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구로아파트 배수관이 코로나19 전파 통로?

  • 기사입력 2020.08.31 14:46
  • 최종수정 2020.08.31 14:55
  • 기자명 선정수 기자

구로구 아파트 코로나19 집단감염 사례는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다. 구로구청이 "환기구를 통한 감염 전파 가능성"을 제기하면서다. 만약 환기구 전파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마지막 피신처로 여겼던 집 안에서조차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이다. 방역 당국과 지자체의 합동 조사결과 환기구에서 채취한 환경 검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음에 따라 '환기구 감염 전파설'은 설득력을 잃었다. 방역 당국이 감염 경로를 추적하고 있는 동안 설익은 보도들이 난무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중앙일보는 29일 "中서도 구로아파트 사태? 코로나, 배수관타고 윗층 올라갔다"  제하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의 주요 내용은 중국 광저우에서 사람이 살지 않고 오랫동안 비워둔 아파트 욕실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연구 논문을 소개한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 논문 외에도 2003년 홍콩에서 발생한 '아모이 가든' 아파트의 사스(SARS) 층간 전파 사례를 다뤘다.

이 기사는 "수직 배수구로 인한 에어로졸 전파 가능성도 조사할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욕실 문을 닫고 환풍기를 계속 가동할 경우 홍콩 사례처럼 오히려 배수관의 바이러스를 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며 환기·배수 시스템으로 인한 감염 전파 위험성을 경고했다.

조심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쓸데없는 불안을 부추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뉴스톱이 해당 기사를 팩트체크했다.

 

①구로아파트 배수관타고 바이러스 퍼졌다? - 미검증

해당 보도의 제목은 [中서도 구로아파트 사태? 코로나, 배수관타고 윗층 올라갔다]라고 뽑았다. 풀어 쓰면 [중국에서 아파트 층간 전파 사례가 있었는데 구로아파트 사례처럼 배수관을 타고 바이러스가 전파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밝혀지지 않은 사실에 대한 단정적 표현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구로구 A아파트 사태에서 현재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A아파트 8가구에서 확진자가 나왔는데 이 중 5가구가 같은 라인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자체가 환기구로 인한 감염 전파를 의심해 환기구에서 검체를 채취해 검사한 결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환기구를 통한 감염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감염 경로를 찾기 위해 방역당국과 지자체는 추가 조사를 벌이는 중이다.  '배수관 타고 윗층으로 올라갔다'는 것은 구로구 A아파트 사례에선 아직 확인되지 않아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시점이 아니다. 라인이 다른 3가구의 감염 경로를 환기구 또는 배수구라고 지목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②중국 아파트에선 배수관을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 사실

중앙일보가 인용한 연구논문을 살펴보자. 이 논문의 제목은[Aerosol transmission of SARS-CoV-2? Evidence, prevention and control]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코로나19 바이러스 공기전파? 증거, 예방, 통제] 정도가 되겠다. 논문의 주요 내용은 공기 전파로 추정되는 코로나19 감염 전파 사례를 모아놓은 것이다. 여러 사례 중 중앙일보가 보도한 사례가 포함됐다. 논문에서 관련 부분을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2020년 2월 중국 광둥성 광저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RNA가 오랫동안 비어있던 16층 아파트 욕실의 표면(싱크, 수전, 샤워꼭지) 등에서 검출됐다. 바로 아랫층인 15층에선 코로나19 확진자가 5명 발생했다(1월26일~30일 사이; 출처 : 중국질병통제예방본부 미출간 자료). 15층 화장실에서 물을 내린 뒤 배수관을 통해 에어로졸이 전파됐을 가능성은 현장 추적 시뮬레이션 실험결과로 입증됐다. 이 실험에선 25층과 27층 화장실에서도 에어로졸을 발견할 수 있었다(출처: 중국질병통제예방본부 미출간 자료). 비록 공용 엘리베이터를 통한 전파를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 사례는 2003년 홍콩 아모이 가든의 사스 감염 사례와 일맥상통한다.

-Environment International Volume 144, November 2020, 106039

해당 논문에선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아파트 바로 윗층을 주목했다. 오랜 기간 동안 비어있던 집이었지만 욕실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RNA가 발견된 것이다. 사람의 왕래가 완전히 없었다면 생각할 수 있는 전파 경로는 에어로졸 전파일 수밖에 없다.   

 

③ 환풍기로 인해 에어로졸 유입? - 절반의 사실

2003년 홍콩 아모이가든의 SARS 전파 경로를 나타낸 그림. 왼쪽은 중앙일보 기사에 실린 내용. 오른쪽은 홍콩대학교 연구팀의 논문(2012. 12)에 쓰인 그림이다. 에어로졸의 유입경로를 다르게 표시하고 있다.
2003년 홍콩 아모이가든의 SARS 전파 경로를 나타낸 그림. 왼쪽은 중앙일보 기사에 실린 내용. 오른쪽은 홍콩대학교 연구팀의 논문(2012. 12)에 쓰인 그림이다. 에어로졸의 유입경로를 다르게 표시하고 있다.

이어 중앙일보는 2003년 사스 창궐시 홍콩에서 300명 이상의 집단 감염자가 나왔던 '아모이 가든' 사례를 설명한다. 

중앙일보는 이 사례에 대해 "WHO 조사 결과, 아파트 내 많은 세대에서 배수관이 물로 완전히 채워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여러 세대를 연결하는 수직 배수관과 각 세대 배수관 사이에 공기가 드나든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물을 빼는 배수관이 어떻게 완전히 물로 채워진단 말인가? 뉴스톱 확인 결과 WHO의 조사 보고서 원문은 [감염 확산기에 많은 가구의 바닥 배수 트랩이 장기간 말라붙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밀폐 기능을 잃고 수직 배수관(soil stack)에 열려있는 상태를 초래했다.] 라고 언급했다.

이어 [배기팬이 돌아가고 있고 문이 닫힌 상태라면 비말(droplets)은 바닥 배수구를 통해 수직 배수관에서 끌려 나왔을 것이다. 이것이 욕실을 오염시켰을 수 있다.] 라고 적혀있다. 

트랩은 배수구 파이프에 구부러진 형태로 설치된 부분을 말한다. 보통 U자형 트랩(U트랩)을 많이 사용한다. 중앙일보는 '말라붙은 배수 트랩'의 존재를 간과했고, '바닥 배수구를 통해 에어로졸이 끌려 나왔을 것'이라는 유입 경로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④ 그럼 우리집은 안전한가?

오랫동안 비어있던 윗층 화장실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검출된 광저우 사례도 결국엔 배수구의 U트랩이 말라붙어 있었기 때문에 에어로졸의 통로가 됐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U트랩 안에 물이 고여있었다면 공기의 흐름을 차단하기 때문에 에어로졸이 들어올 수 없다. U트랩에 물이 고여있고 환풍기가 가동되고 있다면 공기의 흐름이 내부→외부로 향하기 때문에 역시 에어로졸이 침투할 수 없다.

중앙일보는 "환기구뿐만 아니라 수직 배수구로 인한 에어로졸 전파 가능성도 조사할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반 가정에선 배수구, 환풍기를 통한 전파 가능성에 대해선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거나 계단 난간에 손을 짚는 등 공용 부분 접촉시 손을 잘 씻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 마스크를 올바른 방법으로 착용하는 것이 좀 더 시급해 보인다.

그래도 두려움과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면 평소 사용하지 않는 배수구가 있을 시 트랩 안의 물이 마르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물을 흘려보내주고, 욕실 환풍기를 항상 틀어주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용변을 보고 나서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리는 것도 내 가족과 이웃의 감염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뉴스톱은 중앙일보의 <中서도 구로아파트 사태? 코로나, 배수관타고 윗층 올라갔다> 기사를 검증했다. 구로아파트 사태는 아직까지 감염 경로가 밝혀지지 않았다. 중국의 두 사례에 관한 연구는 배수관의 U트랩이 말라붙어 에어로졸의 침투 경로가 된 것으로 추정했다.  따라서 뉴스톱은 해당 기사에 대해 "판단 보류"로 판정한다.

선정수   sun@newstof.com    최근글보기
2003년 국민일보 입사후 여러 부서에서 일했다.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 ' 이달의 좋은 기사상', 서울 언론인클럽 '서울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야생동물을 사랑해 생물분류기사 국가자격증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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