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스웨덴은 집단면역을 한 적이 없다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20.11.02 11: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웨덴 말뫼 인근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뉴스톱에 게재된 '스웨덴 집단면역'에 대한 3편의 글을 읽은 뒤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소개하기 위해 게재합니다. 필자가 원치 않아 본명은 밝히지 않습니다.


0. 들어가기 전에

코로나바이러스 이전까지 한국인에게 스웨덴의 이미지는 없거나(스웨덴에 방문하는 한국인을 많이 보지는 못했습니다), 북유럽 국가, 복지 천국 정도의 이미지였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 이후로 스웨덴은 “복지 예산을 줄이기 위해 노인을 집단 학살하는 악마국가” 정도의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스웨덴은 그러한 악마 국가가 아니며, 결과는 처참하지만 바이러스를 통제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스웨덴의 전략에 대한 오해를 조금이나마 풀고, 그들이 왜 이런 전략을 취했는지, 나름의 전략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처절하고 처참하게 실패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셨으면 합니다.

 

1. 스웨덴이 집단 면역을 시도했는가?

스웨덴은 봉쇄를 시행한 다른 유럽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사실 스웨덴의 전략은 한국과 비교하여 결코 약하지 않았습니다. 뉴스톱의 반론에서 정리되어 있듯, 스웨덴은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던 3월 중순부터 500인 이상, 그리고 곧 50인 이상 집합제한을 선택했고, 고등학교 이상부터 원격수업을 시작했으며 요양원 방문 금지 등도 시행하였습니다.

그들이 봉쇄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이것이 지속가능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중국의 봉쇄를 ”공산 국가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유럽 시민들은 막상 봉쇄령이 민주주의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자신에게도 내려질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당황하였지만, 이탈리아 롬바르디에 주에서 군대 차량으로 수송되는 시체들을 보고 경악하며 봉쇄령으로 집안에 갖힌 와중에서도 발코니에서 의료진들을 응원하며 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봉쇄의 경제적이고 심리적인 고통은 아주 컸고, 두 번째 봉쇄령은 시민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또한, 봉쇄를 푸는 것은 바이러스가 끝났다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줍니다. 봉쇄령을 시행했던 다른 국가들은 상황이 안정적으로 관리되자 제한을 풀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바이러스가 다시 확산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스웨덴은 감염이 안정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0인 이상 집합금지 등을 풀지 않았고, 코로나가 끝났다는 거짓 인상을 초래하지 않았으며, 다시 봉쇄를 하기 직전 마지막 유흥을 즐기는 것과 같이 방역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유럽의 코로나가 완화되었던 여름에는 전략을 수정하지 않은 스웨덴이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더 규제가 강했습니다.)

스웨덴의 정책이 한국보다 결코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스크 착용 권장을 하지 않은 것을 빼고는 오히려 더 강도가 높았으며, 최근 감염자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의 정신 건강 보호를 위해 제한적으로 요양원의 방문을 허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학생들의 교육권을 보장하고, 부모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학교를 여전히 열어두겠다는 입장은 최근 봉쇄령을 다시 도입하는 국가들이 취하는 정책이기도 합니다.

스웨덴이 만약 정말로 집단 면역을 추구해서 그 어떤 통제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감염이 심하고 사망자가 많은 국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치상으로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세계 최악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전략”을 추구함으로써 락다운을 선택한 다른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독보적으로 보였고, 이 때문에 집단면역 오해를 받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스웨덴도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제가 살고 있는 스코네 주에도 재택 근무 권장과 대중 교통 피하기 등의 권고가 내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처음으로 봉쇄를 도입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권고로 대응하였습니다. 봉쇄는 이동 제한을 의미하고, 그것은 지속 가능한 방역이라는 공공보건국의 지침에 어긋납니다.

지속가능한 방역 정책은 시민의 협조를 잘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TV4의 최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은 코로나 정책이 잘 시행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스웨덴이 추가적으로 어떤 통제책을 도입할 때 적극적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스웨덴은 집단 면역을 시행한다고 주장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최근 안데스 테그넬 국가 의사가 최근 독일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을 토대로 그들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했다라고 했는데요, 안데스가 말한 것은 ”집단 면역은 윤리적이지 않고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지, ”우리가 실패했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집단면역을 시도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안데스는 집단 면역 전략의 위험성에 대해서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으며, 안데스 테그넬과 함께 기자회견을 담당하는 요한 칼손과 카린 테그마르크 위셀  또한 집단 면역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경고하고 효과에 대해 부인한 바가 있습니다.

스웨덴 시민들의 분위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또한 (봉쇄와 같이 극단적 조치는 없었으나) 수많은 제한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데, 단순히 봉쇄를 실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집단면역 오해를 하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웨덴은 봉쇄는 하지 않았으나 수많은 제한을 장기간 도입했고, 이 통제는 한국의 2단계 수준에 준한다고 생각합니다. 대구에서 엄청난 확산이 일어날 때에도 한국은 봉쇄 정책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한국이 집단 면역을 추구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세계 사람들이 왜 스웨덴을 오해하고 있는지, 스웨덴인과 스웨덴에 살고 있는 저도 참 궁금한 대목입니다.


* 제한이 권고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느슨하고 빈틈 많은 정책에 감염확산을 방치하고 집단 면역에 더 빨리 이르려는 숨겨진 의도가 있었는지 첫 번째 칼럼의 필자는 의심하였는데요, 우선 그 말을 한국에도 적용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2.5단계를 제외하고는 한국에도 강제 조치가 봉쇄령에 준하는 조치가 도입된 적이 없습니다. 한국은 지금 집단면역을 추진 중인가요?

한국과 마찬가지로 스웨덴은 시민의식이 상당히 높습니다. 시민들이 각자 거리두기에 협조한 덕분에 강제적 조치 없이도 스웨덴은 이동량을 상당히 줄였으며, 특히 죽음의 확산이 가장 심했던 3월에는 전년과 비교하여 30% 가량 줄어든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그래프가 2020년 2월 3일~2월 9일과 2019/2020년 여행을 비교하는 것이기 때문에, 2019년은 2월 첫주 대비 10% 가량 늘어났고, 2020년은 20% 가량 줄어들었으므로 19년과 20년은 대략 30% 차이입니다). 우리나라의 코레일에 해당하는 SJ의 이용객도 절반이 넘게 줄어들었고, 이는 한국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2. 그럼 스웨덴은 왜 실패했나?

그러나 집단면역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과 별개로 스웨덴은 분명히 커다란 실패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스웨덴의 숨겨진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스웨덴은 최근 지속적으로 이민자를 받아왔으며, 복지 혜택 또한 계속해서 축소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민자는 대부분 스웨덴어를 구사하지 못합니다. (외국어 학습 앱 듀오링고는 스웨덴에서 가장 많이 배우는 언어가 역설적이게도 스웨덴어라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고, 이는 이민자들이 스웨덴어를 배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초기 여러 가지 권고를 했지만, 이 권고들은 이민자 그룹에게 전달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수많은 이민자가 감염되었으며 그들은 차례로 스웨덴 원주민들을 감염시켰습니다. (실제로 스톡홀름에서 이민자가 많은 지역들은 특히 코로나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스웨덴은 급하게 Sveriges Radio를 이용하여 홍보를 시작했고, 이후에는 여러 언어로 적힌 전단지를 나눠주기까지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스웨덴은 복지 혜택 또한 지속적으로 줄여왔고, 이 때문에 요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었습니다. 그들은 개인 보호장비의 부족과 지급을 호소했지만, 3월 당시 전세계적 보호장비 부족으로 인해 그들의 몫은 없었습니다.  결국 개인장비를 착용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곳에서 질병을 가져온 그들은 병을 노인들에게 옮겨버렸고, 이 결과는 지금 스웨덴이 보여주는 끔찍한 수치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스웨덴이 실패한 이유는 정책이 지나치게 느슨했다기보다는 정책이 스며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리를 두라는 지침은 이민자들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다가왔고, 요양원 근로자에게는 현실과는 먼 공허한 이야기로 들렸을 것입니다.

앞에서 지적된 두 가지 문제점과 다른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스웨덴은 여러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여름에는 하루 발생 수치를 두 자리 수까지 줄일 수 있었습니다. 마스크 착용이 생활화된 한국에서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사실 저 또한 마스크의 효용성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거리 두기와 손씻기가 더 중요하고, 거리를 둘 수 없는 환경에서만 마스크가 도움이 일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적어도 대중교통에 한하여서는 마스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공공보건국의 입장은 아직까지 마스크의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안데스 테그넬 뿐만 아니라 카린 테그마르크 위셀 국가의사 등 공공보건국의 공통된 입장입니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어 있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코로나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습니다. 거리 두기와 손씻기라는 지침만으로도 스웨덴은 여름에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였습니다. 정책이 느슨한 것보다는, 필요한 정책에 대해 얼마나 여건을 잘 만들어주고, 시민들이 얼마나 잘 따르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봄에는 국가가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에 실패했고, 지금은 너무나도 오래 지속되는 상황으로 시민들의 협조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스웨덴은 거리 두기와 손씻기를 권장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권장하고 있고, 실제로 여러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로 줄어든 수요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은 크게 줄어들지 않아, 거리 두기가 어느정도 가능한 상황입니다. 바스트라 예탈란드 주에서는 거리 두기를 위해 옆에 앉지 말아달라는 가방이 등장하기도 했고, 스코네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거리를 두고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가능하면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자는 캠페인도 일어나고 있으며, 손씻기 환경 조성을 위해 무료로 개방된 화장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유럽은 유료인 화장실이 많습니다.)

스웨덴에서 펼쳐지는 자리 비워두기 캠페인. 출처: https://forsman.co/work/vasttrafik/no-douche-bag
스웨덴에서 펼쳐지는 자리 비워두기 캠페인. 출처: https://forsman.co/work/vasttrafik/no-douche-bag

 

3. 연대가 필요합니다

코로나 극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극복해야 한다는 연대의식입니다. 스웨덴에서는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돕자는 캠페인이 일어나고 있으며, 공공보건청 또한 정례 기자회견에서 각자 위치에서 해야 하는 일을 하자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스웨덴 시민들의 반응은 무척 협조적입니다. 주변 지인으로부터 함께 힘내자는 메시지도 많이 받았고, 저도 여러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주변에 걸렸다가 완치된 환자에게는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고, 완치된 사람 또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더 조심하자고 서로를 북돋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기사와 댓글로만 접한 것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는 있으나) 한국은 걸린 사람을 죄인 취급하고, 꺼려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코로나로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외국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마스크 미착용이 미개하다고 욕하고, 한국을 본받아라 라고 말하기만 합니다.

특히, 마스크와 관련하여, 스웨덴을 제외하고 마스크가 의무화된 대부분 국가는, 일부 착용반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빼고는 착용률이 굉장히 높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 마스크를 안써서 감염 확산이 통제가 안된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스크의 효과에 앞서 문화도 고려해주어야 합니다. 추석 때 왜 이동하냐고, 찌개를 왜 함께 나눠먹냐고 한국을 (대부분 사람들은) 미개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스크에 거부감을 단순히 미개함으로 치부하고, 마스크에 대한 인식을 하루 아침에 바꾸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한국이 좋은 결과를 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스웨덴 또한 다겐스 뉘헤테르 등에서 한국의 전략을 분석하는 기사가 나오는 등 한국의 성공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고, 주변 사람들 또한 한국의 성공을 축하하고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한국은 좋은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1.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2. 봉쇄 없이 3. 코로나 통제를 성공한 나라(스웨덴도 봉쇄가 없었지만 결론은 말했듯 처참한 실패입니다.)가 한국의 새롭고 매력적인 이미지 후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우리를 제외한 모두를 “미개하다”, “멍청하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알려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비록 코로나 통제는 성공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전혀 공감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비웃는 비정한 나라로 각인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공부는 잘하지만 사회성은 부족한 사람들, 이라는 한국인과 동양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이기도 합니다. 저도 이것이 스테레오타입이고 인종차별적 사고의 일환이라고 분개했는데, 이번에 너무나도 소름돋게도 이러한 일이, 한국인인 제 시선으로 보기에도 부정할 수 없게끔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정말 진심으로 안타깝고, 한편으로 또 우리 자신에게 실망스럽습니다.)

한국만 코로나를 극복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스웨덴도, 미국도, 다른 모든 나라에서도 상황이 안정적으로 통제되야만 다시 정상적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두가 연대해서 함께 서로를 북돋아주어야 합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