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블비>는 어떻게 <트랜스포머>를 비토하나?

  • 기자명 박현우
  • 기사승인 2019.01.03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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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부터 해보자. 한국에 2018년에 개봉한 <범블비>가 마이클 베이 감독(이하 마감독)의 2007년작 <트랜스포머>의 프리퀄이라는 주장이 있고, 프리퀄이 아니라 리부트라는 주장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작품은 프리퀄로서 마감독의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화가 될 수도 있고, 흥행 여부에 따라 리부트되는 <트랜스포머>가 될 수도 있다. 아직 정해진 건 없다. 확실한 게 있다면 <범블비>는 최초엔 스핀오프작으로 기획이 되었었다는 거고, 마감독표 트랜스포머 영화를 관객들은 더이상 만나볼 수 없다는 거고(예아), 트랜스포머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하스브로가 2021년까지 트랜스포머와 관련된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 없다는 거다.

감독 트래비스 나이트는 이 영화가 프리퀄이 될 수도 있게 여러 안전 장치를 마련했다.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를 주의하시라. 오토봇 소속의 범블비는 영화가 시작할 때 디셉티콘인 블리츠윙에게 성대(?)가 끊겨 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는 <트랜스포머>에서 범블비가 왜 말을 못하는 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

또, <범블비>의 주인공 찰리 왓슨(헤일리 스타인펠드)이 처음 범블비를 만날 때 범블비는 폭스바겐 비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 막바지에서 범블비는 쉐보레 카마로 2세대 1977년형의 모습으로 형태를 바꾼다. 이렇게 모습을 바꾼 범블비가 2007년작의 샘 윗위키를 만나러 간다고 하면 연결이 꽤 매끄럽다.

<트랜스포머>(2007)의 한 장면이다. 카마로 옆에 비틀이 있는 건 #과연_우연일까?

 

2007년작과 연결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2007년 작에서 옵티머스 프라임을 위시한 오토봇들은 미국인들이 쓰는 최첨단 장비로 유추해볼 때 2000년대 이후 지구로 온다. 그런데 <범블비>를 보면 1987년을 타임라인으로 하고 있음에도 범블비와 옵티머스 프라임이 금문교에서 만나고, 또다른 공간에서 수다 떠는 장면이 나온다. 옵티머스 프라임이 1987년에 지구에 왔다가 어떤 이유로 지구를 떠나고 2000년대에 다시 지구에 오지 않았다면 말이 안되는 설정이다. 이를 근거로 <범블비>가 프리퀄이 아니라 리부트라는 주장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데 각각의 영화들 내의 설정이 다르거나 오류가 있다는 이유로 어떤 영화를 리부트인지 아닌지 분간하는 것은 적절한 접근법이 아닐 수도 있다. 가까이로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arvle Cinematic UniverseㆍMCU)의 영화들 내에서도 설정 오류가 간혹 보이긴 하지만, 그 오류만으로 어떤 작품을 “리부트"라고 하지는 않잖나. 하스브로는 이런 설정오류에도 불구하고 <범블비>를 “프리퀄이다!”라면서 우길 수도 있고, 새롭게 시리즈를 시작하면 “리부트였고 설정 오류 아니었음"이라며 우길 수도 있다. 프리퀄인지 리부트인지가 뭣이 중허겠나. <범블비> 이야기나 해보자.

마이클 베이가 제작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결국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범블비>는 트래비스 나이트의 영화다. 그리고 <범블비>는 <트랜스포머>를 여러 측면에서 비토한다. 이 글에서는 주인공,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 빌런 등의 차이에 대해서 다룰 예정이다.

<범블비>의 주인공 찰리 왓슨은 여성이다.

주인공 이야기부터. 주인공 찰리는 여성이다. 카니발에서 핫도그를 튀기고 서빙을 하며 돈을 벌지만 그토록 가지고 싶은 차를 살 돈은 없다. 돈이 없어서 그는 한 자동차 수리업체 사장에게 고장나서 움직이지 않는 노란색 비틀을 달라고 한다. 화장실 청소도 다 하고 매일 나와서 일하겠다면서. 결국 주인공은 주체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움직이지 않는 비틀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에도 성공한다. 주인공은 비틀을 수리해 생명력을 부여하고 범블비와 친구가 된다. 이 둘의 관계는 각별하다. 서로 생명을 구해주고는 하니까.

그런데 <트랜스포머>에서 주인공 샘은? 아빠가 차를 사준다. 샘은 범블비를 얻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A를 3개 이상 받으면 차를 사준다는 아빠의 말 때문에 교수에게 예수팔이를 하며 결국 A를 얻어내긴 했지만, 이런 마이클 베이 특유의 개드립은 주인공의 비범함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결국 샘이 범블비와 함께 하게 된 것도 범블비가 근처의 모든 차량을 판매 불가 상태로 만들었기 때문이지, 샘이 어떤 대단한 수고를 해서는 아니다. 협상도 아빠가 다 하고, 돈도 결국 아빠가 내잖나? 그가 오토봇이나 디셉티콘의 주의를 끈 것도 그의 증조부가 과거에 탐험을 열심히 했고 그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이지 본인이 대단한 일을 해서는 아니다. 이런 모든 선택들은 주인공인 샘을 주체적이기보다는 의존적으로 만든다.

<범블비> 주인공 찰리는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지 않는다.

 

여성을 연출하는 방식도 다르다. <범블비>의 주인공은 몸매를 드러내지도 않고, 섹시하게 보이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여성은 사람으로 그려진다. 다만, 섹시하게 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인 것 같은, 코르셋 빡세게 입은 여성 캐릭터들은 이 영화에서 대단히 멍청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런데 심지어 이 여성들조차도 딱히 섹시하게 연출되거나 성적으로 대상화되지 않는다. 그런건 마감독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마감독은 여성을 사람으로 그리지 않는다. 여성으로 그린다.

<트랜프포머> 주인공 미카엘라 베인즈는 섹시한 여성으로 출연한다.

<트랜스포머>의 주인공 중 하나인, 메간 폭스가 연기한 미카엘라 베인즈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섹시하게 그려지며 성적대상화된다. 굳이 배꼽티를 입히고, 굳이 핫팬츠를 입히고, 굳이 허리라인이 도드라지게 몸을 꺾게 만들고, 자동으로 운전이 되는 게 소름끼친다며 굳이 앞 좌석 사이에 앉아있다가 ‘불편하면 내 위로 와'라는 말에 샘 위에 올라가 섹시한 장면을 연출한다. 영화 내내 운전석에 앉아있던 샘이 조수석에 앉아있는 이유는 이런 장면을 위해서지 다른 영화적 연출 때문이 아니다. 미카엘라 베인즈는 영화 내내 가슴골을 드러내고 다니고, 영화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도 본네트 위에서 몸매를 드러내며 샘에게 애정행각을 한다.

남성들의 젠더감수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나무위키의 “미카엘라 베인즈" 항목을 가보면, <트랜스포머>의 다음 작품인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에서 그의 행적을 설명할 때 “2편에서도 여전히 섹시하다"라고 써놨다. 위키에 자신의 주관적 감상인 ‘섹시하다'를 왜 굳이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성들이 굳이 위키에 이런 내용을 쓰는 건 마감독이 그만큼 한 캐릭터를 성적으로 소비했기 때문이다. 3편으로 가도 마감독이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을 달라지지 않는다. 마감독은 모델 출신의 로지 헌팅턴 휘틀리를 섭외한 뒤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히고 하이힐을 신긴다.

<범블비>의 빌런인 여성 트랜스포머 셰터(왼쪽)와 남성 트랜스포머 드롭킥

빌런 설정으로 와도 두 영화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트랜스포머>는 오토봇의 수장인 옵티머스 프라임과 디셉티콘의 수장인 메가트론 간의 대결을 다뤘다. 사실상 덩치 큰 우두머리 마초 남성들간의 대결이었다. 그런데 <범블비>의 빌런은 여성 트랜스포머인 셰터와 남성 트랜스포머인 드롭킥이다. 마지막까지 범블비와 혈투를 벌이는 건 셰터다. 마감독의 <트랜스포머>에서 충족되지 않았던 다양성을 확보하는 모습이다.

<범블비> 주인공 찰리의 친구는 흑인이지만 <트랜스포머>처럼 우스꽝스럽게 나오지 않는다.

흑인을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트랜스포머>를 보면 흑인이 크게 두 번 나온다. 한 번은 샘이 중고 자동차를 구매할 때다. 이 때 흑인 판매상은 이상한 말투를 쓰고 이상한 웃음 소리를 낸다. 또다른 장면의 흑인은 해커인데, 이 해커의 성격이나 말투도 정상 범위 바깥에 있다. 모든 흑인 캐릭터들은 개그 캐릭터로 소비된다. <범블비>로 오면 주인공 찰리와 함께하는 인물이 흑인인데, 이 남성에게서는 그런 특이함을 확인하기 힘들다. 흑인은 사람으로 그려진다. 흑인이 아니라.

미군(섹터7도 포함했다)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도 두 작품은 차이를 보인다. 마감독의 작품에서 흔히 미군은 막강한 존재로 그려진다. 미 국방부와 전미 총기 협회의 스폰을 받고 영화를 제작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미국산 무기에 대한 찬양 짙은 연출이 많다. 전갈 모양의 스콜피온을 제압할 때 쓰이는 장비에 대한 집요한 연출을 보라. 마감독은 미성년자랑 연애하는 법을 강의할 때(<트랜스포머4>)나 여자 몸을 카메라에 담을 때나 미국 무기를 보여줄 때만 디테일에 강하다.

마감독의 <트랜스포머>에서 미군은 필요 이상으로 강력하다. 1편에서는 작살 몇 발로 범블비를 제압했고, F22의 미사일과 보병이 트랜스포머의 영 좋지 않은 곳에 발사한 유탄은 디셉티콘의 트랜스포머를 가볍게 제압했다. 2편에서는 미군이 쏜 레일건 몇 방에 트랜스포머들이 제압된다. 이쯤되면 미국의 기술력은 트랜스포머들을 압도하는 거 같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들게 된다.

<범블비>에서 미군은 이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다. 범블비는 <트랜스포머>에서처럼 작살에 맞아서 묶이긴 하지만, 결국 빡쳐서 눈이 시뻘개졌을 때는 작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몸에서 제거한 뒤 인간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다. 나는 이런 설정이 더 개연성이 있다 생각한다. 저 진보한 로봇 형태의 존재들이 고작 인간의 무기에 빌빌댄다는 게 말인가 빙구인가? 한편, 이 장면만으로도 <범블비>가 마감독표 <트랜스포머>의 프리퀄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기도 한다. 마감독표 오토봇들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류를 무지하게 사랑해서 인간들에게는 무기를 쓰지 않는다.

<범블비>가 리부트인지 프리퀄인지는 솔직히 내 관심사에 딱히 없다. 다만, 마감독의 '빻은' 연출에 질려가던 참이었다. 마감독은 영화적으로 딱히 필요 없는 개드립으로 영화의 시간을 자주 낭비했고, 매번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했고, 중국 자본을 받았을 때는 중국 무술을 보여줬고, 유명한 인종차별주의자이자 공화당 지지자인 마크 윌버그를 섭외한 이후부터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성조기를 어떻게든 한 번 보여주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그런데 <범블비>는 <트랜스포머>보다 PC(정치적 올바름)하면서, 재미도 있다. 마감독 특유의 스케일 큰 액션 장면은 찾기 힘들지만, <범블비>에서 보이는 트래비스 나이트표 액션은 결코 마감독의 액션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이 쪽의 액션이 더 잘 연출되어있다고 생각한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에 대한 사랑과 덕심이 없다면 만들어질 수 없는 액션들의 향연이기 때문이다. <범블비>를 시작으로 트래비스 나이트 감독과 함께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새롭게 시작되면 이보다 좋은 게 또 어디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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