 1인칭을 쓰며 개인 생각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최고 지도자밖에 없습니다. 리선권 외무상도 이런 표현을 쓸 수 없습니다. 이번 담화는 최측근으로서 사실상 최고지도자의 생각을 그대로 전한 것입니다. 김여정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담화였습니다.

또 주목할 점은 대남 총괄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던 김여정 제1부부장이 이젠 대미정책까지 맡게 됐다는 점입니다. 지난 8일 한국을 방문한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은 북한이 대화를 하고 싶다면 새로운 카운터파트를 내세워야 한다고 말했고,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과 볼턴을 모두 비판한 바 있습니다. 며칠 뒤 김여정이 담화를 냈다는 것은 김여정이 앞으로 미국과의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에 자신의 여동생인 김 제1부부장을 대미 대응의 전면에 내세운 것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거래'를 염두에 둔 차원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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