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가치는 '겸손함'과 '실용성'이다

  • 기자명 김신
  • 기사승인 2018.12.21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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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처음부터 미술관에 들어가려는 목적이 없었다. 디자인은 실용적인 물건을 만드는 일이며 그 일을 완수하면 그만이고, 더이상 쓸모가 없어지면 쓰레기가 되는 것이 운명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디자인도 예술이 되려는 욕망을 품게 되었다. 그 결과 어떤 디자인은 정말 그것을 만든 디자이너의 자의식으로 가득 차 굉장히 화려하고 독창적이며 난해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예술성이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쓸모를 줄어들기 마련이다. 쓸모가 아예 없는 물건조차 디자인되기까지 한다.

 

이것을 디자인의 위기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늘 그런 식의 신분 상승은 있기 마련이다. 과거의 예술가들도 지금의 예술가와 전혀 다른 지위에 있었다. 미켈란젤로만 하더라도 그 시대에는 그저 기술자로 여겨졌다. 물론 보통 기술자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자였으므로 교황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현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까지는 얻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19세기에 이르면 이미 많은 예술가들이 순수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고, 그들의 작품은 누구의 주문에 따라 제작되거나 어떤 집이나 궁전을 장식하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그 자체를 위한 것이 된다. 그렇게 실용성으로부터 탈피한 예술은 미술관과 화랑에서 감상하는 존재가 된다. 실용적인 물건을 만드는 공예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루이지 콜라니의 트럭 디자인 ⓒwikimedia

 

반면에 디자인은 어떤가? 디자인은 회화나 조각과 달리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실용적인 쓰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만약 실용성을 저버린다면, 그 순간 그것은 디자인이 아닌 것이 돼버린다. 하지만 교묘한 방법으로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디자인을 예술적인 ‘작품’으로 만드는 일을 해나가고 있다. 바로 ‘독창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스타 디자이너들은 그런 방식을 쓴다. 올해 초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루이지 콜라니 같은 디자이너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디자인 ‘작품’들은 조각에 가까웠다. 의자들이 그랬고, 자동차가 그랬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프로토타입prototype, 즉 시제품으로 그친 경우가 많다. 형태가 너무 독특해서 대량생산하기 힘든 것이다.

왼쪽은 론 아라드의 'The Big Easy chair in chrome steel' ⓒwikimedia. 오른쪽은 하이메 아욘의 'Rocking hot dog' ⓒFaceMePLS in flickr

론 아라드나 하이메 아욘 같은 디자이너의 실용품들은 대량생산된 것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디자인 중 많은 것이 실용적이지 않아서 장식품에 그치기도 한다. 무엇보다 실용품으로서는 너무 비싸서 부자들의 전유물로 그치기 쉽다. 그러니까 디자인에 대한 안목도 있고 그런 물건을 살만한 여유도 있다는 걸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의 컬렉션이 되는 것이다.

평범하지만 비범한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 사진은 2016년 2월호 Icon Design 표지.

하지만 영국의 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홈페이지)만큼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 얼마전 문화 공간 ‘피크닉Piknic’이라는 공간에서 그의 전시(2019년 3월 24일까지)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보통 디자인 전시 하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뭔가 눈에 띄고 주목 받을 만한 것을 소개하기 마련이다. 아예 전시를 위한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전시에서는 양산된 제품들로 구성되었다. 출품작들을 디스플레이 하는 방식도 제품 하나 하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위도가 보이지 않는다. 상당히 많은 제품들을 촘촘하게 죽 나열하는 방식이다. 매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매장보다는 좀 더 깔끔하고 보기 좋게 배열했지만, 그렇다고 무슨 위대한 작품인 양 폼을 잡진 않았다.

재스퍼 모리슨 전시회의 전경. 작품 거치대는 매우 융통성 있게 변형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비트라에서 2010년부터 생산되고 있는 재스퍼 모리슨의 할 튜브 스택커블 (HAL Tube Stackable)
재스퍼 모리슨의 아틀라스 시스템 중 테이블, 1992년. 십자 모양의 간결한 다리 구조가 빼어나다.
재스퍼 모리슨의 공기 의자 시리즈, 2000년. 이탈리아 마지스가 공기주입이라는 혁신적인 플라스틱 성형 기술로 생산했다. 속이 비어 있어서 기존 플라스틱 의자보다 훨씬 가볍다.
재스퍼 모리슨의 생각하는 남자의 의자, 1986년. 팔걸이의 곡선이 아주 장식적인 이 의자는 그의 영국왕립학교 졸업 작품으로서 그가 디자인한 의자 중에서 가장 화려한 것이다.

 

그의 디자인에는 작가적인 자의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하나 같이 기본적인 도형으로 단순하고 소박하게, 무엇보다 실용적으로 디자인했다. 대중이 보면 그냥 시장에서 팔리는 익명의 디자이너가 만든 것처럼 평범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단순한 형태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가다듬고 정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려한 비정형의 선과 구조로 눈에 띄는 형태를 만드는 것보다 모리슨의 디자인처럼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완벽한 균형과 조화에 도달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디자인이다. 과거 오세훈 서울시장이 디자인 드라이브를 할 때 “공기 같은 디자인”이라는 말을 자주했다. 하지만 그는 공기 같은 디자인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지 늘 화려하고 눈에 띄는 뭔가를 보이려고 노력했다. 공기 같은 디자인은 말 그대로 평소에서는 느끼지 못하지만, 그것이 희박해졌을 때 비로소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그런 디자인이다. 우리가 매일 보는 바탕체 글씨체 같은 것 말이다.

재스퍼 모리슨의 식기 세트 디자인.

재스퍼 모리슨은 바로 그 평범한 것, 공기처럼 소중하지만 나대지 않는 디자인에 충실한 몇 안 되는 스타 디자이너다. 자신의 작가 정신을 드높이기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디자인, 평범하지만 빼어난 디자인, 그것이 바로 재스퍼 모리슨 디자인의 특징이다. 그는 디자인의 신분상승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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