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가로쓰기, 서양인이 최초로 시작?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8.12.13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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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은 글을 쓸 때, 손으로 쓰든 컴퓨터를 이용하든 가로쓰기를 한다. 너무나도 뻔한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알다시피 우리 옛 문헌은 한문으로 된 것이든 한글로 된 것이든 지금과 같은 가로쓰기가 아닌 세로쓰기 방식이었다.

전 세계 문자 쓰기는 크게 가로쓰기(횡서)와 세로쓰기(종서)로 나뉘는데, 가로쓰기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좌횡서와 그 반대로 쓰는 우횡서로, 세로쓰기에는 행갈이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하는 우종서와 그 반대로 하는 좌종서로 나뉜다. 한국어·중국어·일본어·베트남어 등 한자문화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세로쓰기였으며, 건축물의 현판이나 간판 등 가로로 쓸 경우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우횡서를 취했다.

임신서기석

1934년 5월 경북 월성군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터에서 발견된 「임신서기석」은 국어 역사를 살피는데 귀중한 금석문 자료다. 임신서기석은 신라 552년(진흥왕 13) 또는 612년(진평왕 34)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두 청년이 학문을 연마하고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 국가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굳은 각오를 새겼다.

비석의 오른쪽 맨 위로부터 임신년 6월 16일, 즉 ‘壬申年六月十六日’에 하늘에 맹세한다는 글로 시작해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다가 ‘시(詩)·상서(尙書)·예기(禮記)·전(左傳)을 차례로 습득하기를 맹세하되 3년으로 한다’는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으로 끝난다. 이와 같은 세로쓰기는 전통적인 서법이었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훈민정음』을 언해한 『훈민정음 언해본』 역시 세로쓰기 방식으로 간행되었다.

훈민정음 언해본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고문헌들뿐만 아니라 가까운 과거인 20세기 초반에 나온 책들도 대부분 세로쓰기 방식으로 편찬되었다. 1896년에 창간된 최초의 한글 신문 『독립신문』조차도 세로쓰기였으며, 1908년 11월 최남선에 의하여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종합잡지 『소년』이나 김동인이 1925년 1월에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소설 『감자』 등이 모두 전통적 서법인 세로쓰기를 취하고 있다.

제호 ‘독립신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로 썼고, 본문은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세로쓰기를 했다.
잡지 <소년>
김동인 소설 <감자>

 

그러면 가로쓰기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한국어가 가로로 쓰인 초기 사례는 서양 선교사들이 만든 사전에서 찾을 수 있다. 1880년 파리외방선교회 한국선교단에서 편찬한 『한불자전』은 한글을 올림말로 하고 뜻풀이를 프랑스어로 했는데, 처음으로 한글 가로쓰기가 적용되었다.

한불자전

 

이 자전은 병인박해(1866) 때, 우리 나라를 탈출한 리델(Felix-Clair Ridel) 주교가 서울 출신의 독실한 신도 최지혁의 도움을 받아 만주 짜코우(岔溝)에서 편찬하여 일본 요코하마에서 인쇄한 것으로, 가로쓰기를 채택한 것은 한국어 표제어를 설명할 때 가로로 쓰는 프랑스어를 써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위 22쪽에서 칠보산과 춘천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 있다.

칠보산, TCHIL-PO-SAN. 七寶山. Mont. Prov. de HAM-KYENG
츈쳔, TCHYOUX-TCHYEN. 春川. Ville á 205lys de la capitale. 11 cantons. Prov. de KANG-OUEN. 1 pou-sâ. 37°43′-125°15′.

 

19세기 말은 서양 선교사들의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포교 활동이 다방면에서 펼쳐지던 때였고,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포교 대상 지역의 언어를 습득할 필요를 느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 1842-1915)였다. 그는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해외선교부의 중국 선교사로 중국의 동북부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무역상인 조선인들에게서 조선어를 배웠다.

그는 조선에 대한 적극적인 포교를 위해 조선어 교재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1876년 의주 상인 이응찬의 도움을 받아 동료 선교사 및 서양인들이 참고할 수 있는 조선어 문법서 집필에 착수하여 1877년 서양인으로서는 최초로 조선어 문법책인 『Corean Primer』를 완성하였다. 조선어는 한글로 표기하였고, 설명은 영어로 했으며 가로쓰기 방식으로 편찬하였다.

최초의 조선어 문법책 『Corean Primer』 일부

 

최초의 조선어 문법책 『Corean Primer』 일부

 

이처럼 조선어의 가로쓰기는 알파벳을 가로쓰기 방식으로 표기하던 서양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후 『예수셩교젼셔』(1887)·『누가복음젼』(1890)·『요한복음젼』(1891) 등을 비롯한 많은 한글 성경이 나옴으로써 기독교는 한글 보급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한국인이 쓴 책 가운데 처음으로 가로쓰기를 한 것은 1895년에 이준영·정현·이기영·이명선·강진희 등이 편찬한 국한대역사전 『국한회어』로, 이 책의 서문에는 가로쓰기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들어 있다.

 

자행(字行)은 종좌달우(從左達右)하며 간차(簡次)는 자하철상(自下撤上)하야 외국책규(外國冊規)를 방(倣)하고.. (글자와 행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하며 올림말의 배열은 위에서 아래로 하고 한 단이 끝나면 다음 오른쪽 단의 위로 올라가도록 했으며 이는 외국의 책을 모방하고...)
- 홍윤표, 『한글이야기 1』, 태학사

 

국한회어

 

‘종좌달우(從左達右)’라 하여 글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썼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외국 책을 모방했다’는 것 외에 가로쓰기를 채택한 특별한 동기나 이유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앞서 확인했듯이 1896년 창간한 『독립신문』도 세로쓰기였다. 주시경은 독립신문에서 회계와 교정을 담당하다가 1897년 6월 사직했는데, 『독립신문』 1897년 9월 28일자에 투고한 「국문론」에서 한글은 가로 써야 한다는 생각을 밝히고 있다.

→ 또 글을 쓸 때에는 왼쪽에서 시작해서 오른쪽으로 가며 쓰는 것이 편리하다. 글을 오른쪽에서 시작해서 왼쪽으로 써 나가면 글씨를 쓰는 손에 먹도 묻을뿐더러 먼저 쓴 글씨 줄은 손에 가리어서 보이지 아니하니 먼저 쓴 글줄들을 보지 못하면 그 다음에 써 내려가는 줄이 혹 비뚤어질까 염려도 되고 먼저 쓴 글의 뜻을 생각해 가며 차차 다음 줄을 써 내려가기 어려우니 글씨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 내려가는 것이 매우 편리할 것이다.

말모이는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이 집필한 첫 우리말 사전 원고로 최종적으로 출판되지 못하였다. 표제항 ‘ㄱ’부터 ‘걀죽’까지의 원고만 남아 있다. - 국립한글박물관.

주시경은 한글을 쓸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가로쓰기를 택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주장했다. 세로쓰기를 할 경우, 손에 먹이 묻고 먼저 쓴 글이 손에 가려 보이지 않는 점을 지적한 것이 매우 흥미롭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장을 펼친 주시경의 저서들, 즉 국문문법(1905)·국문초학(1909)·국어문법(1910)·조선어문법(1911)·말의 소리(1914) 등이 가로쓰기가 아닌 세로쓰기를 취하고 있으며, 주시경이 남긴 저술 가운데 가로쓰기로 된 것은 사전을 만들다가 미완성 원고로 남아 있는 「말모이」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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