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대통령제와 안 맞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하면 여소야대로 국정불안" 주장에 대한 검증

  • 기사입력 2018.12.27 00:46
  • 최종수정 2019.12.09 17:01
  • 기자명 최광웅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하는 이들이 가장 크게 앞세우는 근거는 바로 ‘여소야대 구조화와 연정 불가피론’이다. 그들은 이것을 내각제 국가에서나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게 되면 득표율대로 국회의석을 배분하게 된다. 득표율대로 국회의석을 배분하게 되면 구조적으로 여당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할 수 없기 때문에 여소야대가 일상화되며 다른 야당과 반드시 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연동형 비례제 반대론자들은 국정불안정을 초래한다는 단점이 있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이 비판은 과연 어느 정도 사실일까? 결론부터 먼저 얘기하면 전혀 근거가 없는 거짓이다.

2018년 8월 16일 여야 원내대표 회동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jtbc 화면 캡처

우리나라 선거제도는 16대 총선까지는 「소선거구제 + 1인 1표 전국구 배분방식」이고 17대부터는 「소선거구제 + 1인 2표 병립형 비례대표제」이다. 그런데 1987년 민주화 이후 8차례 실시된 총선 결과, 3차례(17대, 18대, 19대)를 제외하고 민심은 여소야대를 선택했다. 하지만 합당(13대)과 의원 빼오기(14대, 15대), 그리고 연정(15~16대) 등 방식을 통해 여당이 과반의석을 채웠다. 3차례 나타난 여대야소 또한 과반의석에서 겨우 2~3석 초과한 정도로 단독 국정운영에는 매우 부담이 컸다. 그런 이유 때문에 여당이 인위적으로 변화시킨 여대야소 국회는 대부분 대결구도로 이어졌다. 그러나 민심 그대로를 존중해 여소야대를 유지한 국회는 여야 간 협치를 이끌어내고 국정안정에 도움을 줬다. 1988년 5월 출범한 13대 전반기 국회는 민정-평민-민주-공화당 등 4당 체제이다. 1989년 예산안 심사가 정기국회에서 이루어졌고 법정기일인 12월 2일을 잘 지켜 의결하였다. 비록 여소야대였으나 1노 3김이 대화와 타협을 한 결과이다. 이듬해 예산안도 법정기일은 다소 어겼지만 4당 합의에 의한 표결·처리로 마무리했다. 27년 만에 다시 찾아온 ‘다당 체제 + 여소야대 구도’인 20대 국회도 3당 또는 양당 합의처리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상식과는 달리 이렇듯 여소야대 국회가 오히려 국정을 안정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 1990년 1월 3당 합당 이후 민자-민주당 양당 체제로 구도가 변하면서 13대 하반기국회는 2년 연속 민자당 수정예산안을 표결로 강행 처리한다. 정국이 급랭하고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목숨을 건 13일 간 단식을 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이 양당 체제이다. 양당 체제가 지속된 18대~19대 국회는 최악으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 특히 18대는 선진화법을 제정하기에 이를 만큼 의원들 스스로가 최하점수로 인정했다. 18대는 2008~10년 등 3년 연속 한나라당이 예산안 단독 날치기를 강행했으며 2011년에도 여당 예산수정안을 민주당 의원들 전원이 퇴장한 가운데 의결했다. 특히 2009년과 2011년은 12월 31일에 처리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19대는 전반기 2년 모두 새누리-민주당 간 여야 합의가 불발되면서 법정기일은 물론이고 연내 예산안 처리까지 무산시키며 여론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았다.

 

날치기는 현재 한국당계열 정당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양당 체제(또는 2개의 정치연합 체제)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15대 국회는 임기 중간에 국민의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회의(101석)-자민련(52석) 등 공동여당은 과반수에서 겨우 3석 초과의석으로 제2건국추진운동 관련비용 등이 포함된 1999년 예산안을 날치기로 밀어붙였다. 이듬해에도 공동여당은 한나라당과 선심성 공공근로사업비 삭감문제로 지루한 공방을 벌이다 160석 대 134석이라는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표결처리를 강요하다시피 했다. 이상 살펴보았듯이 ‘소선거구제 = 양당 체제 = 국정안정’이라는 등식은 결코 성립할 수 없다.

 

대통령제 신봉자들에게는 미국식이 금과옥조이다. 하지만 비례대표제와 소수정당을 허용하지 않는 미국식 양당 체제가 오히려 국정불안정을 가속화한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성탄절과 연말연시 휴가기간이 겹친 미국은 지난 22일 자정을 기해 연방정부 셧다운(shutdown·부분 업무정지) 사태가 발생했다. 셧다운은 정당 간 예산안 합의가 실패하고 예산안 통과시한을 넘기는 경우 예산이 배정되지 않게 돼 정부기관을 일시적으로 폐쇄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연방정부는 관련법률 규정에 따라 국방, 경찰, 소방, 우편, 항공, 보건 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에 직결되는 필수기능만 유지한 채 모든 공공서비스를 잠정 중단한다. 그래서 현재 공원·도서관·미술관 등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문을 닫고 국무부를 통한 여권·비자 발급 업무도 일시 중지되었다. 재정 지출이 중단되는 셧다운이 발생하면 42만 명에 달하는 공무원은 무급으로 근무해야 하며, 또한 40만 명의 공무원은 무급휴가(일시 해고)를 떠나기 때문이다. 이번 셧다운은 트럼프 집권 이후 세 번째, 금년 들어서서만 세 번째이다. 올해 1월 20일 트럼프는 행정부와 의회를 동시 장악했지만 셧다운을 막지 못했다. 민주당은 트럼프가 폐기한 다카(DACA, 불법체류청년 추방유예 프로그램)에 대한 보완입법을 요구하며 예산안 처리를 거부했지만 트럼프와 공화당은 이민관련 법안과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예산 항목을 포함해야 한다고 맞서며 결국 ‘셧다운’사태가 발생했다. 여야 간 임시세출법안에 합의하며 셧다운은 3일 만에 해제됐으나 3주 만에 다시 발생했고, 이번에 또 세 번째 셧다운이 발생한 한 것이다. 예산안 의결에 필요한 의석은 상원 60석이지만 셧다운이 발생한 지난 1990년 이후 8차례 동안 단 한 번도 여당이 상원 60석을 장악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회를 경시하는 대통령이 예산안에 대한 타협과 양보를 하지 않으면 셧다운이 발생한다. 한 해에 세 번씩 셧다운이 발생한 건 지난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과 1995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이다. 또한 1977년 지미 카터 행정부 이후 이번에 발생한 셧다운은 무려 20번째로 그 빈도도 매우 높다. 미국식 양당 체제는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보잘 것이 없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모델은 독일연방이다. 지역구 1 대 비례대표 1 비율이다. 지난해 9월 실시된 제19대 연방하원선거는 집권 기민·기사당 연합이 의석비중 겨우 34.7%에 머물렀다. 전통적 중도우파·우파연합에 참여해온 자민당의석을 합쳐도 46%에 그쳤다. 녹색당까지 포함하는 사상 최초의 자메이카연정(의석비중 55.4%, 기민·기사-자민-녹색)을 수개월 이상 논의했으나 끝내 결렬됐다. 결국 남은 유일한 경우의 수는 의석비중 56.3%가 합치는 기존 기민·기사당과 사민당간 대연정뿐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총 네 차례 연정구성에 평균 86일이 소요됐다. 최장시간은 이번 제4차 내각으로 171일이다. 이전의 세 차례는 평균 58일이다. 특히 2005년과 2009년, 그리고 2018년 등 세 차례가 기민·기사-사민당간 대연정이다. 2005년과 2009년 대연정 의석비중도 각각 73% 및 79.9% 등 압도적 비중이다. 이처럼 독일식 연동형 비례제는 총선 후 연정 구성과정에서 다소 진통은 겪지만 내각 성립 이후에는 오히려 국정이 안정된다는 아주 좋은 장점을 갖고 있다. 소선거구제를 기반으로 하는 대통령제와 양당 체제는 그 속성이 본디 대결정치이다. 성탄절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서비스가 일시중단된 미국을 보시라.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 한다는 전문가들은 "협치! 협치!"를 주문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가? 이게 다 높은 경제성장률과 고공지지율을 믿고 의회와 협력하지 않으려 하는 대통령정부의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연동형 비례제 반대론자들이 내어놓는 논리적 근거도 매우 어설프기 짝이 없다.

한국정당학회가 2016년 중앙선관위에 제출한 '한국의 대통령제에 적합한 국회의원 선거제도에 관한 연구-비례대표제는 대통령제와 친화적인가?' 연구보고서 중.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비례대표제가 반드시 불협화음을 내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총 의석수를 증가시키고 지역구와 비례 비율을 2:1로 하는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권고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여소야대 국회가 국정안정에 도움이 되고, 여대야소 국회가 오히려 국정불안정을 초래한다.

최광웅 팩트체커는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장이다. 30년 가까이 국회, 지방의회, 정당(민주당), 청와대 등에서 활동했다. 온갖 추측과 주관이 판을 치는 여의도에서 과학적 방법론을 최초로 주창했다. 선거데이터 및 사회·경제지표 분석을 결합해 <바보선거>를 출간했으며 20대 국회 여소야대를 예측한 바 있다.

 

 

최광웅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 원장. 데이터로 정치현상을 풀어내는 분석가이자 정치인이다. 1990년 중앙당사무처 부장으로 정치에 첫 발을 담갔다. 국회의원 비서관, 서울시의원, 청와대 행정관 및 인사제도비서관, 항공우주연구원 상임감사 등으로 일했다. 저서로 <바보선거> <노무현이 선택한 사람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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