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카스트 제도는 법으로 폐지된 적 없다

  • 기자명 이광수
  • 기사승인 2018.11.2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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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관한 잘못된 정보가 수도 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인도는 1947년 정부 수립 후 헌법에 의해 카스트가 폐지되었다’라는 것일 것이다. 학생들에게 리포트를 부과할 때 ‘인도에서 카스트는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폐지되었는가?’라는 주제를 오랫동안 내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그렇다’고 답한다. 학생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어 오냐고 되 물어보니 황당하게 국가 기관의 홈페이지와 유력 백과사전과 언론이 그 근거로 나온다. 잘못된 정보지만, 현실적으로 넓은 의미의 가짜 뉴스로 작동을 하는 것인데, 국가 기관이 그 잘못된 정보의 근거를 제공하는 셈이다.

 

인도 헌법 15조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규정한다. ‘국가는 종교, 인종, 카스트, 성(sex), 출신지 가운데 그 어느 것에 의해 시민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The State shall not discriminate against any citizen on grounds only of religion, race, caste, sex, place of birth or any of them.) 카스트에 의한 차별 금지를 분명하게 규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차별의 주체가 국가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즉 음식이나 결혼과 같은 민사에 있어서는 ‘차별’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인도 헌법 17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불가촉성 및 그 행위는 어떤 형태로든 금지 된다.’ (“Untouchability” is abolished and its practice in any form is forbidden. The enforcement of any disability arising out of “Untouchability” shall be an offence punishable in accordance with law)

인도에서 카스트는 – 그 존재가 긍적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 엄연히 사회에서 주요한 기능을 하는 사회적 단위다. 인도공화국 헌법은 카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다. 그 위에서 정부는 전통적으로 불이익과 차별을 받아 온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대접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제공하고 그 헌법을 근거로 하여 정부 당국은 카스트 위계 상 가장 낮게 위치한 불가촉천민에게 관공서 취업과 교육 분야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쿼터를 마련하고 시행하고 있는 중이다. 소위 말하는 불가촉천민 카스트의 명단을 정부에서 정하여 그들에게는 ‘보호를 위한 차별’을 통해 사회적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다. 카스트가 법적으로 폐지되었다는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주인도대사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카스트에 대한 설명.
한국어 위키피디아에 올라와 있는 카스트 설명.

 

그럼에도 주인도한국대사관에서는 위와 같이 설명되어 있다. 한국 정부를 대표하는 공공기관이 이런 식으로 잘못된 정보를 공시해놓으니 시민들이 잘못 알게 되는 것이다. 요즘 같이 전문 연구자 교수보다 더 공공 기관의 홈페이지나 인터넷 기사 혹은 포털 사이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을 때 국가의 공공기관이 이렇게 잘못된 정보를 버젓이 공시하는 것은 나라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전문 연구자가 논문은 물론이고 교양서적으로까지 다루어 낸 부분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게시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기관의 잘못된 게시 글을 참조하여 얼마나 많은 가짜뉴스와 오보가 생산될 수 있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위키피디아(한글판)와 같은 백과사전은 사립 기관이니까 어떤 책임을 물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공공기관에서만큼은 다르다. 하루 속히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영문판 위키피디아에는 카스트가 법적으로 폐지되었다는 내용이 없다. 단지 "1950년 이래로 인도는 낮은 카스트 계층의 사회 경제적 조건을 보호하고 개선하기 위해 많은 법률과 사회적 제도를 제정했습니다(Since 1950, the country has enacted many laws and social initiatives to protect and improve the socioeconomic conditions of its lower caste population.) "라고 기술하고 있다. 

간디가 1933년 인도 전역을 여행하며 불가촉천민(Dalit) 거주 지역을 방문하는 모습. 여행도중 간디는 연설과 저술을 통해 인도 카스트제도의 '차별 폐지'를 언급했다. ⓒwikimedia

카스트는 여러 특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을 뭉뚱그려서 말하자면 크게 위계성, 세습성 그리고 배타성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위계성과 세습성은 사회 내에서 특히 도시 내에서는 많이 약화되었다. 근대 시민사회가 성립됨으로써 카스트에 의한 위계는 거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고, 시장경제와 직업의 자유가 확산됨으로써 직업의 세습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배타성이다. 여기에서 배타라 함은 크게 음식과 결혼에 관한 것이다. 자신보다 낮은 카스트 사람이 준 물이나 음식은 되도록이면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낮은 카스트가 자신보다 높은 카스트와 같은 자리에서 음식을 공유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것이다. 결혼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니 자신이 속한 카스트보다 낮은 카스트 집안 사람과는 혼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철저하게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다. 근대 사회가 시작되었지만 인도에서만 봉건 계급 제도가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서이다. 다만, 그 카스트도 체계 안에서 신분 이동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가능하고, 완전 무시하고 살 수도 있다. 다만 대부분이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카스트 체계 안에서 인간 불평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Dalit or Untouchable Woman of Bombay (Mumbai) in 1942 according to Indian Caste System ⓒwikimedia

카스트라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폐지할 수 없는 사회적 단위이자 체계다. 카스트는 자신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속성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것으로 타인을 공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갑오경장에 의해 반상제가 폐지되었던 것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반상제는 국가가 관리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폐지할 수 있지만, 인도의 카스트는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가 폐지하고 어떻게 하고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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