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놀이'하는 수조원 기금재원, 지금 안쓰면 언제 쓰나

  • 기자명 이상민
  • 기사승인 2021.03.0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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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피해지원금을 담은 21년도 추경이 발표됐다. 논쟁은 언제나 동일하다. 요즘처럼 가계와 기업이 돈을 안 쓸 때는 정부라도 억지로 돈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G20 경제선진국 10개국 중, 우리나라가 코로나19 관련 지출이 제일 적다. 그 결과 2020년 재정수지 적자 비율도 가장 낮다. 또 다른 주장도 있다. 저출생 고령사회를 대비하자면 재정여력을 비축해놓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결국 정도의 문제처럼 보인다. 재정 수지 적자를 70조만 허용할지, 아니면 100조를 감내할지 단순한 선택의 문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3의 길도 있다. 수입이 고정되어있는 상황에서 돈이 필요하다. 덜 쓰는 것과 빚지는 것 말고 또 어떤 부분이 있을까? 서랍과 오래된 코트 주머니를 뒤져보는 방법이 있다. 안 쓰는 통장에 있는 남은 돈도 활용해야 하고 적금이나 보험을 깨는 방법도 있다. 청약저축 통장처럼 아무리 돈이 없어도 유지해야 하는 통장도 있지만 오래된 친구 의리상 가입한 덜 필요한 보험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 당장 쓸 돈이 없어서 빚을 더 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언젠가 쓸 일이 생기겠지”란 생각으로 모으고 있는 돈부터 쓰는 것이 좋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수입은 늘지않지만 지출할 곳은 넘쳐난다. 적자국채를 100조원 가까이 발행 하는 상황에서도 딱히 용처가 없이 ‘놀고있는 돈’이 존재할까? 불행히도 그렇다. 정부도 용도에 따라 여러개의 ‘통장’이 있다. 가장 중요한 보통예금 통장 같은 일반회계도 있지만, 각종 특별회계와 기금이라는 이름의 통장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통장 중에서는 국민연금 기금처럼 무려 700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있지만, 단 한 푼도 꺼내 쓰면  안 되는 통장도 있다. 700조원 모두 국민연금 지급으로 지출할 계획이 이미 잡혀있는 보험성 기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업성 기금에 “언젠가 쓸 일이 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으로 지출 계획조차 없이 남아 있는 돈도 많다. 한쪽에서는 돈이 모자라지만 다른 쪽에서는 돈이 넘치는 ‘재정의 칸막이’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장애인고용촉진기금 중 '이자놀이'만 1조원...장애인 사업에 쓰면 안 될까?

예를 들어보자. 장애인 고용촉진 기금이 있다. 장애인 의무 고용 비율을 채우지 못한 기업이 내는 법정부담금이 주요 수입원이다. 그런데 수입이 넘친다.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고 돈으로 때우는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17년도 법정부담금 수입은 4500억원 정도였다. 그런데 18년 5500억원, 19년 6200억원을 거쳐 21년도 올해 법정부담금 예상 수입은 8100억원이다. 수입이 넘친다. 반면 지출은 항상 그에 미치지 못하니 여유자금이나 순자산은 커지기만 한다. 결국, 21년도 기금 사업 계획을 보면 여유자금 약 1조원은 금융기관에 예치하거나 기재부 소관 공공자금관리기금에 예탁한다.

 

<연도별 장애인고용촉진기금 법정부담금, 사업 지출액, 여유자금, 순자산(단위: 백만원)

연도

법정부담금

사업 지출액

예치금

공자기금 예탁액

여유자금

순자산

’17

453,236

256,319

474,604

50,000

524,604

1,132,282

’18

552,121

302,831

739,280

150,000

889,280

1,343,529

’19

619,090

420,379

497,140

200,000

697,140

1,574,441

’20

707,708

521,585

503,641

150,000

653,641

1,751,954

’21

807,045

602,878

699,293

300,000

999,293

1,908,707

  • 연도별 고용노동부 결산서 예산서 취합. 17~ 19 결산기준. 20, 21 예산기준

 

21년도 코로나19 위기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장애인이자 미취업자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면 정말 힘들 수밖에 없다. 이런 장애인을 위한 사업을 늘려야 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장애인 사업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이유는 미취업 장애인에 돈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의지 문제는 아니다. 돈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일 테다. 그런데 놀랍게도 장애인 고용촉진기금에는 쓰지도 못하고 ‘이자놀이’만 하는 돈이 1조원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조적으로 돈은 더 쌓일 수밖에 없다. 장애인 의무고용을 채우지 못한 기업이 내는 부담금에서 매년 2천억원 가량의 순수입이 발생한다. 이러한 순수입이 쌓여 순자산 규모는 1.8조원에 달한다. 이렇게 여유자금이 영원히 커지는 것을 보기만 해야 할까? 구조적으로 돈이 쌓여만 가고 있다면, 법을 바꾸더라도 장애인을 채용한 기업이 아니라 장애인을 직접 지원하는 사업에도 일부 지출하는 것은 어떨까. 기존 일반회계로 지출되는 장애인 관련 사업을 확대해서 기금사업으로 전환한다면, 장애인도 이득이고 일반회계 지출을 줄일 수 있어 국가 재정 여력도 발생한다.

 

영화발전기금에 있는 2천억원의 여유재원 영화인들에 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마찬가지로 영화발전기금에도 여유 재원이 존재한다. 21년 사업계획 총액 3천억원 중, 금융기관에 예치하는 사업 금액이 1880억원이다. 영화발전기금은 국민연금처럼 보험성 기금이 아니다. 영화를 진흥하겠다는 사업 목적으로 존재하는 사업성 기금인데 실제 사업하는 돈보다(1050억원) 예치하겠다는 돈이 훨씬 더 많다. 영화발전기금 순자산은 4천억원이다. 대부분은 장단기 투자증권에 있다. 활용하려면 활용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영화발전기금은 영화 티켓값의 3%가 적립되니 안정적인 수입 근원이 있다. 수입기반이 탄탄한 기금이라면 코로나19로 어려운 영화인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출할 방안을 찾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물론 기금의 고유목적 사업이 있어 법에 열거된 기금 고유목적 사업 외에 지출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법을 바꾸면 그만이다.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영화인들이 있고, 이자놀이를 하는 수천 억원의 돈이 있다. 돈이 있는데도 못 쓰고, 안 쓰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영화발전기금 19~21 사업계획 결산액> (단위: 백만원)

2019

결산

2020계획액

2021년도

본예산

당초

수정(A)

263,672

269,514

269,514

305,245

영화산업 육성 지원

62,978

89,948

118,661

105,266

영화발전기금운영비

10,432

11,587

11,587

11,741

통화금융기관 예치

115,261

167,979

139,266

188,238

  •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기금 21 사업설명서

 


국민체육진흥기금에 있는 여유재원은 아예 일반회계로 전출해서 일반재원으로 쓸 수 있어

로또와 스포츠토토 중 매출액이 어느 것이 더 높을까? 놀랍게도 스포츠토토 매출액이 로또를 추월한 지는 벌써 10년 됐다. 2010년도 2조원이 안 되던 스포츠토토 판매액이 19년도에는 무려 5조원을 초과했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스포츠토토 수입금은 거의 국민체육진흥기금이 독식한다. 10년 동안 수입이 두 배가 늘었기에 지출도 두 배로 늘리느라 고생이 많다. 지출처가 필요해서 돈을 쓰는 것이 아니다. 예상치보다 넘치는 수입을 따라가느라 지출 사업계획을 억지로 만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돈이 많아서 고생인 곳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더 문제는 아무리 지출계획을 늘려 잡아도 넘치는 수입을 다 쓰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올해 여유 재원 규모는 9500억원에 달한다. 기금 순자산은 19년 3.6조원에서 올해는 4.1조원으로 증가했다. 그 사이 스포츠산업 융자사업 금액만 1500억원에서 3500억원으로 폭증했는데 이도 사실 사업의 외피를 쓴 이자놀이다. 융자사업을 이차보전으로 전환하면 사업 규모를 줄일 수 있다.

스포츠토토에서 나온 수입은 스포츠에 쓰는 것이 논리적으로 합당하다는 것이 국민체육진흥기금이 스포츠 토토 수입을 독식하는 논리다. 그러나 우리 솔직해지자. 스포츠토토의 수입이 넘쳐나는 이유는 ‘스포츠’ 토토이기 때문이 아니라 스포츠 ‘토토’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가가 독점적으로 허용한 사행산업의 특혜를 누린단 얘기다. 만약 스포츠 토토를 폐지하고 대신 ‘빙고토토’나 ‘오목토토’를 만들면 어떻게 될까? 빙고나 오목이라는 게임으로도 수조원의 매출은 조만간 달성되지 않을까? 그럼 그때도 수조원의 수익을 빙고나 오목 산업에만 써야 할까? 사행산업은 ‘필요악’이라고 부른다. 사행산업이 가진 문제점이 있지만 그래도 꿩잡는게 매라는 이유로 존재한다. 사행산업에서 버는 돈으로 복지사업 등 좋은 곳에 돈을 쓰겠다는 논리다. 필요악으로 마련한 돈은 우선순위를 정해서 지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스포츠 분야만 사행산업 수익이라는 열매를 독식해서는 안 된다. 아니 독식한 열매를 쓰지도 못하고 현금과 투자자산만 2.7조원 가지고 있다. 2.7조원의 자산을 일반회계에 전출해서 전국민의 필요 우선순위에 써야 하지 않을까?

 

 

복권기금도 마찬가지다

원래 복권기금이라는 것은 과거 주택복권, 체육복권 등 각종 기금의 재정의 칸막이를 해소하고자 만들어졌다. 즉, 주택복권이던, 체육복권이던 전체 복권을 하나의 주머니(복권기금)에 넣고 우선순위에 맞춰 지출 하자는 생각이다. 결국 2004년도 각종 복권들을 통합한(스포츠 토토는 복권이 아니다.) 복권기금이 탄생했다.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문제는 복권기금이 탄생한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도 복권기금 탄생 당시 기득권 비율이 큰 변화 없이 유지 되고 있다. 사업의 우선순위에 따라 지출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전 발행 규모 비율 기득권이 상당 부분 현재 사업 규모를 정하고 있다.

그런데 기금이나 특별회계의 존재이유를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자. 우체국 우편사업에서 수익이 발생하면 이것을 일반회계에 모두 전출하고 일반회계에서 돈을 타 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편 사업을 아무리 효율화 해서 돈을 절약해도 그 혜택이 우편 사업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재정의 책임성이 약화된다. 기금이나 특별회계 같은 다른 주머니가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복권기금에서 서울 장애인학습관을 지원하고 전북의 결식아동을 지원한다. 장애인 학습관이 복권 판매 캠페인이라도 해야 할까? 수입과 지출의 연계성이 부족하고 책임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특히, 복지제도를 설계할 때 중요한 것은 중복과 배제다. 복지제도 설계는 선심 베풀 듯이 하면 안 된다. 흔히 미담이나 불우한 사연이 하나 언론에 소개되면 전국의 선한 의지가 한 곳에 집중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사연은 많은 법이다. 국가 복지제도는 이러한 중복과 배제 현상을 없애고자 촘촘한 시스템이 마련되어있다. 그런데 이런 복지제도 밖에 또다시 복권 기금이 존재하여 세종에 있는 ‘보람복지관’을 지원하고 울산에서는 울산양육원을 지원한다. 그럼 보람복지관과 율산양육원이 아닌 다른 복지관과 양육원과의 형평성 문제나 중복과 배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니 왜 각종 복지제도를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 사무처 사무관이 기획하고 집행할까? 주무부처가 일관된 복지 시스템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아예 복권기금은 폐지하고 전액 일반회계로 전출하여 일반재원으로 쓰는 것은 어떨까? 일반회계에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회계로 국세 수입 대부분의 재원으로 국가 전체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고 결산한다. 이렇게 효율적이고 투명한 체계 밖에서 복권기금을 만들고 복권위원회를 만들고 따로 별도의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면 그만큼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복권기금의 우선순위란 것은 필요한 곳에 지출되기보다는 2004년도 복권기금이 만들어질 때 당시의 기득권 비율이 지출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오죽하면 지금도 돈이 남아서 걱정인 국민체육진흥기금에 복권기금 전출금이 존재한다. 2004년 복권기금 탄생전의 스포츠복권 기득권 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제3세계에서 굶고 있는 아이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아이가 굶고 있는 다른 한편에서는 음식이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프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어렵다고 하는데 재정사업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재정의 칸막이로 인해 다른 쪽에서는 돈이 넘쳐서 고생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프다.

수입은 정체되고 지출할 곳은 폭증하는 상황에서 지출을 줄일지 빚을 추가로 낼지 고민하고 있다. 한쪽에선 증세하자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지출을 줄이자고 한다. 이런 모든 논의를 하기 전에 일단 오래된 코트 주머니부터 뒤지는 것은 어떨까? 코로나19의 위기가 재정개혁이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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