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국민 89% 해외여행 가려고 코로나 백신 접종?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0.12.1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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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공사(사장직무대행 임남수)는 15일 코로나19 백신 개발 이후 해외여행 의향을 묻는 설문조사 결과를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다수의 언론이 보도자료 내용을 전재하며 ["코로나 백신 맞겠다" 70%... 왜? "해외여행 가려고" 90%] 등의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공사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 개발 이후 예방 접종 의향을 묻는 질문에 내국인들의 70.9%가 '접종한다'고 응답한 것으로 집계됐다. 백신 접종 이유에 대해서는 내국인의 89.1%가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서'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석연치 않다. 뉴스톱이 팩트체크했다. 

출처: 인천국제공항공사
출처: 인천국제공항공사

◈허술한 설문지

공사 보도자료에 따르면 임남수 인천공항공사 사장직무대행은 "이번 조사를 통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따른 내·외국인의 해외여행 기대수요가 확인됐다"면서 "향후 항공수요 회복에 대비해 시설관리, 여객서비스 점검에 만전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뉴스톱은 인천국제공항공사에 해당 설문조사의 질문지를 요청했다.

출처: 인천국제공항공사
출처: 인천국제공항공사

8번 문항을 살펴보자. 질문은 '코로나19 백신 개발 후, 백신 예방 접종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이다. 선택지는 <①해외여행을 가기 위해서 ②코로나19 감염을 피하려고 ③기타> 이다.

공사 홍보실에 따르면 주관식인 ③기타를 선택한 응답자는 없었다. 이 질문에 대한 응답자 89.1%가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서'라고 답했고, 나머지 10.9%만 '코로나19 감염을 피하려고'라고 답했다.

 

◈ 설문 기본을 지키지 않은 조사

'코로나19 예방 접종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도 이상하고 선택지도 이상하다. 기본적으로 객관식 설문지 문항의 응답 항목은 '상호배타적'이고 '포괄적'이어야 한다. 상호배타적이라함은 응답 항목끼리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포괄적이라함은 응답 항목으로 모든 답변이 커버되어야 한다는 거다. 

사람들이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는 이유는 당연히 코로나 감염을 피하기 위해서다. 코로나 감염으로부터 안전해진 이후 사람들은 술을 마실수도 있고, 해외여행을 갈 수도 있고, 교회 예배를 드릴 수도 있다. 그런데 굳이 '해외여행 가기 위해서'와  '감염을 피하기 위해서' 두 개만 배치한 것은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인천공항공사는 이 설문이 누구에게 어떻게 이뤄졌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뉴스톱이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문의한 결과 이 설문지는 공사에서 자체적으로 설계한 것으로 확인됐다. 코로나백신 접종 목적에 대해 내국인과 외국인의 응답이 이렇게 극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국내 응답자들이 여행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응답했을 가능성이 높다. 응답자들이 허술한 설문 문항을 보고 역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수도 있다.

기사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 달린 댓글은 "이 시국에 해외여행이라니..."라는 반응이 많았다. 일부는 "질문지도 답하는 이도 참..."이라며 한심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파맛 첵스 부정선거 사건의 재탕

'파맛 첵스 부정선거 사건'이 떠오른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해) 방식의 설문조사에 뿔이난 소비자들이 역선택으로 마케팅을 조롱한 사례로 기록된다.

경제지 이데일리는 해당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2004년 농심켈로그는 시리얼 ‘첵스’ 마케팅의 일환으로 ‘첵스나라 대통령 선거’를 진행했다. 대대적으로 TV 광고까지 진행한 행사였다.  선거 후보로 나온것은 밀크초코당 ‘체키’ 후보와 파맛당 ‘차카’ 후보였다. 말도 안되는 경쟁에 켈로그는 당연히 체키가 당선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예상치도 못한 전개가 펼쳐졌다.

 

 차카는 한때 5만9000표 이상을 득표하며 체키를 압도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차카에게 몰표를 주자는 움직임이 일었기 때문이다. 파맛 첵스는 출시 준비도 안 돼 있는 상태에서 차카가 앞서나가자, 켈로그는 ARS 전화와 롯데월드 현장 투표 등을 추가하고, 무효표를 걸러내기 시작했다. 당시 정보보안업체 조사에선 차카에게 204명이 4만7000여표를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체키가 4만6424표(56.67%), 차카는 3만5641(43.43%)로 체키가 당선됐지만, 여론은 좋지 못했다. 이후 지난 16년동안 체키는 독재가로, 차카는 부정선거 피해자로 인식됐다. 매년 만우절만 되면 어김없이 파맛 첵스가 출시됐다는 합성 사진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소비자들도 켈로그에 지속적으로 출시를 요구했다.

 

그러다 지난 18일 켈로그가 16년 간의 염원을 현실로 만들었다. 파맛 첵스가 실제 제품으로 등장한 것. 이 소식을 접한 소비자들은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맛에 ‘설렁탕에 넣어 먹으면 되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설문조사에 장난으로 응답하는 사례는 서구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명 '제다이 인구조사 현상'(Jedi census phenomenon)이다. 제다이 인구조사 현상은 2001년에 영어를 쓰는 몇몇 나라의 시민들이 인구조사에서 자신들의 종교를 스타 워즈 시리즈에 나오는 가상의 종교인 제다이라고 답변한, 일종의 장난이다. 인구 조사에 제다이가 나타난 것은 2001년이 처음이다.  

서구 언론들은 인구조사에서 자신의 종교를 '제다이'라고 답한 응답자 비율을 흥밋거리로 전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이 설문조사는 인천공항공사가 의도를 가지고 직접 만들었으며 응답 항목이 과학적으로 설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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