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우한연구소 유출? 한국언론, 어떻게 여론조작에 동참했나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20.09.1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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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언론은 13~14일 홍콩대 박사인 옌리멍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의 우한연구소에서 나왔다고 말했다는 뉴스를 잇따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 YTN, SBS 등 포털에서 확인된 언론사만 70여개가 이 보도대열에 참여했다.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옌리멍 박사는 지난 11일에 영국 토크쇼 '루즈 워먼'(Loose Women)에서 화상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자연에서 온 것이 아니며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우한연구소에서 유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조만간 증거를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이 이 바이러스에 대해 언제 알았는지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연구를 광범위하게 은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정말 옌박사의 주장은 신뢰할만하고 제대로 검증이 된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많은 언론이 보도를 할 정도의 뉴스가치가 있는 것일까. 뉴스톱이 이 뉴스가 나오게 된 배경을 추적하고 주장을 팩트체크했다. 

영국 토크쇼 '루스 워먼'에 화상으로 출연한 옌리멍 박사.
영국 토크쇼 '루스 워먼'에 화상으로 출연한 옌리멍 박사.

 

①옌리멍은 누구인가

언론보도에 따르면 옌리멍 박사는 홍콩대 공중보건대학 소속이다. 그는 코로나19가 세계로 퍼져나가기 전인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중순까지 우한에서 발생한 새로운 폐렴에 관한 비밀조사에 참여했다고 스스로 소개했다. 

옌리멍은 지난 4월 중국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신청을 한 상태다. 그리고 7월 12일 폭스뉴스와 독점 인터뷰를 하며 중국 당국이 사람간 전파를 지난해 12월 알았음에도 고의적으로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인터뷰에도 '조만간' 그 증거를 공개하겠다고 말했으나 아직 그 증거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지에 따르면 폭스뉴스 인터뷰 이후에 홍콩대 당국은 옌리멍 박사가 홍콩대를 떠난 박사임을 명확히 했다. 그리고 옌리멍이 지난해 12월부터 1월까지 대학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지 않았고 밝혔다. 

폭스뉴스 출연 이후 옌리멍은 트럼프 대통령의 수석 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의 유튜브 채널 '워룸', 그리고 우파성향 매체인 아메리카 보이스 뉴스에 출연해 이같은 주장을 반복했다(트럼프 당선 일등공신인 스티브 배넌은 미국-멕시코 국경장벽 관련 모금운동 사기 혐의로 8월 20일 구속기소됐다). 

그리고 최근에 영국 ITV 방송의 '루즈 워먼' 프로그램에서 비슷한 주장을 반복했다. 루즈 워먼은 여성들이 나오는 대중 토크쇼 프로그램이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옌리멍은 한국의 <라디오스타> 같은 대중토크쇼에 출연해 중국 바이러스 유출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 옌리멍은 홍콩에서 이 사실을 폭로했다가는 실종되거나 죽을 수 있어 미국으로 망명했다는 주장을 반복적으로 펼치고 있다. 

 

②증거는 있는가

보도가 쏟아지고 있지만 옌리멍의 주장에 근거가 있는지 회의를 표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옌리멍은 동일한 주장을 수개월동안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지만 한번도 제대로 된 증거를 제시한 적이 없다. 다만 한 방송에 나와 이같은 주장을 한 뒤에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다른 방송에 출연해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옌리멍이 해당 분야의 비전문가라는 의미는 아니다. 옌리멍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햄스터 전파 양상을 분석한 네이처 논문의 공동 1저자다. 다만 그가 주장하는 내용들, 중국 정부가 인간대 인간 전파력을 지난해 12월 이미 알고 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군사용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 등이 확인이 안된 것 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자연발생했다는 논문은 이미 과학계에서 수차례 발표됐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지난 5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자연발생이라고 공식확인했다. 당시 마리아 판케르커호버 WHO 신종질병팀장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1만5000개의 유전자 배열을 확보하고 있지만,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모두 자연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영국 언론 더선의 옌리멍 보도.
영국 언론 더선의 옌리멍 보도.

 

③외신에서는 누가 보도했나

옌리멍이 처음 이같은 주장을 했을 때는 미국 언론, 특히 트럼프를 지지하는 우파 언론에서 관심을 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폭스뉴스다. 앞서 언급했듯이 폭스뉴스는 옌리멍과의 단독인터뷰를 통해 옌리멍의 주장을 크게 보도한바 있다. 하지만 옌리멍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자, 이 주장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식었다. 

영국의 토크쇼 '루스 워먼'과의 인터뷰는 옌리멍의 주장에 대한 주류 언론의 관심이 급속도로 식은 가운데 나온 것이다. 이미 전세계 주요 언론은 옌리멍의 주장에 근거가 없음을 파악하고 있다. 그러면 루스 워먼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한 언론은 어디가 있을까. 한국 사람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곳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곳이 영국의 <더선>, 미국의 <뉴욕포스트> 정도다.  영국의 옐로우 저널리즘의 선두주자인 <더선>은 옌리멍의 주장을 제목만 바꿔가며 반복적으로 보도하고 있다(8월 2일, 8월 16일9월 11일). '클릭'장사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뉴욕포스트는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와는 다른, 미국 뉴욕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선정적 타블로이드지다. 클릭에 도움이 되면 아무거나 기사화하는 곳이란 의미다(뉴스톱은 2017년 7월 뉴욕포스트의 선정성과 문제점을 자세히 보도한 바 있다). 

 

④ 국내에서는 누가 보도했나

현재까지 검색으로 확인된 바로는 옌리멍이 루즈 워먼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주장을 했다는 내용을 한국에서 처음 보도한 곳은 인터넷신문 천지일보다. 천지일보는 뉴욕포스트 기사를 인용해 보도를 했다. 물론, 과거에 옌리멍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 그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는지는 전혀 검증하지 않았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 뉴스가 언론에 보도되자, 한국 언론들이 슬슬 베끼기 시작한다. 중앙일보가 네이버에 올렸고, 그러자 조선일보가 따라 썼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주요 언론들이 이렇게 베끼기를 시전하니, 온갖 언론들이 따라 썼고, 결국 연합뉴스까지 중계보도에 동참했다. 중앙일보 기사는 네이버에서 댓글 1600여개를 받았고 조선일보 기사는 2800여개를 받았다. 클릭이 증가했으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옌리멍의 진가는 진작에 한국의 우파언론과 유튜버들이 알아봤다. 뉴스타운은  8월 5일 <쇼크 또 쇼크! 코로나, 중국이 만든 생화학무기 확인됐다>는 제목의 기사와 유튜브 영상을 내보냈다. 옌리멍의 주장을 그대로 기사화한 거다. 리버티 코리아 포스트도 8월 30일에 이미 옌리멍의 주장을 기사화했다. 옌리멍의 주장을 검증없이 그대로 보도한 언론들은 스스로 뉴스타운과 동급이란 걸 인증한 거다.

 

⑤'베끼기 저널리즘'을 넘어서자

물론 연합뉴스, 동아사이언스 등 몇몇 언론에서 옌리멍의 주장에는 근거가 없음을 팩트체크하는 기사를 내보냈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뇌리에는 중국이 조작했다는 기사만 남았다. 여론조작이란 것이 별다른게 아니다. 공익고발자로 보인다는 이유로 팩트체크 없이 그대로 언론이 중계방송하는 것이 바로 여론조작이다. 한국의 따옴표 저널리즘, 베끼기 저널리즘은 거짓말을 확대재생산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발화자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미국식 '객관주의 저널리즘'은 장점도 있지만 거짓말이나 허튼 소리를 그대로 전달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래서 '팩트체크 저널리즘'이 대안으로 뜨고 있는 것이다. 옌리멍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서 옮긴다고 저널리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저널리즘의 신뢰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과정을 설명해주는, 절제된 기사를 통해 회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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