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톱 창간기획> 대한민국 보육 정책, 이것이 문제다

  • 기자명 이고은 기자
  • 기사승인 2017.06.1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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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정부의 보육 정책에 따라 울고 웃는다. “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우겠다”면서 저출산 대책으로 정부가 내놓는 각종 보육 정책들은 과연 부모들에게 얼마만큼 신뢰를 받고 있을까. 팩트체크 미디어 <뉴스톱>은 창간 기획으로 한국의 보육 정책을 팩트체크했다.

 

2012년 도입 후 줄곧 예산 부담 문제로 혼선이 이어졌던 보육정책 '누리과정'. 문재인 정부가 정상화를 위해 팔을 걷어 부쳤다. 내년부터 연간 2조원에 달하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사업 예산 전액을 중앙정부에서 부담하겠다는 방침이어서 향후 사업이 안정될지 주목된다. 6년간 줄곧 학부모들에게 혼란과 불신을 안겼던 누리과정이건만 정부만 바뀌면 순식간에 해결되는 문제였던 것인지, 그동안 왜 난항을 겪어왔던 것인지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대한민국의 보육 정책은 과연 튼튼한 설계 위에서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뉴스톱>이 짚어봤다.

지난달 25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유치원뿐 아니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도 내년부터 전액 국고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2016년 마련한 누리과정 예산 가운데 중앙정부가 부담한 비율은 41.2%, 돈으로 따지면 약 8600억원 수준이다. 100% 부담한다면 2조원 정도가 국고에서 나가게 된다. 왜 중앙정부는 누리과정 예산 전액을 부담하기로 결정했나. 그렇다면 지금까지 재정은 누가 부담해왔나. 재정을 지원하면 사업이 정상화될 수 있을까.

 

'누리과정' 누가 왜 도입했나

출처: 교육부 홈페이지

지난 6년간 한국 보육정책 논란의 중심에는 '누리과정'이 있다. 누리과정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놓은 복지정책 중 하나다. 우리나라 만 3~5세 어린이라면 국가에서 공정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제공하는 교육과정으로, ‘누리’는 세상이라는 뜻으로 어린이들에게 희망차게 세상을 살아가라는 의미다. 2012년 3월부터 정부 주도하에 만 5세 누리과정이 도입됐고, 2013년에는 만 3~4세까지 확대 도입됐다. 내용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사이에 구분 없이 신체운동·건강,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경험, 자연탐구 등 5개 영역에 대한 내용을 동일하게 배우고 부모의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모든 유아에게 유아학비와 보육료를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교육부 홈페이지)

 

'누더기'된 누리과정 예산

그러나 누리과정의 재원 확보와 예산에 대한 갈등은 이미 2010년 서울시 무상복지 논쟁에서부터 출발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무상급식 논란과 그에 따른 한나라당의 패배는 그동안 선별적 복지를 내세워왔던 새누리당에서 대선후보의 무상보육 정책 공약을 내세우는 정책적 모순을 낳았다.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면서 누리과정 예산갈등은 구체적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토론 자료집)

도입 후 예산 처리 과정에서는 줄곧 갈등과 논란이 일었다. 누리과정 사업이 추가됐지만 박근혜 정부의 공약과 달리 중앙정부에서는 추가로 돈을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리과정 예산 중 일부는 지방정부와 지방교육청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쓰게 되는데,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인 2013년부터 세수가 감소하고 정부의 재정추계가 빗나가기 시작하면서 혼란이 시작됐다. 자연스레 실교부액에 차이가 나게 됐고 실제로 돈이 부족해져 다른 곳에 쓸 돈을 누리과정에 끌어다 써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출처 : 교육부 홈페이지 https://www.moe.go.kr

 

유치원·어린이집 주관 부처 달라 갈등

갈등의 또 다른 중요 원인은 사업과 예산 주체가 다르다는 데서 출발한다. 유치원은 유아교육법 상 ‘교육 기관’으로 교육부와 지방교육청이 지원하지만,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 상 ‘사회복지시설’로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한다. 하지만 교육부 소관이 아닌 어린이집마저 누리과정으로 묶이게 되면서 지방교육청이 돈을 지원하게 된 것이 갈등의 씨앗이 됐다. 만 3~5세 아동을 보육하는 어린이집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이 2016년 1월 페이스북에 게시한 ‘누리과정 이야기’만화의 한 장면.

중앙정부는 누리과정 예산 전부를 부담하지 않고, 지방정부와 지방교육청에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가운데 일부를 사용하라고 주장해왔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지역 간 균형있는 교육 발전을 위해 교육기관 설치와 운영에 쓰도록 국가가 지방자치단체에 교부하는 예산이다. 교부 대상은 공립유치원 등 교육기관과 지방교육청 등 교육행정기관으로, 중앙정부에서 거둔 내국세의 20.27%와 교육세가 그 재원이다. 하지만 교육 기관이 아닌 어린이집이 지방재정교부금으로 지원을 받는 것은 지방재정교부금법 제1조 위반이다. 사실 보건복지부 소관이어야 할 누리과정이 시행령 개정으로 교육부 소관으로 이관됐고, 이는 결국 상위법령과 충돌하는 셈이다.

정부의 누리과정 예산 전액 국고지원 방침은 또 다른 부처 간 갈등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및 지방교육청 사이의 갈등은 봉합될 수 있지만, 예산 당국인 기획재정부가 이에 난색을 보여서 이번엔 교육부와 기재부 사이의 갈등이 예견되는 상태다.

유치원 이미지. 출처 : https://pixabay.com

 

'유아교육·보육 통합' 해결책 될까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 중인 것은 바로 ‘유·보(유아교육·보육) 통합’이다. 누리과정 외에도 시설관리·감독 등 유치원과 어린이집과 관련한 모든 업무를 교육청에서 통합·관리한다는 계획이다. 보육료 예산만이 아닌 전체 체계를 통합하는 체계가 완성되어야 누리과정을 둘러싼 갈등이 해결됨은 물론 유치원과 어린이집 사이의 교사 자격·처우·시설 기준 통일 등 산적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유·보 통합을 공약하고 국무조정실에서 추진단까지 만들었지만 미흡하다는 평가다.

지난 11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관계 기관들을 불러 유·보 통합과 관련한 끝장 토론을 진행했다. 김진표 국정기획위 위원장은 “문 대통령은 국가 재정부담이 늘어나더라도, 다른 교육보다 최우선으로 취학 전 보육과 교육을 위해 국가 재정을 대폭 확대해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정기획위에서는 이날 교사 자격과 처우 등을 통일하는 문제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해 결론은 내리지 못한 채 추후 관련 TF를 가동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가 보육정책의 핵심 해결책 중 하나인 유·보 통합을 어떻게 추진해갈 것인지, 주목해야 한다.

*2017년 6월 27일 오전 11시 20분 1차 수정: <누리과정이란?> 단락에서 나무위키 인용 부분을 삭제했습니다.

*2부는 ‘대한민국 보육 예산, 무엇이 문제인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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