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폭력 가해자, 우리 사회는 용서할 수 있을까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20.10.07 01: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잔혹사건을 접하는 순간 우리는 보통 피해자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이해 또한 병행되지 않는다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하기 힘들다.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잔혹사건을 접하는 순간 우리는 보통 피해자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이해 또한 병행되지 않는다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하기 힘들다.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강력사건을 접하는 순간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해법은 보통 ‘가해자에 대한 무거운 처벌’ 즉, 엄벌주의(punitivism)다.

당연할뿐더러 나름 의미 있는 생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방향을 지지하는 이들 중 대다수는 집단 괴롭힘의 끔찍함에 분노하며,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입장일 테니까. 아울러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는 전통적 상식에도 어느 정도 삶의 진실은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보자. 엄벌주의는 (사형을 제외한) 실형을 선고받았을 때조차 전제되는 갱생의 여지를 차단해버릴 위험성을 내포한다. 우리 사법체계에서 징역ㆍ금고ㆍ구류 등과 같은 자유형(Freiheitsstrafe)의 선고를 받은 자가 수용되는 곳을 ‘감옥’이 아니라 굳이 ‘교정기관’이라 부르는 이유도 갱생의 여지 때문이다. 그밖에도 집단 괴롭힘을 저지르는 아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그 자신 학교나 가정에서의 학대, 체벌, 혹은 집단 괴롭힘으로 인한 상처를 안고 있다. 이와 무관하더라도 집단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악의 먹이사슬’에 합류한 경우가 존재한다. 엄벌주의는 악행의 부덕함을 강조하며 응징을 바라는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할지 모르나 애초에 아이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을 지적하지는 않는다.

결국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이해가 함께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어떤 근본적인 해결책도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나이토 에이스케 감독은 소명감 넘치는 현직 특수학교 교사이나, 학교 문을 나오는 순간 주목받는 판타지ㆍ호러 감독으로 활약하는 ‘이중생활(?)’을 해왔다.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나이토 에이스케 감독은 소명감 넘치는 현직 특수학교 교사이나, 학교 문을 나오는 순간 주목받는 판타지ㆍ호러 감독으로 활약하는 ‘이중생활(?)’을 해왔다.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용서받은 아이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정면에서 다룬다. 중학교 1학년인 주인공 ‘키라(우에무라 유 분)’는 동급생을 괴롭힌 끝에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난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건 이 부분부터다. 키라가 SNS와 유튜버들의 표적이 되어도 학교 측은 난색을 표하며 전학을 권할 뿐이다. 아들의 비행 때문에 직장을 잃은 아버지는 집을 나간다. 도망치듯 이사를 가보지만 신분을 숨긴 채 지내야하는 상황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키라 또한 초등학교 시절 집단 괴롭힘의 피해자였음이 드러난다. 이 모든 스토리를 섬뜩하리만치 냉정한 시선으로 풀어가는 나이토 에이스케 감독의 프로필은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수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현직 교사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흔히 예상하듯 ‘현장의 문제를 보다 못해 메가폰을 잡은 교사’가 아니다. 교육현장에서는 소명감 넘치는 젊은 교사이나, 학교 문을 나오는 순간 주목받는 판타지ㆍ호러 감독으로 활약하며 ‘이중생활(?)’을 해왔다. 영화학교 시절 만든 단편 <우유왕자>부터 해외영화제에서 각광받았고, 이후 메인스트림에 진출해 만든 장편상업영화들은 각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에 차례로 초청된 후 국내에서 개봉했다. 두 번째 전주국영화제 초청작 <용서받은 아이들>은 진단 괴롭힘과 관련한 앞서 말한 문제의식(피해자와 마찬가지로‘악의 먹이사슬’안에 있는 가해자)본인이 오랜 문제의식을 담은 드라마영화다.

‘장르영화의 세계적 유망주’라는 자리로 잠시 내려와 장편독립영화 신작을 발표한 그를 만났다.

「용서받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전죽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던 전작 「노루귀꽃」은 시카고국제영화를 비롯한 북미의 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진제공: (C)2017 Liverleaf Film Partners
「용서받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전죽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던 전작 「노루귀꽃」은 시카고국제영화를 비롯한 북미의 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진제공: (C)2017 Liverleaf Film Partners

홍상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를 거쳐 올해는 두 번째로 전주영화제에 초청되셨습니다.

나이토 에이스케

한국의 영화제에 참가할 때마다 관객과의 대화가 활발해 깜짝 놀랍니다. 내용도 워낙 농밀한 까닭에 매번 기대가 돼요. 한국음식도 맛있고. 2년 전에 <노루귀꽃>으로 초청되었던 전주국제영화제에 다시 오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직접 전주에 갈 수는 없었지만요.

 

홍상현

4편의 영화가 한국의 국제영화제에서 호평 받았고, 3편의 영화가 극장 개봉했는데, 평소 좋아하는 한국영화의 작품이나 감독, 혹은 배우 등이 있으신지요.

나이토 에이스케

김기영 감독의 <하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나홍진 감독의 <곡성>, 강현철 감독의 <써니>,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장훈 감독의 <택시기사>, 황동혁 감독의 <수상한 그녀>, 윤종빈 감독의 <공작>,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 등 일일이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작품을 좋아합니다. 특히 김기영 감독의 작품은 일본에서 좀처럼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특집 상영이 개최되면 반드시 극장으로 달려가고는 해요. 배우는 마동석 씨를 가장 좋아합니다.

나이토 에이스케 감독이 「용서받은 아이들」을 기획했던 것은 8년 전. 하지만 메인스트림의 제작자들은 늘 “엔터테인먼트 부분을 더해 달라”든가, “주연으로 아이돌이나 20대 연기자를 캐스팅하자”는 제안이 덧붙여졌고, 그 경우 기획 자체가 갖는 강점이 손상되어 버린다고 판단한 나이토 에이스케 감독은 결국 인디영화 형태로 「용서받은 아이들」을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은 피해학생인 ‘이츠키’로 분한 아베 타쿠야 배우)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나이토 에이스케 감독이 「용서받은 아이들」을 기획했던 것은 8년 전. 하지만 메인스트림의 제작자들은 늘 “엔터테인먼트 부분을 더해 달라”든가, “주연으로 아이돌이나 20대 연기자를 캐스팅하자”는 제안이 덧붙여졌고, 그 경우 기획 자체가 갖는 강점이 손상되어 버린다고 판단한 나이토 에이스케 감독은 결국 인디영화 형태로 「용서받은 아이들」을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은 피해학생인 ‘이츠키’로 분한 아베 타쿠야 배우)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홍상현

2008년 단편영화 <우유왕자>가 슬램던스영화제 등에 초청되었지만 특이하게도 서른 살이 되실 때까지 영화관련 이력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나이토 에이스케

원래부터 영화감독을 지망했던 게 아니라 그렇습니다. 만화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2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지요. 다만, 부모님이 제가 안정적인 생업을 갖기를 원하셔서 평소 지망하던 교사가 되었습니다. 영화는 취미로 할 작정으로요. 그래서 교사생활을 하면서 영화학교에 다니고 자주제작 영화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홍상현

처음부터 영화감독이 되기로 작정을 하고 나서셨다면 더 엄청난 감독이 되셨을 주도 있겠는데요. (웃음) 호러, 미스터리, 서스펜스 등 장르영화에서의 재능은 실로 대가의 레벨에 진입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특이하게도 영화의 배경이 늘 학교에, 주인공은 언제나 청소년입니다.

나이토 에이스케

10대 시절 우울한 나날을 보냈어요. 또래 소년이 일으킨 여러 건의 살인사건을 접하면서 인간의 어두운 욕망이 구현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아울러 제 작품에 등장하는 ‘죄를 짓는 소년들’은 저 자신의 투영이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의 내면을 그린 작품들도 많아졌고요.

교원이 되고 나서는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을 직접적으로 접했습니다. 그 경험에 근거해서‘죄를 짓는 소년들’과 어른, 그리고 사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하는 테마에 대해 또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용서받은 아이들>에서는 이런 내용들을 총체적으로 다뤄보려고 했고요.

전작 「노루귀꽃」에서 놀라운 조형미를 보여준 조형가 히야쿠타케 토모는 나이토 에이스케 감독이 인디영화 형태로 제작한 「용서받은 아이들」에도 함께해주었다. 예컨대 극중에서 범행에 사용되는 나무젓가락 고무줄 총은 히야쿠타케 스튜디오의 작품이다.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전작 「노루귀꽃」에서 놀라운 조형미를 보여준 조형가 히야쿠타케 토모는 나이토 에이스케 감독이 인디영화 형태로 제작한 「용서받은 아이들」에도 함께해주었다. 예컨대 극중에서 범행에 사용되는 나무젓가락 고무줄 총은 히야쿠타케 스튜디오의 작품이다.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홍상현

지금까지 연출한 거의 모든 장편영화의 각본을 쓰셨습니다. 역시 평소 추구하는 작가적 테마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나이토 에이스케

그렇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죄를 짓는 소년들’을 주제로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저 자신이 10대 시절 안고 있던 문제와 마주하게 되는 느낌이 들어요. 그렇게 제 마음 또한 정리해가는 거지요.

 

홍상현

지금까지 한국에 소개되었던 감독님의 이른바‘메이저 스튜디오 작품’을 살펴보면 무척 흥미로운 경향이 발견됩니다. 어른들을 공격하는 아이들(<퍼즐>), 어른들을 경멸해서 인공지능로봇까지 만드는 아이들에 대한 상상(<비밀결사: 라이치 히카리 클럽>), 그리고 아이들 간의 잔혹한 투쟁(<노루귀꽃>) 같은 것들인데요. <용서받은 아이들> 이 모든 이야기의 종합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토 에이스케

용서받은 아이들의 기획은 이미 8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퍼즐>, <비밀결사: 라이치 히카리클럽>, <노루귀꽃>을 만들 때도 관련 리서치를 병행하면서 내내 시나리오를 썼죠. 그렇다 보니 <용서받은 아이들>에는 당연히 전작들과의 연결고리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이외에도 지극히 우연한 접점이 발견되는데요. 예컨대 <노루귀꽃>에도 나무젓가락 고무줄 총이 등장하는데 그건 원작에도 원래 나와요. 덧붙여서, <용서받은 아이들>의 시나리오 작업을 같이 한 야마가타 테츠오 작가는, <퍼즐>의 시나리오를 쓸 때도 협력해 주었습니다.

집단 괴롭힘 끝에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주인공 ‘키라’역을 맡은 우에무라 유 배우는 그 자신 제도권 교육에서 정서적 상처를 경험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집단 괴롭힘 끝에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주인공 ‘키라’역을 맡은 우에무라 유 배우는 그 자신 제도권 교육에서 정서적 상처를 경험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홍상현

다만 의외였던 것은 메이저에서 더 성장해 가시리라고 생각했던 감독이 돌연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겠다면서 인디영화로 복귀하신 겁니다.

나이토 에이스케

8년 전 <용서받은 아이들>을 기획하면서 장편상업영화로 제작하기 위해 협상을 계속해왔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설령 흥미를 가져 주는 분이 계셔도, 늘 “엔터테인먼트 부분을 더해 달라”든가, “주연으로 아이돌이나 20대 연기자를 캐스팅하자”는 제안이 덧붙여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 기획 자체가 갖는 강점이 손상되어 버린다고 저는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제작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가나가와 현 가와사키 시에서 세 사람의 급우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던 중학교 1학년생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내내 다루고 싶어 했던 문제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병리가 표면화되어 있더군요. 그래서“이제야말로 구상을 현실화 시킬 때”라는 확신 하에 인디영화 형태로 <용서받은 아이들>의 제작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홍상현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감독의 인디영화로의 복귀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용서받은 아이들>로 누구도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할 ‘나이토 스타일’이 확립된 느낌인데요. 시나리오 준비를 위해 철저한 취재가 이루어졌을 것 같은데요.

나이토 에이스케

이제까지 만들어 온 영화들은 판타지 장르라는 특성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리얼리스틱한 터치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제작에 들어가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린 까닭에 취재도 차분하게 진행할 수 있었지요. 

다만 소년심판이나 가해자 가족에 대한 정보를 좀처럼 입수할 수가 없어서 고생했습니다. 가정법원이 취재에 응해 주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변호사, 사회학자, 소년감별소 입소 경험이 있는 분 등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가해자 가족의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시민단체 “WOH(World Open Heart)”의 아베 쿄코 이사장과의 인터뷰와 그녀의 저작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고요.

우에무라 유와 놀라운 케미스트리를 보여주는 ‘모모코’역의 나구라 유키노 배우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니는 평범한 고등학생. 역시 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이 있는 까닭에 나이토 에이스케 감독은 촬영을 진행하면서 따로 카운슬링을 받도록 하는 등 정신적인 케어를 병행했다고.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우에무라 유와 놀라운 케미스트리를 보여주는 ‘모모코’역의 나구라 유키노 배우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니는 평범한 고등학생. 역시 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이 있는 까닭에 나이토 에이스케 감독은 촬영을 진행하면서 따로 카운슬링을 받도록 하는 등 정신적인 케어를 병행했다고.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홍상현

<용서받은 아이들>에서는 전작들의 차이점도 발견됩니다. 조형가 히야쿠타케 토모와의 협업으로 <노루귀꽃>에서 놀라운 조형미를 보여주셨지만, 이번 작품은 또 다른 조형미가 있습니다. 리얼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강렬한. 어떤 작업의 프로세스를 거쳤는지 궁금합니다.

나이토 에이스케

아, <용서받은 아이들>에 등장하는 고무줄 총을 바로 그 히야쿠타케 스튜디오의 스탭 분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마침 유튜브에 나무젓가락으로 고무줄 총을 만드는 동영상이 있어서, 이를 참고로 핸드메이드의 느낌이 배어있는 고무줄 총을 제작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주인공이 불량배들에게 린치를 당한 뒤의 부상 메이크업도 히야쿠타케 씨가 해주셨어요. 나머지 부상 메이크업은 제가 직접 했습니다. 원래 인디영화를 만들던 시절에 부상 메이크업은 모두 제가 직접 했었거든요. 주인공의 뺨에 남아있는 흉터는 일단 햐쿠타케 씨가 만들어 주신 것을 촬영이 진행될 때마다 붙였습니다.

 

홍상현

특히 <용서받은 아이들>의 가장 큰 발견은 주인공을 연기한 우에무라 유라는 배우 아닐까 합니다.

나이토 에이스케

<용서받은 아이들>은 출연을 희망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개최했습니다. 그래서 메인 캐스트는 모두 워크숍 참가자에요. 주연을 맡은 우에무라 유 배우도 마찬가지고. 우에무라 배우는 체격이 크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 거친 인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섬세한 면 또한 갖추고 있지요. 등교거부를 했던 과거가 있고, 통증이나 괴로움도 경험해보았던 겁니다.

이처럼 주인공을 연기하는데 필요한 대조적인 모습을 겸비하고 있다는 점이 캐스팅의 가장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연기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날마다 연기에 대한 개별 상담을 진행했어요. 일단 캐릭터 자체가 누구든 거부감을 느낄만한 인물인데 정말 어려운 작업을 해내줬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남편과의 결별도 불사하는 엄마, ‘마리’로 분한 쿠로카와 이와 배우는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서울올림픽에 출전하는가 하면, 액션배우로 전업한 후에는 「더 울버린」에서 히로인의 스턴트 더블을 맡는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아들을 지키기 위해 남편과의 결별도 불사하는 엄마, ‘마리’로 분한 쿠로카와 이와 배우는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서울올림픽에 출전하는가 하면, 액션배우로 전업한 후에는 「더 울버린」에서 히로인의 스턴트 더블을 맡는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홍상현

아들에 대한 집착으로 평범한 인간의 도덕률마저 무시해버리는 어머니 역의 쿠로카와 이와 배우도 놀라웠습니다.

나이토 에이스케

쿠로카와 배우는 수영선수로 서울올림픽에 출전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후 액션배우로 전업해서 <더 울버린> 촬영 당시 히로인의 스턴트 더블을 맡기도 했고요. 그런데 <용서받은 아이들>의 오디션을 보러 오셨더라고요. 운동을 하신 분이라 그런지 결승점을 향해 쉬지 거침없이 달려가는 파워가 느껴졌습니다. 캐스팅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캐릭터와 관련해서는, 촬영 전에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물상을 깊이 파고들어 갔습니다. <용서받은 아이들>의 ‘마리’는 괴물이 아니에요. ‘어떻게든 내 아이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은 부모라면 누구나가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니까요. 그렇지만 아들의 무실을 맹신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착한 자식’ 밖에 사랑하지 않는 걸 의미합니다.

또한 사회적으로는‘아이 교육은 모친이 하는 것’이라는 낡은 가족관이 존재하는 까닭에 일단 문제가 생기면 모친의 책임부터 추궁하는 사회적 배경이 있기 때문에, 극중의 엄마도 보다 과잉반응을 하는 측면을 보여주도록 했습니다. 이런 캐릭터가 가진 의지의 힘을 표현하기 위해서, 쿠로카와 배우에게 현장에서 가능한 한 눈을 깜빡이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아울러 쿠로이와 배우는 온몸을 쓰는 액션에서 진가를 발하는 분이시라 동선도 최대한 심플하게 잡았어요.

「용서받은 아이들」의 메인 캐스트는 모두 출연을 희망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워크숍 참가자들. 캐스팅에 있어 기술적인 연기력보다 존재감을 중시하는 나이토 에이스케 감독의 철학에 따른 것이다. (사진 오른쪽은 ‘리코’ 역의 이케다 아카나 배우)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용서받은 아이들」의 메인 캐스트는 모두 출연을 희망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워크숍 참가자들. 캐스팅에 있어 기술적인 연기력보다 존재감을 중시하는 나이토 에이스케 감독의 철학에 따른 것이다. (사진 오른쪽은 ‘리코’ 역의 이케다 아카나 배우)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홍상현

우에무라 유와 놀라운 케미스트리를 보여주는 ‘모모코’역의 나구라 유키노 배우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니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라고 들었습니다.

나이토 에이스케

나구라 재우는 전혀 연기 경험이 없고, 배우 지망생도 아닌, 문자 그대로의 ‘아마추어’입니다. 워크샵에 참가했는데요. 학교에 부정적인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모모코’역과 친화성이 있다는 생각에 캐스팅했지요. 다만, 촬영에 참여하면서 본인의 부정적인 경험이 플래시백 되는 게 아닐까 불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카운슬링을 받도록 하는 등 정신적인 케어를 병행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카메라 앞에 선 그가 어떤 존재냐는 점 아닐까 합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캐스팅을 할 때 기술적인 연기력보다 존재감을 중시해요. 나구라 배우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의견을 잘 말하지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따라서 리허설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그녀가 맡은 역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캐릭터 인터뷰입니다. 몇 가지 질문을 하면 자기가 맡은 캐릭터의 입장에서 답하는 거죠. 그래야 역에 대한 생각을 배우 본인이 정리하고, 감독도 그 이해를 공유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방법이 유효했는지 촬영이 거듭될수록 나구라 배우는 연기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내성적이지만 점차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게 되면서 캐릭터에 몰입하게 되었던 거지요. 결국 촬영 후반에는 스스로 “이 부분은 이렇게 하고 싶다”는 의견을 말하는 단계에까지 도달했습니다. 저한테 “모모코를 연기하면서 강해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녀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어 정말 기뻤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사건의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 또한 있지요.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좀 더 다각적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이토 에이스케 감독의 말이다. (사진 오른쪽은 ‘이츠키’의 아버지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지비키 고 배우)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사람은 누구나 어떤 사건의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 또한 있지요.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좀 더 다각적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이토 에이스케 감독의 말이다. (사진 오른쪽은 ‘이츠키’의 아버지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지비키 고 배우) 사진제공: (C)2020 Forgiven Children Film Partners

“일본에서는 청소년 범죄가 발생하면 가해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가족에게 책임을 물어 과도한 때리기가 일어납니다. 가부장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용서받은 아이들>에서 묘사되는 가해자 가족 때리기를 한국 관객들은 어떻게 생각하실 지 궁금합니다.

범죄 뉴스를 보았을 때, 많은 분들은 사건을 피해자 시점에서 받아들입니다. 무척 중요한 관점이지요.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어떤 사건의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 또한 있지요.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좀 더 다각적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자신과 관계된 모든 것들을 무오하다고 받아들이는 모순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 봤으면 좋겠고, <용서받은 아이들>이 그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코로나 19 사태의 확산으로 한차례 연기되었다가 지난 6월 1일 개봉한 <용서받은 아이들>은 현재 일본 전역의 예술영화관을 중심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애초의 제작 취지와 나이토 감독의 문제의식에 맞춰 유명만화가 이시미 슈조, 시민단체 “World Open Heart”의 아베 쿄코 이사장, 사회학자 나이토 아사오 메이지대학 교수, 그리고 아이다 도지 영화평론가 등과 심도 있는 온라인 GV 또한 진행하며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 하긴, 잠시 ‘장르영화의 세계적 유망주’로 얻은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인디영화로 돌아갈 정도의 단단한 결심으로 만든 작품 아니었던가.

오랜만에 안부연락을 한 필자에게 나이토 감독은 영상연출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TV드라마를 연출하게 되었다는 낭보를 전했다. 그것도 장르가 무려 코미디란다. 그밖에 영화 차기작으로 남성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여성혐오에 대해 다루는 작품도 기획중이란다. 왠지 그를 조만간 한국의 영화제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