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 우려해 발 빼는 제주항공... 항공업계 구조조정 신호탄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20.07.20 08:4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가 사실상 파기 수순에 돌입했습니다. 지난 16일 제주항공은 이스타홀딩스 주식매매계약 선행조건을 완결하지 못해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1218일 양해각서를 체결한 양사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항공업계가 직격탄을 맞자 주식매매계약을 놓고 이견을 보였습니다. 제주항공은 1700억원 이상 밀려 있는 이스타항공의 각종 체불임금, 운영비, 유류비 등을 이스타홀딩스가 먼저 해결해야 인수협상이 마무리될 수 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5일 이스타홀딩스는 체불임금 이외에는 책임질 것이 없다는 입장을 공문으로 보냈습니다.

정부가 중재 노력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딜은 끝났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입니다. 인수합병 무산으로 미래 불투명해진 이스타항공,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1. 두려운승자의 저주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양사의 재무구조를 감안할 때 극적 합의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이스타항공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1042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입니다. 5개월간 임직원 월급을 지불하지 못해 체불임금만 260억원 정도로 추산되며 이스타항공의 미지급금 규모는 1700억원입니다. 운항중단으로 매달 250억원의 빚이 쌓이고 있어 올해말 부채는 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주항공 역시 1분기 당기순손실이 995억원입니다. 2분기에도 1000억원 가량 손실이 예상됩니다. 제주항공의 부채비율은 1분기 기준 483%로 나쁘지는 않은 수준인데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면 1000%에 육박하게 됩니다.

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 인수 역시 불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현대산업개발이 지난달 9일 인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밝힌 이후 채권단과 추가협상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대산업개발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 상승에 의문을 제기하며 선결조건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매각대금으로 기업회생을 준비하던 금호산업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금호그룹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인수하다 결국 그룹이 공중분해됐습니다. 제주항공 모기업인 애경그룹과 현대산업개발은 이런 과정을 모두 목격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조기에 종식될 가능성도 높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인수하기보단 포기가 낫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 난감한 정부와 민주당

이스타항공의 소유주는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의원입니다. 이상직 의원은 629일 자신이 소유한 지분 모두를 회사에 내놓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스타홀딩스가 갖고 있는 이스타항공 주식 39.6%입니다. 그런데 이스타홀딩스 주식은 이 의원의 두 자녀가 100% 소유하고 있습니다. 자녀를 둘러싼 편법 대물림 의혹이 제기되지 내놓은 응급 처방입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스타항공 경영이 악화되어 실익이 없어지자 사실상 꼬리짜르기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지분 39.6%의 가치는 410억원인데 이중 부실채권과 세금을 제외하면 실제는 230억원 가량입니다. 하지만 현재 체불임금 250억원보다 적은 액수입니다. 그동안 제주항공은 체불임금은 최대주주가 책임져야 계약을 할 수 있다고 밝혀왔습니다. 이상직 의원이 지분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책임을 방기한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상직 의원측이 손털고 나가면서 사실상 계약이 무산되는 분위기입니다.

정부는 제주항공이 인수를 할 경우 1700억원의 유동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직접적인 현금 지원을 할 경우 특혜 시비가 불거질 수 있습니다. 민주당은 책임론에, 정부는 특혜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하락세인 정부와 민주당 지지율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3. 대규모 구조조정 신호탄

이스타항공의 경우 계약 파기 후 새 인수자를 찾지 못하면 법정관리에 돌입하게 됩니다. 기업회생보다는 청산 쪽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1600여명의 이스타항공 노동자가 실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추가적으로 아시아나항공 역시 인력 감축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 항공업계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구조조정을 시작할 경우, 눈치를 보던 다른 항공사들이 적극적으로 인원감축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항한공의 국제여객수는 지난해 2분기 504만명에서 올해 19만명으로 96.2%나 감소했고 아시아나도 348만명에서 12만명으로 96.5% 감소했습니다.

최근 미국 델타항공은 17000명을 명예퇴직 방침을 밝혔고 유나이티드항공은 직원 45%를 무급휴직으로 전환한다고 통보했습니다. 중남미 최대항공사 라탐항공그룹과 아비앙카항공, 아에로 멕시코는 파산을 선언하고 구조조정에 돌입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