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건축가, 박길룡인가 이훈우인가

  • 기자명 김현경
  • 기사승인 2021.01.1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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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경의 역사체크] 사료로 살펴본 한국최초의 건축사무소

최근에 문화재청에서는 덕수궁 중명전에서 <1883년 러시아 청년 사바틴, 조선에 오다>라는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 전시회는 명성황후가 살해되는 사건인 을미사변을 목격한 인물이자 러시아공사관, 독립문 등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을 주제로 한 특별전이었다. 사바틴은 1883년에 조선으로 온 뒤 한국의 근대건축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었으며 스스로를 대한제국 황제 폐하의 건축가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개항과 더불어 이루어진 서양 건축의 도입과 외국인 건축가들의 활동이 한국 건축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대한제국 말기에서 일제강점기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일본인 건축가들이 한국에 진출하여 활동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10년대에는 일본인이 세운 민간 건축사무소가 한국에 들어섰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 1880~1963)1912년에 개설한 나카무라건축사무소를 들 수 있다. 그러한 가운데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근대건축 기술을 습득하여 건축가로 성장하고, 나아가 개인 건축사무소를 개설하는 사람이 등장하게 되었던 것은 한국 근대건축의 역사에 있어서 의미 있는 발자취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 조선 사람이 최초로 세운 건축사무소는 어디일까? 일반적으로는 건축가 박길룡이 1932년에 세운 박길룡건축사무소가 최초의 건축사무소라고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건축사무소를 최초로 개업한 조선인도 그였다. 그의 이름을 딴 박길룡건축사무소였다박길룡(朴吉龍, 1898~1943)(중략) 최초로 조선인 건축사무소를 개설한 건축가다.

실제로 박길룡은 <동아일보> 1932610일자 지면에 박길룡건축사무소 개업광고를 실었다. 이 광고에 따르면, 박길룡은 조선총독부의 건축기사 관직을 사퇴하고 경성 관훈동에서 일반 건축 사무(설계 및 감독)에 종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림1. 잡지 개벽의 이훈우건축공무소 광고(출처: 아단문고 홈페이지)
그림1. 잡지 개벽의 이훈우건축공무소 광고(출처: 아단문고 홈페이지)

하지만 20185, <건축가 이훈우를 아시나요>라는 기고문에서, 박길룡이 사무소를 개업한 1932년보다 11년이나 앞선 건축사무소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건축가 이훈우(李醺雨)가 설립한 이훈우건축공무소가 그것이었다. 그 근거는 잡지 <개벽> 192110월호에 실린 이훈우건축공무소광고였다.

그리고 20206, <건축역사연구> 293호에 게재된 논문 <건축가 이훈우에 대한 연구>에서는 <조선일보> 19201216일자 기사 <이기수개업>이 소개되어, 19201210일에 이훈우가 개인 건축사무소를 개설하였음이 밝혀졌다. 이로써 박길룡건축사무소보다 약 12년 앞서 이훈우건축공무소가 세워진 것이 분명해졌다. 이훈우건축공무소보다 더 이른 시기에 또다른 건축사무소가 건설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조선인에 의한 건축사무소 중에서는 가장 이른 것이 된다.

 

그림2. 조선일보의 이훈우건축공무소 개업 기사. 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그림2. 조선일보의 이훈우건축공무소 개업 기사. 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그림4. 이훈우가 설계한 조선일보사 평양지국의 모습. 출처: 조선 뉴스라이브러리 100
그림4. 이훈우가 설계한 조선일보사 평양지국의 모습. 출처: 조선 뉴스라이브러리 100

 

이훈우는 일본으로 유학하여 1908년에 나고야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하였고, 1911년에 졸업하였다. 이어서 조선총독부 탁지부 세관공사과와 토목국 영선과에서 근무하였고 191712월에는 조선총독부 영선과 기수(技手)에 임명되었다. 1920, 이훈우는 조선의 건축물을 개량하려는 목적을 갖고 기수직을 사퇴하여 개인 건축사무소를 개업하기에 이르렀다. 건축사무소 개설 뒤에 세워진 이훈우의 건축작품으로는 천도교 대신사출세백년기념관(1924), 진주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1928), 조선일보사 평양지국 사옥(1929) 등이 있다.

지난해 1210일은 이훈우가 건축사무소를 개설한 지 딱 100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인이 설립한 최초의 건축사무소가 등장한 그 날을 기념하며, 한국 근현대 건축과 건축가의 역사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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