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대통령 전담통역관' 사칭한 가짜 고대교수, 공무원에게 청렴강의했다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1.02.2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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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는 주로 공무원 교육기관에서 강의를 하는 강사다. 그의 강연 이력은 700여 차례에 이를 정도로 많다. 그의 SNS와 블로그엔 '고려대 겸임 교수' 등 화려한 이력이 가득했다. 뉴스톱이 취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뉴스톱에 제보가 도착했다. K씨의 경력이 날조됐다는 게 골자다. 뉴스톱은 K씨가 SNS 등을 통해 홍보하고 있는 경력에 대해 검증했다. 그 결과 '고대 겸임 교수', '외교부 통역관(서기관)', '국회 통역관(사무관)' 등 그가 내세우고 있는 경력은 가짜로 확인됐다.

 

◈고대 교수도 외교부 서기관도 아니었다

출처: K씨 페이스북(삭제 전)
출처: K씨 페이스북(삭제 전)

 

①고대 겸임 교수?

K씨는 스스로를 고려대 겸임교수라고 홍보했다. 원격으로 공무원 대상 화상 강의를 열고 SNS에 올릴 때는 장소를 '고려대학교'로 노출되도록 설정했다. 고려대 본관 앞에서 찍은 사진을 내세우며 '고대 겸임 교수' 직함을 사용한 언론 인터뷰 기사도 내보냈다.  

뉴스톱은 고려대학교에 정보공개를 통해 K씨의 겸임 교수 재직 경력을 확인했다. 고려대 측은 회신을 통해 '정보 부존재' 통보를 해왔다. 유선을 통해 확인한 결과 고려대 관계자는 "K씨의 재직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②외교부 통역관(서기관)?

뉴스톱은 외교부에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K씨의 통역관(서기관) 재직 경력을 확인했다. 외교부는 "요청 대상자의 외교부 공무원 재직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③국회 통역관(사무관)? 

뉴스톱은 국회에도 K씨의 재직 기록을 확인했지만 "기록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국회 관계자는 "통역 업무를 단건으로 용역을 줬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 경우 통역관으로 근무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④주한미국대사관 외교관?

이밖에 K씨가 내세운 다른 경력도 의심스럽다. K씨는 2005년 5월부터 2006년까지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외교관(Diplomat)으로 근무했다고 본인의 프로필에 적었다. 하지만 K씨는 대한민국 외교부 외교관(Diplomat)도 경력으로 내세웠다. 한국 외교부 공무원이 미국대사관 외교관으로 근무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⑤대통령 전담 통역관?

게다가 K씨는 프로필에서 2003년 9월 1일부터 2013년 5월 7일까지 청와대 대통령 전담 통역관으로 근무했다고 주장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통역을 맡았다는 주장이다. 외교부는 K씨에 대한 청와대 파견 기록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자체 채용을 했을 가능성은 있기에 대통령 통역관 근무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정권교체가 되면 전 정부 청와대 직원들은 모두 교체된다. 해외 정상과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대통령 통역관을 이전 정부 사람을 쓰는 일은 거의 없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3명의 대통령을 전담 통역했다는 K씨의 주장이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유다. 게다가 앞서 확인했듯이 K씨는 외교부에도, 국회에서도 근무한 경력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 동시통역 경력 역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⑥ 고대 정외과 졸업?

K씨는 1993년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고 각종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뉴스톱이 고대 정외과 93학번 졸업생에게 확인한 결과 동기중에 K씨와 같은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 93학번 졸업생은 "정원이 60명이기에 모든 동기생을 다 알고 있지만 그런 이름은 없다. 다만 복수전공을 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특정인의 졸업 여부는 개인정보라서 학교측에서 확인해주지 않는다. 

 

◈30분 통화 끝에 "고대 겸임 교수 아냐"

 

출처: K씨 블로그
출처: K씨 블로그

 

뉴스톱은 K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K씨는 자신의 전화번호가 담긴 프로필을 배경으로 강연하는 사진을 SNS에 올렸다. 이 전화번호로 K씨와 연결됐다. K씨는 30분 가까이 통화한 끝에 자신이 고대 겸임 교수로 재직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K씨는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는 교수가 겸임 교수로 활동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었다"며 "논의가 진행되는 도중 강사법이 바뀌면서 없었던 일이 됐다"고 말했다.

뉴스톱이 취재에 착수하자 K씨는 SNS에 자신의 경력과 관련된 부분을 모두 삭제했다. '고려대 교수'라는 표현이 들어있던 해시태그도 모조리 삭제했다.

그러나 K씨는 통화 과정에서 "누가 제보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나로 인해 피해 본 것도 없으면서 헐뜯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오히려 제보자를 문제삼기도 했다.

하지만 거짓이 워낙 길고 많았기 때문인지 미처 삭제하지 못한 블로그 프로필 등에 허위 경력 일부가 아직도 남아있다.

 

◈뒤늦게 허위 경력 실토

K씨는 이후 수차례 뉴스톱과 통화에서 해명을 시도했다. K씨는 설명 과정에서 어조가 바뀌고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에 뉴스톱은 K씨에게 스스로 홍보한 경력 전체에 대한 증명을 서면으로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K씨는 "프리랜서 동시통역사로 일하면서 케이스 별로 다국적 기업과 정부 차원의 행사에 자주 참여했다"며 "당시 상황상 언제든지 공직에 들어가 정식 통역관으로 근무할 기회도 많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후로 일을 하면서 허위 및 과대포장을 했던 게 사실임을 인정한다"고 실토했다.

프리랜서 통역사로 건건이 통역을 맡았던 것이 전부인데도 대통령 전담 통역관, 외교관 등의 가짜 경력으로 포장한 것이다.

K씨가 스스로 허위였다는 것을 인정한 경력은 ▲고려대 정치학 박사 전공 ▲대한민국 외교부 근무 ▲대한민국 국회통역관 근무 ▲대한민국 청와대 대통령 전담 통역관 근무 ▲주한미국대사관 Diplomat 근무 ▲SBS 동시통역사 근무 이다.

K씨가 스스로 홍보한 경력에 대해 증빙 자료로 제시한 것은 고려대 정치학 석사 학위증 뿐이다. 

 

◈오래된 사칭, 아무도 거르지 못했다

 

K씨는 고려대 겸임교수를 사칭하며 고려대학교 본관을 배경으로 언론 인터뷰 사진을 찍었다.
K씨는 고려대 겸임교수를 사칭하며 고려대학교 본관을 배경으로 언론 인터뷰 사진을 찍었다.

K씨가 '고려대 겸임 교수'라는 타이틀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는 2015년 무렵인 것으로 추정된다. K씨는 '고려대 겸임 교수'라는 직함을 쓰고 언론 인터뷰도 여러 차례 진행했다. 관련 기사는 아직도 인터넷에서 검색이 가능하다. 고려대학교 본관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도 인터뷰 기사에 첨부됐다. K씨는 '고려대 겸임 교수'라는 직함으로 여러 언론에 칼럼을 게재하기도 했다. 

K씨는 서울신문, 한국일보, 서울경제신문, 중도일보, 메트로신문에 칼럼을 기고했다고 본인의 페이스북 프로필에 적어놨다. 확인 결과 중도일보에는 허위 사실인 '고려대 겸임교수' 직함으로 칼럼을 연재했다.

서울신문과 한국일보에는 단발성 기고를 실은 게 전부였다. K씨는 이에 대해 "언론사 관계자와의 친분으로 기고문 게재를 부탁했다"고 밝혔다.

100차례 넘도록 이어진 메트로신문 칼럼 연재에는 "전 대통령 전담 통역관, 주한 미대사관 외교관"이라는 허위 직함을 사용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K씨는 과거 자유한국당 인재영입위원 1호로 영입됐으며 2017년 대선에서는 중앙당 SNS 부본부장을 맡아 홍준표 대선후보를 측근에서 돕기도 했다. 또 2018년 6월 재보궐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뉴스톱은 이에 대한 해명을 요청했는데, K씨는 이에 대해 2017년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 명의로 발급된 임명장을 제시했다. 인명진 비대위원장 명의로 발급된 인재영입위원회 위원 임명장도 함께 제시했다.

 

◈'가짜 교수'에 '청렴 교육' 받는 공무원들…경력 검증 없음

가장 큰 문제는 K씨가 공무원 대상 강의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K씨는 최근까지도 충북자치연수원, 경북인재개발원, 전남인재개발원, 광주공무원교육원, 여수해양경찰교육원, 대전인재개발원, 행정안전부 지방자치인재개발원, 충남교육청평생교육원, 전남교육연수원, 교육부 중앙교육연수원, 전북인재개발원, 충남공무원교육원, 해양경찰연구센터, 탐라교육원 등에서 '청렴 교육' 등 많은 분야를 강의했다.

그가 내세운 외교관 경력과 대통령 통역관 경력이 강의를 맡는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부 강의는 허위 사실인 청와대 통역관 근무 경험을 주제로 진행하기도 했다.    

K씨가 출강했던 전남인재개발원에 K씨에게 강사를 맡기게 된 경위와 K씨의 경력을 검증했는지를 물었다. 전남인재개발원은 "K씨가 운영하는 사설 연구소 소장 자격으로 강의를 맡겼다"며 "고대 겸임 교수가 됐다고 본인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지만 따로 검증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K씨가 고대 겸임 교수 직함을 사칭했다는 점을 알려주자 "사실 관계를 확인한 뒤 내부 논의를 거쳐 적절한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K씨가 출강했던 행정안전부 지방자치인재개발원도 별다른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방자치인재개발원 관계자는 "강사에게 프로필을 제출받고 본인에게 확인하는 것 외에는 별도로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남의 소설을 도용해 문학상을 여러 개 수상한 손창현씨의 행적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뉴스톱은 손씨 이력 대부분이 거짓임을 다른 언론에 앞서 팩트체크 한 바 있다. 일반인들이 개인의 화려한 거짓 SNS 경력에 속아 넘어갈수는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은 최소한의 이력을 검증할 필요성이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허술한 강사 경력 검증 시스템은 '가짜 교수'가 700차례 넘도록 강의를 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걸러내지 못했다. 그 결과 철썩같이 K씨를 교수라고 믿은 수많은 공무원 교육생들은 '교수님 화이팅'을 외치며 그의 강의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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