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힘과 노출의 공포...원나잇의 '비디오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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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힘과 노출의 공포...원나잇의 '비디오포비아'
  • 홍상현
  • 승인 2021.02.17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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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현의 인터뷰] 전주국제영화제 초창작 <비디오포비아> 미야자키 다이스케 감독
「비디오포비아」는 전주국제영화제 외에 북미의 가장 개성적인 필름페스티벌인 몬트리올 누보시네마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 미야자키 다이스케 감독의 작품으로는 네 편 째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비디오포비아」는 전주국제영화제 외에 북미의 가장 개성적인 필름페스티벌인 몬트리올 누보시네마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 미야자키 다이스케 감독의 작품으로는 네 편 째다. (사진은 주인공 ‘아이’로 분한 히로타 토모나 배우)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보는 눈이 많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어 행동이 제약을 받는다는 의미다. 시선의 주체가 익명의 불특정다수일 경우 더더욱 그렇다.

이와 같은 ‘시선’이 어떻게 권력으로 작동하지는 지를 독자와 평단 모두에게 극찬을 받는 서사문학으로 그려낸 대표사례가 세계적 밀리언셀러 『헝거 게임』이다. 소설의 무대인 독재국가 판엠은 수도를 뺀 12개 구역에 대한 감시를 24시간 늦추지 않는다. 각 구역에서 동원된 아이들은 수도 시민의 여가를 위해 목숨 건 서바이벌 게임을 이어간다. 지옥도의 배경에는 최고명령권자 코리올라누스 스노우가 있다. 시민들은 시선권력을 독점한 그의 앞에서 자기검열을 반복한다.

고대에서 중세까지의 권력자들은 퍼포먼스로 피지배층의 복종을 이끌어냈다. 거대한 궁성이나 대규모 병력의 무력시위 등을 활용했다. 근대에 이르러 권력자는 ‘보여주는 존재’에서 ‘보는 존재’로 위치가 바뀐다. 팬옵티콘(panopticon), 원형감옥의 감시자. 위에서 언급한 스노우 대통령의 자리다. 결국 수잔 콜린스에 의해 태어난 ‘디스토피아 판타지’는 18 세기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의 아이디어가 원형인 ‘고전적 스토리’였던 셈이다.

타고난 재능과 코스모폴리탄의 감성에 성실성까지 겸비한 야마자키 감독은 해외 평단으로부터 “내향적이며 비정치적인 일본영화계에 통렬한 일격”을 날렸다고 평가받는 사회파 청년영화인이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타고난 재능과 코스모폴리탄의 감성에 성실성까지 겸비한 야마자키 감독은 해외 평단으로부터 “내향적이며 비정치적인 일본영화계에 통렬한 일격”을 날렸다고 평가받는 사회파 청년영화인이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필자가 북미의 가장 개성적인 필름페스티벌인 몬트리올 누보시네마영화제에서 <밤이 끝나는 장소>를 통해 만나, <투어리즘>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하면서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한 미야자키 다이스케 감독의 신작 <비디오포비아>는 바로 이 팬옵티콘 이후, IT기술의 발달로 맞이한 시놉티콘(synopticon)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당연히 이 시기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누군가 횡포를 부리면 스마트폰 영상으로 기록, SNS에 공유함으로 여론을 조성하는 게 가능하니까. 하지만 미야자키 감독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 역기능을 지적한다. 전작인 미일합작영화 <야마토(캘리포니아)>로 국제무대에서 “내향적이며 비정치적인 일본영화계에 통렬한 일격”(《버라이어티》)을 날렸다는 평가를 받은 사회파 청년영화인답게 ‘n번방 사건’을 연상시키는 디지털 성 착취 범죄를 장르영화의 문법으로 재구성해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것이다.

작품의 내용은 이렇다. 배우의 꿈을 접고 고향 오사카(코리아타운)로 돌아와 지내던 주인공 ‘아이(히로타 토모나 분)’는 어느 날 클럽에서 만난 상대(오시나리 슈고 분)와 밤을 보내던 자신의 영상이 인터넷에서 유포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고민 끝에 문제의 남성을 찾아가지만 그곳에는 끔찍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이 에어비앤비(Airbnb)를 빌려 이루어진 계획범죄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무덤덤하기 짝이 없는 경찰당국과 주변 사람들. 그녀의 불안과 정신적 공황상태는 날로 심해진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된 지 1년 만에 <비디오포비아>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미야자키 감독을 만났다.

주인공 ‘아이(히로타 토모나 분)’는 어느 날 클럽에서 만난 상대(오시나리 슈고 분)와 밤을 보내던 자신의 영상이 인터넷에서 유포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고민 끝에 문제의 남성을 찾아가지만 그곳에는 끔찍한 진실이 기다린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주인공 ‘아이’는 어느 날 클럽에서 만난 상대(오시나리 슈고 분, 사진)와 밤을 보내던 자신의 영상이 인터넷에서 유포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고민 끝에 문제의 남성을 찾아가지만 그곳에는 끔찍한 진실이 기다린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홍상현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에 이어 올해는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셨습니다. 네 번째 장편상업영화로써는 놀라운 실적인데요.

미야자키 다이스케

최근 한국의 유명 영화제에서 연달아 불러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 인생은 ‘스텝바이 스텝(Step By Step)’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초청을 받을 수 있도록, 스텝바이 스텝으로 노력하고 싶습니다.

 

홍상현

<비디오포비아>로 몬트리올 누보시네마영화제에도 네 번째 초청되셨습니다. 게다가 현지 언론의 주목도 받으셨는데 작품의 어떤 부분이 어필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미야자키 다이스케

리벤지 포르노나 SNS의 부정적인 면이 우리사회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있다 보니, 동시대성이 평가를 받은 게 아닐까 합니다.

영화의 타이틀인 「비디오포비아」는 “비디오공포증”이라는 의미에서 착안한 것. “(영상매체에) 찍히는 것이 무섭다”나아가 “사람들에게 보여 지는 것이 무섭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영화의 타이틀인 「비디오포비아」는 “비디오공포증”이라는 의미에서 착안한 것. “(영상매체에) 찍히는 것이 무섭다”나아가 “사람들에게 보여 지는 것이 무섭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홍상현

<비디오포비아>라는 타이틀이 무척 인상적인데, 어떤 의미인가요.

미야자키 다이스케

“비디오공포증”이라는 의미에서 착안한 타이틀입니다. “(영상매체에) 찍히는 것이 무섭다”나아가 “사람들에게 보여 지는 것이 무섭다”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홍상현

<비디오포비아>의 제작은 이미 2019년에 끝나 있었던 걸로 압니다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한국의 ‘n번방 사건’과 맞물려 더욱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요. 제작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미야자키 다이스케

어렸을 때 간사이 지방에 살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오사카에서 뭔가 영화를 찍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야마토(캘리포니아)>의 프로모션을 위해 간사이 지방에 머무를 당시, 시간이 좀 남다 보니 “이 시간에 영화를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인테넷이 가진 폭력성에 위기감 또한 느끼고 있던 터라 아이디어를 심화시키게 되었습니다.

「비디오포비아」는 디지털 성 착취 범죄에 대한 감독의 작가적 주제의식에 장르영화의 기법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회파 영화’와 차별화된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비디오포비아」는 디지털 성 착취 범죄에 대한 감독의 작가적 주제의식에 장르영화의 기법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회파 영화’와 차별화된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홍상현

<비디오포비아>의 후반작업을 진행하실 당시 ‘장르상 스릴러에 해당한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첫 번째 장편상업영화인 <밤이 끝나는 장소>도 느와르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장르영화의 기법으로 작가적 주제의식에 접근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미야자키 다이스케

감사합니다. (웃음)

오랜 세월에 걸쳐 공부해 왔기 때문에 저 스스로는 대부분의 장르를 기초적인 레벨에서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로서는 단지 장르가 아니라 말씀처럼 장르적 기법을 버전 업 하는 것에서 파생되는 모더니티, 현대영화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홍상현

<비디오포비아> 이전의 두 편의 작품에서는 감독의 본인이 살고 계신 기지촌이며 저소득층이 비교적 많이 거주하는 가나가와 현 야마토 시 청년들의 모습을 그리셨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배경은 오사카인데요. 오사카라는 공간이 <비디오포비아>에서 갖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미야자키 다이스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사카는 예전에 그 인근에서 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요즘도 자주 찾게 되는 고장입니다. 또, 매번 방문할 때마다 느끼지만, 도쿄에 비해 ‘대륙’이나 ‘아시아’를 느낄 기회가 많죠. 원래 재일코리언 분들이 많이 살고 계셔서이기도 하겠지만, 요 몇 년 새에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며서 기후나 언어, 색조, 거리의 풍경 같은 문화의 전반적인 모습 또한 좀 더 대륙에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그렇듯 인종과 문화가 뒤섞이는 장소에 매력을 느끼는 까닭에 제 작품들 속에서도 많이 그려왔지요.

게다가 오사카는 이른바 ‘변두리’, 다시 말해 오래된 일본의 거리 풍경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도시입니다. 그러니 이 지역을 ‘찍는’ 것은 제가 살고 있는 가나가와 변두리의 야마토 시에서 영화를 찍는 것과 무척 유사한 경험이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미야자키 다이스케 감독은 「비디오포비아」를 흑백영화로 만들었다. 순수하게 빛과 그림자, 효과적인 연출만 있다면 미학적 수요를 만족시키는 영화적 영상을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미야자키 다이스케 감독은 「비디오포비아」를 흑백영화로 만들었다. 순수하게 빛과 그림자, 효과적인 연출만 있다면 미학적 수요를 만족시키는 영화적 영상을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홍상현

주인공을 ‘박’이라는 성을 가진 재일코리언으로 설정하신 의도가 궁금합니다.

미야자키 다이스케

저 자신 성장기에 미국에서 이민가정의 아이로 지내본 경험이 있습니다. 또, 고향이자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야마토 시의,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은 특징 때문에, 인간을 정의하는 방법, 다시 말해 국적이나 직함, 이름 등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지에 대해 흥미가 많았어요.

그런데 오사카는 재일코리언의 도시이기도 하거든요. 재일코리언은 법적으로 엄연한 외국인이지만, 제 주변 친구들을 보더라도 소위 ‘일본인’과 다르지 않더란 말입니다. <비디오포비아>의 문제의식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포스트모던의 시대, 직함은 고사하고 심지어 역사조차 무의미하게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일이라든가, 외국인, 하프, 혹은 부락 등과 같은 물려받은 신분에 대한 차별구조가 존재하는 현대일본사회의 아이러니를 그려보고 싶었어요.

 

홍상현

전작인 <야마토(캘리포니아)>나 <투어리즘>의 경우 화면의 컬러나 톤 앤 무드가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비디오포비아>의 경우 전편을 흑백으로 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본인의 장기인 뛰어난 광학적 감각을 희생하면서까지 얻으려고 했던 영화적 효과는 무엇이었나요.

미야자키 다이스케

제 성격이 좀 비뚤어진 탓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웃음) 전작에 대한 칭찬은 감사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다음 작품에서는 또 다른 포인트로 승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처럼 <야마토(캘리포니아)>에서도, <투어리즘>에서도 다들 선명한 색감에 대해 높이 평가해주셨거든요. 하지만 <비디오포비아>에서는 순수하게 빛과 그림자, 효과적인 연출만 있다면 미학적 수요를 만족시키는 영화적 영상을 찍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비디오포비아」의 주인공 ‘아이’는 ‘박’씨 성을 가진 재일코리언으로 설정되어 있다. 미야자키 다이스케 감독은 그 이유에 대해 “포스트모던의 시대, 직함은 고사하고 심지어 역사조차 무의미하게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일이라든가, 외국인, 하프, 혹은 부락 등과 같은 물려받은 신분에 대한 차별구조가 존재하는 현대일본사회의 아이러니를 그려보고 싶어서”였다고 설명했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비디오포비아」의 주인공 ‘아이’는 ‘박’씨 성을 가진 재일코리언으로 설정되어 있다. 미야자키 다이스케 감독은 그 이유에 대해 “포스트모던의 시대, 직함은 고사하고 심지어 역사조차 무의미하게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일이라든가, 외국인, 하프, 혹은 부락 등과 같은 물려받은 신분에 대한 차별구조가 존재하는 현대일본사회의 아이러니를 그려보고 싶어서”였다고 설명했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홍상현

<비디오포비아>에는 대단히 인상적인 재일교포 할머니의 인터뷰가 나옵니다. 내용은 이른바 ‘신병(神病)’과 무당에 관한 것인데요. 이 시퀀스는 작품 전체의 서사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나요.

미야자키 다이스케

우선은 할머니를 미스터리어스하게 묘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촬영을 준비하면서 실제 오사카의 코리아타운인 츠루하시에서 쭉 살고 계시는 분들을 취재했는데요.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논픽션인지 알 수 없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셨거든요. 그런데 바로 이것이 ‘뭐가 참말이고 뭐가 거짓말인지 알 수 없는’ 오늘의 세태, 나아가 <비디오포비아>의 주제와도 맞아떨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어머니’라는 존재가 가진 넓이와 섬뜩한 일면에 대해서도 표현해보고 싶었고요.

아무래도 제가 남성이다 보니 그렇겠지만 늘 ‘여성’이 가진 강인함과 불가사의함에 대해 주목하게 됩니다.

 

홍상현

늘 본인이 직접 쓰신 시나리오를 프로듀스하고 연출하기 때문에 발휘되는 특유의 능력이 있습니다. <비디오포비아>에서는 사회적 마이너리티인 캐릭터를 뛰어나게 연기해낸 주연배우 캐스팅이 돋보였는데요. 히로타 토모나 씨를 캐스팅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촬영을 진행하시면서 히로타 배우에 대해서는 어떤 디렉션을 하셨나요.

미야자키 다이스케

앞서 드렸던 말씀을 일부 반복하게 될 텐데요.

<비디오포비아>의 영화문법은 가능한 한 설명이나 대사를 줄이고 빛과 그림자의 연출에 중점을 두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흡사 가면과도 같이 빛과 그늘만으로 감정을 보일 수 있는 히로인이 필요했는데요. 히로타 배우가 무척 독특한 이미지의 소유자라서 배역에 안성맞춤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연출과 관한 내용을 말씀드리면, 현장에서 일부러, 평소와 비교하면 억압적인 태도로 작업에 임했습니다. 항상 화가나 있는 척을 했지요. 그렇게 히로타 배우, 즉, 주인공의 불안과 그 장서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초조ㆍ긴장감이 드러나는 모습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미야자키 다이스케 감독은 「비디오포비아」를 만들면서 “흡사 가면과도 같이 빛과 그늘만으로 감정을 보일 수 있는 히로인”을 필요로 했다. 이미 그도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거니와, 그런 상황을 고려할 때 히로토 토모나 배우의 캐스팅은 말 그대로 ‘적확’했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미야자키 다이스케 감독은 「비디오포비아」를 만들면서 “흡사 가면과도 같이 빛과 그늘만으로 감정을 보일 수 있는 히로인”을 필요로 했다. 이미 그도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거니와, 그런 상황을 고려할 때 히로토 토모나 배우의 캐스팅은 말 그대로 ‘적확’했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홍상현

매번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미야자키 다이스케

제게 있어 ‘영화 만들기’란 답이 나오지 않는 일, 다시 말해 ‘알 수 없는 불가능성’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성인 제가 도달 ‘불가능’한 존재인 여성이 매번 주인공이 된다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홍상현

일본 독립영화계의 독보적인 캐릭터인 이란 출신 여성 연기자 사헬 로즈 배우의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미야자키 다이스케

저는 풍경에서 떠오르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존재를 좋아합니다. 예컨대, 얼마 전에 전차 안에서 저녁식사로 먹을 카레를 주제로 유창한 일본어를 사용하며 대화하고 있는 아프리카계 자매를 보았거든요. 이렇듯 제 안에 자리 잡고 있던 관념을 깨뜨려주는 존재를 볼 때마다 세계가 조금은 풍요로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일본어가 일본인 이상으로 능통한 페르시아인 사헬 로즈 배우도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사헬 배우에게는 주인공을 악몽에 끌어들이는 남성캐릭터로 분한 오시나리 슈고 배우에게 요구했듯이, 주변을 부유하는 신 같은 분위기를 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사회에서 누군가의 주위를 맴도는 존재는 숭배를 받거나, 혹은 배척을 당하지요. 아울러 극중의 사헬 배우가 신이냐 악마냐, 혹은 인간이냐, 관객이 이 부분에 대해서 나름대로 의문을 가져주기 바랐습니다.

일본 독립영화계의 독보적인 캐릭터인 이란 출신 여성 연기자 사헬 로즈 배우에게 미야자키 다스케 감독은 주인공의 “주변을 부유하는 신 같은 분위기를 내 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는 감독의 디렉션을 200퍼센트 이상 실현했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일본 독립영화계의 독보적인 캐릭터인 이란 출신 여성 연기자 사헬 로즈 배우에게 미야자키 다스케 감독은 주인공의 “주변을 부유하는 신 같은 분위기를 내 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는 감독의 디렉션을 200퍼센트 이상 실현했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홍상현

<비디오포비아>는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영화이지만 자극적인 표현이나 감정의 과잉을 최대한 절제한 느낌이 듭니다.

미야자키 다이스케

<비디오포비아>의 경우도 주제의 특성상 누드신이 불가피했지만 배우들의 도움으로 만족스러운 장면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 독립영화에 일단 작품이 노악(露惡)하게 흐르는 경향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죠. 필요 이상으로 에로틱하거나 그로테스크하고, 대사에 불필요한 욕설을 사용하는 등, 자신의 상스러움을 과시하는 것과 예술을 착각하는, 지능도 품위도 없는 패거리를 종종 봅니다. 저는 그런 낮은 레벨의 노악이나 오리엔탈리즘에 영합할 생각이 추호도 없는 까닭에 <비디오포비아>를 만들면서도 이 부분에 특히 노력을 기울였어요. 그 결과 영화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면서 극단주의를 피해가는 작품이 태어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홍상현

<비디오포비아>상영과 관련해 클라우드 펀딩을 진행하신 걸로 압니다. 다른 독립영화인들에게도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미야자키 다이스케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홍보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번에 처음으로 클라우드 펀딩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클라우드 펀딩이라는 건 인간관계를 수치화하고, 이를 소비와 등치시키는 측면 또한 갖고 있는 까닭에 영화라는 큰돈이 필요한 미디어를 지속적으로 제작해 나가는 데 활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하는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아닐까 합니다.

다만, 스타트업 단계에 계신 분들이 영화를 제작하는 데는 무척 요긴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창작자 본인, 또는 그 가족의 출자가 제작비의 근간이 되는 경우가 태반이니까요. 이렇게 클라우드 펀딩으로 인연을 맺은 분들이 지속적인 서포터로 발전하는 경우 또한 감안해볼 수 있을 겁니다.

「비디오포비아」는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영화이지만 자극적인 표현이나 감정의 과잉을 최대한 절제함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비디오포비아」는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영화이지만 자극적인 표현이나 감정의 과잉을 최대한 절제함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C)2020 VIDEOPHOBIA Film Partners

“<비디오포비아>는 디지털 성 착취 범죄의 피해자가 된 여성의 고통을 스크린 너머에서 응시함으로서 관객을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만들어 보려는 연출의도를 가진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스크린 안팎이 연결되어 있거든요.

우리는 불확실성 속에서 모든 것이 SNS의 ‘좋아요’숫자로 평가되는 가운데, 사람의 불행, 심지어 생사조차 일회성으로 소비되는 현대사회에서, 겉모습에 치중한 삶을 살아갑니다. <비디오포비아>가 그런 우리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지금의 나와 세상에 대해 살펴보고,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반문해주는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비디오포비아>는 저를 한국에서 개최되는 국제영화제에 두 번째로 초청받게 해 준 작품인데요. 아시아서도 후진적인 영화계 환경에서 활동하고 있는 필름메이커로서, 아시아에서 가장 선진적인 한국 관객들로부터 선택을 받았다는 데 크나큰 영광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타고난 재능과 코스모폴리탄의 감성에 성실성까지 겸비한 야마자키 감독은 최근 지난 몇 년 간 찍은 실험영화와 다큐멘터리의 편집 작업을 진행하는 중이다.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새 작품의 프리 프로덕션에 들어갈 계획인데, 어떤 작품이냐고 물으니 ‘오랜만에 제 작품에서 남성 주인공을 보게 되실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쩌면 필자와 그를 만나게 해 준 몬트리올 누보시네마영화제 초청작 <밤이 끝나는 장소> 이상의 걸작을 다시 한 번 한국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홍상현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을 갖추고 한ㆍ일 두 나라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교수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 같은 대학 이미지인류학연구실(IAL)의 네트워크 멤버였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의 논쟁적인 저작을 소개한 번역가이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거쳐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램 어드바이저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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