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공성'을 위해 파업? 의협 이기심인가 진정성인가

  • 기자명 이고은 기자
  • 기사승인 2020.08.24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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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오는 26일부터 총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지난 21일부터 국내 전공의들이 연쇄 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의사 면허상의 불이익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양측이 강대강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8월 중순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의료계와 정부가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어, 국민의 의료 복지와 건강권 침해가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 22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에 대해 수도권 상황이 안정된 이후 의료계와 논의를 하며 추진해 나가겠다면서 유보했지만, 의협은 이에 신뢰할 수 없는 정치적 수사라면서 파업을 예정대로 이어갈 것임을 밝혔다. 의사 파업과 관련한 여러 가지 쟁점들을 뉴스톱이 짚어봤다.

 

의대 정원 확대, 나오게 된 배경은?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대통령 선거 공약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약속했다. 세부적으로는 1. 지방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의 기능과 역할 확대, 공공적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건강한 적자에 대한 지원 확대, 2. 지역별로 공공의료기관 및 요양시설 확충을 공약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공공의료기관 수 확충과 관련한 실질적이고 유의미한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공공의료기관의 숫자는 미미하게 늘어났지만,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의료기관의 비율은 201211.7%에서 201810.0%로 축소되었다. (남인순 의원실 자료)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공공의료기관 확충을 위한 구체적인 목표치는 제시하지 않아왔다.

 

출처 : 남인순 의원실 블로그
출처 : 남인순 의원실 블로그

 

공공의료와 관련해 정부는 201810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을 내놓고 2022년에 국립공공의료대학원을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201911월에는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의료 강화대책 을 통해 양질의 민간·공공병원이 없는 9개 지역에 지방의료원, 적십자병원 등 공공병원을 신축하겠다고도 밝혔다. 이중 지역의료 인력 양성과 확충에 관한 방안을 보면, 국립공공의대를 설립하고 공중보건장학제도를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등 지역의 필수 의료 분야 인력 양성을 위한 제도 개선을 약속하고 있다.

이번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은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료 인프라 확대라는 기조 아래, 코로나19로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가운데 구체적 목표치로 제시된 셈이다. 2020723,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공공의료 인력 확충을 위한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당정 협의회를 갖고 2022학년도부터 10년 간 의과대학 정원을 4000명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의대가 없는 지역에는 의대를 신설하고, 2024년 개교를 목표로 하는 공공의대 설립으로 공공의료 필수 분야 인력을 양성하기로 했다.

 

의료 인력, 정말 부족한가?

 

OECD 통계에 따르면, OECD 국가 평균 기준으로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한의사 포함) 수는 3.3명이지만 한국은 2.3명에 그치고 있어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임상간호사(간호조무사 포함) 역시 인구 1000명당 6.8명으로 OECD 평균 9.5명보다 적다. 지난 10년간 OECD 국가 평균 의사 수와 한국의 의사 수 사이의 격차가 거의 줄어들지 않을 정도로 한국의 의사 수는 미미하게 증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OECD 국가들을 기준으로 유사한 수준이 되려면 72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김윤 교수)

전체적인 수치, 그리고 향후 급속한 고령화를 전망할 때 현재 한국의 의료인력이 부족해 보이지만, 한국의 의료인력 구조는 지나치게 지역 간 편차가 심하고 의료기관이나 과목별 불균형이 큰 상황이어서 의대 정원만 확대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견해도 있다. 또한 OECD 통계가 국가별 산정 기준이 다르므로, OECD를 기준으로만 삼아 의료인력을 증원했을 때 오히려 과잉공급으로 인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주장(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안덕선 소장)도 나온다.

 

그러나 전체 의료인력과는 별개로, 공공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0203~4월 기준으로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코로나19 진료 실적을 비교하면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김윤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 77.7%를 진료한 반면, 민간병원에서는 22.3%가 진료했다. 그마저도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한 300병상 이하의 종합병원과 일반 민간병원에서는 코로나19 감염에 따른 중환자 진료를 하지 못했다. 김 교수는 전체 15%를 차지하는 공공병원이 환자의 80%를 진료했고 85%에 달하는 민간병원이 환자 20%를 진료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왜 반대하는가?

 

의협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대 정원 증원 공공의대 신설 한방 첩약 급여화 원격의료를 의료 4대악 정책 으로 규정하고 있다. 코로나19 진료 현황에서도 보았듯 공공의료를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이에 의사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협은 의대 정원 증원에 대해 취약지와 기피 과목, 기초의학 연구인력이 부족한 이유는 우수한 의사들이 해당 분야에 지원하고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공공의대 신설에 대해서는 의료행위는 그 주체나 소속기관과 무관하게 공공의료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공공의대 신설은) 비효율적이며 의료의 공공성이라는 특성을 무시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출처 : 대한의사협회 홈페이지
출처 : 대한의사협회 홈페이지

 

또 첩약 극여화에 대해서도 첫째 안전성과 유효성 확보 미비, 둘째 의학적 타당성과 의료적 중대성, 치료효과성 및 비용효과성 근거 부족, 셋째 대상 질환 선정의 부적절성 및 한약재 관리 시스템 미비 등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원격의료에 대해서는 의료의 본질인 환자와 의사의 만남과 직접적인 대면진료를 통한 세밀한 진찰의 가치는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으며 이른바 뉴딜이라고 하는 경기부양과 고용창출 목적의 원격의료 육성책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여론은 의협의 주장과는 온도차가 있다. 리얼미터의 75째 주 여론조사에서 국민 58.2%의대 입학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언론들도 의료계의 파업에 대해 집단 이기주의”, “밥그릇 지키기로 묘사하며 일제히 비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의료 공공성 확보 위한 선결 과제는 따로 있다?

 

의료계에서는 국내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불균형의 문제로 본다. 의사 수의 문제 이전에 지역 간 균형 배치가 어려운 현실, 의료수가가 맞지 않아 외과, 산부인과 등 의사들이 기피하는 전공 분야가 생기는 것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역 간 불균형 문제를 임금의 문제로 보기는 힘든데, 그 이유는 서울보다 지역으로 갈수록 의사들의 임금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의료진의 수도권 집중은 인구 현상에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으며, 전공의 쏠림 현상은 의료전달체계의 문제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의료 인력의 양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질적인 문제, 즉 전공의 쏠림현상이나 지역별 인력 편차 등이 더욱 심각한 문제”(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신영석 선임연구원)이고, “도시 집중 문제와 의료전달체계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홍윤철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고 주장한다.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을 통해 공공의료 공백을 메우겠다는 계획을 추진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또 의학대학에서 의학적 지식만을 위주로 교육한다는 비판, 의사들이 공동체에 헌신하기보다 일신을 위한 직업인으로서만 기능한다는 비판이 우리 사회에 있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의료계 내에서도 의대 교육과정에 사회 속의 의사 역할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교과과정 개설이 필요하다”(한희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공의료 확충을 위해 늘린 의대 정원이 장기적으로 의무 복무 후 공공의료보다 사립 병원의 수익 증대에만 기여할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검사에만 높은 보상을 하는 현재의 수가체계 왜곡을 제대로 수정하지 않고 인원만 늘리는 것은 공공의료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사설 병원 자본의 배만 불리는 꼴이 될 것이라는 우려다(김현아 한림대 성심병원 의학과 교수).

 

전대미문의 코로나19 팬데믹, 더군다나 재유행 시기가 도래함에 따라 전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의료계가 갈등하고 있는 것은 블랙코미디다. 의료계는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파업한다라는 프레임 아래 비판 여론에 직면해 있고, 정부는 이런 상황에 기대 의료계를 압박하며 정책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때문에 양측 모두 정치적 해석을 피할 수 없고, 이에 따른 피해는 코로나19 비상상황 속의 국민이 오롯이 지고 있다. 양비양시론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 정부와 의료계 모두 의료 공공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도록 혜안을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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