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의 퇴진은 일본 보수 종말의 시발점 될 것”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20.09.0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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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4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5ㆍ16 군사정변 55주년이 되던 날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 사내가 스스로를 “입법부의 장”이라 표현했다. 현직총리라는 직함을 생각하더라도 삼권분립을 흔들 수 있는 문제발언이었다. 헌법의 내용을 착각해 실언을 했을까. 실제로 그 자신 며칠 뒤 “잘못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발뺌했지만 진정성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나팔수노릇을 하던 극우매체 《산케이신문》은 신이 난 듯 그 발언을 ‘올해의 국회 명언’에 올렸고, 줄곧 비판적인 입장이던 대표적 지역매체《오키나와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행정부의 장을 잘못 말한 것이 아니라 뭐든 가능하다는 전능성을 드러낸 것.”

해프닝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아베 신조 총리였음을 상기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재집권 직후 일본판 테러방지법인 특정비밀보호법을 제정하고 국민적 반대여론에도 아랑곳없이 일본이 해외에서 전쟁하는 나라가 되도록 하는 안보법제(전쟁법)를 밀어붙인 그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이른바‘확신범(Überzeugungsverbrechen)’이었던 것. 이후의 행보도 거침없었다. 2006년 9월부터 2007년 9월까지, 다시 2012년 1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의 합산 재임일수로 최장수 총리가 되었다. 재집권 이후 재임일수만으로도 전직 총리들의 최장 재임일수(2798일)를 앞질렀다.

그런 그가 지난 8월 28일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지병인 궤양성위장염 악화가 이유다. 그러나 이 또한 석연치 않다. 한국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앞 다투어 차기주자들에 관한 보도를 쏟아낸다. 그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다. ‘흙수저 출신’에 서민적 풍모가 거론되지만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따라붙는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예측이다. 애초에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변인을 합친 역할을 수행하는 관방장관인 그는 단지 정권의 스피커였을 따름이다. 백번양보해서 은인자중하며 암중모색을 거듭해 왔다 쳐도 공식적으로 주어지는 총리임기는 1년. 차기총리라기보다 권한대행에 가깝다. 아베 총리도 후임이 정해질 때까지 관저에 머무르게 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1년 뒤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할 변화다.

이 지점에서 본지가 내린 판단은 내용면에서 자민당이 데미지를 입은 선거를 놓고도 “낙승”운운하는 기사를 출고하고, 범야권에서 긴박한 논의가 오고는 와중에도“지리멸렬”운운하며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식의 방어적 논리만을 확산시켜온 기존매체의 불성실한 보도를 답습하지 말자는 것이다. 관계가 악화되어 있는 주변국 정세일수록 팩트의 전달에 충실해야하는 언론의 본령을 상기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긴급대담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해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적 정치학자이자 양심적 지식인, 이가라시 진 호세이대학교 명예교수와 만났다. 이가라시 교수는 1919년 천황제 폐지론자인 타카노 이와사부로 등이 설립을 주도, 한국의 독립 운동가들과 인연을 맺었고, 2ㆍ8독립선언의 변호사로 유명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후세 다츠지가 활동하기도 했던 동 대학 오하라사회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사진제공: 《신문 아카하타》 편집국
사진제공: 《신문 아카하타》 편집국

긴급대담팀

우선 기본적인 내용에 대한 질문이 되겠는데요. 한국국민들에게 일본의 의원내각제는 무척 이해하기 어려운 시스템입니다. 아베 총리의 사임 이후 총리직은 어떻게 승계되는 건가요.

이가라시 교수

총리는 국회 양원(중의원ㆍ참의원)에서 투표로 선출됩니다. 이를 위한 임시국회는 9월 16일 소집되지요.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자민당ㆍ공명당)의 대표가 총리가 되니 자민당의 차기 총재가 정해지는 것이 사실상의 총리 선출을 의미합니다. 자민당 총재 선출 방법에는 국회의원(394표)과 지방 선출 대표(394표)를 같은 수로 맞춰 진행하는 정식 투표와 국회의원(394표)과 각 지역 지부(한국이라면 지역 당원협의회) 연합회의 3표(총 141표)로 진행하는 약식 투표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긴급 상황이라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는 이유로 후자가 채택되었는데요. 지방에서 인기가 많은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보다 국회의원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을 투표에서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의도로 보입니다.

긴급대담팀

아베 총리 사의표명 직후인 8월 30일, 《뉴욕타임스》에 대단히 흥미로운 글이 게재되었습니다. 아베 총리의 실질적인 사임 이유가 스캔들을 무마하기 위해서일지 모른다는 나카노 코이치 조치대학교 교수의 기고문이었는데요. 그리고 보면 아베 총리의 사의표명도 코로나 19 사태의 대처가 “무책(無策)”이라고 비판받으면서 지지율 폭락이 이뤄지던 시점의 일이었습니다.

이가라시 교수

1기 아베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지병 악화가 사임의 이유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총리 권한 대행을 둘 필요가 없을 정도의 병세이고, 현재 아베 총리도 집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임의 진짜 이유가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견해도 근거가 없지 않죠. 실제로 오랜 악정의 외상이 쌓인 데다, 코로나 19 사태에 대한 대처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지지율조차 하락함에 따라 정권 운영에 막다른 길에 내몰린 거 아닐까요. 1기 아베 정권 당시에도 직전의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 야당이 다수 의석을 점함으로써 정권 운영이 어려워지자 도망친 거라 볼 수 있으니까요. 만약 그렇다면, 어떤 경우이든 지병을 빌미로 이용한 게 됩니다. 물론, 모리토모학원 의혹과 관련해 공문을 고쳐 쓰게 했던 일이나, 자살한 재무성 직원 유족이 제기한 소송, 거기에 가와이 카츠유키 부부에 대한 선거자금 1억 5천만 엔 환류 의혹 등과 같은 스캔들 때문에 자신에게 불똥이 튀게 될 위험성을 우려, 재빨리 손을 뗀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긴급대담팀

갑작스런 좌장의 실각으로 인해 아베총리가 이끌던 자민당 매파 대표세력 청화회도 큰 데미지를 입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극우정치의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을까요.

이가라시 교수

청화회는 현재 청화정책연구회(청화연)이라 자칭하고 있으며, 회장이 호소다 히로유키 전 간사장이니 아베 총리를 좌장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파벌 출신 총리가 물러나면 영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아베 총리는 극우 강경파 세력에게‘희망의 별’이었습니다. 특히, 그들의 비원이던 헌법 9조(평화헌법) 개정을 향한 기대가 컸던 것도 확실하고요. 아베 총리는 이 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개헌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가능성이 희박함에도 고집을 부려왔습니다.

개헌 절차를 용이하게 만들기 위한 96조 개헌론, 집단적 자위권의 부분적 용인으로 해석을 바꾼 해석 개헌, 9조에 대한 자위대 명기 등 수법이나 형태를 바꿔 가며 개헌을 호소해왔지만 여론의 경계와 반발에 부딪혀 발의는 하지 못했지요. 극우 강경파 세력이 입은 타격은 크며, 말씀처럼 그 세력의 전반적인 위축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긴급대담팀

지난 7년 8개월간 아베 정권이 이어지면서 개헌추진으로 인한 국민 불안, 과도한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로 인한 국민 분단 등, 일본사회가 경험한 폐해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가라시 교수

아베 총리는“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임했지만 일본 사회도‘통치부전(統治不全)’이라는 중병에 걸려있습니다. 아베노믹스로 인해 실질 임금은 늘지 않았고, 경기가 회복되어 생활이 윤택해졌다는 실감도 없으며, 두 차례에 걸친 소비세 인상과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자신 있다던 외교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추종, ‘미국제일(America First)’을 관철하는 바람에 무역 교섭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는가 하면, 큰소리치던 북한 납치 문제나 북방 영토 문제와 관련해서도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했지요. 안보 면에서는 군사대국화를 목표로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대량으로 사들이는 한편, 안보법제(전쟁법)를 제정해 전쟁에 가담할 위험성만 높여놨습니다.

헌법 적시(敵視), 입헌주의와 민주주의 파괴, 여론 분단과 정치 불신 증대, 관료기구의 위축과 촌탁(忖度), 국회 경시와 독선 등으로 일본의 정치와 사회는 크나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의 국제적인 지위나 평가는 전에 없이 저하되어 버렸고요. ‘부(負)의 유산’뿐이며 재임기간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것 외에 역사에 남을 만한‘유산’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긴급대담팀

이른바‘보수’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아베 정권의 행보는‘국익에의 공헌’과 무척 거리가 있었다는 말씀이시군요.

한편, 한국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징용공 문제와 무역 분쟁 등에서 볼 수 있듯 아베 정권은 일본의 국내정치가 한국의 현실에도 충분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아베 총리의 사임에 따른 한일관계의 변화를 기대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가라시 교수

아베 정권을 지탱해 온 핵심 멤버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 등의 세 사람입니다. 이들만이 큰 힘을 발휘하게 되어있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저 ‘아베 없는 아베 정치’가 이어질 뿐이지요. 특히 후계 총재로 스가 장관이 선출된다면 자민당은‘변화’보다 (현상의)‘지속’을 선택하게 될 겁니다. 외교적으로도 큰 변화가 생기지 않을 테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민당 내부에서도 아베 총리는 이념적 극우성향,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무반성, 가해자로서의 역사에 대한 무자각이라는 점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한국에 대한 적의도 매우 컸고요. 그런 아베 총리가 사임함으로써 정부의 외교적 적의는 다소 누그러질지도 모릅니다. 다만, 자민ㆍ공명당 연립정권이 계속되는 한 기본적인 변화의 전망은 요원할 겁니다.

 

긴급대담팀

지난해의 무역 분쟁을 기점으로 한국에서는 역대 최고 수준의 반일감정이 고조되었습니다. 일본에서도 혐한 감정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요. 한국에서는 그 원인이 아베정부의 적대적 정책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인 반면, 일본에선 한국 대법원의 일본제철 강제징용 소송 판결로 인해 한일관계가 나빠졌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신임 총리가 취임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이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한일관계가 풀리지 않을 걸로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가라시 교수

기본적인 문제는 자민당 정치가의 대부분이 전쟁 전 지배층의 후손ㆍ후예로서 도조 히데키 내각의 각료이던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 아베 신조와 같은 2ㆍ3세 의원이 많다는 점에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를 직시하지 못하고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이 없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지요.

이렇듯 제2차 세계대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보수정치의 흐름을 끊지 않는 한 기본적인 변화가 생길 수 없고 역사인식과 관련한 문제 또한 되풀이될 것입니다. 이를 단절하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져 과거사를 직시하고 가해 책임을 자각할 수 있는 질적으로 새로운 정권이 수립돼야 합니다. 한일관계의 개선과 진정한 우호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자민당 정권을 대신할 새로운 정권의 수립이 불가결한 상황인 것입니다.

긴급대담팀

그 부분과 관련해서 한국에서는 잘 주목하지 않는 일본의 중요한 현상 하나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시민ㆍ야당연대를 통해 아베 정권에 대항해 왔던 민주진보세력의 존재인데요.

후보단일화 실패로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결과를 내지 못했지만 일본의 민주진보세력은 그간 착살한 성장을 거듭해 왔습니다. 실제로 지난 참의원 선거의 경우, 자민당만의 지지율 등을 보면 사실상 패배에 가까운 결과로써, 소선거구제에 의지해 연명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요는 총리의 해임이 아니더라도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다시금 대결국면이 형성되리라는 게 우리의 판단입니다만.

이가라시 교수

시민ㆍ야당연대야말로 새로운 정권의 수립 가능성을 열어주는 힘입니다. 정권 교체를 위한 활로는 공동 투쟁에 있다는 거지요. 외교를 포함해 산적해있는 해묵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관건은 범야권 연합정권의 수립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소선거구제라는 제도는 다수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데, 말씀대로 자민당은 이 선거 제도에 기대어 연명해왔습니다. 결국 이 제도 하에서 승리하려면 후보단일화 외에는 방법이 없지요.

2015년 9월 일본공산당이 국민연합정부를 제창하고, 이듬해 2월 참의원선거에서의 선거협력을 약속한 5당 합의가 맺어졌습니다. 그해 참의원 선거에서 1인 선거구 11명, 3년 뒤인 2019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1인 선거구에서 10명의 야권 단일후보가 당선되었으며 2년 전 중의원 선거에서는 제1야당인 민진당의 분열과 입헌민주당의 탄생이라는 혼란 속에서도 야당연대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아울러 지난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도 입헌민주당과 일본공산당을 주축으로 야당연대가 이루어지면서 25개 소선거구 모두에서 시민선대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실적을 활용해 다음 총선거에서 시민ㆍ야당연대를 조직, 야권후보 단일화를 이뤄낸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권교체를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긴급대담팀

확실히 여전히 보수파가 다수인 자민당의 분위기를 보면 궁극적인 일본사회의 변화는 시민ㆍ야당연대의 승리를 통해 비로소 가능할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 밖에서 볼 때, 시민야당연대가 자민당에 비교할 때 여전히 약체로 느껴진다는 점인데요.

이가라시 교수

과거 1993년2009년, 두 번에 걸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자민당이 야당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다음 총선에서도 시민ㆍ야당연대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자민당은 과반수를 잃게 되겠지요.

이와 관련해 그간 야권에서 괄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이라는 1ㆍ2야당이 동시에 당을 해체하고 다른 두 무소속 그룹과 더불어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려는 움직임이 그것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동조합의 내셔널센터, 즉,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도 여기 가세해 탈(脫) 신자유주의 노선과 코로나 19 사태에 따른 위기 대응 차원의 소비세율 인하 정책 등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는‘옛 민주당의 재생’이 아니라, 일본공산당까지 협력해 리버럴한 연대를 지향하는 전혀 새로운 정당이지요. 연대의 약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겁니다.

긴급대담팀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군요.

이제 마지막 질문이 되겠는데요. 현재 코로나 19 사태는 각 나라에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여러 가지 양상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러한 환경 가운데서 변화를 바라는 시민의 열망과 행동도 구체화되어가지 않을까 합니다. 앞으로 일본사회에서 일어나게 될 변화의 흐름에 대해 선생님의 견해는 어떠하신지요.

이가라시 교수

현재 코로나 19 사태는 그간 현대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점들을 전 세계적으로 가시화시키고 있습니다. 우선은 사회적 분단과 빈곤화, 그리고 격차의 확대 등으로 약체화되어있던 의료나 복지제도의 맹점이 드러났지요. 그밖에도 사회전반이 이 재난에 무력하다는 점이 밝혀졌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돈벌이, 즉, ‘이윤’자체에만 집중하는 경제시스템이 공황과 빈곤화를 낳고, 개발 및 시장의 확대, 또는 환경파괴와 관련해 어떤 통제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현대자본주의의 한계를 다함께 목도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아울러 효율만능주의로 규제완화에 매달린 결과, 공공적인 사회안전망을 파괴하는 동시에, 자기책임론을 확산시켜온 신자유주의의 폐해 또한 드러났고요.

확실히‘포스트 코로나 사회’는‘새로운 생활방식’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와 함께 가야 하는 건 현대사회의 취약점을 극복하고 신자유주의의 오류를 시정할 수 있는‘새로운 정치 양식’입니다. 코로나 19 사태 대응 실패로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자 정권을 내팽개친 아베 정치와는 전혀 다른.

최근의 세계를 바라보면, 미국의 인종차별문제(Black Lives Matter)를 계기로 과거의 노예무역이나 식민지 지배의 역사에 대한 재검토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사태라는 현실의 한편으로 자유와 인권을 지키고, 평등하고 차별 없는 민주사회를 만드는 일이 국제사회의 새로운 조류로써 자리매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도 역사수정주의의 오류를 극복하고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재검토하는 가운데 차별과 혐오가 없는 사회를 지향해야 합니다. 시민ㆍ야당연대를 통한 새로운 연합정권 수립은 그 출발점이 될 것이고요.

아베 총리의 퇴진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오랜 세월 지속되어온 보수지배 종말의 시발점이 될 것이며, 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급하게 진행된 이가라시 교수와의 대담을 마치면서 취재팀은 3ㆍ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던 지난해 봄,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양심세력의 시각에서 다룬 『전쟁의 진실: 증언으로 본 일본의 아시아 침략』(《신문 아카하타 출판국》) 한글판 출간에 맞춰 경향신문사를 방문한 일본 최대 진보매체 《신문 아카하타》고기소 요지 편집국장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시민ㆍ야당연대가 서있는 역사문제에 대한 반성적 입장이 일본사회의 주류 여론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해 고기소 국장은 헌법 개정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의석을 확보를 노리는 자민당의 의도가 시민ㆍ야당연대에 의해 좌절될 것이라 예측하면서 그 근거로 2013년 전만해도 29개 선거구를 차지하며 압승했던 자민당이 2016년 선거에서 11석을 야당연대에게 빼앗겼다는 사실과 함께 1인 선거구에서의 후보단일화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언급했다. 그리고 약 4개월 뒤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9석의 의석을 잃었고, 야권은 민진당의 분당사태에도 불구하고 9석의 의석을 더 얻었다. 자민당 단독 지지율은 35.37퍼센트에 불과했고 파란을 일으킨 레이와신선조의 득표율(4.55퍼센트)을 제외하더라도 야당연대 참여 정당들(입헌민주당ㆍ국민민주당ㆍ일본공산당ㆍ사회민주당)의 지지율만으로도 1.57퍼센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국내언론이 득표분석도 없이“낙승”이라고 보도했던 바로 그 선거에서.

그렇다면 스가 관방장관은 총리가 되어 다음 총선을 위한 자민당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코로나 19 사태라는 환경에 따른 일시적인 (지지가 아닌) 결집현상이라면 모를까 극적인 지지율 반등을 이끌어내기란 “자조ㆍ공조ㆍ공조(自助ㆍ共助ㆍ公助)로 신뢰받는 나라 만들기”라는 식상한 슬로건만큼이나 요원해 보인다.

인터뷰 및 정리: 《뉴스톱》긴급대담팀(김준일ㆍ홍상현)

※ 이 긴급대담은 일본 최대 진보매체《신문 아카하타》 편집국의 협조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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