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한국에서 미혼 여성의 정자 공여 시술은 불법이다?

  • 기자명 이나라 기자
  • 기사승인 2020.11.1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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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사유리가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출산한 사실이 알려지며, ‘정자 기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유리는 지난해 10월, 생리불순으로 찾은 산부인과에서 “난소 나이가 48세라 사실상 자연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이는 낳고 싶지만, 결혼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 그녀는 고심 끝에 일본의 한 정자은행에 보관돼 있던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출산하게 됐다. ‘자발적 비혼모’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사유리 인스타그램 갈무리
사유리 인스타그램 갈무리

사유리는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 ‘정자 기증’을 해주는 병원을 찾을 수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즉, 한국에서는 배우자가 없는 경우 정자를 기증받을 수 없었기에, 외국의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일본에서 출산했다는 것이다. 과연 “한국에서 미혼이 정자를 기증받는 것은 불법”이라는 사유리의 말은 사실일까. <뉴스톱>이 팩트체크 했다.


 

◈한국에서 미혼의 정자 공여 시술은 불법이다→ 절반의 사실 

생명윤리법 제24조에 따르면, 배아를 생성하기 위해 난자 또는 정자를 채취할 때에 ‘배우자가 있는 경우’ 배우자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배우자가 있는 경우를 한정한 것이다. 미혼인 경우를 제한하는 문항은 따로 없다. 실제로 지난 2008년 1월, 당시 미혼이었던 방송인 허수경 씨가 정자 기증을 통해 아이를 출산한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혼인 사람이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정자를 기증받는 행위는 ‘보조생식술’의 한 종류다. 보조생식술이란, “임신을 목적으로 자연적인 생식과정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의료행위”를 의미한다(모자보건법 시행규칙 제1조 2항). 이러한 보조생식술의 종류 중 “남성의 정자를 채취 및 처리하여 여성의 자궁강 안으로 직접 주입하여 임신을 시도하는 자궁 내 정자주입 시술”, 즉 ‘정자 공여 시술’이 포함된 것이다(모자보건법 제2조 제12호).

문제는 ‘보조생식술’의 대상이 ‘부부’로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보조생식술은 모자보건법상 ‘난임치료’에 해당한다. 난임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조생식술’이 허용되는데(모자보건법 제11조2항), 이때 ‘난임’은 “부부가 피임하지 아니한 상태에서 부부간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아니하는 상태”로 규정하고 있다(모자보건법 제2조 제11호). 즉, 난임치료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을 법적인 부부로 한정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보조생식술 윤리지침 갈무리
대한산부인과학회 보조생식술 윤리지침 갈무리

이 때문에 의료기관에서는 자체적으로 윤리지침을 만들어 미혼 여성의 정자 공여 시술을 금지하고 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서 발표한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 따르면, “정자 공여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시술 대상 부부 모두가 이를 수락하고 동의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법적인 제한 장치가 없더라도, 실질적으로 의료기관에서 법적으로 부부인 이들만을 대상으로 시술을 시행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미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을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 ‘인간 존엄성 파괴’ vs ‘여성의 자기 결정권’ 

국내에서 법적으로 결혼한 여성의 정자 기증 시술만을 허용하는 법이 만들어진 것은 2005년 불거진 ‘황우석 사태’ 이후다. 당시 황우석 교수팀이 매매된 난자와 연구원의 난자를 복제실험에 활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큰 논란이 일었다. 실험의 윤리적 타당성을 검증하는 ‘기관윤리심사위원회’의 심의 역시 부실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이 확인되며, 정자 기증 및 난자 채취 시술을 까다롭게 제한하는 ‘생명윤리법’이 강화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미혼 여성에게도 보조생식술을 허용하게 되면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자칫 정자나 난자가 불법으로 매매되거나, 대리모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한, 태어날 아이가 자신의 출신을 알 수 없고, 아직 사회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므로 성장 과정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점 역시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법적으로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보조생식술을 통한 출산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국공공정자은행 박남철 이사장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급격히 서구화되고 있는 젊은 층의 사고에 부응하고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한 비혼 여성들이 스스로 선택해 출산의 기회를 얻고자 하는데 법적으로, 의학적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며, “OECD 대부분 나라에서 비혼 여성이 비배우자 인공수정으로 출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1월, 프랑스는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여성이라면 누구나 체외수정(IVF) 등 난·불임 시술을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게 하는 생명윤리법안을 통과시켰다. 프랑스 외에도 영국, 벨기에, 스페인 등 여러 유럽 국가에서는 모든 여성의 체외수정이 가능하다. 법적 부부의 출산만이 정상적인 것이라고 못 박는 현재의 생명윤리법을 개정해, 미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인스타그램 갈무리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 인스타그램 갈무리

한편, 정치권 역시 이번 사건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7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아이가 자라게 될 대한민국이 더 열린 사회가 되도록 국회가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사유리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SNS를 통해 “축하하고 축복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는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할 것인지, 자신의 몸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을 위해 최선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며 “한국은 제도 안으로 진입한 여성만 임신·출산에 대한 합법적 지원이 가능한 나라”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현재 OECD 국가 중 법적 부부가 아닌 커플이 아이를 낳는 비율, 즉 ‘혼외출산비율’이 최저인 국가다. 우리나라의 혼외출산비율은 1.9%로, 일본(2.3%)이나 터키(2.8%)보다 낮다. 이는 OECD 평균인 35.9%와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은 수치다. 법률혼 중심 전통적 가족제도가 고착화 된 우리나라의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고령화 원인과 특징' 논문 갈무리
'고령화 원인과 특징' 논문 갈무리

 


정리하자면, ‘정자 기증을 통한 임신’은 ‘보조생식술’의 한 종류다. 그런데 ‘보조생식술’은 ‘난임치료’라는 목적을 위해서만 행해질 수 있고, 이 ‘난임치료’의 대상은 ‘부부’로 한정되어 있다. 즉, 미혼인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 자체는 없지만, 의료기관에서 보조생식술을 받기 위해서는 배우자가 있는 법적인 부부 상태여야 한다는 뜻이다.

미혼 여성이 정자 기증을 받아 출산하는 것에 대해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의견과 “존중받아야 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미혼 여성의 보조생식술을 허용하는 추세에 따라, 정치권에서도 긍정적인 논의가 나오고 있어 해당 논의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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