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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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가 돌아왔다
  • 홍상현
  • 승인 2020.10.3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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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현의 인터뷰]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 데즈카 마코토 감독

한껏 긴장된 머리와 신경은 말 한마디가 비위에 거슬려도 더럭더럭 부아가 나서 견딜 수 없다. 몇 번이나 쓰던 것을 찢어버리고 나의 천품이 너무나 보잘 것 없고 하잘 것 없는 것을 한탄하는지 모르리라. 이를 두고 당나라 시인 백낙천은 “내생막작여인신(來生莫作女人身, ‘내생에는 여인으로 태어나지 마라’는 뜻)”이라고 하였지만, 나야말로 “다음 생에는 제발 글 쓰는 사람이 되지 말지다”하고 기도라도 올리고 싶다.

현진건, <설 때의 유쾌함과 낳을 때의 고통> 중에서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는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동명원작을 실사화한 작품이다. (C)2020 Tezuka’s Barbara Film committee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는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동명원작을 실사화한 작품이다. ⓒ MAKI TAGUCHI

28년 전 이 무렵이었다. 사실주의의 개척자요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 무엇보다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할 멋들어짐을 자랑하던 문호, 현진건의 수필에서 필사한 이 단락을 떠올린 것은.

개관 4년째, 신선감이 넘치던 동숭아트센터에서다. 평일 저녁 상영, 스크린에서는 한 해 전에 있었던 제44회 칸영화제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타이틀 롤(존 터투로)이 명연을 펼치고 있었다. 조엘 코엔 감독의 <바톤 핑크>. 다만, 현진건의 글은 바로 다음 단락에서 특유의 낙천성이 한껏 묻어나는 창작의 보람에 대해 서술하지만, 조엘 코엔은 색색의 마카롱을 늘어놓은 양과자점의 진열장 같은 할리우드의 거리와 음습한 동굴을 연상시키는 호텔방을 오가며 썩 와 닿지 않는 소재의 시나리오를 집필중인 주인공의 일상을 좀 더 지난하게 전개한다는 점이 달랐다.

그리고 지난해 이 무렵,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픽업을 위해 찾아간 도쿄국제영화제에서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를 만났을 때, 현진건의 수필과 조엘 코엔의 출세작이 맞물린 이 오래고 강렬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차기작을 쓰지 못해 신음하던 인기 소설가 미쿠라 요스케(이나가키 고로 분)는 전철역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젊은 여성(바르보라, 니카이도 후미 분)을 집에 들인다. 문턱을 넘자마자 다짜고짜 술부터 내놓으라는 뻔뻔함이 당황스럽지만 왠지 물리칠 수 없는 매력. 바르보라는 이상성욕에 사로잡혀 현실과 환상 사이를 부유하던 미쿠라에게 창작욕을 일깨운다. 하지만 이는 ‘공짜’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게 된 미쿠라는 실재하는지 여부조차 혼란스러운 ‘뮤즈,’ 바르보라를 좆아 파멸로 치달아간다.

닮아도 이렇게 판박이인 부자가 있을까 싶게 아버지를 빼닮은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의 데즈카 마코토 감독. 하지만 그는 나이 마흔을 넘기기까지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 영화 감독으로 국제영화제를 누비며 커리어를 쌓아올렸다. (C)2020 Tezuka’s Barbara Film committee
닮아도 이렇게 판박이인 부자가 있을까 싶게 아버지를 빼닮은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의 데즈카 마코토 감독. 하지만 그는 나이 마흔을 넘기기까지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 영화 감독으로 국제영화제를 누비며 커리어를 쌓아올렸다. ⓒ MAKI TAGUCHI

타이틀에도 명시되지만 세상에 태어난 지 반세기를 훨씬 넘은 지금에도 여전히 열성팬들이 존재하는 <우주소년 아톰>, <리본의 기사>, <밀림의 왕자 레오>의 작가로서 “만화의 신”이라 일컬어지는 데즈카 오사무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동명원작을 실사화한 이 영화의 연출자는 바로 그의 아들 데즈카 마코토다.

이 대목에서 혹, ‘아빠 찬스’같은 단어를 떠올리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만 더 글을 읽어주시기를. 고교시절 단편으로 두각을 나타낸 이래 줄곧 ‘실사’ 영화만을 만들던 데즈카 감독은 소프트웨어 개발자, 행사연출가 등으로 활약하며 크리에이터로서 독자적인 커리어를 쌓아올린다. 부친 원작의 애니메이션을 연출한 것은 어느덧 나이 마흔을 넘기고 직접 시나리오를 쓴 장편상업영화로 베니스국제영화제베를린국제영화제낭뜨3대륙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을 누비며 실력을 검증받은 뒤였다. 그나마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도록 손을 댄 작품은 고작 세 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블랙키스> 이후 14년 만에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로 다시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70년대 풍 분위기에 60년대 풍 재즈가 흐르는 메갈로폴리스에서 우리의 ‘뮤즈’는 전철역 한 구석에 웅크린 알코올중독자 노숙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C)2020 Tezuka’s Barbara Film committee
70년대 풍 분위기에 60년대 풍 재즈가 흐르는 메갈로폴리스에서 우리의 ‘뮤즈’는 전철역 한 구석에 웅크린 알코올중독자 노숙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 MAKI TAGUCHI

홍상현

1999년 부산국제영화제, 2006년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오셨는데요.

테즈카 마코토

감사합니다. (웃음) 저는 장편영화의 연출작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그 중 세 편의 작품을 한국의 국제영화제에서 불러주시다니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홍상현

한국에는 아직도 선친(데즈카 오사무)의 <우주소년 아톰>, <리본의 기사>, <밀림의 왕자 레오>를 기억하는 팬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밖에 “한국의 협력회사에 일을 의뢰하라”고 말씀하실 만큼 선친의 한국 영상업계에 대한 애정도 크셨는데요. 감독님의 한국영화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테즈카 마코토

한국영화의 우수성에 대한 평가야 익히 들어 당연히 잘 알고 있지요.

다만, 관객의 입장에 머물러 있기보다, 한국의 영화인 여러분과 부디 작품을 통해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습니다.

 

홍상현

사실 오늘의 인터뷰는 제게도 무척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선친으로 인해 만화평론가가 되었고, 평생을 함께했던 이시코 준 선생의 저서, 『평화의 탐구 데즈카 오사무의 원점』을 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한 이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독님도 선친의 작품을 즐겨 보셨는지요.

테즈카 마코토

(쑥스러운 웃음) 물론이죠.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그린 만화를 애독했어요. 이번 작품의 동명원작 『바르보라』도 그 중 하나였고요.

인기소설가인 주인공 미쿠라 요스케(이나가키 고로 분)는 차기작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며 이상성욕에 사로잡혀 현실과 환상 사이를 부유한다. (C)2020 Tezuka’s Barbara Film committee
인기소설가인 주인공 미쿠라 요스케(이나가키 고로 분)는 차기작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며 이상성욕에 사로잡혀 현실과 환상 사이를 부유한다. ⓒ MAKI TAGUCHI

홍상현

이쯤에서 인터뷰의 초점을 감독님의 필모그래피에 대한 이야기로 전환해보겠습니다.

이미 초청작인 <백치>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셨지만, 당시 감독에 대한 소개에서 부산국제영화제는 선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미 10대 시절부터 영화ㆍ영상의 연출에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만드신 8mm 영화로 <감각의 제국>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극찬을 받으셨고, 단편을 발표할 때마다 영화제에 입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이누도 잇신 감독과 더불어 “고교생 작가”로 불리셨지요. 특히 시선을 모으는 커리어는 그 이후입니다. 이후에 두 편의 단편영화로 호러 붐의 선구자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작품과도 연관됩니다만 수많은 장르 가운데 호러, 즉, 판타지에 관심을 갖게 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테즈카 마코토

어릴 적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사물, 도깨비나 괴물에 등에 관심이 있었어요.

영화작가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찍듯이 만드는 스타일과 마음속에 이미지를 그려내는 스타일. 전자의 대표가 뤼미에르 형제이고, 후자는 조르주 멜리에스인데, 저는 메리에스 같은 스타일이 아닐까 해요.

 

홍상현

전공에 흥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영상작가의 활동 때문에 정말로 “바빠서” 대학을 중퇴하신 감독님께서는 드디어 25세에 <별빛 형제의 전설>을 통해 장편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1980년대 중반으로써는 파격적인 개념으로 자신을 규정해 화제가 되셨습니다. 지금까지 유지하고 계신 이른바 “비주얼리스트”인데요.

테즈카 마코토

비주얼리스트를 저는 ‘비전(vision)을 시각화하는 자’라 정의합니다. 방금 전에 언급했던 멜리에스처럼 영상을 ‘그린다’는 거지요. 제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무렵 영상매체는 벌써 다변화돼 있었어요. 어떤 매체에든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포지셔닝(positioning)이 필요했습니다. 클래식이든, 록이든, 팝이든 음악을 만드는 자가 뮤지션으로 불리듯이 말이지요.

문턱을 넘자마자 다짜고짜 술부터 내놓으라는 바르보라(니카이도 후미 분). 미쿠라는 그 모습이 못내 당황스러우면서도 왠지 물리칠 수 없다. (C)2020 Tezuka’s Barbara Film committee
문턱을 넘자마자 다짜고짜 술부터 내놓으라는 바르보라(니카이도 후미 분). 미쿠라는 그 모습이 못내 당황스러우면서도 왠지 물리칠 수 없다. ⓒ MAKI TAGUCHI

홍상현

다음 키워드는 “디지털 프런티어”입니다.

1995년 장편상업영화 감독 데뷔 이후 드라마, 아트필름, 뮤직비디오 등의 폭넓은 장르에서 활약하시던 감독의 커리어가 새로운 분기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게임도 비즈니스 툴도 아니라 디지털로 창조된 또 하나의 지구에 살고 있는 가상의 생물 테오와 교류한다는 내용의 신개념 소프트웨어, <테오: 또 하나의 지구>를 프로듀스하신 것입니다.

<테오: 또 하나의 지구>는 당시 전 세계 19개국에서 무려 58만 개나 팔려나가는 메가 히트를 기록했는데요. 애초에 스토리텔러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창조신을 지향했던 작가적 세계관이 반영된 작업이었던가요.

테즈카 마코토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후지쯔 연구소 측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는데, 원래 제게 주어진 업무는 유사 생명을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드는 소프트웨어 개발이었습니다. 이를 어떻게 상품화할지에 대한 플랜을 세우는데, 생물이라면 역시 ‘환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이더라고요. 그래서 환경을 창조하는 구상을 진행했고요. 그 세계를 퍼스널컴퓨터라는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는 콘셉트로. 요즘의 시각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광경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시로서는 시대를 조금 앞서가는 작업 아니었나 싶습니다.

 

홍상현

<테오: 또 하나의 지구>의 메가 히트 이후의 활약도 눈부십니다. 동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을 연출하시는가하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TV애니메이션을 제작하셨고, 공연연출가로서도 활약하셨습니다. 실로 “비주얼”을 중심으로 하는 종합예술가로서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에 또 하나의 일대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선친의 작품 중에서도 탐미주의, 흑마술 등에 대한 묘사로 인해 단연 유니크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바르보라』를 실사화하신 겁니다.

테즈카 마코토

작품을 처음 접했을 당시부터 영화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바르보라라는 주인공의 캐릭터가 매혹적이었습니다. 또한 이미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인 <백치>를 만들었던 경험이 있었는데 데카당스(Décadence)를 개성 있게 다룬다는 점에서 두 작품에 공통되는 주제가 있지 않나 싶더라고요. 물론 기획 작업 이후 제작을 현실화 시키는 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요.

바르보라는 미쿠라를 환상에서 끌어내 창작욕을 일깨운다. 하지만 이는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C)2020 Tezuka’s Barbara Film committee
바르보라는 미쿠라를 환상에서 끌어내 창작욕을 일깨운다. 하지만 이는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 MAKI TAGUCHI

홍상현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를 보고 난 뒤의 감상은 단순한 실사화작품이 아니라 원작의 설정은 유지하되, 집착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또 하나의 작품이 탄생했다는 느낌입니다. 특히 표현주의의 전시회가 개최되는 화랑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조형미는 압권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독일에서의 현지작업도 이루어졌다고 하는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의 시각화 플랜이 궁금합니다.

테즈카 마코토

원작은 예술에 대해 다루는 이야기인 동시에, 예술작품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대사보다 더욱 웅변적으로 세계관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이 지점에서 중요한 요소로 이 영화에 추가된 것이 <중경삼림>, <타락천사> 등의 작품에서 미학적 요소를 배가해주었던 크리스토퍼 도일의 촬영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 어울리는, 모던한 고딕아트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진행했어요.

제가 특히 크리스에게 요구한 것은, 한낮에도 어둠이 느껴지는 ‘다크(dark)한’ 영상이었습니다. 새로운 스타일의 필름 누아르를 만들고 싶었다고 할까요. 베를린에서 이루어진 후반작업과정에서도 줄곧 이 부분을 의식했습니다.

 

홍상현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는 일본에서 만든 영화이지만, 메갈로폴리스라는 특징만이 설정되어 있을 뿐. 몇 개의 시퀀스를 제외하면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의 또 다른 나라에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몰입도가 극대화되고요. 이를 도와주는 요소 중의 하나가 비주얼과 의조적인 부조화 효과를 노린 것 같은 BGM의 재즈연주라고 생각합니다.

테즈카 마코토

원작에는 70년대 도쿄의 분위기가 짙게 반영되어 있었는데요. 저로서는 단지 이를 재현하는데 그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도시의 보편적 우화로써 시대나 장소를 특정할 수 없는 스타일을 택했어요. 말씀하신 60년대 스타일 재즈를 사용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요. 연주는 제 전작인 <백치>에서 음악을 맡았던 하시모토 이치코 씨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같이 스튜디오에 들어가 의견을 나누면서 녹음을 했어요. 음악을 만드는 건 영상과 마찬가지로 신나는 일입니다.

어느덧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 미쿠라. 자동기술처럼 손이 저절로 움직이며 엄청난 양의 원고를 써내지만 결코 행복해지지 못한다. (C)2020 Tezuka’s Barbara Film committee
어느덧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 미쿠라. 자동기술처럼 손이 저절로 움직이며 엄청난 양의 원고를 써내지만 결코 행복해지지 못한다. ⓒ MAKI TAGUCHI

홍상현

크리스토퍼 도일은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의 전위적 성격을 표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에서의 그는 이전의 필모그래피와는 또 다른, 즉, 비주얼리스트 데즈카 마코토와의 콜라보에 따른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컬러가 강한 그와의 작업이 무척 즐거우면서도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테즈카 마코토

크리스는 테크니션이자 아티스트에요. 특유의 스타일 이상으로 촬영할 때의 태도역시 개성적입니다. 한편 촬영장에서의 저는 아티스트라기보다 지휘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편이지 않나 싶어요. 그런 격차가 절제된 미학적 효과로 발현되었다고 봅니다.

 

홍상현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의 캐스팅을 보고 놀라는 한국의 관객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빌어먹을 놈과 아름다운 세계>에서의 재미있는 모습과 달리 탐미파 천재로 명성을 누리는, 어둡고 예민한 성격의 소설가, 요스케를 연기하는 이나가키 고로 배우 때문입니다. 그와의 작업은 어땠습니까.

테즈카 마코토

이나가키 배우는 스마트한 연기자입니다. 사실 예전부터 그와 한 번 일해보고 싶었어요. <바르보라>는 그런 제 바람을 이루기 위한 최고의 기획이었지요. 그는 대단히 헌신적으로 이 작품에 도전해 주었습니다. 그가 없었다면 이 기획은 아마 실현되지 못했을 거예요. 정말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우리말에도 “마음이 맞는다”는 표현이 있는데요.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와 관련한 저와 이나가키 배우의 관계에 들어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루보라는 실존의 인물일까 미쿠라의 자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일까. 미쿠라는 바르보라를 좆아 파멸로 치달아간다. (C)2020 Tezuka’s Barbara Film committee
바루보라는 실존의 인물일까 미쿠라의 자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일까. 미쿠라는 바르보라를 좆아 파멸로 치달아간다. ⓒ MAKI TAGUCHI

홍상현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꼭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역시 어떤 배우에게서든 그 배우의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미지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이끌어내는 데즈카 마코토식 연출법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백치>의 아사노 타다노부 배우를 보았던 관객이 분명히 느꼈을 테지만 <바르보라>의 타이틀 롤의 니카이도 후미 배우에서 정점에 달한 느낌입니다.

테즈카 마코토

니카이도 배우는 지극히 명석하며, 또한 그 이상으로 센스가 좋은 배우입니다. 애초부터 <바르보라>가 뭘 요구하는지 다 알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그녀의 표현력에 대해 큰 신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았습니다. 책임을 방기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원작이 어떻든 이 작품의 바르보라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바르보라가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다만 한 가지 의외였던 건, 스틸 사진에도 술병을 들고 등장할 정도의 캐릭터를 연기한 그녀가 실은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한다는 점이었어요. (웃음)

 

홍상현

캐릭터 특성상 준비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테즈카 마코토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제 전작들은 하나같이 앞서 언급하신 <백치>와 비교하면 모든 면에서 미니멀(minimal)합니다. 내내 심플한 극영화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 까닭에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는 상식적인 타임라인에 따라 준비했습니다. 캐릭터의 디자인(의상이나 메이크업)은, 그 분야의 베테랑의 츠게 이사오씨가 맡았기 때문에 원활하게 잘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츠게 씨는 최근 화제를 모은 코미디영화 <날아라 사이타마>에서도 니카이도 배우를 담당했는데요. 영화데뷔작이 바로 <백치>였습니다.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는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 가운데서 「뮤」로 대표되는 이른바 ‘데카당스 계보’에 속한다. (C)2020 Tezuka’s Barbara Film committee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는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 가운데서 「뮤」로 대표되는 이른바 ‘데카당스 계보’에 속한다. ⓒ MAKI TAGUCHI

“<데즈카 오사무의 바르보라>는 사랑과 광기를 그린 우화인 동시에 육체의 상관성에 대해 말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사물이 모두 디지털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궁극의 관계성과 육체, 그 자체를 느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설명적인 영화가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을 영화를 통해 그려내려 노력합니다.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느끼는 게 중요하니까요. 혹, 원작을 읽지 않으신다면 영화를 본 후에 읽어보셔도 좋겠네요. 또, 원작을 이미 읽으신 분께는 이 영화가 또 다른 즐거움을 전해드릴 수 있을 거예요.”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필자의 질문에 상냥하고도 정중한 어조로 답하며 분위기를 이끌어가던 데즈카 감독의 화술은, 실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 느낌이었다. 유난히 새하얀 백발과 자로 잰 듯 떨어지는 정갈한 분위기가 일순 101분의 러닝 타임 동안 쉴 틈 없이 환상과 실재의 간극을 오가는 당신의 작품과 좀 거리가 있지 않나 싶었지만, 기우였다. 막상 그 내면에 다가가 보면, 이순을 앞둔 나이에도 한 편의 영화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데뷔 34년차 비주얼리스트의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었으니까. 얼마 후 홈페이지에 소개될 코멘트를 부탁하는 <데즈타 오사무의 바르보라>의 홍보담당자에게 바로 이 순간 자동기술처럼 메모지에 꾹꾹 눌러 적은 글을 보내주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는 내가 있다. 천재성이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천재성에 대한 동경을 그렸던 범작은 잊자. 시네필의 영혼을 꿰뚫고 불만의 기억을 잘라내는 유리의 칼날이 여기 있다.”

홍상현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을 갖추고 한ㆍ일 두 나라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교수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 같은 대학 이미지인류학연구실(IAL)의 네트워크 멤버였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의 논쟁적인 저작을 소개한 번역가이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거쳐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램 어드바이저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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