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재산비례벌금제, 이재명-윤희숙 누가 틀렸나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1.04.2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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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윤희숙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재산비례벌금제를 두고 설전을 벌이고 있다. 큰 틀에선 양측 모두 경제력에 따라 벌금을 차등 부과해야 한다는 제도의 취지에는 동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용어의 해석에서 혼선을 빚고 있는 듯하다. 뉴스톱이 팩트체크했다. 

 

출처: 이재명 경기도지사 페이스북
출처: 이재명 경기도지사 페이스북

◈이재명, "재산비례 벌금제 도입해야"

이 지사는 지난 25일 법의날을 맞아 재산비례벌금제 도입을 촉구하는 페이스북 글을 남겼다. 소병철 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형법 개정안의 취지대로 현행 총액벌금제 대신 재산비례벌금제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 형법이 도입하고 있는 총액벌금제는 개인의 경제력과는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법에 정해진 금액을 벌금으로 내는 제도이다. 빈곤층에게는 가혹하고 부유층에겐 실질적인 징벌 효과가 미미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를 극복하고 형벌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재산비례벌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출처: 윤희숙 국민의힘 국회의원 페이스북
출처: 윤희숙 국민의힘 국회의원 페이스북

◈윤희숙, "소득 없는 은퇴자는 벌금 내려 집팔아야?"

윤 의원은 이 지사의 글에 대해 "형편에 따라 벌금액을 차등하자는 이재명지사의 주장은 찬반을 떠나, 검토해볼 수 있는 주장"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윤 의원은 "이상한 점은 이재명 지사가 핀란드나 독일을 예로 들면서, 이들 나라가 ‘재산비례벌금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굳이 거짓을 말하며 ‘재산비례벌금제’를 주장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핀란드, 독일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는 '재산비례벌금제'가 아닌 '소득비례벌금제'라는 주장이다. 윤 의원은 "경기도 지사쯤 되시는 분이 ‘소득’과 ‘재산’을 구별하지 못한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만큼 그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라고 적었다.

 

출처: 이재명 경기도지사 페이스북
출처: 이재명 경기도지사 페이스북

◈이재명 재반박, "국어독해력부터 갖춰라"

이 지사는 "(윤 의원이) 제 글을 두고 '벌금은 재산에만 비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핀란드는 차등기준이 소득인데 재산기준이라고 거짓말 했다'며 비난했다"며 "재산비례벌금제는 벌금의 소득과 재산 등 경제력 비례가 핵심개념이고, 저는 재산비례벌금제를 '재산에만 비례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소득과 재산에 비례해야 함을 간접적으로 밝혔다"고 재반박했다.

이어 "재산비례벌금제의 의미와 글 내용을 제대로 파악 못한 것이 분명하니 비난에 앞서 국어독해력부터 갖추시길 권한다"고 지적했다.

출처: 윤희숙 국민의힘 국회의원 페이스북
출처: 윤희숙 국민의힘 국회의원 페이스북

◈윤희숙 재반박에 대한 반박, "독해의 여지 남기지 말아야"

윤 의원은 이 지사의 재반박을 다시 반박했다. 윤 의원은 26일 "‘재산비례벌금’이란 재산액에 비례해(proportional) 벌금을 매긴다는 것"이라며 "이제 와서 ‘내가 말한 재산이란 소득과 재산을 합한 경제력이었다’고 하는 건 단지 ‘느슨한 해석’ 정도가 아니다. 소득과 재산의 구분이 정책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내비친 것"이라고 적었다.

윤 의원은 이어 "만의 하나, ‘소득과 재산을 합한 것을 그냥 재산이라 불러봤다’고 해도 핀란드의 예를 들면서 ‘재산비례’라 한 것은 ‘소득에만 비례’시키는 핀란드가 마치 지사님의 ‘재산까지 넣은 방식’과 같은 것인양 표현한 것"이라며 "어떤 나라도 안쓰는 방식을 제안하면서 은근슬쩍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쓰는 방식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팩트체크, '재산비례벌금제'는 과연 무엇일까?

이 지사와 윤 의원의 공방은 재산비례벌금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른 시각차이에서 비롯된다. '재산비례벌금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은 이 지사가 처음한 것은 아니다.

'총액벌금제'와 반대되는 개념의 '재산비례벌금제' 도입 논의의 출발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1986년부터 총액벌금제 대신 일수벌금제의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하였으며, 1992년 법무부 형사법 개정논의와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 논의 때도 벌금형의 불평 등을 피하기 위한 제도로서 그 타당성을 인정받아 일수벌금제 도입이 추진된 바 있 다." 그러나 몇 번의 논의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큰 쟁점은 개인의 소득·재산 조사가 충분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현실에서 일수벌금제가 섣불리 도입될 경우 자칫 사법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고 실제 도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형사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2월 <재산비례 벌금제에 관한 정책방안 연구>라는 연구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는 "총액벌금형 제도가 갖는 문제의식에서부터 출발하여 그 대안이 무엇인가 를 살펴보면서 지난 30여 년간 논의되어 온 '일수벌금제 내지 재산비례 벌금제(재산연 동 벌금제 등)'의 도입 가능성과 정책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하는데 그 기본 목적이 있다"고 언급한다. 이어 "일수벌금제도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익숙하게 사용되고 와닿는 개 념임을 고려하여 양 용어를 혼선해서 사용하고자 한다"고 언급한다.

출처: [재산비례 벌금제에 관한 정책방안], 연구형사정책연구원(2020.12.)
출처: [재산비례 벌금제에 관한 정책방안], 연구형사정책연구원(2020.12.)

 

◈차등벌금제, 일수벌금제, 재산비례벌금제 = 혼용되는 용어

2017년 5월4일 문재인 정부는 대선공약으로 '차등 벌금제' 도입을 내걸었다. ‘서민을 위한 공정사법 구현’을 위한 민생사법 공약이다. 당시 민주당은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에 도입된 소득비례에 따른 차등벌금제(일수벌금제) 도입을 추진하겠다"며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는 많은 벌금’을,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는 적은 벌금’을 부과하는 소득에 따른 차등벌금제 도입을 추진하여, 재산에 따른 벌금 납부 형평성 문제를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 9월 민주당과 법무부는 당정협의에서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방안’을 논의했다. △집단적 피해 사건에서의 집단소송제도 확대·개선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도입 △주택 임차인의 임대차계약 갱신청구권 보장 △재산비례 벌금제 도입 등이 논의 대상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재산비례 벌금제는 같은 범죄라도 피고인의 경제적 능력을 반영해 벌금형에 차등을 두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재산비례 벌금제는 19대 국회에서 ‘일수 벌금제’라는 명칭으로 몇 차례 발의됐다가 폐기된 바 있다"고 언급한다.

이 지사는 "현재 소병철 의원님을 중심으로 형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소병철 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형법 개정안 중 '재산비례벌금제'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수벌금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되 법인 또는 단체에 대하여는 총액으로 벌금을 과할 수 있도록 함. 벌금형의 일수는 1일 이상 3년 이하로, 일수 정액은 1천만원 이하로 하고 일수 정액을 정함에 있어 피고인의 자산과 1일 평균 수입을 기준으로 하되, 판결 당시 피고인의 수입과 재산상태, 유사 직종 종사자의 평균 소득, 부양가족 및 최저생계비 등을 고려하도록 함(45조)

'재산비례벌금제'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재산(자산)과 소득(평균 수입)을 기준으로 벌금을 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형사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도 "총액벌금형 대안으로서 논의되고 있는 벌금형 중 하나인 ‘일수벌 금제’라는 명칭에 대하여 일반 국민들에 대한 파일럿 조사과정에서 그 명칭이 쉽게 이해되지 않고 무얼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의견이 많이 제기됐다"며 "일반 국민 조사설문지를 수정하고 다시 파일럿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현재 정부가 사용하고 있는 ‘재산비례 벌금제’와 ‘재산소득에 따른 차등벌금제’, ‘재산연동 벌금제’ 등 몇 가지 용어를 함께 제시해본 결과. 일반 국민들은 ‘재산비례 벌금제’라는 용어의 어미를 가장 쉽게 이해하고 적절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이후 경제력에 비례한 새로운 벌금제를 '재산비례벌금제'로 통칭하고 있다.

출처: 형사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
출처: 형사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

 

◈일수벌금제란?

일수벌금제는 법원이 피고인에게 벌금형을 부과할 때 날짜 단위(일수)로 벌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유래된 용어이다. 일수벌금제 도입 국가들 대다수가 법정형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벌금형 부과대상 범죄는 대부분 경죄로서 법정형이 3년 미만인 경우이다.

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는 "법정형 기준으로 최대 3년까지로 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실제 선고형은 그에 훨씬 못 미치고, 단기자유형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의의에 비추어서도 최대 3년까지로 함이 타당하다"고 밝힌다. 벌금형의 병합 또는 가중처벌의 경우에는 독일의 경우처럼 2배 이상 가중할 수 있으므로 최대 720일까지로 일수를 정하는 방안에 무게를 뒀다.

벌금 일수가 정해지면 일수정액을 곱해 최종 부과 벌금액을 결정한다. 보고서는 "일수정액은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인의 경제적 급부능력인 ①수입 ②재산 ③각종 채무 등 인적·경제적 사정을 고려하여 산정하도록 하고, 1일 일수정액은 1000만원 이하로 함이 타당하다"고 밝힌다. 다만 실업자와 학생이나 전업주부 등을 고려하여 경제적 자력이 없는 자 및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등을 고려해 하한은 제한을 두지 않는 방안을 추천했다.


재산비례벌금제 도입을 두고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설전을 펼쳤다. 피고인의 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벌금을 차등 부과해야 한다는 내용에는 양측 모두 대체로 동의했다. 그러나 '재산비례벌금제'를 재산에 비례해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라고 해석한 윤 의원은 이 지사가 개념을 정확히 설명하지 않은 것이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뉴스톱 확인 결과 '재산비례벌금제'는 '차등벌금제', '일수벌금제'와 혼용되는 표현으로, 소득과 재산 등 각종 인적·경제적 사정을 고려해 벌금 액수를 결정하는 제도로 파악된다.

윤 의원이 1990년대부터 진행됐던 '재산비례벌금제' 입법 논의 과정을 훑어봤다면 '재산에 비례해 벌금을 내는 제도'라고 오인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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