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K-물대포가 태국 평화시위 탄압한다?

"평화적 시위 탄압하는 시위 진압장비 수출 중단하라"는 시민단체 주장 검증

  • 기사입력 2020.10.23 12:38
  • 최종수정 2023.03.07 11:41
  • 기자명 선정수 기자

매서운 바람이 이른 추위를 몰고 온 2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시민단체들이 국제치안산업박람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단체들은 "'K-Cop'의 위상을 알리겠다는 명목으로 진행되는 박람회에서는 물대포, 차벽 등 각종 시위진압 장비들이 홍보되고 있다"며 "수출된 치안장비들은 각국에서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탄압하고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박람회 참가 기업 중 하나인 '지노모터스'가 수출한 물대포가 태국 민주화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겨누고 있다는 정황이 제기되고 있다"며 "'치안 한류' 촉진사업의 일환으로 수출되는 각종 치안 장비들이 언제든 각국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과연 사실일까? 뉴스톱이 팩트체크했다.

 

①지노모터스가 치안박람회 참가? -사실

국제치안박람회는 경찰청과 인천광역시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다. 지난 10월 21일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제2회 국제치안산업박람회(이하 박람회)가 진행되고 있다. 주최측은 " ‘K-COP’의 위상을 세계 각국에 알리고 국제 치안협력망 강화를 목적으로 첨단 치안 산업은 물론, 경찰의 장비와 솔루션 등을 한자리에 모아 실질적인 바이어, 유통기업 종사자들이 전시장을 방문하는 비즈니스 교류의 장을 만들고 전문 컨퍼런스와 구매 설명회를 통해 정보를 교류하고자 한다"고 밝힌다.

치안박람회 홈페이지에는 지노모터스가 참가기업으로 등록돼 있다. 

 

②지노모터스의 물대포로 태국 민주화운동 진압 - 사실

단체들은 "박람회 참가 기업 중 하나인 '지노모터스'가 수출한 물대포가 태국 민주화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겨누고 있다는 정황이 제기되고 있다"며 "'치안 한류' 촉진사업의 일환으로 수출되는 각종 치안 장비들이 언제든 각국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태국 경찰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게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물대포 차량에 한국 제조업체인 지노모터스 엠블럼이 선명하다.
태국 경찰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게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물대포 차량에 한국 제조업체인 지노모터스 엠블럼이 선명하다.

유튜브에 'thai police water cannon'(태국 경찰 물대포)를 검색하면 관련 동영상이 여럿 뜬다. 그 가운데 중동의 뉴스 전문 채널인 '알자지라'가 제작한 비디오 클립이 현장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물대포 차량 두 대가 나타나 시위대의 머리위로 물대포를 발사한다. 시위대가 우산으로 막아보려고 하지만 우산살이 부러지는 등 중과부적이다.

이 때 물대포 차량이 클로즈업되는데 차량 전면부에 지노중공업 로고가 확연히 드러난다. 지노중공업이 태국 경찰에 수출한 차량이다. 

이 회사 영문 홈페이지에도 태국 수출 실적이 게시돼 있다. (기사 발행 후 홈페이지는 공사중으로 바뀌어 접속이 불가능하다)

 

③인권침해 진압 장비 수출은 타당한가? 

시민단체들은 "한국 시민들은 물대포가 2015년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고 백남기 농민을 잔인하게 타격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을 고통스럽게 지켜봐야 했다"며 "이러한 비극을 낳은 물대포가 '치안 한류'라는 이름으로 둔갑되어 수출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한다.

단체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국제치안산업박람회 참가기업 중 하나인 ‘지노모터스’가 2010년과 2013년 태국으로 수출한 물대포가 최근 민주화를 요구하며 평화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지난 주말  태국 경찰은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강제로 해산하는 과정에서 물대포를 동원했고, 이에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물대포에 최루액이 섞여 몇몇 사람들은 심한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처럼 태국의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물대포가 소위 ‘민주화 선진국’ 한국에서 수출된 장비라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시위진압 차량 시장점유율 1위에 달하는 지노모터스의 시위진압 차량은 태국을 포함해 전 세계 20개국에 300대 가량이 판매되었다. 이중에는 아랍에미레이트(UAE), 시리아, 예멘 등 오랜 시간 분쟁을 겪고 있는 나라들과 인도네시아, 이란 등과 같이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나라들도 포함된다. 이는 “치안 한류” 사업의 일환으로 수출되는 각종 치안장비들이 언제든 각국 시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인도네시아의 식민점령에 맞서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웨스트파푸아 사람들을 진압하는데 사용되어온 ‘신정개발특장차’의 경장갑차 역시  국제치안산업박람회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신정개발의 홍보자료와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2004년부터 가장 최근에는 2017년까지 인도네시아에 여러 차례 경장갑차 등 시위진압용 차량을 수출했다. 수출된 장비들은 독립 요구 시위에 나선 사람들을 진압하는 데 사용되었다. 일례로 2012년 인도네시아 경찰이 웨스트파푸아 독립운동가를 살해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한국 신정개발이 수출한 장갑차가 동원되기도 했다. 전방향 교전성능을 탑재하고 있는 신정개발의 장갑차는 시위대에게 큰 위압감을 줄 뿐 아니라 언제든 사격을 실시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의 참여는 화려하게 포장된 치안산업박람회의 이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시위진압 장비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각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폭력과 인권침해에 기여하면서 이를 통해 배를 불리고 있다. 한국 정부는 치안산업박람회를 열어 이러한 기업들의 활동을 홍보하고, 수출 중개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인권을 침해하고 신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올 수 있는 각종 진압장비들이 돈벌이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치안한류’라는 이름으로 시위진압 장비를 홍보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인권침해에 악용될 수 있는 장비는 즉각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 

단체들은 "인권침해에 사용될 가능성이 높은 시위진압장비의 수출에 아무런 규제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국제치안산업박람회를 개최하고 시위진압장비 수출을 장려하고 있는 사실을 규탄한다"며 "정부는 잠재적으로 인권침해에 사용될 수 있는 치안 장비에 대한 수출 규제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고, 규제가 마련될 때 까지 이러한 시위진압 장비의 홍보와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시민들은 모진 시련을 겪으며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 속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이 전 세계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불려질 정도로 K-민주화운동의 위상도 높아졌다. 하지만 타국의 민주화요구 집회현장에선 K-pop과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평화롭게 민주화를 요구하는 군중들에게 한국산 물대포가 발사되는 아이러니가 펼쳐지고 있다.

모른 척하기엔 왠지 꺼림칙한 이 상황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진압장비 수출 규제에 대한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민주화세력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21대 국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길 바란다.

선정수   sun@newstof.com    최근글보기
2003년 국민일보 입사후 여러 부서에서 일했다.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 ' 이달의 좋은 기사상', 서울 언론인클럽 '서울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야생동물을 사랑해 생물분류기사 국가자격증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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