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리멍, 황우석, 그리고 한국의 과학 저널리즘

[더사실포럼 칼럼] '코로나19 중 우한연구소 기원설'을 대하는 한국 언론의 모습

  • 기사입력 2020.09.21 12:32
  • 기자명 더사실포럼

최근 트위터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우한 연구소 기원설을 주장하는 홍콩 옌리멍(Li-Meng Yan)박사의 계정을 중단시켰다. 이는 COVID-19 팬데믹 기간 동안 팩트가 아닌 잘못된 정보가 일반대중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차단 위해,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이 올해 2월부터 공동으로 정한 규칙 때문이다. 옌리멍 박사의 SARS-CoV-2 음모론과 관련한 논문이 학술적 권위를 가장해 일반 대중에게 트위터를 통해 퍼지는 것을 우려해 선제조치인 셈이다.

옌리멍 박사의 트위터 계정은 음모론 확산 방지를 위해 현재 중지된 상태다.
옌리멍 박사의 트위터 계정은 음모론 확산 방지를 위해 현재 중지된 상태다.

 

옌리멍 박사는 제노도(Zenodo)라는 ‘프리프린트’, 즉 ‘출판전 논문’ 플랫폼에 해당 논문을 업로드 했는데, 프리프린트란 엄격한 동료심사를 거쳐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논문이 아니라, 권위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심사받는 동안 먼저 학계의 동료들에게 연구결과를 공유하는 일종의 학술공유 플랫폼이다. 즉, 제노도라는 프리프린트 서버에 올린 논문은, 학술지에 출판된 논문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출판전 논문으로, 과학계의 권위를 인정받았다고 말할 수 없는 문서일 뿐이다. 옌리멍의 이 문서는 COVID-19의 원인이 되는 SARS-CoV-2 바이러스가 자연발생적인 변종이 아니라 중국 정부가 조작한 바이러스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이 문서가 권위 있는 학술지에 출판되지 못한 이유가 대부분의 주요 생명과학 학술지들이 자신의 논문을 어떤 식으로든 검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전형적인 음모론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계는 논문의 내용만을 가지고 학술지 출판을 결정하는 오래된 문화를 보유하고 있다. 즉, 옌리멍 박사의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지 못하는 이유는, 해당 논문의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이지, 학술지들이 옌리멍 박사를 차별하기 때문이 아니다.

 

옌리멍 박사는 올해 초부터 줄곧 우한 연구소에서 조작된 바이러스가 유출되었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는 근거를 묻는 사람들에게 곧 과학적 증거를 발표한다고 이야기해오다, 이번에 처음으로 프리프린트 형태로 논문을 제출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국내의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이 문서가 바이러스 유전체 조작의 흔적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염기서열은 이미 자연계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판명되었고, 바이러스 조작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YTN 화면 캡처
YTN 화면 캡처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체가 처음 알려진 올해 1월 초부터, 과학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NCBI 유전자은행에 공개된 SARS-Cov-2의 유전체서열을 이용해 이 바이러스의 유전체에 조작의 흔적은 있는지를 파악하고 바이러스의 기원을 찾는 일이었다.  전 세계 유전체 전문가들이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을 자세히 분석하고 발표한 결론은, SARS-Cov-2 바이러스가 유전체 조작이 아닌 자연 발생적으로 발생한 변종 바이러스라는 것이었다. 유전체 분석을 통한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원을 담은 논문만 이미 10여 편이 권위 있는 학술지에 출판된 상황에서, 옌리멍 박사의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한 프리프린트는 사실 논란을 일으킬만한 수준 자체가 될 수 없었다. 

 

이미 올해 2월 중순엔 란셋(Lancet)이라는 권위 있는 의학 학술지에 전 세계 30명의 과학자들이 “사회혼란만 가중시키는 바이러스 유전체 조작설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음을 확인하는” 공동성명서까지 제출한 상황이었다. 즉, COVID-19의 주요 원인인 SARS-CoV-2가 중국 한 연구소에서 생물학 무기를 위해 만들어진 “조작된 바이러스”라는 주장에는 그 어떤 과학적 증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공동성명서는 전 세계의 여러 연구자들이 독립적으로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SARS-CoV-2 게놈을 분석해본 결과, 이 바이러스의 유전체는 결코 생물학 무기를 위해 만들어진 조작된 바이러스일 수 없으며, 그 기원은 명백하게 야생동물 유래라는 점을 단호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미국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며 과학적 방역을 이끌고 있는 미국립보건원의 파우치 박사 또한, 중국에서 HIV 바이러스 유전체와의 재조합을 통해 이 바이러스를 조작했다거나 혹은 야생 박쥐 바이러스를 실험하던 연구소에서 유출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발표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직접 파우치 박사와 인터뷰를 해 코로나19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근거가 없음을 팩트체크 한 바 있다).

 

란셋에 공동성명서를 발표한 바이러스 연구자, 공중보건 전문의, 그리고 의학전문가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관한 근거 없는 루머와 음모론이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어, 이런 가짜 정보들로 인해 사회에 혼란이 초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한 것이다. 심지어 과학계에선 올해 초부터 옌리멍 박사처럼 확실한 과학적 근거도 없이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해 허황된 주장을 하는 과학자들이 너무 많아지자, 이번 바이러스가 인공적으로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논문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 결과, 전 세계의 권위 있는 과학 학술지들과 주요 언론매체는 바이러스에 관해 음모론을 주장하는 논문은 싣지도 않고, 아예 다루지도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Li-Meng Yan”이라는 이름으로 해외 뉴스를 검색해봤자, 해외의 몇몇 3류 언론사가 가십거리로 실은 기사만 보이는 것이다. 즉, 한국 언론이 올해초부터 해외 언론의 바이러스 소식을 과학전문기자에 의해 꾸준히 모니터링 해왔거나, 혹은 제대로 된 전문가들을 통해 교차검증했다면, 옌리멍의 음모론이 한국 언론을 장식해 혼란을 부추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옌리멍 박사의 바이러스 음모론 외에도, 올해 5월에는 미국의 피츠버그 대학에서 전산 생물학을 연구하는 빙 리우 Bing Liu 박사가 살해를 당했고 그를 죽인 살인자는 자신의 차에서 자살을 했다는 뉴스가 한국 언론을 장식하기도 했다. 이런 음모론이 퍼진 이유는 빙 리우 교수가 SARS-Cov-2가 세포를 감염시키는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기초과학자였기 때문이었다. 빙 리우 교수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이 뉴스들이 주장하는 음모론 또한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 일단 빙 리우 박사가 발표한 연구결과는 중국의 바이러스 조작 및 실험실 유출을 증명하는 논문이 아니다. 그는 바이러스 전문가가 아니라 전산학자로, 생물학 연구를 위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및 모델링이 전공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까지 출판해 온 논문과 그의 연구경력을 살펴보면, 그에겐 바이러스의 유전자 조작 및 실험실 유출을 밝힐 만한 전문성도 없을 뿐더러, 그럴 동기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또한 이번 감염병 사태의 원인을 중국으로 돌리고 싶어하는 측이 퍼뜨리는 가짜 뉴스일 뿐이다. 

 

한국의 과학저널리즘은 황우석 사태를 겪고 나서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과학 뉴스의 객관성이 전문가들을 통해 사전 검증되지 않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과학 뉴스가 각 언론사의 정치적 스탠스에 의해 악용되는건 아주 흔한 일이다. 즉, 한국의 과학저널리즘은 과학이라는 학문이 담보해야할 최소한의 객관성과 진실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적 스탠스를 강화하는데 필요한 도구로 봉사할 뿐이다. 무려 올해 2월에 전세계의 바이러스 전문가들이 모여 코로나 바이러스의 우한 연구소 유출설에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공동성명서까지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옌리멍 박사 사태를 보도하는 언론사 그 누구도 그런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건 한국 언론사에 과학적 검증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언론사들이 일부러 과학적 근거를 무시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사건이다. 정치면이나 사회면과 달리, 과학과 관련된 사건 사고에는 과학이라는 학문의 특수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과학은 자연을 비밀을 발견하는 학문인 동시에,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특수한 체계를 통해 지식을 발견하고 공유하고 축적해나가는 인류가 보유한 상식의 보루이기도 하다. 과학 뉴스를 정치 뉴스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나라는 아마 한국 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옌리멍 박사 사태는, 한국의 과학저널리즘이 얼마나 후졌고, 갈 길이 먼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언론이 과학을 이해하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랄 뿐이다.  

 

더사실포럼(더나은사회실험포럼)은 과학기술계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 네트워크다. 과학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한국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전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모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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