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투어리즘'으로 망가진 제주 즐겁게 여행하는 법

  • 기자명 탁재형
  • 기사승인 2018.12.07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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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넘친다는 뜻의 ‘오버’와 관광을 뜻하는 ‘투어리즘’이 합쳐져 만들어진 이 단어는 한 지역의 주민공동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숫자 이상의 여행자들이 몰려듦으로써, 일상과 환경이 파괴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최근 제주는 이 오버투어리즘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제주의 2017년 한 해 입도 관광객의 숫자는 내국인 1352만 명, 외국인 123만 명을 합쳐 1475만 명을 기록했다. 제주 인구가 64만 명을 좀 넘는 수준이니, 살고 있는 사람들의 23배에 달하는 여행자들이 제주를 다녀간 셈이다.

이런 숫자들은 주민들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넘쳐나는 생활쓰레기, 시장처럼 북적이는 공항, 도로주행을 처음 해보는 렌터카 운전자들의 무법운전 등 외지인들이 일으키는 크고 작은 문제들은 주민들의 삶의 질을 위협하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여행자들로 미어터지는 관광지 주변에선 지나가는 사람들을 온통 돈으로 보는 풍조도 강하다. 얼마 전 취재차 성산 지역을 방문했을 때다. 마침 밥때가 되어 식당을 찾다가 들어선 곳은 관광객들만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곳인 모양이었다. 해물 뚝배기 한 그릇 가격이 1만5000원이었고 나머지 메뉴들은 더 비쌌다. 당연히 일행의 망설임이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과하게 살가운 태도로 앉을 것을 종용하던 식당 아주머니는, 일행들이 고민 끝에 ‘다음에 올께요’라는 말을 던지고 돌아섰을 때, 등 뒤에 대고 악담을 퍼부었다.

“무슨 여자들이 그렇게 깐깐하게 굴고 그래! 아이구 오지마! 관광지가 다 그런 거지, 뭐!”

일행들 중에 여자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미 나온 음식을 가지고 타박을 했던 것도 아닌데, 그런 악다구니를 날렸던 이유는 아직도 궁금하기만 하다.

이런 이야기만 듣다 보면, 제주 전체가 온통 사람들로 바글거리고 다시는 오지 못할 몹쓸 곳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제주에서, 성산에서, 서귀포에서 조금만 벗어나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참을 달려도 마주오는 차 한 대 보기 힘든 고즈넉한 길이 이어지고, 어쩌다가 들어간 마을 어귀 식당에선 들어가는 해물이 오늘 물이 그다지 좋지 않으니, 대신 양을 신경써서 더 주겠다는 푸근한 인심을 만나게 된다. 오버투어리즘으로 터져 나가는 제주와 아직도 더없이 매력적이기만 한 제주. 그 간극은 어디에서 초래되는 걸까.

마을해설사 부석희씨는 동뜨락 협동조합에서 마을여행 컨텐츠를 만들고 있다. 사진제공: 전명진

제주 사회적경제 지원센터에서는 현재, ‘마을여행’과 관련된 디지털 컨텐츠 제작 사업이 한창이다.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들이 만들어낸 마을여행 코스들을 알리고, 체계화하는 사업이다. 이 작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그래도 제주 깨나 들락거렸다고 자부하던 생각이 얼토당토 않은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동뜨락 협동조합에서 마을여행 컨텐츠를 만들고 있는 마을해설사 부석희 씨의 이야기는 앞으로 제주 여행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단적으로 알려준다.

 

“난 예(이곳) 마을 삼춘들한티 가끔 물어봄수다. 살면서 제일 재미난 일이 뭐였수가. 경하믄(그러면) 나오는 이야기가 한보따린디예, 그 분들 가불면 그 이야기를 기억해줄 사람이 없지 않수가. 아흔 넘은 삼춘한티 들은 이야긴데예, 평대 어창(포구)에 한번은 사과가 ‘열렸던’ 적이 있었댄마씸. 무슨 이야긴고 하니, 60년대쯤에 사과를 싣고 가던 화물선이 요 앞바다에서 풍랑 때문에 뒤집힌 거라마씸. 그 때부터 며칠 동안 어창에 나가보민 돌 틈마다 점점이 사과가 박혀 있어신디예, 소금물에 잘 닦인 사과 맛이 그렇게 기가 막혔댄 햄수다. 알다시피 제주에서 사과는 찾아보기 힘든 귀한 과일이라예, 삼춘 몇이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하멍 웃지마씸.(웃곤 해요)”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마을길을 도는 부석희씨의 마을여행은 차츰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그도 그럴 것이, 한 굽이 돌아갈 때마다 이런 스토리가 구수한 제주 사투리에 실려 쏟아지니 말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이 평대 지역을 더욱 특별하게 여기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판에 박힌 코스보다 조금은 더 특별한 여행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아예 마을 공동체가 관련 인력을 양성해 여행 코스를 운영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하례리가 그런 사례다. 사실 이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는 효돈천이 바다와 만나는 쇠소깍이다. 이 곳에서 투명 카약을 타는 연예인들의 모습이 연이어 방송을 타며, 쇠소깍은 몰려드는 여행자들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마을회와 카약 운영업체 사이의 갈등으로 프로그램 자체가 중단되어 버리는 일이 있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하례리 마을 사람들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지역 내의 자연을 토대로 직접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험에 나섰다.

효돈천은 건천(乾川)이다. 건천은 평상시엔 물이 흐르지 않고, 우기 때만 강이 되는 하천을 말한다. 제주의 건천은 좀 더 다이내믹하다. 한라산에 내린 비가 용암이 만든 바윗길을 따라 그대로 흘러오기 때문에, 말라 있다가도 몇 분 사이에 30미터 가까이 물이 불어나기도 한다. 효돈천에는 이렇게 세찬 물살이 만들어 놓은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다. 마치 바위 그 자체가 바다를 향해 흘러내리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마을 사람들은 자체적으로 인원을 선발해, 암벽등반 훈련과 주변 자연경관에 대한 학습을 거쳤다. 이들이 가이드가 되어 여행자들을 인솔해 이루어지는 것이 효돈천 트레킹이다. 트레킹이라기보다는 유럽에서 많이 즐기는 ‘캐녀닝’(Canyoning)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정도로 이 코스는 만만치 않다. 약 700m 구간을 통과하는 데만 2시간이 걸린다. 그 어느 곳과도 다른 풍광을 보면서, 때론 암벽에 붙어서 때론 밧줄을 타고 바위 틈을 누비다 보면 스트레스는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기 마련이다. 조금만 입소문이 난다면, 쇠소깍으로만 몰리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이 곳을 향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건천(乾川)인 효돈천에서 암벽등반 트레킹을 하는 관광객들. 사진제공: 탁재형

 

하례리 마을회 소속 가이드가 효돈천 트레킹 중 밧줄을 이용해 암벽을 오르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 탁재형

 

오버투어리즘의 문제는 결국, 정보의 제한과 그에 따른 과도한 집중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제주에 와서 많은 이들이 오분자기 뚝배기와 방어회를 찾지만, 정작 이 섬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은 ‘각재기국’이라고 부르는 전갱이가 들어간 맑은 국이다. 별도로 육수를 내는 것이 아니라, 된장을 약간 푼 맹물에 전갱이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 끓인 것이어서 자칫 비릴 수도 있다. 제주의 참맛은 얼큰한 오분자기 뚝배기보다 오히려 이런 각재기국의 맛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제주의 속살에 좀 더 다가가려는 여행자들의 각성과 지역의 숨은 매력을 알리기 위한 공동체의 노력이 만날 때, 몇몇 장소들만 미어터지는 오버투어리즘의 문제는 비로소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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