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산부수법안 활용해 전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 기자명 윤형중
  • 기사승인 2020.09.0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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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데자뷔를 보는 것처럼 5개월여 전 논쟁이 반복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8월 중순을 기점으로 코로나 19가 재확산되면서 정치권에서 2차 긴급재난지원금과 관련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코로나 19는 가을에 재유행할 것이란 예측을 뒤집고, 한여름인 8월 13일부터 일일 신규 확진자 103명으로 세 자릿수를 돌파했고, 279명이 신규 확진된 15일을 기점으로 완연한 재유행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수도권 지역의 사회적 거리두기 수준을 15일 2단계로 격상한 데 이어 30일부터는 2.5단계로 올렸다. 이로써 프랜차이즈 카페, 헬스장, 학원, 독서실 등의 이용이 금지됐다.

코로나 19가 재유행하기 이전에도 이재명 경기도지사,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5월 말과 6월 초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고 주장한 적이 있었으나, 코로나가 진정세를 보이던 당시엔 공론장의 주요 의제로 떠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재유행하기 시작한 8월 중순부턴 이 제안의 파급력이 달라졌다. 8월 21일 여당의 최고위원회의에서 설훈 의원이 2차 재난지원금을 추진하자고 포문을 열었고, 이슈가 없어 잠잠하던 여당 대표 선거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30일 선출된 이낙연 신임 당 대표는 선거 기간 동안엔 재난지원금 논의보다 방역이 우선이라는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으나, 31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재난지원금 지급) 시기는 가능한 빠를수록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구체적으로 코로나 19로 고통을 많이 받는 분들께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득 하위계층을 선별해 재난지원금을 조속히 지급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경제사령탑인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신임 여당 대표마저 선별적 재난지원금을 주장하는 반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차 재난지원금 때와 마찬가지로 전국민에게 지급하자는 입장이다. 마치 5개월 전처럼 '선별지급과 보편지급'을 둘러싼 논쟁이 재연되고 있고, 이 논의가 빨리 정리되지 못한다면 정부와 여당이 공언한 추석 전 지급이 불가능해진다.

KBS 방송화면 갈무리
KBS 방송화면 갈무리
 
다시 반복된 선별 vs 보편 논쟁

우리 사회는 이미 한 차례 선별과 보편을 둘러싼 논쟁을 거쳤고, 이미 알려진 각 방안의 장단점도 뚜렷하다. 소득 하위계층을 선별해 지원하면 비용 대비 효율적이다. 소득 상위계층은 재난의 와중에도 버틸 만한 여력이 있고, 오히려 소득이 그대로이거나 소득이 늘어난 이들에겐 정부의 재정을 투입해 지원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선별에 있다. 소득 하위계층을 선별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기초생활보장대상자, 기초연금 등 대표적 선별 복지에 사용되는 '소득인정액'이고, 다른 하나는 청년수당 등 지자체가 주도하는 수당 지급시에 활용되는 '건강보험료 납부액'이다.

자산 조사를 거쳐야 하는 소득인정액과는 달리 건강보험료는 바로 지난달의 납부액을 기준으로 신속하고 간편하게 조회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1차 재난지원금을 당초 정부가 소득 하위 70% 계층에게 지급한다고 할 때도 이 건강보험료 납부액을 기준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번 논의에서도 이 방식의 단점이 부각되며 상당한 논쟁을 일으켰다. 우선 건강보험료가 작년 소득을 기준으로 산정돼 코로나로 인한 소득의 변화가 반영되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의 경우 지난해 혹은 재작년의 소득이 많았어도 올해 소득이 급감할 가능성이 있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4월 소득 급감을 증빙하는 자영업자에게도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일선 주민센터나 행정 관청의 업무가 과중될 우려도 제기됐다. 이 선별 방식의 두 번째 문제로 지적된 것은 기준 소득을 살짝 넘어 지원 대상에서 탈락됐을 경우 지원 받은 이보다 총소득이 적어지는 '소득 역전'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보완할 방법은 있다. 근로장려세제(EITC)처럼 지원 받는 이들 사이에서도 소득계층별로 차등적으로 지원하면 소득 역전 현상을 없애거나 최소화할 수 있고, 소득이 적을수록 더 많은 지원을 받게 되는 장점도 있다. 이 외에도 지원 기준인 건강보험료 산정에 있어 지역가입자가 직장가입자보다 불리해 지역가입 비중이 높은 자영업자에게 불리하게 작용되는 문제도 있었다.

물론 이런 문제들을 감수하더라도 정부의 재정으로 모두에게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면 선별 지원을 택할 수 있다. 선별지급과 달리 보편지급엔 막대한 재정이 들고, 불필요한 이들에게도 지원하는 단점이 있는 반면에 선별할 필요가 없어 조속히 지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난 4월엔 보편지급의 장점이 부각될 만한 상황이었다. 자영업자와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을 지원하는 정책이 미진한데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활동의 위축이 극심해 지원의 시급성을 요하는 상황이었고, 마침 선거를 앞둔 시점이기도 했다.

이미지출처: 긴급재난지원금 홈페이지
이미지출처: 긴급재난지원금 홈페이지

실제로 지난 4월 전국 단위의 재난지원금은 전국민에게 지급됐지만,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재난지원금은 소득 하위계층에게 선별지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재난기본소득'의 이름으로 최초의 '재난지원금'을 시행한 전주시 역시 소득 하위 50% 계층을 선별해 지급했고, 광역자치단체 중에도 경기도를 제외한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인천을 비롯해 경남·북, 전남·북, 충남·북 등 대부분의 지자체가 건강보험료 납부액을 기준으로 하위계층을 선별해 지급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선별지급의 경험이 축적된 상황이다.

 

예산 부수법안으로 선별환수하는 방안

1차 재난지원금에서 선별지급과 보편지급만 대립하는 구도의 논쟁이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필자를 비롯해 대부분의 기본소득론자와 여러 경제 전문가들이 '보편지급하되 선별환수'하면 각 방안의 장점들만 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선별의 수렁'에 빠진 재난지원금, '선별환수'에 답이 있다') 지난 3월 30일 재난기본소득을 촉구하는 교수·연구자들도 "기본소득을 소득세 과세 대상에 포함시키면 연말정산을 할 때 부자일수록 더 많이 환수되게 되므로 가난한 사람에게 더 많이 지원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동일한 결과가 될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선별환수와 연계한 보편지급은 본래 기본소득의 작동 원리다. 기본소득은 재원 마련 방안에 따라 여러 정체성을 가지지만, 진지하게 연구하고 검토된 기본소득 모델은 토지, 빅데이터, 환경에 위해가 되는 행위 등에 과세하거나 누진적인 소득세 기반하고 있다. 다만 이 선별적인 과세가 실질적으론 정부가 먼저 기본소득을 지급한 뒤에 사후적으로 이뤄지고, 고소득자는 기본소득보다 많은 세금을 낸다는 점이 명징하게 드러난 '선별환수'라는 표현은 지난번 재난지원금 논의 시기에 등장했다. 이 표현을 처음 사용한 이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였다. 참고로 국내에서 기본소득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주로 재원 부담자와 수혜자를 분리하지 않는 보편지급을 통해 복지 총량을 늘리자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두 지자체장이 강조하고 있는 부분 모두 기본소득의 중요한 특징들이다.

1차 재난지원금 논의 당시 선별환수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입장은 "지급 후에 환수하는 복지 사례는 듣도 보도 못했다"였다. 하지만 영국의 자녀수당이 이미 모두에게 지급한 뒤에 세금으로 환수되고 있다.(한겨레21 재난지원금, 선별환수 문턱도 넘을까)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국세청의 홈텍스 시스템을 통해 연말정산시 세금으로 환수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환수 방안으로도 재난지원금을 과세소득화하거나, 기준 소득을 넘을 경우 지원금 전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과세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

그렇다면 왜 1차 재난지원금 때 선별환수가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았을까. 물론 정부 부처인 기획재정부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지급 대상을 선별하느냐 마느냐는 국회가 예산을 심의하긴 해도 정부의 결정 사항이지만, 선별환수하는 세법을 만들 수 있느냐는 정부보단 국회, 그 중에서도 야당의 협조가 절실한 사안이다. 특히 4월 총선 이전에 20대 국회에서 여당의 의석수는 과반에 못 미쳐 야당의 협조 없인 세법을 개정할 수 없었다. 기재부는 다시 환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방안을 전제로 하고 전국민 지급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선 상황이 달라졌다. 9월 2일 기준으로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176석을 보유한데다 열린민주당 3석이 있고, 진보정당과 소수정당의 의석까지 합치면 180석을 훌쩍 넘는다. 게다가 예산 부수법안이란 제도를 활용하면 내년 초에 이뤄질 2020년도 연말정산에서 선별환수하는 방안을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다. 국회법 제85조의 3에서 내년도 세입예산안 부수 법률안은 당해년도 11월 30일까지 심사를 마쳐야 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엔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2차 재난지원금을 모두에게 지급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두 번에 걸쳐 지급한 재난지원금의 환수 방안을 담은 세법개정안을 예산안 부수법안으로 지정하면 야당의 협조 없이도 충분히 통과가 가능하다. 선별지급을 주장하는 보수정당도 선별환수하는 세법 개정에 반대할 이유나 명분이 부족하다. 따라서 정부와 여당이 의지만 갖는다면 선별환수와 연계된 보편지급을 충분히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상황이다.

 

세금 제도와 연계된 재분배를 체험하고 난 뒤

본래 재분배는 정부의 복지 정책으로만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거두고 나누는 총체적인 체계로 재분배가 작동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거나 인지하는 재분배는 주로 세금 제도라기 보단 복지 정책이었다. 세금 제도에 있어선 각종 소득공제처럼 역진적인 제도나, 간이과세제도처럼 거래 투명성을 일정 부분 포기하면서 납세의 편의를 도모하는 제도 등을 일부 개편하기도 어려웠다. 세금제도의 개편으로 얻는 이익은 체감하기 어렵고, 손해를 보는 이들은 극렬하게 저항하며 결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제 개편으로 얻는 재원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체감할 수 있는 복지나 수당, 급여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이전과는 다른 논쟁이 가능하다. 조세 저항을 뚫고 세금 제도 자체의 공정성을 제고할 수 있고, 재분배의 규모에 대한 새로운 논의도 가능하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막연한 우려만 덜어낼 수 있다면 재난 대응이 새로운 사회로 가는 출발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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