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물산업이 조선 물장수에서 찾아야 할 교훈

  • 기자명 더사실포럼
  • 기사승인 2021.01.20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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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물을 솨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드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북청 물장수. 물에 젖은 꿈이 북청 물장수를 부르면 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 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진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북청 물장수.”

-김동환 “북청 물장수”-

 

1800년 초 한국은 근대적 상수도 시설이 전무했다. 도시 전체는 불결하고 오염되지 않은 물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수요는 컸다. 그때 한 함경도인이 서울에 와서 우물물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서비스는 한마디로 큰 히트를 쳤다. 물장수에 대한 수요가 넘쳐났다. 물장수 중 함경도 북청에서 온 사람이 많았는지 김동환이 위의 시에 쓴 것처럼 북청물장수라는 말까지 생겼다. 당시 물장수는 나무 물통이나 양동이(양철통) 둘을 긴 나무에 매달고 물을 지고 날랐다. 지방에 따라 중세의 길드(Guild) 조직과 같이 지역의 상권을 장악하여, 지게당 가격을 매기거나 또는 1개월 배달하는데 얼마 식으로 돈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으로 보면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를 지향했던 셈이다. 식수를 원하는 가정에는 샘물을 배달하기도 하고, 많은 물을 원하는 곳에는 강물을 수자원으로 하여 물을 보급했다.

조선 후기 물장수의 모습.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선 후기 물장수의 모습.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힘들고 고되어 보이는 물장수가 직업으로는 어땠을까? 물장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리 좋진 않았지만 돈을 벌어들이는 비즈니스 관점에서는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1900년대 초의 물값은, 매일 1지게를 단위로 을사조약(1905년) 이전에 통용된 화폐로 20전 정도였는데, 가정에 따라서는 하루에 20지게나 되는 식수를 사용했다. 당시 길드 조직이 발달한 만큼 물장수 개인에게 실질적 이익이 얼마나 돌아갔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물장수 한 사람이 하루에 30가정을 맡을 수 있었다니 전성기의 물장수의 수입이 상당하여 인기있는 직업이었다는 설명에 수긍하게 된다.

조선시대의 물장수의 서비스는 현대의 수도사업자와 병물 산업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가정에 물을 공급하는 용수 공급과 생수 배달 서비스를 혼합한 형태의 서비스였다. 이러한 영업 형태는 비즈니스 모델로 상당히 안정적 형태였는데 당시 물장수들은 나름의 수상조합(水商組合)까지 결성하여 그들의 급수권도 관리하였다.

현대에서의 물의 중요성은 더 절실하며 시장적 가치가 강화되고 있다. 2015년 제 70차 UN총회에서는 전 세계 지속가능발전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인류가 공동으로 추구해야할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17개를 선정하였다. 이 중 목표 6은 깨끗한 물과 위생에 대한 것으로 인류의 생존에 있어서 불가결한 요소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물의 중요성에 대한 세계적인 인식은 교과서적인 선언적 수준이 아니다. 실제로 물의 희소성에 의하여 시장적 ‘가치’를 형성하는 것이다.

2020년 9월, 세계 금융의 중심 미국 나스닥에는 사상 최초로 `물` 선물 거래가 이뤄질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선물이란 실제로 존재하는 현물(커피 등)의 희소성으로 인한 가격 변동이 예상되기 때문에 향후에 이러한 수요-공급의 불확실성을 대비하기 위해 미래 시점에서 인수하기로 예약하는 것을 말한다. 물 선물 거래는 물의 수요와 공급의 불확실성이 확실히 경제적 수준으로도 한계에 도달했음을 반증한다.

이쯤에서 의문이 생길 법하다. UN에서 이렇게 중요하게 다루는 인류의 공동의 목표에 포함되면서, 또한 나스닥에도 상장될 만큼 세계적으로도 유망한 시장인 물을 구현하는 물 산업에서는 과연 무엇을 다룰까? 우선 다음의 신문 기사를 살펴보자.

 

“서울시는 시가 보유한 상‧하수도 등 대규모 물 관리 시설을 강소기업, 스타트업 등 민간에 테스트베드로 적극 개방하고, 기술개발부터 해외진출까지 다각도로 지원해 물 산업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전 세계 물수요 증가로 세계 물시장이 연 4.2%씩 지속적으로 성장 중인 가운데, 물산업을 미래전략산업으로 육성해 글로벌 물산업을 선도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목표다.”

-국토매일, 서울시, '물산업' 미래전략산업으로 육성… '물산업클러스터' 조성

 

“경남도는 낡은 하수관로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지반침하(싱크홀)를 막으려고 노후 하수관로를 집중적으로 정비한다고 9일 밝혔다. 도는 내년에 창원·진주· 김해·함안 등 11개 시·군 노후 하수관로 39㎞ 구간에 374억 원을 투입해 하수 관로를 교체하거나 개·보수한다.”

-연합뉴스, 경남도, 낡은 하수관로 39km 정비…'싱크홀 예방'

 

“반도체 산업에서도 물은 중요한 재료 중 하나입니다. 반도체는 본연 의 성질을 발현하기 위해 수많은 증착, 식각, 노광 공정을 반복적으로 거쳐 만들어집니다. 이런 공정 과정 중간에는 세정 공정이 반드시 추 가되는데, 이 공정에서 물이 많이 사용됩니다..삼성전자는 기흥과 화 성에 반도체 공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루 평균 기흥과 화성에서 각각 5만 톤씩 총 10만 톤 규모 물을 사용합니다. SK하이닉스 이천 공장도 일평균 약 6만9000톤 물을 사용합니다. 어마어마한 양이죠.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이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지을 때 물을 쉽게 끌어올 수 있는 지역인가를 먼저 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물은 일반적으로 7가지 등급으로 나뉩니다. 1등급인 초순수(UPW:Ultra Pure Water) 물이 실제 반도 체 공정에 쓰입니 다. 이 물은 H2O 성분 외 무기질이나 미네랄 등 이 온성분이 없어 DIW(De-Ionized Water)라고도 불립니다. 2등급 제 조용 냉각수(PCW:Process Cooling Water)는 생산 장비 열을 식히는 데 주로 사용됩니다... 3등급은 사람이 마시고 씻는 용도로 사용되 는 생활용수(CW:City Water)입니다. 반도체 생산, 장비 냉각수가 사 람이 먹는 물보다 더 등급이 높습니다.”

-전자신문, [대한민국 희망 프로젝트] <463>반도체와 물

 

기사의 내용처럼 현대의 물 산업은 조선시대 때 물장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이다. 싱크홀을 막는 노후 하수관로 개보수부터 반도체 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기간 산업까지 아우르는 현재와 미래를 담고 있는 전략사업이다. 현대의 국내 물 산업은 상하수도를 위한 건설, 유지관리 및 병물 사업 등을 포함하며, 물산업의 규모가 2017년 현재 36조 원이 넘는다. 세계적으로 물산업의 규모는 국제 반도체를 넘어가는 시장 규모이다. COVID-19가 전 세계 사회 시스템을 뒤흔드는 현시점에서, 현대화된 상하수도 시스템의 구축과 유지관리에 동력이 되는 물 산업은 국민들의 건강을 직접적으로 담보하는 데 필수적인 산업이기도 하다.

서울의 물장수 카드뉴스. 출처: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블로그
서울의 물장수 카드뉴스. 출처: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블로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었던 백 년 전의 물장수에서 오늘날 물 산업 육성에 대한 시사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첫째, 물장수는 수익성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인기있는 직업이었다. 지금의 비즈니스 모델은 어떤가? 물인프라(수도시설, 하수처리장등)가 어느정도 갖추어진 현재는 인프라의 운영관리의 노하우에서 비즈니스 모델이 창출되고 있다. 즉, 국민에게 다양한 물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서 돈이 생기는 시대이다. 이제 물산업의 육성을 고민하는 정부의 역할은 민간기업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데 보다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손을 대야 하는 부분은 공공 사업 수주에 대한 평가제이다. 상하수도 인프라의 유지관리가 더욱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적절한 운영 유지가 가능한 기업과 공정이 제대로 선택될 수 있도록 기업 평가가 보다 선진화 되야 한다. 그래야 국제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기업들을 찾아낼 수 있고 나중에 더 큰 시장에서 뛰면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 할 수 있는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다.

둘째, 물장수는 소비자가 원하는 물의 공급에 초점을 맞추었다. 가정에는 샘물을, 물이 많이 필요한 곳에는 강물을 공급했다. 이러한 수요에 적합한 서비스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었다. 환경부는 최근 그린뉴딜에 약 73조 원을 사용하여 일자리 69만개를 창출한다고 발표했다. 이 중 물 관련 사업에는 내년에 약 1조600억 원을 사용한다고 한다. 나는 물 산업 전문가로서 이러한 신규 투자를 환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재정 투자가 실질적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는지에 대해서는 큰 의문이다.

그린 뉴딜의 재정 투입의 내용을 보면 2023년까지 여러가지 센서를 확충하고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AI)을 이용하여 하수처리장부터 댐 관리까지 하겠다고 되어있다. 노후화된 상하수도 시설의 최적화를 위해서 센서와 인공지능을 쓰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과연 이를 통해 어떠한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며 관련 인력은 어떻게 수급할 것인가? 물 산업 시장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사업으로 재편한다한들 인력을 양산하는 학교와 전통적 산업군에서는 빅데이터분야나 센서 부분에 대한 교육 내용은 아직 생소하기만 하다. 교육은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게다가 이러한 자동화 시스템은 어쩌면 전통적 일자리의 감소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일자리와 사라지는 일자리는 과연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재정 투자가 물 산업의 마중물로서 실제로 기능하려면, 물 산업에 관련된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물 산업 생태계의 가치 사슬을 충분히 고려해 나가면서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의 공감을 얻고 기업이 실제로 성장할 수 있으며 사회 수요에 맞는 인력을 양성하고 진정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셋째, 과거 물장수는 길드 조직을 형성하여 지역의 발언권과 사업의 운영권을 확보하였다. 개인 사업자라도 동료 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면 공적 사업의 가치와 역량을 배가시킬 수 있다. 환경부를 비롯한 여러 지자체와 공사, 공단이 나름대로 물 산업 육성에 대해 의지를 보이고는 있으나 아직까지도 실질적 시너지 효과를 낸 경우는 드물다. 국내 물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다양한 스펙트럼 때문인지 서로 윈-윈하는 성공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스위스에서는 정부와 국민이 합의하여 지속 가능한 환경적 목표를 세우고 국민적 지지를 끌어냈다. 또한 스위스 정부는 과학 실험의 결과를 산업에 접목하는 증거 기반의 정책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음에 이 부분에 대해 더 자세히 다루려 한다.) 보편성이라는 증거 기반의 정책의 속성은 기업의 국제적 경쟁력을 강화하고 배출되는 인력들이 글로벌 스탠다드를 맞출 수 있도록 도와준다. 즉, 국내 물 산업이 목표로 하는 해외진출에 걸맞는 인력과 기업을 육성하는 것은 바로 과학 증거 기반의 보편적 정책을 추구해야만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물 산업은 공공재인 물에서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이며 실질적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미래전략산업이다.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던 백 년 전 물장수의 교훈을 다시 생각하며 우리 시대의 물 산업 또한 지속가능한 성공을 거둘 수 있길 바란다.


 

필자 김성표는 고려대 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다. 토목공학과에 진학하여 정답을 찾아야 하는 역학분야에서는 그리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학교 3학년때 강변에서 가축분뇨의 영향을 계산하라는 석사 지도교수님의 시험문제에 신선한 충격을 받고 환경 공부를 하리라 결심. 이후 미국에서 수 환경 및 공학적 인간구조물내에서 항생제 내성을 포함한 미량오염물질 제거에 대한 연구로 박사를 마쳤다. 정답이 없는 물환경문제를 공학적인 해답을 내놓기 위해 다양한 학문의 습득과 과학자들과의 교류에 나름 열심이다. 더사실포럼에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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