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이 키운 ‘인싸’감독, 스플래터 무비로 돌아오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20.09.16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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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장편상업영화 데뷔 6년차인 타케바 리사 감독. 다섯 편의 작품을 발표하는 동안 세계 3대 판타스틱영화제와 4대 영화제를 섭렵하고, 카자흐스탄의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과 함께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의 메가폰을 잡았다.
올해로 장편상업영화 데뷔 6년차인 타케바 리사 감독. 다섯 편의 작품을 발표하는 동안 세계 3대 판타스틱영화제와 4대 영화제를 섭렵하고, 카자흐스탄의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과 함께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의 메가폰을 잡았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첫 번째 이야기.

사람들의 표현을 빌면 “차여도, 차여도 포기하지 않는 실연 터미네이터”인 주인공. 다섯 살 때부터 짝사랑해온 남자가 갱스터의 애인과 밀회가 들통나 손가락을 잃는다. 하지만 이 ‘사건’은 돌연 영화의 스토리나 기상천외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계기로 작용한다. 주인공이 잘린 손가락의 세포를 복제해 만든 클론과 연애를 하게 되었으니까.

두 번째 이야기.

온종일 TV와 대화하는 주인공에게 이성친구가 생긴다. 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다면서 무려 12개 국어에 통달한 능력자. 그런데 좀 확연하게 표가 나는 ‘옥에 티’가 있어 지내기 만만찮다. 인즉, 지나치게 개성이 넘치는 외모. 그이는 온종일 대화를 나누던 TV가 젊은 사내로 변한 ‘TV남’이기 때문이다.

대략 간추린 시납시스만으로도 기발한 상상력과 재기로 똘똘 뭉친 발안자의 얼굴이 궁금해지는 영화들(<죽음의 새끼손가락>, <하루코의 파라노말 액티비티>)이 한해 한 편씩 연속으로 개봉한 건,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타케바 리사 감독이 <제발, 100번 죽어줘>로 대구단편영화제 다녀간 지 2년 뒤의 이야기다.

「시그널 100」은 심리전과 최면술 등의 흥미로운 주제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미야츠키 아라타의 동명타이틀 만화가 원작이나 영화로 재탄생하기 위해 다각도의 크리에이티브 워크를 거쳤다. 사진제공: (C)2020 Signal 100 Film Partners
「시그널 100」은 심리전과 최면술 등의 흥미로운 주제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미야츠키 아라타의 동명타이틀 만화가 원작이나 영화로 재탄생하기 위해 다각도의 크리에이티브 워크를 거쳤다. 사진제공: (C)2020 Signal 100 Film Partners

왠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었을 법 하다고?

여부가 있겠나. 2014년과 2015년 각각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와 BiFan 디스커버리즈 부문으로 판타스틱영화 마니아들을 찾아왔다. 중요한 건 그 이후다. ‘첫 번째 이야기’는 로테르담국제영화제를 거쳐 부천에 왔다가 같은 해 10월 세계 3대 판타스틱영화제의 하나인 시세스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아시아ㆍ유럽ㆍ북미지역의 국제영화제를 누비며 각광받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로테르담, 부천, 시체스라는 ‘코스’를 반복함과 더불어 베니스, 칸, 베를린과 함께‘세계 4대 영화제’로 일컬어지는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까지 초청되었다. 다시 3년 뒤 타케바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 뉴 커런츠상 수상자인 카자흐스탄의 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 감독과 함께 <말도둑들. 시간의 길>의 메가폰을 잡는다.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 선정작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사말 예슬라모바 배우가 주연한 이 작품은 2019년 개막작으로 24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스타트를 끊었고, 도쿄국제영화제와 이듬해 초 개최된 예테보리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다.

영화예술의 국제콩쿠르이자 견본시(a trade fair)라는 것 외에, 신인감독의 발굴ㆍ육성이 영화제의 주요기능임을 생각할 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타케바 감독에게 느끼는 흐뭇함은 남다를 것이다. 그런 그녀가 판타스틱 영화로 복귀, <시그널 100>으로 5년 만에 하와이국제영화제를 거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다. 헌데, 이 영화의 시납시스가 꽤 기발하다. 교내축제를 앞둔 고등학교에서 담임교사가 학생들을 모아놓고 영상을 통해 시그널이 발동되면 자살하는 최면을 건다. 시그널의 종류는 100가지, 오직 최후의 생존자만이 최면을 풀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아수라장이 펼쳐진다.

한여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플래터 무비(splatter movie)로 돌아온 타케바 감독을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판타스틱 영화감독으로 돌아온 타케바 감독은 스플래터 무비 팬을 위해 순간순간 자극을 줄 수 있는 내용들로 「시그널 100」을 가득 채웠다. 사진제공: (C)2020 Signal 100 Film Partners
부산국제영화제 이후 판타스틱 영화감독으로 돌아온 타케바 감독은 스플래터 무비 팬을 위해 순간순간 자극을 줄 수 있는 내용들로 「시그널 100」을 가득 채웠다. 사진제공: (C)2020 Signal 100 Film Partners

홍상현

데뷔작과 차기작으로 2년 연속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오신지 5년 만에 세계적인 감독이 되서 돌아오셨습니다.

타케바 리사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제입니다. 지금까지 3번 갔었고 한 번은 초청되지도 않았는데 영화를 보러 갔었어요. 관계자 분들이나 자원 활동가 분들이나 모두 좋은 분들이라 돌이켜 보면 온통 즐거운 추억뿐입니다. 낮에는 호러영화를 실컷 보고, 밤에는 여름답게 다 같이 거리의 야외 테이블에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으며 막걸리를 마셨죠. 올해 못 가게 되어서 아쉬워요. 부천의 여름이 그립습니다.

 

홍상현

<시그널 100>은 부천 외에도 세계 3대 판타스틱영화제의 하나인 브뤼셀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초청작이기도 했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영화제 자체가 취소되어 참가하지 못하셨습니다. 충격이 크셨을 것 같은데요.

타케바 리사

어쩔 수 없는 일이죠. 2년 전 존스홉킨스대학의 과학자가 ‘궁극의 바이러스’ 즉,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팬데믹은 에볼라나 사스와 같은 흉악한 병원체가 아니라 ‘발증(crisis)이 쉽게 나타나지 않고 치사율이 낮은, 감기와 같은 병원체’가 될 거라고 경고했는데요. 예측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태가 실제로 일어났네요. 2ㆍ3월에는 정말 이걸 어쩌나 싶었어요. 거리 곳곳에서 충격이 느껴지는데.

다만 이제는 상황이 상황이라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최대한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저도 외출을 자제하고 있고요. 생활공간이 한정되면서 사고가 심플해진다든지 의외로 좋은 면도 있는데요. 지난 몇 달 동안 필요한 일, 불필요한 일의 구분이 분명해지면서 앞으로 나가는 층계참에 있는 것 같은 중립적 감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시그널 100」은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하지만 지루해할 여유는 없을 것이다. 일단 영화가 시작되고 나면 88분이라는 러닝 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릴 테니까. 사진제공: (C)2020 Signal 100 Film Partners
「시그널 100」은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하지만 지루해할 여유는 없을 것이다. 일단 영화가 시작되고 나면 88분이라는 러닝 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릴 테니까. 사진제공: (C)2020 Signal 100 Film Partners

홍상현

잠시 화제를 전환해볼까요. 영화제 초청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으신 게 2012년인데 원래부터 한국영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의 한국영화에 대한 느낌은 어떠신가요.

타케바 리사

일본에서는 역시 <기생충>이나 <벌새>가 화제인데요. 저는 지난해 개봉한 <엑시트>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럭키몬스터>도 좋았습니다. 또, 영화는 아니지만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서 밤잠이 모자랄 정도였어요. 이렇게 재미있는 각본에 설정, 배우, 미술, 의상에 이르기까지 온통 좋은 점밖에 없는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죠. <사랑의 불시착>처럼 재미있는 작품은 세계평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대사도 얼마나 매력적인지. 재치 있는 언어유희에 매번 깜짝 놀랐습니다.

 

홍상현

예시가 대단히 구체적이군요. (웃음)

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섭섭하실 것 같은데 그밖에 재미있게 보신 작품,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 등이 있으신지요.

타케바 리사

(웃음) 영화중에서는 <악마를 보았다>, <신세계>, <악녀>, <박하사탕>, <마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등 하나하나 꼽아보자면 끝도 없을 겁니다. 몇 번이나 보고, 좋아하는 장면은 캡처해서 콘티에 적어놓기까지 했습어요.

한국은 배우의 레벨이 정말 높아요.

현빈 배우, 송강호 배우, 이병헌 배우의 연기를 보는 걸 좋아합니다. 특히 현빈 배우는 <내 이름은 김삼순> 출연 당시부터 일본에 팬이 많았는데요. 저는 <시크릿 가든>이 제일 좋아요. 그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는 게 즐거워서 방송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일주일을 보내고는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일주일의 행복도를 높여주는 한국 배우들이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온 인류가 그들을 좋아할 거예요!

한국 관객들에게는 「은혼」시리즈로 얼굴을 알린 하시모토 칸나 배우.  「시그널 100」에서는 특유의 웃음기를 지우고 스플래터 무비의 주인공으로 완벽한 연기변신을 보여준다. 사진제공: (C)2020 Signal 100 Film Partners
한국 관객들에게는 「은혼」시리즈로 얼굴을 알린 하시모토 칸나 배우. 「시그널 100」에서는 특유의 웃음기를 지우고 스플래터 무비의 주인공으로 완벽한 연기변신을 보여준다. 사진제공: (C)2020 Signal 100 Film Partners

홍상현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세계의 관객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계신감독이신데요. 보통의 작가라면 흉내조차 내기 쉽지 않은 그 발상의 근원은 어디에서 오는 건가요.

타케바 리사

감사합니다. 미국 시트콤을 좋아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설정을 개발하려고 80년대 코미디 영화를 많이 봤어요. 설정도 중요하지만 각본에서는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와 대사가 중요하니까. 거리에서 재미있는 대화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엿들으면서 메모를 합니다. 그런 대화에 착안해서 캐릭터를 만들기도 하고요.

흔히 소설가는 극단의 소속작가처럼 머릿속에 대략 세 가지 패턴의 스테디셀러를 넣어놓고 작품마다 조금씩 변용해서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이 캐릭터들의 바탕이 되는 건 작가가 어린 시절에 영향을 받은, 이를테면 학원 선생님이나 아버지 같은 실제 인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작가의 과거 속에서만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이전에 만나본 적 없는 인물이나 외국인 등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새로운 캐릭터를 개발해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 대비해서 늘 자신을 초기화할 필요가 있지요. 따라서 혼자 해외로 나가려고 해요.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머릿속 캐릭터가 저절로 움직이면서 손이 자동으로 PC에 대사를 띄우고는 합니다. 가끔 손이 그걸 따라잡지 못할 때도 있지요. 그런 즐거움에 대본을 쓰는 거예요.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그런 상태가 되기 일쑤랍니다.

 

홍상현

<시그널 100>의 경우, 심리전과 최면술 등의 흥미로운 주제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미야츠키 아라타의 동명타이틀 만화가 원작인데요.

타케바 리사

원작의 설정이 훌륭해서 가급적이면 결말이나 등장인물도 그대로 살리는 방향으로 가고 싶었지만 스태프들과 다각도의 크리에이티브 워크를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원작을 접했을 때 <팔로우> 같은 영리한 호러에 필적하는 설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직접적으로 상대를 해치지 않고 최면이라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죽음에 몰아넣는 점이 현재 일본에 만연해 있는 사회적 타살 그 자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인은 직접소통을 잘 못합니다.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축구부 남자 아이들은 모두 주인공인 가시무라를 좋아하지만 제대로 이야기 한 번 나눠본 적이 없지요. 연애도 왕따도 디스커뮤니케이션(discommunication)으로 이루어져 있는 게 일본의 중고생들 아닐까 해요. 접점 없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그리는 한편 싶으면서도 <배틀로얄>을 보았을 때의 저와 같은 10대 분들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놀이공원의 어트랙션 같은 느낌으로 만들었습니다.

주인공에게 은밀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축구부의 ‘인싸’, ‘소타’로 분한 코세키 유타 배우. 「시그널 100」은 한국 관객에게 그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첫 번째 작품이다. 사진제공: (C)2020 Signal 100 Film Partners
주인공에게 은밀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축구부의 ‘인싸’, ‘소타’로 분한 코세키 유타 배우. 「시그널 100」은 한국 관객에게 그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첫 번째 작품이다. 사진제공: (C)2020 Signal 100 Film Partners

홍상현

일부러 극장을 찾는 영화팬 여러분을 위해 어떤 포인트에 역점을 두셨나요.

타케바 리사

아무래도 제가 판타스틱 영화감독이라 스플래터 무비(Splatter Movie) 팬들을 위해서 체육관 장면처럼 순간순간 자극을 줄 수 있는 부분에 주력했어요. 밀실극이라 배경에 변화가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조명감독 리노이에 슌리 씨(한국영화 좋아함)에게 가 과감한 시도를 하실 수 있도록 전권을 일임했습니다. 학교에 밤에 남는다는 건 어찌 보면 로맨틱한 설정인 것 같아요. 저도 초등학생 시절 여름학교 프로그램으로 체육관에서 동급생들과 밤을 보낸 적이 있는데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복도만 걸어도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 게 너무 즐거웠거든요. 낯익은 장소의 밤풍경은 어떤 놀이공원보다도 즐겁지요. 이런 요소가 모두에게 익숙한 교사를 놀이공원이나 유령의 집처럼 바꿔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데스티네이션>같은 팝콘무비는 일본에서 거의 만들어지지 않아요. 만들어진다고 쳐도 흥행하는 경우가 드물고. 그럼에도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데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시그널 100>은 스태프 복이 특히 많았는데요. 음향은 <배틀로얄>의 시바사키 켄지 씨가 맡았고, 편집도 <>의 다카하시 노부유키 씨가 수고해주셨습니다. 그렇다보니 후반작업이 회를 더할수록 영화의 재미를 더해주는 과정으로 기능해줘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홍상현

다음은 스토리에 관한 것인데요. 금지된 행동을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는 최면을 거는 교사, 최면을 풀기 위해 동급생을 죽여야 한다는 설정 자체, 단순히 호러적인, 혹은 스릴러적인 재미를 위해서가 아니라 최근 심각한 사회적 이슈가 되어있는 학교붕괴와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케바 리사

말씀하신대로 사회문제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10대의 자살자는 여전히 줄지 않고, 집단 괴롭힘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니, 없어지기는커녕 직접 얼굴을 마주 대하지 않고 SNS로 상처를 주는 등, 수법이 고도화하고 있지요. 공포영화는 당대의 공포의 최대공약수(the greatest common denominator)인 까닭에 <시그널 100>도 역시 사회풍자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SNS를 이용해 익명으로 개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 중에는, 왜곡된 정의감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지요. 잘 지내고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쾌감을 느끼거나 인터넷상에서 누군가와 동조하면서 의지할 곳을 찾기도 하고요.

그런 사람들이 증가하는 경향을 띠는 건 일본 사회에서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해결되어야 할 문제겠지요. 어떤 일을 하면 결국 누군가에게 무슨 일을 당한다, 그러니 행동하지 않는다. 침묵하는 다수로 있는 자체가, 사고를 포기하는 거나 같습니다. 결국 누군가가 의도하는 대로 모든 일이 흘러가버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기 마련이지요. 좋지 않은 풍조입니다.

일본보다 한국이 인터넷에서의 인신공격에 대한 대책에서 앞서 있다고 생각해요. 일본도 지금 개선되어가는 중이지만. 이렇듯 사회 풍자적인 내용을 포함시키면서도 영화는 관객의 기분 전환 등을 위한 편안한 오락이라는 측면도 있느니 설교가 되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TV드라마를 통해 다져진 탄탄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세토 토시키 배우는 「가면라이더」늘 학급 친구들과 거리를 두는 쿨한 성격의 소유자, ‘와다’로 분했다. 사진제공: (C)2020 Signal 100 Film Partners
TV드라마를 통해 다져진 탄탄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세토 토시키 배우는 「가면라이더」늘 학급 친구들과 거리를 두는 쿨한 성격의 소유자, ‘와다’로 분했다. 사진제공: (C)2020 Signal 100 Film Partners

홍상현

주연을 맡은 하시모토 칸나 배우는 평소 코믹 연기에서 보여준 발군의 재능으로 한국에도 팬이 많은데요. <시그널 100>에서는 완벽한 캐릭터 변신을 이뤄냈습니다.

타케바 리사

자신의 비전이 ‘원 신 원 컷(One Scene One Cut)’으로 아주 명확한 배우지요. <시그널 100>에서는 최대한 그 설계를 존중했습니다.

 

홍상현

주인공에게 은밀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축구부의 ‘인싸’, ‘소타’로 분한 코세키 유타 배우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그널 100>은 한국에 코세키 씨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한데요.

타케바 리사

세상에 그렇게 악의 없는 청년도 없을 거예요. (웃음)

매사에 워낙 배려심이 넘치고, 생각이 깊다 보니 친구들의 죽음과 맞닥뜨리는 연기를 하는 것조차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밖에 다른 캐스트들도 하나같이 성실하고 순수한 친구들뿐이었어요. 다들 정말 사이가 좋게들 지내고 작품에 대해서도 소중하게 생각해주었어요. 무척 추울 때였는데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모두들 온 몸을 던져 촬영에 임해주었어요. 10대, 20대 할 거 없이 한데 모여 호러영화를 만든다는 걸 무척 즐거워했습니다. 욕심을 부리자면 다 같이 손을 잡고 부천에 가고 싶었어요.

나카무라 시도 배우는 할리우드나 홍콩 영화에도 종종 등장해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개성파. 「시그널 100」에서는 36명의 학생들에게 자살주문을 거는 담임교사 ‘시모베’역을 맡았다. 사진제공: (C)2020 Signal 100 Film Partners
나카무라 시도 배우는 할리우드나 홍콩 영화에도 종종 등장해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개성파. 「시그널 100」에서는 36명의 학생들에게 자살주문을 거는 담임교사 ‘시모베’역을 맡았다. 사진제공: (C)2020 Signal 100 Film Partners

홍상현

‘동급생끼리의 생존경쟁’이라는 면에서 비슷한 설정을 가진 <배틀로얄> 시리즈의 로케지가 무척 다양했던 것과 달리, <시그널 100>은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요.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나면 88분이라는 러닝 타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느낌이 듭니다. 수많은 캐릭터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최대한의 케미스트리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타케바 리사

요즘은 중고생들도 동영상 공유앱 등을 능숙하게 활용해서 순발력 있게 영상을 처리하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시그널 100>에서도 한 사람 한 사람 그 배경을 묘사하기보다 그런 속도감을 유지하면서 사람됨을 알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접하는 세대인 그ㆍ그녀들이 영화의 핵심 타겟이기도 한 까닭에 스토리와 관련해서도 정형화된 패턴을 피하려 노력했고요.

특히 의상 피팅은 캐릭터 만들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스태프들과 의논해서 배역의 성격이 시각적으로도 부각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짰습니다. 그리고 각 캐릭터의 사연이나 인간관계는 일단 시나리오 외에도 서브텍스트를 따로 준비한 뒤에 캐스트를 사이좋은 그룹 별로 불러 같이 이야기했어요.

「시그널 100」은 오랜만에 만나는 본격 스플래터 무비. 그 희소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연일 매진행렬을 기록했다. 사진제공: (C)2020 Signal 100 Film Partners
「시그널 100」은 오랜만에 만나는 본격 스플래터 무비. 그 희소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연일 매진행렬을 기록했다. 사진제공: (C)2020 Signal 100 Film Partners

“편하게 시원한 음료와 간식을 먹으면서 놀이공원 유령의 집에 오신 느낌으로 봐 주셨으면 합니다.

요즘 놀이공원에도 가기 쉽지 않고 야외에서 레저를 즐기기도 어려우니 다들 호러영화로 흥을 돋우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가지 못해서 너무 아쉽지만 한국에는 꼭 영화제 때문이 아니라도 개인적으로 매년 놀러가고 있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거나 쇼핑을 하거나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거든요. 찜질방의 유쾌한 세신사 아주머니, 맥반석 달걀, 식혜. 부천에서 마셨던 이름은 모르겠지만 갈색 구기자 열매가 들어간 차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요즘 아무래도 전처럼 밖에서 일을 하거나 외출을 하기 힘들어지다 보니 한국드라마 ‘정주행’으로 시간을 보내거나 하거 있습니다. 그럴수록 점점 더 한국에 가고 싶어지고 먹고 싶은 한국음식도 늘어나서 곤란하긴 하지만요.

여러분 최근 들어 달라진 생활 때문에 많이 힘드시겠지만 아무쪼록 올 여름도 건강하게 보내세요. 그리고 내년에 꼭 다시 만나요!”

취재 진행하기 직전까지 내내 궁금했었다. 장편상업영화 데뷔 6년차, 다섯 편의 작품을 발표하는 동안 세계 3대 판타스틱영화제와 4대 영화제를 섭렵하고, 국제공동제작을 통해 아시아최대 영화제의 메가폰을 잡은 30대 청년감독의 이 놀라운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해답은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스플래터 무비에 대한 것이라 믿기 힘들 만큼 유쾌함이 넘치는 인터뷰가 중반에 이르렀을 즈음 드러났다.

‘적극적 소통(active communication)을 향한 의지’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인 누군가의 일상적 대화조차 활용하는, 창작의 공간을 크리에이터의 내면으로 제한하지 않으며, 초면인 인물이나 이방인에게조차 망설임 없이 다가가는 힘. 무한히 넓은 그녀의 세계가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가득 차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코로나 19 사태가 수습된 뒤, 그녀가 부디 영화제 초청과 상관없이 다시 한국을 방문해 여름휴가를 보내기 바란다. 해서, 야외테이블에서 동료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고, 이튿날에는 찜질방에 가 세신사 아주머니에게 안부를 건넨 뒤 맥반석 계란에 시원한 식혜도 즐길 수 있기를.

그리고 그때,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번은, 여전히 그 맛을 기억하고 있을 오미자차를 대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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