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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 세계 1% 과학자? '학계 퇴출' 저널에 실렸다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 발표 및 중앙일보 기사 팩트체크

'女과학자 조OO, 세계 1% 오르고도 교수 10번 떨어진 사연'이라는 <중앙일보> 기사가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많이 공유된 것을 봤다. 기사 제목만 보고도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우선, “세계 1%”라는 것을 어떻게 평가한 것일까? 다음으로는, 신문사들의 대학 순위 평가 때문에 연구 실적에 목을 매는 대학들이 그렇게 대단한 연구자를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기사를 읽어보니 학술지의 영향력 지표(Impact Factor, IF)를 매기는 '학술정보분석업체'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구, 톰슨 로이터)에서 논문의 피인용 지수로 평가해 "세계 상위 1% 연구자"를 선정했다고 한다(2016년에도 톰슨 로이터의 발표가 기사화 된 바 있다). 이미 눈앞이 아득해져 온다. 같은 과라고 할지라도 세부 전공에 따라 학술지의 IF나 피인용 지수가 큰 차이가 나고, 특히 수학은 이런 수치에 전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인용이 많이 될수록 우수한 논문이 아니냐 생각하겠지만, 실험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다른 과학/공학 분야와는 달리 형이상학적인 수학에서는 최고 수준의 연구일수록 극소수의 수학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어서 오히려 피인용 지수가 떨어지기도 한다.

Google Scholar에서 조 박사의 연구 실적을 찾아봤다. 조 박사의 전공은 비선형 해석학 중에서도 'Fixed Point Theory'라고 한다. 검색 결과 첫 화면에 등장하는, 가장 인용이 많이 된 논문 12편 중에서 5편이 <Fixed Point Theory and Applications>(FPTA)이라는 저널에 출판됐다. (검색 결과에 딸려 나오는 의학, 지질학 분야에 출판된 동명이인의 논문들은 제외했다.)

라비 아가왈 홈페이지 본인 소개 캡쳐. 세계 1% 과학자라고 적혀 있다.

FPTA는 라비 아가왈(Ravi Agarwal)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는데, 80여 개의 서로 다른 저널에 1,200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해 경탄(?)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본인 홈페이지 소개에 Top 1% Scientist라고 적고 있다). 보통은 저널 하나만 편집장을 맡아도 정신없이 바쁜데, 아가왈은 FPTA 외에도 7개의 저널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아가왈은 <Journal of Fixed Point Theory and Applications>(JFPTA)이라는 기존 저널의 제호를 그대로 본뜬 FPTA를 만들고, 학술적 가치가 미미한 논문들을 심사 과정도 제대로 거치지 않고 잔뜩 실은 다음, 이후에 투고된 논문들을 심사할 때는 FPTA에 출판된 논문들을 최대한 많이 인용하도록 요구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FPTA의 IF를 2014년에 2.503까지 올렸다. 웬만한 수학자가 평생 한 편 논문 싣기도 힘든 <Annals of Mathematics>의 IF가 2006년까지도 2.426에 불과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놀라운 수치다.

이러한 행각에 분노한 안드제이 그라나스 Andrzej Granas (Fixed Point Theory에 관한 유명한 교과서를 썼다) 등을 중심으로 FPTA 퇴출 운동이 벌어졌고, 그 결과 2014년을 마지막으로 FPTA는 SCI에서 삭제됐다. 필즈상 수상자인 David Mumford의 블로그에 이 분야 대가들이 FPTA와 아가왈을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totally unethical", "calculated scam", "disgust" 등의 직설적 표현들이 등장한다.)

조 박사는 FPTA에 총 17편의 논문을 실었는데 그중에는 아가왈과 공저한 것도 있다. 또, 7편의 논문을 <Journal of Inequalities and Applications>(JIA)라는 저널에 실었는데, 이것도 아가왈이 편집장을 맡고 있다.

중앙일보 기사 화면 캡쳐.

교수 채용 과정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조 박사는 "상위 1%"에 선정된 것을 내세우기는커녕 이력서에서 FPTA나 JIA에 실은 논문들은 모두 숨기고 지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학계에서 퇴출된 저널에 십수 편의 논문을 실은 연구자를 반길 대학은 없기 때문이다.

임팩트 팩터(IF)로 장사하는 회사의 농간에 우리 언론이 부화뇌동하는 게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르겠다. 전공 분야가 다른 내가 조금만 조사해봐도 금방 드러나는 사실이면, 해당 분야 교수들한테는 이미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있을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팩트 체크도 하지 않은 채 사이비 지표를 갖고 기사를 쓰는 통에, 여성/경력 단절자/지방대 출신이 받는 차별의 서사는 우스워지고, 피상적인 수치에만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맹점만 드러났다.

감동근 팩트체커는 아주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다. 카이스트에서 반도체 패키징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IBM 왓슨 연구소에서 일했다.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가 주는 '2013 젊은 우수공학자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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