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다른 4명의 피아니스트, 힘을 합쳐 음악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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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4명의 피아니스트, 힘을 합쳐 음악에 도전하다
  • 홍상현
  • 승인 2020.11.12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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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현의 인터뷰]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 <꿀벌과 천둥> 이시카와 케이 감독 인터뷰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살랑살랑, 부드럽고 시원한 소리가 몸을 감싼다. 그것이 나뭇가지에 달린 잎사귀가 스치는 소리라는 것을 그때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농밀하고 생생한, 크고 작은 수많은 무언가가 시시각각 변해가는 주변의 공기 속에 충만했다. 그것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엄마, 아빠 소리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이미 그것을 나타낼 표현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답은 목구멍까지, 바로 곁까지 다가와 있었다. 금방 그걸 나타낼 말을 찾을 수 있었는데. 하지만 그것을 찾아내기 전에 새로운 소리가 머리 위로 쏟아졌고, 대번에 그쪽으로 관심을 빼앗겼다. 그렇다, 실로 소나기처럼, 하늘에서. 밝고 힘찬 음색이 세상을 흔들었다. 물결이기도 하고 진동이기도 한 무언가가 온 세상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 울림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니 나라는 존재 자체를 포근히 감싸주는 것만 같아 마음이 차분해졌다. 지금 다시 한 번 그 시절의 광경을 볼 수 있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으리라. 환한 들판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꿀벌은 세상을 축복하는 음표라고. 그리고 세상은, 언제나 지고한 음악으로 가득 차 있노라고.”

 

-온다 리쿠, 『꿀벌과 천둥』 중에서

 

 

‘진’역을 맡은 스즈카 오지 배우는 「꿀벌과 천둥」이 거둔 가장 큰 ‘수확’중 하나. 연기경험이 전무한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멋지게 신고식을 치렀다.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진’ 역을 맡은 스즈카 오지 배우는 「꿀벌과 천둥」이 거둔 가장 큰 ‘수확’ 중 하나. 연기경험이 전무한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멋지게 신고식을 치렀다.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지난해 봄 인터뷰에서 “내 영화문법의 태반은 ‘폴란드어’”라고 말했던 그가 데뷔작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 다녀온 후, 위에서 인용한 장편소설의 영화화를 맡았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머릿속을 가득 메운 것은, 독자에게 ‘소리를 읽는’ 경험을 선사하는 원작이 다시 관객에게 ‘소리를 보여주는’ 영화로 재탄생 할 수 있을지 여부였다.

물론 인류문화사에는 문학작품 영화화의 수많은 성공사례가 존재한다. 배우중의 배우이자 명석한 드라마 연기의 화신으로도 불리는 로렌스 올리비에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영화화한 많은 작품들로 거장의 자리에 올랐다. 많은 영화관련 학과에서 연출론 교재로 쓰이기도 하는 <시민 케인>의 감독 오손 웰스는 카프카 소설과의 친화력으로 유명했고, 1963년 안소니 퍼킨스를 캐스팅해 <심판>을 만들기도 했다. 요즘도 무슨 아카이브 특별전만 한다 싶으면 어김없이 레퍼토리로 등장하는 로베르 브레송의 대표작 <무셰트>는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소설이 원작인 까닭에 영화학연구자와 프랑스문학연구자의 논문에서 모두 언급된다. 이 모든 필모그래피가 공유하는 특징은 오랜 세월에 걸쳐 꽃피어온 문화의 성과를 자기화하고, 예술성과 가치를 재발견한다는 점이다. ‘영화화’에 대한 작가적 주관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 이와 관련해서 일본의 동세대들 중 유일한 폴란드 우치국립영화학교 출신 감독인 그는 먼저 실사화와 영화와의 개념을 대비시켰다. 등산을 예로 들면 실사화는 하나하나의 신(scene)을 영상으로 번역ㆍ반복하며 원작자가 갔던 길을 걸어가지만 해가 지면 산꼭대기까지 가지 않고 내려온다. 하지만 영화화는 그 길이 어찌되든 정상까지 올라가 반환점을 돌아와야 하니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이야기다.

폴란드 우치국립영화학교 출신 이시카와 케이 감독은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우행록」이후, 전국 300개 스크린에서 인기몰이를 시작, 각종 영화상을 휩쓸며 「꿀벌과 천둥」으로 히트 신인감독의 ‘차기작 징크스’를 불식시켰다.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폴란드 우치국립영화학교 출신 이시카와 케이 감독은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우행록」이후, 전국 300개 스크린에서 인기몰이를 시작, 각종 영화상을 휩쓸며 「꿀벌과 천둥」으로 히트 신인감독의 ‘차기작 징크스’를 불식시켰다.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이미 짐작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여기서 ‘그’란 바로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이시카와 케이 감독이다.

한 때 천재로 불렸으나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무대를 떠났던 아야(마츠오카 마유 분), 유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줄리아드스쿨 출신 엘리트 마사루(모리사키 윈 분), 음악을 전공했지만 악기점에서 일하는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가던 아카시(마츠자카 토리 분), 그리고 이곳저곳을 홀로 떠돌며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해온 소년 진(스즈카 오지 분),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하는 네 사람이 ‘경쟁’의 이름으로 벌이는 자신과의 싸움을 그린 <꿀벌과 천둥>은 지난해 10월 전국 300개 스크린에 내걸리며 인기몰이를 이어가다 호치영화상 작품상, 일본아카데미상 우수작품상, 마이니치영화콩쿠르 대상ㆍ감독상 등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다. 물론 바르샤바국제영화제 등을 위시한 국제무대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꿀벌과 천둥>으로 전주국제영화제와 아시안필름어워드의 러브콜을 받고, <우행록> 이후 2년 만에 한국 관객을 찾아온 이시카와 감독을 만났다.

「꿀벌과 천둥」의 네 주인공은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통해 만났지만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각자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을 보여줄 뿐이다.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꿀벌과 천둥」의 네 주인공은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통해 만났지만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각자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을 보여줄 뿐이다.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홍상현

두 번째 장편상업영화인 <꿀벌과 천둥>이 전주국제영화제 초청과 더불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어워드 후보로까지 노미네이트되었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개봉까지 했는데요. 대체 몇 가지 경사가 겹친 건가요. (웃음)

이시카와 케이

그러게요. (웃음) 정말 너무 기뻐요!

이번 영화가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좀처럼 해외로 나가지 못해 몸살을 앓았거든요. 음악이 주제이다 보니 한국 관객 여러분께서도 즐기실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잘 봐주셔서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홍상현

그리고 보니 지난해 개봉 당시 현지 반응이 정말 뜨거웠죠. 게다가 연말에는 각종 영화상을 휩쓸었고.

이시카와 케이

겨우 두 편째인데 300개 넘게 스크린을 내주셔서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였습니다. 감사할 따름이죠.

어머니의 죽음으로 무대를 떠난 천재 피아니스트 ‘아야’로 분한 마츠오카 마유 배우는 ‘음악가로서의 각성’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발군의 연기력으로 보여준다.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어머니의 죽음으로 무대를 떠난 천재 피아니스트 ‘아야’로 분한 마츠오카 마유 배우는 ‘음악가로서의 각성’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발군의 연기력으로 보여준다.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홍상현

평소 한국영화에 애정이 많으신 걸로도 유명하신데요.

이시카와 케이

물론이죠. 무엇보다 일단 재미있잖아요. 우리 세대 감독들은 모두 한국 영화의 최신동향은 체크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도 자주 보고. 요즈음에는 아예 ‘한국영화’라는 범주로 따로 분류할 필요조차 없다고 느낄 정도니까요.

 

홍상현

최근엔 어떤 작품을 보셨나요?

이시카와 케이

개봉시기에 극장에 갈 타이밍을 놓쳐서 뒤늦게 VOD 서비스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를 봤는데요. 스토리전개가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1부, 2부, 3부의 내용전개를 따라가는데 새삼 스마트한 연출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상현

원작의 명성은 인지도 면에서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창작자 입장에서는 도리어 부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직접 시나리오까지 집필하셨는데요. 막상 영화를 보니 설정 정도만 유지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 느낌입니다.

이시카와 케이

과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웃음) 하지만 제 입장에서 봐도 역시 원작이 재미있었어요. ‘음악’이 중심에 있다는 게 특히 좋았고요. 물론 그래서 어려웠던 점도 있었지만요. 잘 아시다시피 제가 일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대부분 원작이 따로 있는 영화들이 많습니다. 메이저스튜디오가 제작하는 것들은 더더욱 그렇고요. 제 주변의 이런 현실을 감안해서 일단 원작의 설정 정도를 받아들이고, 만드는 과정에서 창의성을 극대화해 시나리오를 써서 촬영을 진행하는 패턴을 선호합니다.

「꿀벌과 천둥」은 결코 ‘청춘영화의 스테레오타이프’로  범주화될 수 없는 작품. 트라우마를 가진 주인공의 깊이 있는 내면묘사도 그렇거니와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상징적 표현들이 영화적 완성도를 높여준다.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꿀벌과 천둥」은 결코 ‘청춘영화의 스테레오타이프’로 범주화될 수 없는 작품. 트라우마를 가진 주인공의 깊이 있는 내면묘사도 그렇거니와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상징적 표현들이 영화적 완성도를 높여준다.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홍상현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이번에도 <우행록>에서 전혀 새로운 비주얼의 세계를 보여준 피오트르 녜미스키 촬영감독과 함께하셨다는 건데요.

이시카와 케이

이제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지만, 피오트르와는 우치국립영화학교를 함께 다녔습니다. 뭔가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워낙 서로간의 소통이 수월하죠. <꿀벌과 천둥>의 경우, 전작보다 영역분담을 더욱 확실하게 했습니다. 일단 촬영준비단계에 ‘음악이 메인’이라는 원칙을 확인하면서 전반적인 부분에 최대한 공을 들인 뒤에 저는 음악과 사운드 쪽에 포커스를 맞췄고, 피오트르는 아예 로케이션 헌팅까지 혼자 도맡는 경우가 많았어요.

 

홍상현

개인적으로 <꿀벌과 천둥>이 단순한 청춘영화인 양 홍보되는 게 살짝 불만이었습니다. 물론 상업적인 이유에서 장르의 외피를 쓰고 있다 할지라도 표현이나 깊이가 완전히 다른 작품인데요.

이시카와 케이

제작사 쪽의 홍보와는 달리 트라우마를 가진 주인공의 내면에 대한 묘사라든가 상징적 표현들 때문인지 <블랙 스완>이 연상된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제 개인적으로도 ‘청춘영화’의 스테레오타이프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컨대 청춘영화라고 무조건 트렌디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반짝반짝’한 분위기여야 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좀 더 다양성이 있어도 좋지 않겠나 싶더라고요. 촬영과정에도 때에 따라 “너무 무거운 톤으로 가는 거 아니냐”는 의견 등이 나왔지만 그럴수록 애초에 설정한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최근 출연한 후카다 코지 감독의 「더 리얼 씽」이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칸의 남자’로 올라선 모리사키 윈 배우. 줄리아드스쿨 출신의 우승 후보 ‘마사루’역을 맡았다.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최근 출연한 후카다 코지 감독의 「더 리얼 씽」이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칸의 남자’로 올라선 모리사키 윈 배우. 줄리아드스쿨 출신의 우승 후보 ‘마사루’역을 맡았다.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홍상현

여하튼 무척 의외적인 요소들로 가득한 작품이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이시카와 케이

예컨대 음악 콩쿠르 관련 영화라고 하면 빌런을 하나 등장시키고, 그가 건반 사이에 이를테면 면도칼을 숨기는 등의 악행을 저지르다 결말부에서 대가를 치른다는 식의 포맷이 적당할 것도 같지만요. (웃음)

그보다 네 사람의 등장인물이 서로를 북돋워주는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4인 1조로 ‘음악’과 싸우는.

 

홍상현

영화 자체가 표방하는 바이기도 하거니와, 정말 작품 곳곳에서 음악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게 느껴집니다.

이시카와 케이

실제로 네 사람의 등장인물이 연주하는 음악의 녹음에 톱클래스의 피아니스트들이 참여해주셨거든요. 또한 특기할만한 점은 이 분들의 레코딩의 시나리오 집필보다 빨리 이뤄졌다는 겁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캐릭터는 어떨까’하는 상상력을 동원한 거지요.

음악을 전공했지만 가족을 위해 잠시 꿈을 접고, 악기점에서 일하는 평범한 가장, 아카시로 분한 마츠자카 토리 배우. 하지만 그 존재감은 전혀 가볍지 않거니와 평범한 모두를 대변하는 캐릭터로 오히려 더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다.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음악을 전공했지만 가족을 위해 잠시 꿈을 접고, 악기점에서 일하는 평범한 가장, 아카시로 분한 마츠자카 토리 배우. 하지만 그 존재감은 전혀 가볍지 않거니와 평범한 모두를 대변하는 캐릭터로 오히려 더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다.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홍상현

<어느 가족>으로 알려진 마츠오카 마유 배우가 주연인데, 대사가 거의 없더군요. 캐릭터 구축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나요.

이시카와 케이

연출을 하면서 딱히 복잡한 주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정해놓은 콘셉트가 있었어요. 이를테면 도입부에서 좀처럼 웃지 못하던, 다시 말해 산산조각 난 마음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던 거울 앞의 히로인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대단원에 가면 다시 폭발적인 피아노 연주신과 더불어 ‘음악가로서의 각성’을 경험한 히로인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거죠. 이 간극을 영화가 이어줄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제 의도였습니다. 딱 여기까지만 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촬영을 진행했는데 마츠오카 배우도 이런 제 의도를 헤아렸는지 무척 적절한 표현들을 직접 구성해 와서 보여주더라고요.

 

홍상현

생활을 위해 악기점에서 일하는 음악가로 분한 마쓰자카 토리는 평범한 관객들의 입장에서 가장 많은 감정이입이 이루어지는 캐릭터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시카와 케이

세간에서 ‘천재’로 불리는 사람들에게도 다 나름의 고충이 있지 않을까요. (웃음)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의 세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합니다.

물론, 말씀처럼 마쓰자카 배우가 연기한 아카시라는 캐릭터에 특히 감정이입이 되었던 게 사실이고요. 영화감독 가운데서도 천재적인 감각으로 작품을 연출하는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으면서도 뛰어난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아카시는 마지막 순간에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관객의 시야에서 쉽게 멀어지도록 설정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꿀벌과 천둥>은 히어로가 중심이 되기보다는 앙상블캐스트의 미덕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한 작품이니까요. 또, 천재적인 음악가 네 사람에 대한 묘사에 보다 효율을 기하기 위해 콩쿠르 참가자 중 한사람인 아카시의 내부적 시선이 필요하기도 했어요.

「우행록」에 이어 「꿀벌과 천둥」으로 다시 한 번 이시카와 케이 감독과 함께한 피오트르 녜미스키 촬영감독(가운데). 이번 작품에서 그는 아예 로케이션 헌팅까지 혼자 도맡는 경우도 많았다고.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우행록」에 이어 「꿀벌과 천둥」으로 다시 한 번 이시카와 케이 감독과 함께한 피오트르 녜미스키 촬영감독(가운데). 이번 작품에서 그는 아예 로케이션 헌팅까지 혼자 도맡는 경우도 많았다고.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홍상현

<꿀벌과 천둥>의 이룬 가장 큰 성취의 하나는 바로 ‘진’으로 분한 스즈카 오지 배우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시카와 케이

오디션을 통해서 만났어요. 당시 지명도가 높거나 기술적으로 뛰어난 연기자들도 많이 응모했었는데 이 배우만 왠지 정체를 모르겠더라고요.

 

홍상현

그게 전략이었을 수도 있지 않나요? (웃음)

이시카와 케이

그것과는 또 느낌이 달랐습니다. “오카야마에서 왔고, 오디션은 세 번째인데요. 연기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라고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했는데 오디션이 끝나고 나서 계속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프로듀서와 의논했더니 예산이 많은 작품인 데다, 주연인데 위험부담이 너무 큰 거 아니냐고 걱정을 하더라고요. 하지만 ‘원작의 진이 바로 그런, 미지의 캐릭터 아니냐’면서 제가 고집을 부렸더니 끝내 의견을 수용해주셨습니다. 일종의 도박이었던 셈인데 그래도 성공했으니 다행이죠. (웃음)

 

홍상현

그 정도라면 촬영 전 단계에서 거의 모든 것을 새로 시작했어야 했겠는데요?

이시카와 케이

정말 연기경험 자체가 전무한 신인이었기 때문에 일단 몇 번의 워크숍을 진행하고, 시간에 관계없이 무조건 피아노 연습을 헤 주십사 부탁했어요. 또, 최소 하루에 한 번은 연락을 주고받았는데‘참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사람이구나’하는 걸 몇 번이나 실감했습니다. (웃음)

 

홍상현

<꿀벌과 천둥>에서 가장 멋진 장면 하나를 꼽자면 마츠오카 베우와 스즈카 배우가 듀오로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하는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메라의 앵글이나 조명이 정말 절묘하던데요.

이시카와 케이

세트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에서 촬영했어요. 원래 공장으로 사용되던 곳인데 분위기가 너무 좋더라고요. 원작에 나오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트레이닝에 대한 에피소드를 추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따로 준비한 시퀀스입니다.

 

홍상현

까다로워 보이는 장면이 무척 많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분위기가 특히 화기애애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시카와 케이

영화라는 게 워낙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잖아요. 그렇다 보니 현장에서 수도 없이 마주쳤던 스태프 분의 성함을 영화를 다 만든 후 엔딩크레디트를 읽다가 비로소 확인하며 미안함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는 스태프들과도 진정한 교감을 이뤄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무척 즐거웠어요.

마츠오카 마유 배우와 스즈카 오지 배우가 듀오로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하는 장면은 「꿀벌과 천둥」의 하이라이트. 카메라의 앵글과 조명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 장면은 의외로 세트가 아닌 로케이션 촬영의 결과물이다.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마츠오카 마유 배우와 스즈카 오지 배우가 듀오로 드뷔시의 “달빛”을 연주하는 장면은 「꿀벌과 천둥」의 하이라이트. 카메라의 앵글과 조명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 장면은 의외로 세트가 아닌 로케이션 촬영의 결과물이다. (C)2019 Listen to the Universe Film Partners

“<꿀벌과 천둥>이라는 작품을 통해 관객 여러분께 ‘소리’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 우리가 접하는 순간 세계(universe)로 나오는. 어찌 보면 음악뿐만 아니라 천둥소리나 빗소리도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있겠네요. 같은 맥락에서 음악은 우리와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라고 할 수 있겠고요.

한편의 콘체르토를 쓰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다만, 음악에 대해 사전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분명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주어진 시간이 단 몇 분처럼 느껴질 만큼 흥미진진했던 대화가 마무리되어갈 즈음, 필자는 다시 한 번 문학작품의 영화화에 대한 이시카와 감독의 비유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과연 무사히 등반을 마치고 산봉우리를 내려왔을까.

분명 그랬을 것이다. 때로는 길을 헤매고, 때로는 상처를 입으면서도, 끝끝내 정상에 도달하는 희열을 맛보았을 것이다. 다만, 그 여정이 외롭지는 않았으리라 믿는다. 많은 스태프, 캐스트와 서로를 북돋우며 한 발 한 발 나아갔을 테니까.

전보다 사색할 여유가 많아진 이시카와 감독은 최근 오랜 숙제를 해결하려는 구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 2013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젝트 마켓에서 대상(부천상)을 안겨준 폴란드합작 프로젝트 <BABY>를 한국에서 실행해보려는 것. 관심 있는 영화 관계자 분은 언제든 부담 없이 연락을 달란다. 코로나 19 사태가 수습되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왕래가 다시 전처럼 자유로워지면 종종 서울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홍상현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을 갖추고 한ㆍ일 두 나라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교수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 같은 대학 이미지인류학연구실(IAL)의 네트워크 멤버였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의 논쟁적인 저작을 소개한 번역가이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거쳐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램 어드바이저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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