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개그맨, 영화 <세골(洗骨)>을 만들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8.12.05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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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물살의 시라세(白瀬川) 강 

굽이치는 물결에

청청(清清)히 머리를

씻어 주옵소서

동편의 초가는 

머물다 갈 곳이요

서편 무덤 주자독(厨子甕ㆍ유골함) 집은 

최후에 닿을 장소라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세계관이 담긴 시가(詩歌)같은 익숙함. 19세기 말까지 독립적인 역사와 문화를 가진 류큐(琉球)왕국이던 오키나와에서, 시마우타(섬 노래)라는 통칭으로 전래돼온 민요 중 하나다. 오늘 이 지면을 통해 이루어질 만남의 매개이자, 필자가 번역을 맡은 영화 <세골(洗骨)>에서, 이 노래는 오키나와 특유의 장제(葬制), 즉, 세골 의식을 하는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쓰인다. 

극중에서 오키나와 본섬 나하 항에서 페리로 약 2시간 10분 거리인 아구니(粟國) 섬 고향집에 모인 등장인물들은 어머니의 유해를 4년간 풍장(風葬)한 상태로 두었다가 탈관(脫棺), 풍화된 유해를 맑은 물에 씻어 이장하려 한다. 망자가 이승의 때를 씻어내야 신불(神佛)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풍습 때문이다. 이러한 소재로 외에도 <세골>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독특(unique)하다.

우선은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아구니 섬의 문화가 그렇다. 경사가 완만한 까닭에 ‘조(粟)’자를 쓰는 지명처럼 주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섬의 동쪽은 산 자들의 땅, ‘이승’으로 불린다. 한편 표고가 높아 풍장과 세골이 이루어지는 장소인 섬의 서쪽을 사람들은 죽은 자들의 땅, ‘저승’이라 일컫는다. 사방 7.63㎢ 면적의 작은 섬에 이승과 저승이 공존하는 것이다.

다음은 이 작품이 한국 관객들을 만나게 된 계기다. <세골>을 초청한 것은, 오키나와와 지정학적 위치나 문명사적 위치 면에서 쌍둥이처럼 닮아있는 제주에서 올해로 14회 째를 맞는 제주영화제다. ‘세계 섬지역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확인하고, 교류ㆍ연대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독특하고도 구체적인 취지아래, ‘지역과 문화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가진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강조하는 이 ‘대한민국 최남단의 영화제’는 오키나와국제영화제와의 교류를 진행하며 매회 초청상영을 실시한다. <세골>은 오는 12월 15일 상영될 제주영화제의 폐막작이다.

마지막은 <세골>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감독이다. 오키나와국제영화제의 월드프리미어 리스트에서 <세골>에 관한 내용을 확인했을 당시, 정작 필자의 시선을 끈 것은 2006년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에 출연까지 한 <긴 산책>으로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연맹(FIPRESCI) 상과 그랑프리까지 거머쥔 데뷔 47년차 ‘국민배우’ 오쿠다 에이지와 칸 영화제 3회 수상에 빛나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빛나는>에서 열연을 펼친 20대 라이징 스타(raising star) 미사키 아야메 등이 포함된 캐스트였다.

반면 현지의 지명이기도 한 대표적 오키나와 성씨 테루야(照屋)를 쓰는 감독의 프로필에는 비교적 늦게 눈길이 옮겨갈 수밖에 없었는데, 불과 몇 초 후 필자는 그의 예명을 읽고 ‘으악!’ 하며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2005년 무렵부터 일본에서 매주 10분 정도라도 예능프로를 본 사람들 중에 ‘고리(ゴリ)’라는 이름을 모르는 경우는 드물다.

<세골>의 감독 테루야 토시유키는 국민적 인기를 누리는 개그맨 예명(‘고리’)을 쓰지 않는다. 직접 자기 작품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는 영화작가로서의 의지다. ⓒ2018『洗骨』製作委員會

홍상현:

그럼 우선 20여 년 전 도쿄의 한 하숙집으로 돌아가 보자. 오키나와 출신의 테루야 토시유키가 같은 집에서 지내던 친구의 ‘장래에 뭐가 되고 싶어서 공부하느냐’는 질문에 ‘연기자’라고 답한다. 그리고 그 분야 최고의 세칭 명문대에 진학한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면 그냥 시시한 ‘입시성공담’이 되겠지.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들어간 학교를 그만두었다. 

테루야 토시유키:

개그맨이 되기로 결심해서다. 당시 예술학부 영화학과에서 2년간 영화의 기초를 배우고, 세부적으로 코스가 나뉘면서 연기자를 지망, ‘연기 코스’에 소속되어있었다. 그러나 연기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졸업하면 고향인 오키나와로 돌아가 회사에 취직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바뀌어 개그맨이 되기로 한 거다. 그렇지 않아도 삼수생이라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목표가 정해졌으니 어서 그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으로 2년 만에 깔끔하게 학교를 떠났다. 하지만 막상 자퇴서를 내려갔을 때 접수를 받던 교직원이 너무 흔쾌히 받아줘서 좀 섭섭했던 기억이 난다.

 

홍상현:

(웃음) 세상사람 마음이 다 나 같지 않지. 그런데 하필이면 왜 개그맨이었나?

테루야 토시유키:

대학 2학년 시절 신입생 환영행사에 참가했다. 거기서 콩트를 하게 되었는데, 저더러 시나리오를 쓰라는 거다. ‘농담을 해서 사람들을 잘 웃긴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보면 제가 농담을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핸섬하지도 않은 외모로 인기를 끌 수 있는 방법이란 게 남을 웃기는 것밖에 없기도 했고. 물론 당시까지 대본을 써 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필사적으로 고민해서 대본을 쓰고, 연출을 하면서 저 또한 연기자로 출연했다. 다들 엄청나게 웃었지. 그걸 본 동기생이 그랬다. “이렇게 웃긴데 개그맨이 되지 그래?” 개그맨. 등잔 밑이 어두웠던 거다. 남을 웃기는 걸 좋아하니 개그맨이 되면 좋겠구나! 개그맨이 되면 코미디, 드라마, 영화, 엔터테인먼트 등 모든 장르를 넘나들 수 있다! 삶의 새로운 방향에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퇴서를 쓰고 있었다.

 

홍상현:

당신의 이력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개그맨으로써 인기의 정상에 도달했을 무렵, 느닷없이 스스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거다. ‘자기표현 욕구’ 때문이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테루야 토시유키:

계기 자체는 소속사(요시모토 흥업)의 제안이었다. 소속 개그맨 몇 명에게 단편을 찍게 해서 영화감독으로 키운다는 목적이었다. 저는 영화학과를 다녔으니 그중에서도 눈에 띄었을 테고. 하지만 도리어 영화 같은 거 ‘찍을’ 생각도 ‘찍힐’ 생각도 없다면서 거절했는데, 미국에 사는 키리야 카즈아키 감독이 이 소식을 듣고 버럭 화를 냈다. “누구한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게 아닌데 일단 기뻐해야지. 우선 기회를 잡고 자신감과 실력은 그때 키우면 돼!” 하면서. 결국 “좋아! 창피를 당하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결심을 굳혔다.

 

홍상현:

그렇게 개성파 연기자로 내셔널와이드(national wide)한 지명도를 얻었을 당시(2013)부터 매년 한 편씩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착실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간다는 데는 집념이 필요하다. 어디서 비롯되었나?

테루야 토시유키:

처음 연출을 마치고 나서 생각한 건 ‘다시는 영화를 찍지 않겠다’였다. 그 정도로 정신적ㆍ육체적으로 힘들었다. 제 생각처럼 연기자들을 컨트롤하기도 힘들 뿐더러 감정을 제대로 전달할 수도 없었다. 촬영감독이나 조명감독도 마찬가지. 주변에서도 스트레스가 쌓여간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렇다 보니 정신적으로도 궁지에 몰려 타협을 해야 하나 싶더라. 하지만 타협을 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고. 그래서 예정기간을 한참 넘기고도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영화를 찍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그런 마음이 바뀐 것은 편집을 하면서다. ‘내 머릿속의 이야기를 문자화하고, 그 이야기를 다시 연기자, 스태프 등과 같이 영상화해서 지금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보여주어 기쁘게 하는’ 이 일련의 과정을 맛보고 나니 어느새 다음 작품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게 말씀하신 “집념”의 원동력이었다.

<세골>은 자칫 정한(情恨)으로 얼룩지기 쉬운 장의(葬儀)를, 남은 자들이 생명을 계승하는 의식으로 승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임권택 감독의 <축제>과 결을 같이 하는 작품이다. ⓒ2018『洗骨』製作委員會

홍상현:

또한 놀라운 것은 요시모토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Yoshimoto Creative Agency)다. 보통의 제작사라면 ‘세골’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시점에서 시나리오를 읽으려 하지도 않았을 텐데, 하물며 그곳은 106년 전통의 희극명가, 요시모토흥업의 인하우스 프로덕션이다. 

테루야 토시유키:

아구니 섬에서 단편을 찍기로 결정되어 부랴부랴 콘티 작업을 하려는데 프로듀서가 ‘거기엔 아직도 세골 문화가 남아 있느냐’고 물었다. 다시 ‘그게 뭐냐’는 질문을 던져 설명을 다 듣자마자 ‘이거야말로 영화의 소재’라는 확신이 들더라. 이미 써놓았던 각본을 버리고, 세골을 주제로 한 각본을 새로 쓰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세골은 아구니 섬뿐만 아니라 오키나와와 동남아시아 등 광범위한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풍습이었는데 제 출신지인 오키나와 본섬에서도 수십 년 전까지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의식이었다. 탈관해서 돌아가신 가족의 유해를 씻는 일은 깊은 애정 없이 해낼 수 없다. 보통의 시각에서 보면 실로 놀라울 수밖에 없는 이 ‘무서운 작업’을 온 가족이 해내는 것이다. 다만 이를 그저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랑과 감사, 감동이 더해지도록 노력했다.

 

홍상현:

바로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키워드가 ‘어머니’다. 당신은 앞서 언급했듯 아구니 섬을 배경으로 <세골>의 모티브가 되는 단편 <본, 본 무덤소리(born, bone, 墓音)>를 2016년에 제작, 수많은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는데, 한 해 전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어머님은 성장기에 가정불화 때문에 혼자 외지로 보내지는 등 마음의 상처를 안고 방황하던 당신을 제 자리로 돌아오게 만들어 주신 존재이기도 했다.

테루야 토시유키:

어머니의 죽음은 두 작품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동기로 작용했다. 장례식 날 밤, 차갑게 식어버린 어머니 곁에서 밤을 보내는데 ‘이 분이 안 계셨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테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낳아주신 것에 감사의 마음이 충만해졌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 어머니를 낳아주신 할머니에 대한 감사의 마음 또한 솟아나고... 점점 그 ‘생명의 고리’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세골’이라는, 사람에 대해 깊은 애정을 표현하는 의식과 만나는 순간, 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세골>의 엔딩 크레디트에서도 그는 ‘이 영화를 돌아가신 어머니께 바친다’고 밝힌다)

 

홍상현:

그리고 <세골>의 제작과 영화제 출품 등의 과정에서 당신은 일본의 성인, 특히 30대 이상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을 예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테루야 토시유키:

저는 영화감독인 동시에 오키나와에서 ‘신희극(新喜劇)’이라는 희극집단의 프로듀서도 맡고 있다. 하고 있는 일의 절반은 ‘무대 뒤에서의 일’인 거지. 늘 컴퓨터 앞에 앉아 희극의 대본, 프로듀스, 영화의 시나리오 등을 쓴다. 무대 뒤에서의 일을 하고 있는 내게는 코미디언으로서의 모습도, 연기자로서의 모습도 존재하지 않는다. 개그맨 ‘고리’로서의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본명인 ‘테루야 토시유키’로서 있는 것이 나다운 일이고,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에 출연까지 한 <긴 산책>으로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연맹 상과 그랑프리까지 거머쥔 오쿠다 에이지는 <세골>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술로 소일하는 무력한 가장으로 변신했다. ⓒ2018『洗骨』製作委員會

홍상현:

작품에서 아버지, 즉 ‘노부츠나’역을 맡은 오쿠다 에이지는 ‘대배우의 품격’을 보여준다. 그는 직접 시나리오를 쓴 영화를 연출, 해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획득할 정도의 뛰어난 감독이기도 하다. 감독으로서 부담은 없었나.

테루야 토시유키:

왜 없었겠나. 수없는 명감독들과 일했던 분이다. 저처럼 경험이 일천한 감독의 말을 듣겠나 싶어 불안뿐이었다. 실제로 촬영이 시작된 후 내가 생각한 이미지와 다른 연기를 하시기에 “그런 연기라면, 아직 ‘오쿠다 에이지’가 남아있습니다”라고 했더니 “지금 그게 누구한테 하는 소리냐”며 혼을 내시더라. (웃음) 하지만 그건 ‘오쿠다 류’의 농담이었고, “감독은 당신 아니냐. 시나리오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감독인데, 그런 감독이 하는 말이라면, 나는 전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무척 안심도 되거니와 대단히 기뻤다.

 

홍상현:

역시나 ‘쿨한 성격’이라는 중평이 무색하지 않다. 결과물은 어떻던가?

테루야 토시유키:

말씀처럼 오쿠다 씨가 연기한 캐릭터 중에는 댄디(dandy)하면서도 멋지고, 쿨한 역이 많다. 하지만 저는 그런 오쿠다 씨가 역으로 (사업에 실패한 뒤 매일 술로 소일하는) ‘한심한 아버지’를 연기한다면 재미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제안을 드렸더랬다. 그리고 직접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어째서 나를 선택했나?’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 순간 “그 눈 때문입니다”라고 답하니 납득해주시더라. 저는 늘 오쿠다 씨의 눈에서 강함 뒤에 감추어져 있는 ‘쓸쓸함, 슬픔’을 느낀 까닭에, 이 영화의 ‘노부츠나’역을 분명 잘 해내실 것이라 확신했다. 물론 결과물을 보면서도 ‘역시 오쿠다 씨에게 맡기길 잘했다’면서 만족했고. 이 영화에 지금까지의 오쿠다 에이지는 없다. 그저 ‘한심한 아버지, 노부츠나’가 있을 뿐이다.

 

홍상현:

미사키 아야메를 캐스팅한 것도 성공적이다. 영화 전반의 뛰어난 연기도 그렇지만, 특히 라스트 10분 동안 그는 ‘세골’ 의식과 새로운 가정의 시작, 그리고 생명의 탄생이라는 모든 사건을 망라한 시퀀스의 중심에 서 있다. 실로 ‘생명을 잇는 주체’로서의 캐릭터다.

테루야 토시유키:

스토익(Stoic)한 (자기관리가 철저한) 연기자다. “(저는) 임신 경험이 없다”면서 촬영이 없는 날에도 소품으로 몸을 꾸미고 임신부의 모습으로 거리를 탐색했다. 지나던 할머니로부터 ‘이제 좀 있으면 태어나겠네, 축하해요’라는 이야기까지 듣는 가운데 최대한 조심스럽게 걸으면서. 그런 노력의 결과가 리얼한 연기로 나타났다. 또한 유코라고 하는 인물이 가진 미묘한 심리 또한 최대한 디테일하게 표현해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밖에 다른 배우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성공적으로 역을 소화해냈다.

 

홍상현:

붕괴되어가던 가족을, 자신의 죽음과 장례라는 계기를 통해 다시 묶어내는 ‘생명의 원천’으로써의 어머니, 오키나와라는 공간에서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풀어낸 이 ‘특수하고도 보편적이며, 작고도 큰 이야기’ 이후의 구상이 궁금하다.

테루야 토시유키:

앞으로도 일관되게 ‘사람을 그리는’ 작업을 해나가고 싶다. 영화에 감동하고, 영향을 받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을 보며 상처를 치유하고, 또한 꿈을 꾸며 자라왔다. 영화라는 매체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이고. 앞으로도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제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칸 영화제 출품작 <빛나는>에서 주연을 맡았던 미사키 아야메(오른쪽)은 <세골>에서도 변함없는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2018『洗骨』製作委員會

 

 

질문의 단어 하나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성심(誠心)이 묻어나는 분위기 속에 자신의 사고의 중심에 ‘사람’이 있음을 강조하던 테루야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실감했다. “오키나와국제영화제에서 같이 무대 인사를 하는데, TV에서 보던 ‘고리’는 어디가고, 한없이 소탈하고도 겸허한 ‘영화인’ 한 사람이 서 있더라”던 <류큐 시네마 파라다이스> 하세가와 료 감독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아울러, 그의 작품 <세골>이 어떻게 오키나와국제영화제에서 모스크바국제영화제상하이국제영화제, 그리고 하와이국제영화제를 거쳐 제주영화제에서 한국의 관객들과 만나게 되는 기나긴 여정을 이어올 수 있었는지.

그리고 이내 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필자의 눈에도 극적 재미와 작품성이 조화된(말은 쉽지만 제대로 실천한 예를 찾기 힘든) ‘웰 메이드(well-made) 영화, <세골>에서 ‘개그계의 스타 고리’는 보이지 않았다. 자칫 정한(情恨)으로 얼룩지기 쉬운 장의(葬儀)를, 남은 자들이 생명을 계승하는 의식으로 승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수많은 관객들로부터 사랑받는 한국영화사의 명작, <축제>와 같은 선상에 놓여 있으면서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잔뜩 엉켜있던 실타래를 미소를 자아내는 희극적 재미까지 더해 풀어내는 ‘발군의 영화작가 테루야 토시유키’가 보였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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