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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해방 후 '욱일 훈장' 받으면 친일파?

YTN은 한국인이 일본 훈장 '욱일장'을 받는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YTN은 12월 13일 '[단독] 을사오적이 받은 '욱일 훈장', 지금도 한국인은 받고 있다와' '"자랑스러우십니까?" 지금도 을사오적의 훈장 받는 한국인' 기사를 내보냈고, 자막뉴스기자ㆍ앵커 대담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그런데 이 기사엔 팩트가 틀린 게 많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그리고 욱일장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뉴스톱이 확인했다.

YTN이 보도한 한국인의 욱일장 수상 문제.

1. 욱일장은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이다?

YTN 기사에서도 언급하지만 욱일장(旭日章)은 1875년(메이지 8년)에 만들어진 일본 최초의 훈장이다. 이후 더 높은 등급의 훈장이 생겼지만 일본 훈장의 대표격으로 인식되고 있다. 해가 떠오르는 모양인 아사히(朝日) 혹은 욱일(旭日) 모양을 토대로 만들어졌으며 일본의 패전 이후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03년 일부 규정을 개정했고 현재의 욱일장이 유지되고 있다. 욱일장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현저한 공적을 올린 사람에게 표창하는 경우에 수여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훈장이 욱일장이다. 욱일장에도 등급이 있다. 당초 제일 높은 욱일장은 욱일동화대수장(旭日桐花大綬章)이었으나 지금은 독립해 별도의 동화대수장(桐花綬章)이 되었다. 현재 욱일장은 대(大), 중광(重光), 중(中), 소(小), 쌍광(双光), 단광(単光) 등의 등급이 있다.

조선의 많은 친일 인사들이 욱일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욱일장을 포함해 서훈을 받은 인사 3300명을 2005년 KBS 탐사보도팀이 보도해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대한민국 초대 육군 참모총장, 4.19 당시 검찰총장, 2~4대 대법원장이 일제시대 서훈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친일 인사들이 일제 서훈을 받은 것과는 별개로 욱일장이 근본적으로 제국주의의 상징이냐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일본제국의 출발은 일반적으로 제국헌법이 만들어진 1889년을 기준으로 본다. 초대 내각총리대신인 이토 히로부미가 주축이 되어 헌법을 만들고 일본 입헌군주제의 기틀을 닦았다. 천황의 지위와 권리에 대해 기술한 제국헌법 1장은 천황이 육해군 통수권자임을 밝히고 천황의 신성(神性)을 명시했다. 제국헌법 제정 후 일본은 청일전쟁(1894년)과 러일전쟁(1904년), 그리고 을사늑약(1905)을 거쳐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국가로 변하게 된다.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외국인에게 적극적으로 서훈을 주기 시작한 것도 제국헌법 제정 이후다. 즉 욱일장을 포함한 일본의 많은 훈장은 애초에 제국주의적 성격을 띄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일본제국이 주변국가를 침략하면서 제국주의에 협조한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인식됐다. 물론 제국주의와 상관없이 친선교류에 도움을 준 해외 명망가에게도 주어졌다. 1945년 일제 패망 이후에는 맥아더 장군 등 미국측 인사에게도 훈장이 주어졌다.

2. 욱일장은 최고 훈장이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최초 일본의 훈장은 크게 국화장, 금치훈장, 욱일장, 보관장, 서보장, 문화훈장으로 나뉜다. 이중 금치훈장은 폐지됐고, 욱일장 위에 동화장이 생겼다. 처음 만들어진 것은 욱일장(1875년)이지만 현재 최고 등급의 서훈은 국화장(菊花章)이다. 이 가운데 대훈위국화장경식(1888년 제정)은 황족이나 공적이 있는 총리대신과 군인(1945년 이전)에게 목걸이 형태로 수여되었고, 대훈위국화대수장(1876년)은 한 등급 아래의 훈장으로 황족 및 총리대신, 친왕에게 수여되었다. 그 아래에 욱일장이 있다.

왼쪽부터 일본 최고 훈장인 대훈위국화장경식, 그 아래에 있는 대훈위국화대수장, 그보다 아래인 욱일장

위에서 설명했듯이 욱일장은 일본 최고 훈장이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 대표적 인사로 나오는 이토 히로부미가 받은 것은 대훈위국화대수장(젊었을 때 욱일장을 받긴 했다)이며 더 높은 등급의 대훈위국화장경식도 받았다.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받을 수 없는 훈장인데 조선인으로서는 영친왕 이은과 의친왕 이강, 그리고 이완용(1926년)이 받았다. 왕족이 아닌 조선인이 대훈위국화대수장을 받은 것은 이완용이 처음이다. 그만큼 상징성이 큰 훈장이다. 그런데 YTN은 이완용이 받은 훈장으로 대훈위국화대수장이 아닌 욱일장을 언급한다. 욱일장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좋으니까 욱일장이 문제라고 해버린다.

팩트도 틀린게 많다. YTN은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가 받은 훈장을 동그라미치며 욱일동화대수장이라고 보도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 훈장 모양이 다르다. 이토 히로부미가 착용하고 있는 훈장에는 태극마크가 있다. 이 훈장은 일본 욱일장이 아니라 대한제국 최고급훈장인 대훈위금척대수장(大勲位金尺大綬章)이다. 욱일장을 비판하기 위해 아무 훈장이나 갖다 붙인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일본 붓다대학 이승엽 교수가 페이스북에 자세히 설명해 놓고 있다.

위는 YTN이 보도한 이완용과 히토 히로부미의 훈장 착용 장면. 이완용은 욱일장을 착용했으나 이토 히로부미는 더 높은 등급인 대훈위국화대수장과, 대한제국이 수여한 대훈위금척대수장을 착용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어린 시절 영친왕 이은과 이토 히로부미가 같이 찍은 사진. 이승엽 교수 제공

YTN이 제국주의 선봉에 선 군인으로 묘사된 인물은 사이온지 긴모치다. 일본의 공가(일본 귀족 관리)출신으로 제 12ㆍ14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한 유명 정치인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도와 제국헌법을 만드는데 일조했지만, 일본 제국이 군국주의로 가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고, 상대적으로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인이었다. 그가 입고 있는 것은 군복이 아니라 관복이며 패용한 훈장 역시 욱일장이 아니라 최고 훈장인 대훈위국화대수장과 국화장경식이다.

YTN이 욱일장을 받고 일본 제국주의 선봉에 선 군인의 예로 화면에 보여준 사람은 사이온지 긴모치다. 일본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으며 군국주의 팽창을 반대한 일본 온건파 정치인 중 한명이다.

종합하면, 욱일장은 일본 최고의 훈장이 아니며 일본에서 최고의 공훈자에게 주어진 훈장은 따로 있다. 이 같은 오류는 오마이뉴스도 지적했다. 그렇다면 YTN은 왜 일본의 더 높은 훈장은 문제삼지 않고 오직 '욱일장'만 문제를 삼고 있을까. 일본에서 주는 모든 훈장을 거부하라고 하기엔 명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욱일장만 꼭 집어서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욱일문양=욱일기=욱일장=일본제국주의 상징'이라는 단순한 도식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욱일장이 문제"라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YTN 화면 캡처

3. 중국인은 한 사람도 받지 않았다?

YTN은 중국의 경우 욱일장을 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보도했다. 일제 침략을 받은 국가중에 욱일장을 받는 것은 한국인 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사실이 아니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는 2005년 가을 이후 2018년까지 일본 서훈을 수상한 명단이 있다. 명단에는 욱일장 뿐 아니라 다른 훈장도 섞여 있기는 하지만 PDF 파일에 中華(중화)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중국인을 쉽게 찾을 수가 있다. 2017년(헤이세이29년) 한해에만 욱일장을 받은 중국인은 3명이며 다른 훈장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다.

2017년 가을에만 욱일장을 받은 중국인은 3명 이상이다. 사진은 일본 외무성이 공개한 외국인 서훈 명단 중 일부.

해외에선 어떤 사람이 욱일장을 받았을까. 2017년 수상자 명단을 보면, 룩셈부르크 앙리 대공,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 매튜 카터 주일 미 해군 사령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 등이 올라와 있다.

같은 시기 욱일장을 받은 한국인은 이준규 주일본 한국 대사와 해군무관인 김기호 준장이다. 욱일장은 대체적으로 상대국의 수장, 일본과의 우호관계를 증진시킨 고위 공직자, 그리고 일본에서 근무한 대사관 직원에게 주어진다. 한국에서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수교훈장(광화대장, 흥인장, 숭례장 등)과 비슷한 지위다. 물론 개인적인 이유로 훈장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외교적 결례에 해당된다. 한국에서 주는 훈장을 외국인이 거부한다면 당사자와 그 국가를 어떻게 바라볼지 생각해보면 된다. 한국 대사관 직원이 욱일장을 거부할 경우 외교상 보이지 않는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

4. 독일 철십자 훈장은 사라졌고 욱일장만 남았다?

YTN은 "2차대전 패망 후 독일은 전쟁범죄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철십자 훈장을 폐지했다"고 보도했다. 철십자 훈장은 폐지됐는데 욱일장이 그대로 남은 것은 문제라는 주장이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철십자장과 욱일장은 동일한 위치에 있지 않으며 철십자장이 전쟁범죄 상징이라는 이유로 폐지된 것이 아니다.

철십자장(문양) 프로이센 시절부터 쓰인 독일 군대 고유의 상징이다. 2차세계대전까지 공식적으로 쓰였고 패전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쓰이진 않지만 착용이 금지된 것은 아니다. 1957년 유대인 학살과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나 나치친위대 등 특정 문양의 사용이 독일에서 금지되었다. 하지만 철십자장은 금지된 적 없다. 다만 일부 철십자장에 하켄크로이츠 문양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금지된 것이다. 2차대전 후 철십자장 수여제도는 없어졌지만 독일 정부는 하켄크로이츠가 없는 철십자장 착용은 금지하지 않는다. 지금도 독일 군인 중 일부는 일반 철십자 훈장을 착용한다. 철십자장이 아니라 나치를 상징하는 하켄크로이츠가 문제인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왼쪽은 나치 독일에서 사용된 황금곡엽검금강석 기사십자 철십자장, 오른쪽은 일본제국군대에서 사용된 금치훈장. 둘다 군대에서만 사용됐다는 특징이 있다.

게다가 독일의 철십자장에 해당되는 일본의 훈장은 금치훈장이다. 둘다 군인에게만 수여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욱일장도 일부 군인들에게 수여됐지만 금치훈장은 공식적으로 군인을 위해 만들어진 훈장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철십자장 수여제도가 사라진 것고 마찬가지로 금치훈장도 1945년 패전 이후 수여가 중단됐다. 전쟁범죄에 관여된 훈장이라서 폐지됐다기보다는 금치훈장 수여 업무를 주관하던 육군성과 해군성이 모두 폐지되면서 훈장 역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됐다. 그렇지만 금치훈장을 패용하는 것이 금지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철십자장과 욱일장을 비교해 욱일장을 폐지의 당위성을 주장한 YTN 보도는 틀렸다.

5. 욱일장 수상을 어떻게 봐야 하나

욱일장은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고, 을사오적이 받은 훈장이기 때문에 한국인은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 YTN의 주장이다. 해방 이후 욱일장을 받은 한국인은 정말 친일파일까? 위에서 봤듯이 사안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제시대에 욱일장을 받았다면 '부역'의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분명 있다. 그렇지만 해방 이후 수상은 다른 문제다.

몽골은 고려 때 30여년 동안 전 국토를 유린하며 수십만명을 학살했고 100년 이상 고려를 사실상 식민지처럼 지배했다. 그러면 우리는 몽골이 주는 훈장도 거부해야 하는 걸까? 미국과 러시아는 수없이 많은 침략전쟁을 벌였다. 우크라이나, 아프가니스탄, 베트남, 이라크 국민들은 미국과 러시아 훈장을 거부하는 정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개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문제와 언론이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게다가 욱광(욱일) 문양은 일본 고유의 문양이며 일본 제국주의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민간에서 써오던 문양이다. 욱광문양을 둘러싼 복잡한 역사적 맥락은 필자가 쓴 '욱일기는 전범기? 전범기는 없다' 기사에 나와 있다. 필자는 욱일기 때문에 욱광 문양을 반대하는 것이 국익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국제적 동의를 얻기 힘들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일본에게 식민지 지배 시절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고 진정한 사과와 재무장 금지를 약속받는 것은 중요하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YTN 보도같이 뜬금없는 반일 민족주의 때문에 일본내 반한ㆍ혐한 감정만 커지고, 일본 내 지한파는 설 자리가 없어지고, 결국 아베와 같은 극우 정치인이 득세하는 결과가 뒤 따른다. 책임있는 언론사라면 이처럼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저렴한 민족주의 감정'에 기댄 보도를 내보내서는 안된다.

결론은 욱일장 받아도 된다. 일본 정부를 상대하는 관료나 일본에서 비즈니스 하는 기업인들은 특히 그렇다. 한국 정부는 정부대로 일본에 진정한 사과와 배상, 그리고 과거사 청산 촉구하면 된다. 욱일장 수상 반대한다고 민족투사가 될 것이란 착각을 하면 안된다.

김준일   open@newstof.com  최근글보기
2001년부터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주로 사회, 정치, 미디어 분야의 글을 썼다. 현재 뉴스톱 대표를 맡고 있다.

김준일 팩트체커  open@newsto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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