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그리드, 전력 효율관리인가 전력 민영화 출발인가

  • 기자명 박재용
  • 기사승인 2018.12.0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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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5일은 예년에 비해 대단히 더웠습니다. 9월 중순인데 서울이 31도였죠. 전국적으로 폭염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더구나 한국수력원자력은 영광 원자력 2호기, 울진 원자력 2호기, 4호기가 정비를 위해 정지되어 있었고, 여기에 남부발전의 하동발전소가 긴급정지 되었던 상태입니다. 결국 전기 생산량이 소비량을 감당치 못하자 한국전력의 광역 감시 제어 시스템(WAMAC)이 무작위 정전이 발생하는 블랙아웃을 방지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순환 정전을 실시합니다. 미리 알려지지 않은 대규모 정전 사태로 인해 빌딩의 엘리베이터들이 중간에 멈춰 섰고, 전력 공급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소규모 병원에선 수술이 중단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측면으로 보았을 때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는 인재(人災)의 성격이 강하긴 하지만 이 사건은 이후 발전소 추가 건설의 설득력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마트 그리드에 대해 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껏 전력망은 여러 곳의 대규모 발전소와 산업, 운송, 가정 등의 소비지를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에서는 실제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보다 훨씬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해야 합니다. 여름철 한 낮에 전국에서 에어컨을 빵빵 틀어대면 평소보다 전기를 더 쓰게 됩니다. 이때 추가로 전기를 생산할 여력이 없다면 어디선가 정전사태가 날 것입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는 거죠. 혹은 전국에 산재한 발전소 중 어디 한 곳에서 사고가 생겨 발전이 중단되면 그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합니다. 가뭄으로 수량이 줄어들면 수력발전소의 발전량이 줄어들기도 하구요. 이런 전력 공급과 수요의 측면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전력공급 예비율’과 ‘설비 예비율’입니다. 공급 예비율은 실제 생산하는 전기량을 항상 소비량보다 일정하게 높여서 급박한 사태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설비 예비율은 지금 현재는 전기를 생산하지 않고 있지만 빠르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여력을 말한다. 현재는 LNG를 이용하는 발전소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의 경우 적정 예비율은 12.5%라고 합니다. 즉 쉽게 말해서 항상 실제 사용량보다 12.5%정도를 더 생산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설비 예비율이 더해집니다. 전력거래소의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7년 7월, 즉 한창 더울 때니 전기 소비량이 꽤 높은데도 발전 설비 예비율은 34%였습니다. 즉 발전소 3개 중 1곳은 놀고 있었다는 말이다.

설비예비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발전소를 만들었다는 뜻이죠. 실제로 2016년에서 2017년 동안 새로 생긴 발전소는 신고리 3호기(원전), 태안 화력 9호기, 삼척그린 화력 2호기,등 18개입니다. 이들은 신고리 3호기만 제외하면 모두 화력발전이죠. 즉 석유나 석탄, LNG와 같은 화석연료를 원료로 합니다.

따라서 좀 더 효율적으로 전력공급과 수요를 조절할 수 있다면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도 더 적은 수의 발전소를 짓고, 생산량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가 요구되었습니다. 스마트 그리드는 전기의 생산, 운반, 소비 과정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지능형 전력망시스템을 말합니다.

스마트 그리드는 전력망에 직비(Zigbee), 전력선 통신 등의 정보통신 기술을 합쳐 소비자와 전력 회사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걸 기본으로 합니다. 이를 통해 전력공급자는 실시간으로 전력 사용량을 파악하여 공급을 줄이거나, 남는 전력을 양수발전 등으로 돌릴 수 있고, 전력공급망의 고장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소비자는 전기요금이 쌀 때, 즉 전기 공급이 남아 돌 때 전기를 사용하고, 전자제품의 충전을 전기요금이 싼 시간대에 주로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전력 공급망을 더욱 효율화하여 공급과정에서 사라지는 에너지를 줄이고, 공급 중단 등의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 이를 대체할 송배전 선로를 통해 전기를 보내는 등의 대처도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이 정도가 다는 아닙니다. 더 중요한 점은 이러한 쌍방향 통신을 중심으로 마이크로 그리드(Micro grid)를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죠. 마이크로 그리드는 현재의 한국전력과 같은 거대 발전소를 중심으로 한 광역 전력시스템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개인이나 마을 공동체와 같은 작은 단위의 전력 공급시스템을 말합니다. 자체적으로 필요한 전력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곳이죠. 그리고 남는 전기를 스마트 그리드와 연계하여 공급합니다. 이러한 마이크로 그리드가 많아지면 그만큼 전기 생산자가 분산됨에 따라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가능해집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마이크로 그리드는 대부분 태양광 발전이나 풍력 발전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통해 전기를 생산한다는 것이죠.

우리나라의 경우 2009년에서 2013년까지 제주도 구좌읍을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로 선정하고 실증 및 연구 작업을 펼쳤습니다. 여기에 참여했던 기업들은 이후 다양한 형태로 스마트 그리드 사업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 읽으면 ‘오호 보다 효율적으로 전력을 관리하고, 발전소를 덜 만들 수도 있고, 전기 요금을 아낄 수도 있다니, 그리고 새로운 산업이 창출되다니 아주 좋은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일들이 그러하듯 스마트 그리드도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스마트한 것만도 친환경적이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전기세를 줄일 거라는 것 또한 의심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멋진 사업이 한국에서만 추진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전 세계에서 앞 다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일에 대해 반대하고 저항하는 일들 또한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왜일까요?

스마트 그리드 사업의 핵심 중 하나가 스마트 전력 계량기 AMI (Advanced Metering Infrastructure)입니다. 스마트 계량기란 현재의 계량기를 대체하는 것으로 가정에서의 전기 소비를 초 단위로 아주 미세한 양까지 측정하여 실시간으로 전력회사에 전송합니다. 따로 계량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더구나 이 스마트계량기는 전기뿐만 아니라 수도와 가스도 같이 계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계량기가 측정한 자료가 전송되는 것으로부터 스마트 그리드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현재 한전은 250만개의 계량기를 스마트 계량기로 교체했고, 현재도 지속적으로 교체중입니다. 2022년까지 전국 2000만 호의 계량기를 교체한다는 계획이죠. 예산만 1조 5천억 원이 드는 대규모 사업입니다.

그런데 이 AMI가 도입되면 네트워크를 통해 자동적으로 검침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금처럼 검침원들이 일일이 매달 검침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즉 이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 계량기가 가스와 수도마저 확인해주니 가스와 수도 검침원들도 필요가 없어집니다. 전국의 가정이 모두 스마트 계량기로 교체될 경우 직업을 잃을 검침원은 약 1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외부 업체에 고용된 전기검침노동자들은 따로 전기검침연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있는 중입니다.

 

해외에서 사용중인 스마트 미터(AMI).

 

AMI에는 고용문제와 더불어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와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초단위의 전기 사용량과 수도 사용량, 그리고 가스 사용량 등은 우리 집에 몇 명이 기거하고, 언제 샤워를 하며, 언제 TV를 보고, 잠을 청하는지를 모두 알려줍니다. 실제 외국의 사례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미국 메릴랜드 주 주민들은 스마트 계량기 설치 여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건 당연한 거 아냐?’라며 놀라겠지만 미국의 워싱턴 D.C.에 독점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펩코Pepco의 경우 2013년 겨울에 소비자들에게 ‘직원이 스마트 계량기를 설치하러 들어오는 것을 방해할 경우 전력을 차단하겠다.’라는 경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네덜란드의 경우 개인 정보 보호 정책에 위배되기 때문에 도입을 중단했으며, 이탈리아와 스웨덴의 경우 이미 도입된 스마트 계량기에 맞선 저항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선 180만 가구 중 20만 가구가 스마트 계량기 설치를 거부하고 있지요. 하지만 한국에선 아직 이 스마트계량기와 관련한 개인정보보호 문제가 거의 거론조차 되고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물론 ‘전력 소비를 줄이고, 발전소를 덜 짓게 된다면, 환경보호를 위해 나의 개인 정보 보호는 조금 양보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엄격한 규정과 감시를 통해 부당한 인권 침해를 막으면 되지 않을까? 검침원 문제야 회사 내 다른 직종으로 변환하면 해결될 수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조금 더 어두운 부분을 파고 들어가 봅시다.

이 일로 누가 돈을 벌까요? 물론 관련 장비를 만드는 회사가 돈을 벌겠지요. 그러나 스마트 전력계량기AMI나 에너지 관리 시스템EMS(Energy Management System) 등을 만드는 회사가 돈을 제일 많이 벌겠다고 생각한다면 조금 단순한 판단입니다. 물론 그들도 돈을 벌겠지만, 이 일에 가장 눈독을 들이는 이들은 ‘민영화될 전력공급시장’에 발을 담그려는 대기업들입니다.

 

스마트 그리드는 앞서 말한 것처럼 기존 광대역 에너지 생산자 외에 여타 신재생에너지를 통한 공급자가 참여하는 다(多)에너지 생산자 시스템입니다. 즉 이제 한전의 발전 자회사 외에 다양한 민간 발전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이 된 것이죠.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에도 민간부문 전력생산자들이 존재합니다. 과연 누굴까요? 현재 이들은 사단법인 민간발전협회라는 단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회원사 면면을 보면 포스코 에너지, GS EPS, SK E&S, GS 동해전력, 평택 ES, 포천파워, 에스파워, 파주에너지서비스, GS Power, GS E&R 등입니다. 포천파워는 대림산업의 자회사이고 평택 ES와 파주 에너지서비스는 SK E&S의 자회사입니다. 즉 민간 발전 회사는 거의 모두 재벌 기업 계열사들인 거죠. 더군다나 이들은 신에너지도 재생에너지도 아닙니다. 모두 화력발전소입니다.

그리고 스마트 그리드가 활성화되면 발전 부문 뿐 아니라 공급 부문도 민영화될 예상입니다. 원래 우리나라 전기회사는 한국전력공사 하나였습니다. 그러다가 발전 부문을 자회사로 분리하여 현재 6개의 발전 자회사가 있고, 한국전력공사는 국내 유일의 공급 담당자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2011년 대정전사태 이후 민간 부문 발전사업자들이 대거 등장하여 발전 시장은 민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스마트 그리드와 함께 지역별 공급자를 민영화하여 ‘효율’을 추구하는 소위 빅픽쳐를 시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생에너지 영역의 활성화는 어디 가고, 재벌의 배불리기에 동참하는 것 같은 느낌은 저만의 것인가요?

 

전력민영화는 필연적으로 전기요금 상승을 동반한다. 브라질의 전력 민영화를 풍자한 만화. 출처:MRonline 블로그

하나 더 문제점을 파고 들어가 보겠습니다. 과연 스마트 그리드를 실시하면, 우리의 전기요금은 줄어들까요? 사실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은 쌉니다. 산업용도 싸고 가정용도 싸죠. 싼 것도 사실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요금이 비싸지면 그걸 감당하는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오롯이 기업의 배를 불리는데 들어간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요? 스마트 그리드가 되고, 민영화가 된다면, 전기 수요가 높은 시간대에는 비싼 요금을 물고, 수요가 적은 시간대에는 싼 요금을 물게 된다고, 그러니 잘 아껴 쓰면 적은 비용이 될 거라고 하는데 이게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입니다. 언제 비쌀까요? 여름 한 낮 그늘에 있어도 더위를 견딜 수가 없어 다들 에어컨을 빵빵 틀 때 비쌀 것입니다. 산업체나 기업체 관공서 등은 EMI설비를 통해 쌀 때 저장해놓은 전기를 쓰겠지만 일반 가정에서 돈을 더 들여가며 그런 설비를 할 수 있을까요? 특히나 저소득층에서? 결국 가난한 이들은 더울 때 에어컨 틀지 말고, 추울 때 전기장판 스위치를 올리지 말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인거죠.

전기가 민영화된다는 것도 이런 의미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몰아치던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 전 세계적인 전기 민영화 바람이 불었습니다. 독일은 1998년에 이탈리아는 1999년, 영국은 그보다 빠르게 1990년에 전력이 민영화 되었습니다. 민영화 초기에는 잠시 전기 요금이 내려가는 듯 했으나 2006년 평균 가격을 민영화 직전과 비교해보면 산업용은 이탈리아 207%, 독일 154%. 영국 189% 올랐습니다. 가정용은 이탈리아 130%, 독일 131%, 영국 145% 상승했지요. 멕시코의 경우 NAFTA 체결 후 매년 약 12%씩 상승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영화 이후 이들 나라의 민간 전기 생산 공급업자들은 M&A를 통해 덩치를 불리고 독과점 상태를 유지하면서 비용은 줄이고, 이윤은 극대화하며, 흔히 쓰는 말로 ‘주주의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기 소비자들만 피해를 입는 것이죠.

특히 전기나 수도, 가스 등 생활의 기본을 이루는 서비스는 비용이 오를 때 불평등을 심화시킵니다. 부자는 그 비용이 전체 가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아 요금이 오른다 해도 부담이 별게 아닙니다. 부자가 아니더라도 한 달 생활비로 한 340만 원 정도 지출하는 사람들에게 전기 요금 몇 만 원 오르는 것은 불만스럽지만 못 견딜 건 아니지요. 하지만 그 비용이 전체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가난한 사람들에겐 조금의 요금인상도 큰 충격이 됩니다. 기초생활 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의 경우 한 달 생활비가 대략 몇 십만 원에서 백만 원 수준입니다. 이들의 생활비는 월세, 수도세, 가스비, 전기세, 교통비, 통신비, 식음료비 등으로 꽉 짜여 있어, 몇 만 원의 여유조차 버겁습니다. 추운 겨울 쪽방에서 전기요금을 못내 장판 스위치를 올리지 않고 자다 동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집에 에어컨을 틀지 못해 여름 내내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노인들의 사정이 그러합니다. 또한 이들 민간 업자들의 등장은 신재생에너지 부문에도 불평등을 낳게 하는데 이는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스마트 그리드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의 대규모 정전 사태가 세계적으로 일어나면서 부터입니다. 2001년 1월 캘리포니아의 대도시 중심으로 2차 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정전사태가 일어납니다. 2003년 8월에는 미 동북부와 중서부, 캐나다 동부에서 5천만 명이 피해를 본 대규모 정전사태가 일어났고, 2003년 9월에는 이탈리아에서 전국적 규모의 정전사태가 일어났습니다. 21세기 초에 집중된 이런 정전 사태는 스마트 그리드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와 적용을 하게 만든 직접적 원인이 됩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전기 민영화가 이루어진 국가와 시기가 묘하게 겹치고 있습니다. 모두 민영화를 빡세게 추진한 곳에서, 그리고 민영화 이후 정부의 관리 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곳에서, 민영화 이후 약 10년 쯤 지나서 일어난 일입니다. 결국 전기 민영화가 큰 사고를 치고, 그 사고로 인해 스마트 그리드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는데, 스마트 그리드를 타고 다시 전기 민영화의 논리가 고개를 드는 희한한 모습을 목도하게 된 것이지요.

물론 스마트 그리드가 우리에게 주는 효용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문제는 누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죠. 신재생에너지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스마트 그리드의 핵심은 분권화된 에너지 권력을 만드는 것입니다. 농촌에서는 마을별로 태양광 발전을, 해안가에서도 마찬가지로 마을 단위의 해상 풍력 발전을 통해, 도시에서도 지자체 단위로 혹은 아파트 단지 단위로 다양한 형태의 재생 에너지를 통한 전기 생산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작은 그러나 광범위하고 다양한 전기 생산을 통해, 중앙 집중화된 에너지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해선 정보통신과 인공지능을 결합한 스마트 그리드가 중추적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스마트 그리드를 자본의 이윤 추구를 위해, 국가 산업의 성장 동력이란 측면으로만 바라본다면, 우린 결코 행복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효율과 성장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복이죠. 작은 단위에서 각 지역에 맞게 설계된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생산된 전기를 공동체가 무상으로 혹은 소득에 따라 차등화 된 비용으로 나누고, 그것으로 부족하고 혹은 남는 부분을 스마트그리드를 통해 서로 나누는 것이 마이크로그리드를 기초로 한 스마트그리드의 진정한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스마트 그리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대기업과 정부가 중심이 된 스마트 그리드 사업이 아니라, 지자체와 시민단체 그리고 관련 학술단체 등이 중심이 되어, ‘성장동력’이 아닌 ‘지역공동체 위주의 행복한 삶’에 스마트 그리드의 목표를 두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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