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의 '빌드업 축구'는 한국에 맞지 않다

  • 기자명 김지석
  • 기사승인 2021.03.3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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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25일 논란 속에 강행된 우리 축구 대표팀의 원정 한일전 0:3 참패의 충격이 크다.

대표팀이 2군에 가까운 정상 전력이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경기결과와 경기력, 심지어 경기매너에서 나타난 대표팀의 현실은 참담했다. 더구나, 파울루 벤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K리그 팀들과의 소통 부재로 인한 선수파악 및 컨디션관리 실패, 독불장군식 선수투입 편중현상, 빌드업 축구의 고집과 전술적 다양성 부재 등의 문제가 여실히 드러나며 팬과 언론의 질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친선전임에도 이례적으로 한일전 참패에 대한 공식 사과문을 올리며 한일전 참패 충격의 진화에 나섰고, 대표팀 지원 체계 강화를 약속하며 벤투 감독을 감싸 안았다.

그렇다. 소통-지원체계와 같은 부분은 개선의 여지가 충분한 문제이며, 원활히 개선되어 나갈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빌드업 축구에 대한 감독의 전술적 고집은 쉽지 않은 문제로 보여진다. 수많은 팬과 언론은 벤투가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빌드업 축구가 한국 대표팀에 맞지 않는 옷이라 지적한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3월 25일 열린 축구국가대표 A매치 한일전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파울루 벤투 감독이 3월 25일 열린 축구국가대표 A매치 한일전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빌드업(build-up) 축구란?

감독은 저마다 자신의 축구를 특징짓는 철학을 가지고 팀을 구성한다. 우리 대표팀의 각급 감독들에게서도 그러한 철학적 특징들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은 체력과 스피드를 강조하며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어냈다. 최근 대표팀의 경우, 슈틸리케 감독은 점유율 축구를 강조했으며, 신태용 감독은 패스 앤 무브(pass and move)’를 강조하는 다이내믹한 공격축구를 지향했다. 김학범 U23 감독은 체력, 압박, 속도를 강조하며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고 있고, 정정용 U20 감독은 빠르고 역동적인축구와 전술적 다변성을 바탕으로 FIFA U20 월드컵 준우승을 이루었다. 한마디 말로 지도자의 근간이 되는 축구 철학을 다 설명할 수 없겠으나, 리더십의 핵심 지향점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다.

빌드업(build-up) 축구란 유기적인 온/오프더볼(on/off the ball) 움직임과 정교한 패스웍을 통해 골키퍼를 포함한 최후방 수비라인에서부터 상대의 압박을 효율적으로 벗어나며 공격을 전개해나가는 점유율이 강조되는 축구를 의미한다. 긴 패스를 통해 단 한번에 이루어지는 공격전개 역시 일종의 빌드업 전술이 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빌드업이란 흔히 숏 패스 위주의 빌드업 전술로 그 쓰임이 굳어진 듯 하다.

벤투 감독의 축구 철학은 바로 이러한 유기적 움직임과 정교한 숏패스 위주의 빌드업 축구로 요약된다.

3월 25일 열린 축구 한일전  A매치에서 김영권 선수가 드리블을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3월 25일 열린 축구 한일전 A매치에서 나상호 선수가 드리블을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팬이 원하는/원하지 않는 축구는?

그렇다면 대한민국 축구팬들은 우리 대표팀이 어떠한 축구를 지향했을 때 열광해왔을까. 어떠한 축구를 지향했을 때 대한민국 축구팬은 승패를 떠나 대표팀을 지지해왔을까.

대한민국 축구는 전통적으로 체력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피지컬적이고 역동적이며 간결한 공격축구로 특징되어 왔다. (거기에 우리 대표팀이 가진 남다른 투지와 근성은 언제나 정량화된 경기력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우리만의 색깔이고 무기였다. 이러한 정신전력은 이 글에서 논하지 않겠다.)

대한민국 축구가 이루어낸 가시적인 성과들에는 언제나 이러한 우리 축구 고유의 특징과 장점들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2002 월드컵 4강의 과정이 그러했고,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과정이 그러했으며, 가깝게는 2019 U20 월드컵 준우승 과정이 그러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2:0 승리, 201711EAFF E-1 챔피언십 일본전 4:1 승리, 그 외에도 아시안게임, 각 연령별 아시아 챔피언스컵 등 아시아와 세계 무대에서 성과를 낸 순간에는 언제나 체력스피드를 앞세운 역동적이고 간결우리의 축구가 발휘되어 왔다. 친선 경기에서는 201711월의 콜롬비아전(2:1 ), 20193월의 콜롬비아전(2:1 )의 모습에서 이러한 한국 축구의 특성이 잘 드러났다. 또한 경기에서 비록 패했더라도 우리 축구의 특성이 잘 드러났을 때에는 어김없이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호평이 내려졌는데,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1:2 ), 201911월 브라질 친선전(0:3 ) 등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겠다.

조직적이고 투지 넘치는 수비, 수비에서 소유된 볼의 지체없는 공격전환, 발빠른 측면공격 자원을 활용한 스피디한 공격전개, 공격수의 주저함 없는 마무리. 이러한 경기 모습은 우리 대표팀이 보여준 성공적인 사례에서 어김없이 나타났던 장면들이며, 팬들은 우리 대표팀이 이러한 시원시원한 경기력을 보여줄 때 승패를 떠나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반면, 축구팬에게 실망을 안겨준 경기들에서 나타난 일관된 특징도 존재한다.

머뭇거리고 주저하며 양보하는 수비, 수비지역에서의 불필요한 횡패스와 후방패스, 그리고 실수에 의한 실점, 지나치게 완벽을 지향하는 듯한 공격전개와 이로 인한 속도저하, 찬스에서 조차도 슛을 시도하지 않는 지나친 패스웍, 그리고 상대에게 허용하는 역습 등 답답함을 보인 경기들에서 대표팀은 어김없이 팬과 언론의 질타를 받아왔다. 이러한 모습의 경기에서는 승패와 상관없이 (비록 약체 팀을 상대해 승리하였더라도) 팬들은 실망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점유율 축구에서 꾸준히 드러난 문제였으며, 금번 한일전과 지난해 11월 멕시코 평가전(2:3 ) 등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가 그러하다.

3월 25일 열린 한일전에서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0대3으로 일본에 패배했다.
3월 25일 열린 한일전에서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0대3으로 일본에 패배했다.

 

3.25 한일전에서 일본은 우리와 무엇이 달랐나.

일본 대표팀은 우리 대표팀과 달리, 상대적으로 많은 유럽파 선수들이 소집되어 비교적 완전체에 가까운 스쿼드로 경기에 임했다. 축구 전문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축구팬들 또한 우리 대표팀의 쉽지 않은 결과를 예상했다. 팬들이 대표팀을 비난하는 것은 경기에 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일본 대표팀은 월드컵과 같은 중요한 대회들에서, 혹은 숙명의 라이벌로 여겨지는 대한민국 대표팀을 상대로 한 경기들에서 피지컬의 약점을 드러내며 실패했던 경험이 많다. 이러한 피지컬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은 정교한 패스웍을 지향했던 그동안의 근간에 우리가 지향해왔던 스피드와 체력을 옷입혔다. 자신들의 축구철학적 토대에 라이벌인 대한민국의 장점을 옷입히는 시도를 해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잘 성숙되어 가는 모습이다.

우리 대표팀은 스피드와 체력에서 강점을 가진 반면, 상대적으로 패스웍과 정교함에서 약점을 가진 것으로 지적되어 왔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그동안 지속적으로 점유율빌드업을 강조하며 노력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분명 그 성과가 없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대표팀의 모습에서는 우리의 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을 입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축구 고유의 전통과 특성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축구를 시작하려는 느낌마저 든다는 데 있다. 역습과 속공과 같이 우리가 잘 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조차 이를 스스로 차단하고 세련된(?!)’ 빌드업을 추구하려는 모습이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이 점이 바로 팬들을 실망스럽게 만드는 점이라는 것이다.

금번 한일전에서 우리 대표팀이 비효율적이고 생산성 없으며 완성도 낮는 빌드업을 반복적으로 시도하는 사이, 일본은 우리가 지금껏 해왔던 축구, 우리가 잘 하는 축구, 체력을 바탕으로 쉼없이 공수를 전환하며 거침없이 역습하고 신속하게 공격을 전개마무리하는 피지컬적인 축구로 우리를 3:0으로, 아니 경기력에서는 그 이상의 차이로 우리를 무릎꿇게 했다. 우리가 이도 저도 아닌 축구를 하는 사이, 일본은 자신들의 확고한 축구철학에 우리 축구의 장점을 성공적으로 입히며 자신들만의 특징적 강점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가 과거 일본 축구의 단점을 묘하게 닮아있고, 일본이 과거 우리 축구의 장점을 닮아있다는 점이 쓰리고 아프다.

파울루 벤투 축구국가대표 감독이 3월 24일 한일전에 앞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파울루 벤투 축구국가대표 감독이 3월 24일 한일전에 앞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우리 축구에 맞는 옷은?

팬이 없는 스포츠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스포츠도 팬이 원하는 바를 지향하지 않고 성공적인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축구는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 중 하나다.

그렇다면 우리 팬들이 원하는 축구는 무엇이며, 대한민국 축구에 맞는 옷은 무엇인가? 답은 자명하고 간단하다. 우리의 강점을 유지한 채, 우리가 갖지 못했던 것을 입히는 것이다.

우리가 직선적이고 선굵은 그림을 가진 팀이었다면, 곡선의 유연함과 기술적인 세밀함이 더해져야지, 직선과 굵은 터치가 사라진채 테크닉과 기교만이 남아있는 전혀 다른 그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혹자는 빌드업 축구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므로 기다려주어야 한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뛰는 대표팀의 무대는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결과를 보여주어야 하는 곳이다. 시즌을 함께 치르며 수많은 경기를 함께 뛰는 프로팀과는 달리, 대표팀은 일시적으로 모여 짧은 기간동안 성과를 내고 해산하는 곳이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잘 하고 잘 해왔던 것을 이어가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대한민국 축구의 철학일 것이며, 우리 축구에 맞는 옷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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