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택배 기사 과로사는 임금 욕심 때문이다?

  • 기자명 이나라 기자
  • 기사승인 2020.10.2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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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한진택배 소속 택배 기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처럼 최근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가 잇따르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 문제의 원인이 택배 기사들의 욕심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건당 실적으로 수익이 측정되는 택배 산업 구조상, 더 많은 수입을 위해 택배 기사 개인이 무리하게 많은 물량을 잡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구역을 빼앗기기 싫어 일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택배 기사가 스스로 일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왜 택배 기사들이 과로사로 사망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택배 기사 업무를 둘러싼 논란을 <뉴스톱>이 확인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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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배 기사는 건당 수수료로 임금을 받는다 → 사실

현재 택배 기사들은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다. 물론 최근 CJ대한통운이 택배 노동자들이 만든 노동조합을 인정하라는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사법부가 “택배 기사들 모두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한다”며 기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건당 배달 수수료를 받는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어 있으므로, 배달 수수료가 곧 급여가 되는 구조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적용도 받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는 자신의 역량만 된다면 무제한으로 일할 수 있는 셈이다.

택배 기사들이 건당 받을 수 있는 배달 수수료는 택배사마다 다르다.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의 경우 전국을 1급지부터 12급지로 나눠 700원에서 1200원 사이의 배송 단가를 지급한다. 즉, 한 건을 배달하면 택배 기사에서 평균 1000원 정도의 수수료가 떨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물량을 많이 배달할수록 받게 되는 수수료 액수는 커진다. 실제로 지난해 CJ대한통운이 택배 기사의 연 소득을 조사한 결과, 평균 임금이 6937만 원, 세금 및 비용 등을 공제한 순소득은 5200만 원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연간 1억 원 이상 소득을 기록한 택배 기사는 전체 기사의 4.6%에 해당하는 559명이었다.

 

◈ 택배 기사가 스스로 물량을 조정할 수 있다→ 절반의 사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 원인이 구조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욕심이라고 주장한다. 하루에 정해진 할당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 소속된 노동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충분히 물량을 조정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진택배 역시 이번 택배 기사 사망은 과로사가 아닌 지병에 의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택배 기사들은 “현장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라고 말한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관계자는 <뉴스톱>과의 통화에서 “택배 기사들이 임의로 물량을 조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며 “물량 수로 계약을 하는 것이 아닌 구역으로 계약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한 명의 택배 기사가 300개의 물량을 담당하다가 350개로 늘어났다고 가정해보자. 고작 50개의 물량을 담당할 인력을 충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 사람에게도 300개 정도의 물량을 마련해줘야 한다. 그렇다면 6명 정도의 택배 기사들이 자신의 물량을 새로운 인력에 넘겨야 하는데, 저마다의 사정이 달라서 이를 합의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마저도 밀집한 구역에서 물량을 넘겨받아야 하는데, 이 모든 조건을 맞추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관계자는 이어 “이 모든 걸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택배 기사들이 자격증을 따고, 자기 차를 구매해서 현장에 투입되기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그럴 뿐만 아니라 “현재 터미널 시설이 포화 상태라 더 이상 차량을 추가하기도 어려운 상태”라고 덧붙였다. 단순히 인력을 보충해 일을 나눠서 하라고 말하는 것은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대안 제시라는 것이다. 또 이들은 회사와 계약을 맺은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회사의 권고를 어기거나 문제를 제기할 시 계약이 해지될 수도 있다. 관계자는 “택배 기사들과 사측 간의 갑을 관계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측에서는 다른 대안을 마련하는 게 옳다고 본다”고 밝혔다.

 

◈ 무임 노동인 ‘분류 작업’에 대한 해결책 마련돼야

택배 노조는 “과로사의 핵심 원인은 하루 14시간 이상의 장시간 고된 노동에 있다”며 “그 원인은 노동시간의 절반을 차지하는 분류작업”이라고 주장한다. 관계자는 “평균적으로 하루 7시간 이상을 단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하는 분류 작업에 바친다”며 “돈이 되지 않는 분류 작업이 아닌, 임금과 직결되는 배송 작업을 줄이라는 사측의 주장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배송시간을 줄인다면 하루 근로 시간이 줄어들지 몰라도, 수입은 그 이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어 관계자는 “분류 작업에 대한 시간과 노동을 줄여주는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택배 기사의 과로사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사망한 택배 기사가 동료에게 보낸 메시지/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페이스북 갈무리
지난 12일 사망한 택배 기사가 동료에게 보낸 메시지/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페이스북 갈무리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20일) 열린 제53회 국무회의에서 “코로나는 특수고용노동자 등 기존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며 “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가 단적인 사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특별히 대책을 서둘러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비대면 소비량이 증가함에 따라, 택배 물량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로 올해 2월에서 7월 사이 택배 물량은 16억 5314만 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13억 4280만 건과 비교해 약 20% 증가했다. 위드코로나 시대, 택배 기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에 비해 택배 기사들의 근무 환경 개선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올해만 벌써 10명이 넘는 택배 기사들이 사망했다. 가장 고질적 문제인 분류 작업에 대한 대안 마련부터, 나아가 택배 기사들의 근무 환경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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