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맨 블루스'가 20년 만에 '댄싱 메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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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맨 블루스'가 20년 만에 '댄싱 메리'로 돌아왔다
  • 홍상현
  • 승인 2020.09.25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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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댄싱 메리> 사부 감독 인터뷰
사부 감독이 「미스 좀비」이후 4년 만에 「댄싱 메리」로 한국의 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댄싱 메리」는 초청 이전에 이미 판타스포르토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화제작이기도 하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부 감독이 「미스 좀비」이후 4년 만에 「댄싱 메리」로 한국의 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댄싱 메리」는 초청 이전에 이미 판타스포르토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화제작이기도 하다. (사진 왼쪽은 야마다 아이나 배우, 오른쪽은 나오토 배우)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인생의 80퍼센트 이상을 랩의 마니아로 살면서 주위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그게 노래냐’는 것이다.

하지만 딱히 진지하게 답한 적이 없다. 애초에 랩 자체가 음악적 기교의 하나일 뿐더러 표현방법 또한 다양하니까. 아무렇게나 떠들어대는 구어와의 차이는 타임라인이 ‘일상의 시간’이 아닌 ‘인스트루멘톨 트랙(instrumental track)’에 맞춰져있다는 정도. 반드시 박자에 맞추지 않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오프 비트). 기원에 관한 설도 여러 가지다. 1960ㆍ70년대 뉴욕의 블록 파티(block party)에서 기원한다는 견해가 있는가하면, 아프리칸 그리오(african griot, 구전으로 역사와 시를 전하는 사람, ※ 필자 주)에서 뿌리를 찾는 경우도 있다. 맬컴 엑스킹 목사 같은 정치지도자들의 스피치는 물론 레게리듬에 등장하는 코멘트인 ‘토스팅(toasting)’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형식면에서는 즉흥적으로 가사를 만드는 프리스타일까지 있다.

도입부에서 이토록 장황하게 랩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은 이유는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이 바로 프리스타일 래퍼를 연상시키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부 감독은 ‘영화계의 프리스타일 래퍼’같은 인물. 그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코미디에서 판타지, 스릴러, 멜로드라마, 갱스터무비, 액션은 물론 호러까지 아우르며 기발한 조합을 되풀이한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부 감독은 ‘영화계의 프리스타일 래퍼’ 같은 인물. 그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코미디에서 판타지, 스릴러, 멜로드라마, 갱스터무비, 액션은 물론 호러까지 아우르며 기발한 조합을 되풀이한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다나카 히로유키라는 본명보다 ‘사부(SABU, 무술영화의 ‘마스터’를 뜻하지는 않는다)’라는 예명으로 유명한 그의 데뷔년도는 1986년. 배우로 시작해 <탄환주자>로 메가폰을 잡기 전까지 10년 동안 활동했다. 애초에 오사카의 패션스쿨에 다니다 상경한 계기도 뮤지션이 되기 위해서다. 감독 데뷔후의 행보는 더 독특하다. <탄환주자>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된데 이어 <먼데이>로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시체스, 판타스포르토 등 세계 3대 판티스틱영화제를 중심으로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독보적’이라는 표현이 그보다 어울릴 수 없는 사부 감독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코미디에서 판타지, 스릴러, 멜로드라마, 갱스터무비, 액션은 물론 호러까지 아우르며 기발한 조합을 되풀이한다. 물론 내용적 스펙트럼도 만화에서부터 프롤레타리아문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하다.

그런 그가 <천공의 차스케> 이후 4년 만에 시체스영화제 초청과 더불어 판타스포르토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댄싱 메리>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다.

잠시 코미디, 갱스터무비, 액션, 호러에 멜로드라마가 뒤섞인 실로 ‘장르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이 영화의 시납시스를 훑어보자.

소심한 시청 공무원 켄지(나오토 분)는 다들 꺼리던 낡은 댄스홀의 철거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게 될 이 폐건물에는 수시로 댄서였던 메리의 유령이 출몰해 담당자들이 도망쳐버리기 일쑤다. 실패를 거듭하던 켄지는 우연히 만난 영능력자 유키코(야마다 아이나 분)를 통해 메리가 실종된 연인, 조니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은 문제해결의 실마리인 조니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뜻하지 않게 기상천외한 모험에 휘말리는 소시민 켄지나 오랜 약속을 잊지 않는 메리가 만 20년 전 한국에서 개봉한 출세작 <포스트맨 블루스>의 주인공들(반복되는 일상에 지쳐버린 집배원 료이치와 다음날 오후 3시에 만나자던 약속을 기억하는 말기 암환자 사요코)을 떠올리게 하는 <댄싱 메리>에 대해 사부 감독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뜻하지 않게 기상천외한 모험에 휘말리는 소시민 켄지나 오랜 약속을 잊지 않는 메리는 만 20년 전 한국에서 개봉한 사부 감독의 출세작 「포스트맨 블루스」의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제공: (C)1997 Postman Blues Film Partners
뜻하지 않게 기상천외한 모험에 휘말리는 소시민 켄지나 오랜 약속을 잊지 않는 메리는 만 20년 전 한국에서 개봉한 사부 감독의 출세작 「포스트맨 블루스」의 주인공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제공: (C)1997 Postman Blues Film Partners

홍상현

1990년대 장르영화 마니아에게 1990년대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감독이 <하나-비>의 기타노 다케시라면 2000년대에는 사부 감독님이셨습니다. 2000년 10월 공개된 <포스트맨 블루스>을 ‘인생 영화’로 꼽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니까요. 그 후 세계의 주요영화제와 한국의 3대 영화제를 두루 섭렵해오셨습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세 번째이시죠. 감회가 특별하실 것 같은데요.

사부

와우, 최고죠! 정말 기뻐요. (웃음)

앞으로도 구석자리라도 좋으니 부디 초청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그보다 기꺼이 초청해주실 있을 만큼 저도 노력해야겠지요. 과분하게도 제 작품이 ‘인생 영화’였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을 종종 만나는데요. 그런 분들이 좀 더 목소리를 높여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뭔가 지적인 느낌을 주는 감독이나 작품을 언급하고 막상 저를 만났을 때만 본심을 드러내시거든요. 부끄러워 마시고 좀 더 용기를 내주셨으면 합니다. (웃음)

 

홍상현

(웃음) <댄싱 메리>는 <> 이후 2년만의 작품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사부

그럼, 설명 드리겠습니다. (※ 특유의 말버릇)

완전 힘들었어요. (웃음) 2017년 12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잼>을 촬영하고 같은 스태프와 함께 한달 뒤, 그러니까 2018년 1월 하순부터 2월 하순까지 <댄싱 메리>를 촬영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일단 2017년 12월 초순에 <미스터 롱>이 개봉해서 각종 취재에 응하는 한편 무대 인사를 다니면서 <잼> 촬영을 시작한 거죠. 촬영장에서 늦은 밤 숙소로 돌아오면 다시 <댄싱 메리>의 콘티작업을 해야 했고요. 물론 다음날 아침에는 다시 <잼> 촬영장으로 향했습니다. 6월에는 베를린에서 <잼>과 <댄싱 메리> 후반작업. 10월부터 <부서져 흩어지는 모습을 보여줄게>가 크랭크 인했지요.

아, 이런 식으로 말씀드리니까 제가 엄청 잘나가는 감독 같은데, 그냥 우연히 스케줄이 겹친 거였어요. (웃음)

 

홍상현

최근 한국영화도 많이 보고 계신지요. 7년 전 <미스 좀비>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하셨지만, 같은 좀비물인 <살아있다>, <반도> 등에 한국영화산업이 사활이 걸릴 만큼 장르영화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부

당연히 보죠! 한국 배우들, 영화, 드라마 정말좋아합니다. 엄청 존경스럽고요.

아카데미 시상식도 가족들과 같이 보다 <기생충>이 수상하는 순간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어요. 봉준호 감독님이 수상소감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서 울었다니까요. 아, 어쩌면 그렇게 멋진지.

한번 시장에서의 검증을 거친 원작물을 선호하는 일본 영화산업의 환경에서 대개 오리지널 시나리오인 사부 감독의 작품은 늘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제약이 바로 사부 감독의 투지를 자극한다는 사실이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한번 시장에서의 검증을 거친 원작물을 선호하는 일본 영화산업의 환경에서 대개 오리지널 시나리오인 사부 감독의 작품은 늘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제약이 바로 사부 감독의 투지를 자극한다는 사실이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홍상현

개인적으로 감독님께 늘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일본영화계의 독보적인 감독이시잖아요. 조감독 생활을 거치신 것도 아니고, 필름스쿨에 다니신 적도 없으십니다. 또, 원작물이 많은 업계의 추세와 달리 늘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승부해오셨지요. 게다가 50대 중반이 되셨는데도 여전히 누가 함부로 흉내조차 못 낼 만큼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고요.

도대체 이런 엄청난 에너지, 즉, 창작력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사부

최고의 칭찬 감사합니다! 감동이에요. 그런 말씀을 다 해주시고.

그럼, 설명 드리겠습니다.

제 창작력의 첫 번째 근원은 바로 당신입니다.

제가 만든 작품을 이해해주시는 건 최고의 기쁨이며, 용기를 주니까요. ‘사부, 끝까지 밀어주지. 이대로 달려!’하는 느낌으로 제 등을 쭉쭉 밀어 주시니 저도 더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요.

두 번째는 영화제입니다.

1996년 <탄환주자>로 처음 초청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대단했거든요. 그때부터 관객들을 놀라게 하거나 웃게 만드는 게 저가 영화를 만드는 목적이 되었어요.

그리고 세 번째가 예산인데요.

제 작품은 대개 오리지널 시나리오라 예산이 늘 부족해요. 하지만 그래서 한탄만 해도 소용이 없으니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뺄셈을 해 가다 보면 스토리가 나오지요. 인스피레이션과도 연결되는 이야기겠네요. 예컨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미스 좀비> 촬영에 걸린 시간은 닷새였습니다. ‘닷새 만에 뭘 할 수 있지?’하는 지점에서 역으로 여러 가지가 시작된 거예요.

 

홍상현

이처럼 엄청난 리액션을 해주시니, 인터뷰어로서도 동기부여가 됩니다. (웃음) 인스피레이션에 관해서 좀 더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부

두 가지 패턴이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의 영화를 보다 얻어내는 것과 사색을 통해 얻어내는 것. 제 시나리오는 대개 이 두 가지를 조합한 결과로 탄생해요. 특히 영화를 보다 인스피레이션을 얻어낼 때는 뻔한 스토리의 형식을 깨는 느낌이 많고.

아이디어가 쏟아질 때는 먼저 예고편 같은 영상이 단편적으로 그려집니다. 갑작스레 아이디어가 내려온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요. 그런데, 최근 들어 또 이 방법을 찾아내고 만 겁니다!

 

홍상현

네?!

사부

이전엔 도쿄에 있는 고슈도로를 타고 메이지대 앞을 차로 지날 때 주로 아아디어가 떠올랐는데, 운전을 하다 보니 사고가 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우리 집 주방의 환풍기 아래 앉아 허리를 펴고, 시선은 정면에서 약 25도 아래를 멍하니 응시하다 오른쪽 대각선 45도 위치에 의식을 집중시킵니다. 그러면 영상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예요!

 

홍상현

(폭소) 아니, 그 정도면 무슨 무협소설에 나오는 ‘비기’수준인데요!

사부

(능청스럽게) 아니죠. 제가 이렇게 도달한 오의를 제 자식들에게 전승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밝혔으니 이제 오의도 비술도 아니게 되어 버린 겁니다. 기자님의 패턴에 휘말려버린 걸까요. 아니, 아니, 제가 원해서였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와우! (웃음)

얼핏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인 것 같아도 「댄싱 메리」는 대단히 첨예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작품. 시청의 공무원은 갱스터처럼 보이며, 유령은 보통의 인간들보다 훨씬 윤리적이고 인간적이다. 거기에 소외계층에 대한 사부 감독의 생각 또한 곳곳에서 드러난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얼핏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인 것 같아도 「댄싱 메리」는 대단히 첨예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작품. 시청의 공무원은 갱스터처럼 보이며, 유령은 보통의 인간들보다 훨씬 윤리적이고 인간적이다. 거기에 소외계층에 대한 사부 감독의 생각 또한 곳곳에서 드러난다. (사진 오른쪽은 이시바시 료 배우)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홍상현

다음에 어떤 말씀이 이어질지 정말 궁금해지는데요. (웃음)

사부

최근 이 비술을 이용해 대본을 쓰고 있는데요. 가족과의 일상적인 대화중에 신경 쓰이는 내용이나 인물에 대한 화제가 나오면 자연스레 비술이 발동해서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할 정도로 멍해질 때가 있어요. ‘아버지ㆍ남편으로서 이러면 안 되는데’하면서도 또 다른 생각에 몰두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인가’하는 자각과 함께 현실로 돌아오면 가족들은 또 아무렇지 않게 ‘오셨어요’하면서 상냥하게 맞아준답니다. 정말 짱이지 않나요?

 

홍상현

(웃음) 네.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다음은 감독님 영화의 경향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한마디로 ‘장르의 크로스오버’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데요. 코미디, 판타지, 스릴러, 멜로드라마 등 다종다양한 장르를 자유자재로 섞어서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오셨잖아요. 이번 <댄싱 메리>의 경우도 코미디, 갱스터무비, 액션, 호러에 멜로드라마까지 융합된 작품인데요.

사부

근데 저 정말 계속 이 분위기로 가도 괜찮을까요? (웃음)

이제 다시는 이런 텐션의 인터뷰를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모처럼 분위기를 살려주셨으니 끝까지 가보자’는 느낌으로 콘셉트를 유지하는데요. (일동 웃음)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50대 중반의 영화감독’다운 침착한 느낌으로 수염도 좀 기른 외모에 허공으로 멍한 시선을 던지기도 하고, 적당히 사랑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도 좀 하면서 인기몰이를 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또 제 인터뷰 때문에 《뉴스톱》의 품격을 떨어뜨리면 곤란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댄싱 메리」의 켄지는 메리를 위해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로 한 날 사라져버린 조니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그의 모습은 말기 암환자 사요코를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자전거 페달을 밟던 「포스트맨 블루스」의 료이치와 닮았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댄싱 메리」의 켄지는 메리를 위해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로 한 날 사라져버린 조니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그의 모습은 말기 암환자 사요코를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자전거 페달을 밟던 「포스트맨 블루스」의 료이치와 닮았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홍상현

(웃음) 아뇨,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애초에 “홍상현의 인터뷰” 자체가 ‘지상중계 토크쇼’ 같은 느낌의 지면이라서.

사부

아,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아무튼 그래도 인간은 역시 자신답게 살아야 하잖아요. 스스로를 비틀어서 직책이나 사회적인 굴레에 갇혀 사는 게 과연 좋을까 싶어요. 집단이나 조직에 매몰된 삶이란 건 재미없으니, 각자 최대한 개성을 발휘하자는 거죠. 야, 그런데 저 오늘 아까부터 주절주절 진짜 말 많네요. 조금 전에 말씀드린 ‘비술’이 발동하기 시작해 멈추지 않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질문의 내용과 무관한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취재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은 유지하고 있으니까.

 

홍상현

물론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웃음)

사부

감사합니다. (웃음) 시카고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낡은 댄스홀에 메리라는 여성의 유령이 나온다는 괴담을 들으면서부터, 그 메리가 제 머릿속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관객을 울리는 호러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구상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낡은 댄스홀, 파괴, 기억, 재생, 생사관 등의 키워드가 버무려진 끝에 시나리오가 완성되었습니다.

 

홍상현

역시 작품을 만드시면서 확신이 있으셨다는 말씀이신 건가요?

실제로 <댄싱 메리>는 부천에 오기 전에 이미 세계 3대 판타스틱영화제 중 하나인 판타스포르토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요.

사부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답해드려야지... 벌써 나이가 50대 중반인데...’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옵니다만 끝내 ‘강한 확신이 있었습니다!’라고 답하는 제가 있습니다. (웃음)

처음 자신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들었을 때만해도 사부 감독은 나오토 배우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부 감독이 그의 진심을 확인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처음 자신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들었을 때만해도 사부 감독은 나오토 배우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부 감독이 그의 진심을 확인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홍상현

<댄싱 메리>에 대한 느낌을 정리해보면 “정신없이 웃다가 긴장감에 닭살이 돋고, 다시 정신을 차려보면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정도가 되겠습니다.

특히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인 것 같아도 잘 보면 대단히 첨예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는데요. 예컨대 시청의 공무원이 때로는 갱스터처럼 보이고, 유령은 보통의 인간들보다 훨씬 윤리적이고 인간적이더군요. 거기에 소외계층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나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는 관료에 대한 비판 같은 문제의식도 반영되어있는 것 같고.

사부

저의 작품을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이해해 주신다는 사실에 감동! 

영화의 테마에 대해 늘 생각하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반영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문제의식이 전면에 나와 버리면 왠지 설교 같을 뿐더러, 어쩐지 위로부터의 시선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싫더라고요. 게다가 평소 정치적인 문제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까닭에 조금 짓궂어 지고는 해요.

물론 영화에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지요. 드디어 어른이 되어야할 순간이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는데요.

와우. 정말? (웃음) 아, 역시 세상을 바꾸는 건 다른 감독에게 잠시 맡기고, 저는 역시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엽기발랄하게 가는 게 좋겠어요. (웃음)

 

홍상현

하지만 후반으로 가면 전반의 호러적인 분위기가 드라마로써의 완성도를 높여주기 위한 복선이었다는 생각이 들만큼 눈물샘을 자극하는 애처로운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점점 각박해져가는 세상에서,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치않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신 의도는 뭔가요.

사부

아, 가슴을 흔드는 질문이네요! 영화를 그렇게까지 잘 봐주시니 기뻐요.

<포스트맨 블루스>도 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내일 데리러 가기로 한 집배원이 필사적으로 자전거를 몰고 가는 내용이잖아요. 저는 거창한 목표의 달성보다 작은 약속을 지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좋습니다.

 

홍상현

지금부터의 화제는 캐스트에 관해서입니다.

<댄싱 메리>의 가장 큰 볼거리 중 하나는 역시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나오토 배우의 연기력입니다. 나오토 배우는 유명 아이돌그룹(Exile)의 퍼포머로 더 유명했습니다만, <댄싱 메리>에서의 모습을 보면 애초에 그의 캐스팅을 상정하고 시나리오가 집필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사부

저도 깜짝 놀랐어요. 솔직히 이렇게까지 잘 해낼 줄 몰랐거든요. 처음 그가 소속되어 있는 아이돌그룹을 통해 제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 들었을 때만해도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진심이었던 거죠. 특히 결말부의 액션신이 훌륭했는데요. 얼핏 그저 날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서있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을 표현하는 그 움직임은 누가 흉내 내기조차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남다른 피지컬 트레이닝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거듭해온 결과 아닐까 해요.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이야. 지금 해야 할 일을 한다면 미래를 바꿀 수 있지. 우연 따위는 없어. 모든 것은 필연이고, 그 순간의 만남을 어떻게 활용할 지가 포인트란다”사부 감독이 「댄싱 메리」의 대사 가운데서 직접 인용해준, 관객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이야. 지금 해야 할 일을 한다면 미래를 바꿀 수 있지. 우연 따위는 없어. 모든 것은 필연이고, 그 순간의 만남을 어떻게 활용할 지가 포인트란다.” 사부 감독이 「댄싱 메리」의 대사 가운데서 직접 인용해준, 관객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홍상현

물론 <댄싱 메리>의 켄지도 감독님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던 주인공들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능하고 소심하지만, 선하고 정의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는. <댄싱 메리>의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시려고 한 것은 뭔가요.

사부

켄지가 두 사람의 암에 걸린 두 사람의 나이든 여성분들로부터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이야. 지금 해야 할 일을 한다면 미래를 바꿀 수 있지. 우연 따위는 없어. 모든 것은 필연이고, 그 순간의 만남을 어떻게 활용할 지가 포인트란다”라는 이야기를 듣는 장면과 직접적으로 연관됩니다. 또, <댄싱 메리>는 주인공이 마이너스에서 시작해서 제로에 도달하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데서 끝이 나지요. 바로 이 한 걸음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홍상현

주인공의 캐릭터 자체도 연기의 난이도가 무척 높았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소심자로 등장해서 점점 박력을 보여주고, 특히 빙의장면에서는 완벽하게 다른 캐릭터로 변신하고 있는데요.

사부

주인공인 후지모토의 포인트는 가벼움과 허술함이었습니다. 영화의 전형적인 주인공 같지 않은 느낌을 원했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빙의 장면까지 포함해서 캐릭터의 폭을 최대한 넓히고 싶었습니다.

 

홍상현

갱단 보스를 연기한 이시바시 료 배우와의 조합도 훌륭했습니다.

사부

이시바시 씨는 제가 고등학교시절에 정말 좋아하던 ARB라는 밴드의 보컬리스트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또 엄청나게 성실한 배우셔서 현장에 긴장감을 가져다 주셨어요. 그 덕을 톡톡히 봤죠. 고교생시절의 제가 동경하던 보컬리스트가 온몸에 칼날이 박힌 강한 것인지 약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갱스터를 연기하다니, 정말 가슴 벅찬 일이었습니다.

결말부의 액션신에서 나오토 배우는 제대로 서있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을 소름끼칠 만큼 리얼하게 표현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남다른 피지컬 트레이닝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거듭해온 결과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결말부의 액션신에서 나오토 배우는 제대로 서있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을 소름끼칠 만큼 리얼하게 표현하는 연기를 보여준다. 남다른 피지컬 트레이닝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거듭해온 결과다. 사진제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홍상현

또한 시선을 모으는 것이 2년 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된 이후 한국에 공개되었던 제제 타카히사 감독의 <최저>에서 깊이 있는 내면연기를 보여주었던 야마다 배우인데요.

사부

야마다 배우는 오디션을 통해서 캐스팅되었습니다. 말씀하시는 것처럼 워낙 분위기가 독특하면서도 투명한 느낌이 있지요. 게다가 촬영이 진행되는 내내 대단히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홍상현

영화사의 명감독들은 50대가 되면서 자신의 대표작을 만들어왔습니다. 물론 사부 감독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많은 한국관객이 기대하고 있을 텐데요. 차기작의 계획과 앞으로의 포부에 대해 들려주세요.

사부

오늘 제 작품세계를 너무 잘 이해해주시는 데 감동해서 이런저런 말들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했습니다만, 요즘 정말 바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올해 크랭크인하는 10회분의 드라마와 새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거든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집 주방의 환풍기 아래 앉아 허리를 펴고, 시선은 정면 기준 25도 아래를 멍하니 응시하고, 오른쪽 대각선 위쪽 45도 위치에 의식을 집중시키는 가운데 머리에 떠오르는 영상들을 이리저리 굴려가면서 필사적으로 집필에 매달리고 있는 상황이지요. 그런 와중에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원기와 용기를 얻었어요. 진짜로요! 50대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한국 스태프와 찍고 싶어요. 저의 대표작을!

코로나 19 사태로 선뜻 상영관을 찾기 망설여지는 상황 속에서도 「댄싱 메리」의 티켓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인터넷 예매가 개시되기 무섭게 2회 모두 매진을 기록했다. 그리고 어렵사리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은 모두 입을 모았다. ‘역시 사부’라고.
코로나 19 사태로 선뜻 상영관을 찾기 망설여지는 상황 속에서도 「댄싱 메리」의 티켓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인터넷 예매가 개시되기 무섭게 2회 모두 매진을 기록했다. 그리고 어렵사리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은 모두 입을 모았다. ‘역시 사부’라고.

“영화제를 통해 많은 한국의 영화인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막 일본영화가 해금되어 <포스트맨 블루스>가 현지에서 개봉할 당시 캠페인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양시영 군. 서울 촬영 당시 로케 장소를 소개해주셨던 서울영상위원회 여러분. 저와 같이 영화를 만들어보려고 애써주셨던 파인 컷 서영준 씨, 도쿄필름엑스와 파리에서 뵈었던 이창동 감독님. 도쿄 니시아자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김지은 감독, 신주쿠 골든가에서 대담을 했던 양익준 감독,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김영덕 씨, <미스 좀비> 개봉 당시 신세를 졌던 영화사 조아 이은경 씨, 이탈리아의 우디네극동영화제에서 만난 정우성 씨 그밖에 일일이 꼽아보자면 끝이 없을 많은 분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맨 처음 만난 한국의 지인, 그러니까 제가 1996년 <탄환주자>로 베를린국제영회제에 초청되었을 당시 거기서 만난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제일 많이 기억이 나요. 늘 저를 응원해주셨거든요.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아팠을 때 제일 먼저 연락을 해주었던 것도 지석이 형이었는데, 그 온화한 미소와 따듯한 성품을 잊을 수가 없어요. 이제 더는 부산에 가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쓸쓸한 느낌이 드네요. 물론 언젠가, 어딘가에서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지만요.

그리고 한국 관객 여러분, 늘 제 작품을 봐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느새 제 나이 50대 중반,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싶어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어른이 되지 않고, 상식의 틀을 넘어서는 영화들을 만들어나가겠습니다. 부디 기대해주세요.”

문자 그대로 ‘대화의 희열’이 느껴지던 인터뷰의 기억을 곱씹으며 원고를 정리하고 있을 즈음, 시기적으로 애매해 초청하지 못한 사부 감독의 스물세 번째 신작 <부서져 흩어지는 모습을 보여줄게>가 바르샤바국제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코로나 19 때문에 폴란드 현지에서 이루어질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하기는 어렵겠지. 문득 사람들의 목소리와 반응을 원동력으로 영화를 만든다던 그의 말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굴하지 않고 오늘도 자택 주방의 환풍기 아래 앉아 명상을 하고 있을 그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어본다.

어디선가 인터뷰 내내 몇 번이나 연발하던 사부 감독의 ‘와우!’하는 탄성이 들려올 것만 같았다.

홍상현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을 갖추고 한ㆍ일 두 나라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교수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 같은 대학 이미지인류학연구실(IAL)의 네트워크 멤버였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의 논쟁적인 저작을 소개한 번역가이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거쳐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램 어드바이저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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