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ㆍ주ㆍ월ㆍ년' 시간은 어떻게 구분되어 왔나

  • 기자명 박재용
  • 기사승인 2019.01.04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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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하늘을 보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시간을 알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제대로 살기 위해 하루, 일주일, 한 달, 계절, 일 년에 걸쳐 시간에 대한 나눔을 하는 것이 신석기 혁명 이후로 필수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아니 사실 구석기 수렵 채집 생활에서도 커다란 주기들-계절의 변화는 아마 몸으로 익히고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루의 시작은 언제일까요? 유태인들은 하루의 시작을 해가 질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루의 시작을 힘든 일을 마치고 쉴 때부터로 잡은 것. 그 영향이 현대에까지 이어져 이브가 있지요. 또 어떤 이들은 하루의 시작을 해가 뜰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잠과 어둠은 짧은 죽음이고 깸과 밝음은 짧은 부활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그 시점이 정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계절에 따라 다르지요. 특히 위도가 높은 지역으로 가면 차이가 훨씬 심합니다. 여름에는 새벽 4~5시에 해가 뜨고 겨울이면 8시가 되어서야 해가 나옵니다.

Photo by Sanketh 🌐 on Unsplash

좀 더 정확히 하루를 나누고 싶었던 이들은 태양이 가장 높이 떴을 때-태양의 남중-를 하루의 시작으로 정합니다. 오랜 관찰 결과 전날에 태양이 남중한 시각과 다음날 태양이 남중한 시각 사이는 항상 일정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동양의 경우 정오를 중심으로 하루를 오전과 오후로 나눕다. 영어에도 그 흔적이 있어 정오는 noon이 되고 오후는 afternoon이 됩니다. 그러나 이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중에 날이 바뀌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의 정오와 다음날의 정오 사이를 정확히 반으로 나눈 시점을 정해 그를 하루의 시작으로 잡기로 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그 시간을 자정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인간의 하루는 인간이 잠든 사이에 몰래 시작합니다.

달month은 단어 그대로 달moon의 주기를 기준으로 잡습니다. 영어 month도 그 기원은 달이지요. 달moon을 뜻하는 옛 영어 maenon에서 유래한 단어가 month입니다. 달은 그 차고 이지러짐이 규칙적이어서 예부터 시간을 매듭짓기에 가장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달이 완전히 사라지는 그믐이 한 달의 끝이 되고, 다시 시작이 됩니다. 이를 대략 계산해보면 29.5일입니다. 그러나 소수점을 기준으로 삼을 수 없으니 30일을 한 달로 삼은 것이 달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일주일week의 기원 또한 달입니다. 달이 보름에서 하현이 되고 하현에서 그믐이 되고, 그믐에서 상현이, 상현에서 보름이 될 때까지를 대략 하나의 매듭으로 잡은 것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유래했고, 이를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받아들이고, 기독교인들이 퍼트린 것이죠. 유대인들은 일주일의 마지막을 토요일로 봤지만, 이들과 다른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부활한 요일인 일요일을 주일로 정합니다. 그래서 일요일이 일주일의 시작이 되지요. 하지만 토요일과 일요일 둘을 쉬게 된 현대인들은 이를 주말로 묶어버리고, 따라서 월요일을 일주일의 시작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일요일부터 한 주를 시작한다고 여기는 사람들과 월요일을 기준으로 한 주가 시작된다는 사람들이 섞여있습니다.

한 해를 나누는 기준은 문명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뉩니다. 태양의 주기를 가지고 나누는 태양력과 달을 가지고 나누는 태음력이 있지요. 대부분의 서양문명에선 태양력을 썼습니다. 아니 서양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문명이 태양력을 썼습니다. 사실 한 해를 나누는 이유가 계절의 변화 때문이니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대략 맞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태양력을 쓴다고 하더라도 한 해의 시작은 문명마다 혹은 역사마다 달랐지요. 그래도 낮과 밤의 길이를 기준으로 삼은 것은 같습니다. 낮과 밤이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 낮이 가장 짧은 동지와 낮이 가장 긴 하지 중 하나를 선택하지요.

<The First Thanksgiving, 1621>,G. Ferris ⓒwikimedia

그 중 추분과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잡는 경우가 가장 흔했습니다. 요즘도 미국이나 유럽의 학기는 가을에 시작하는데 추분을 한 해의 시작점으로 삼은 흔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이나 추석도 그 비슷한 흔적이지요. 추분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는 것은 추수를 끝낸 풍성함을 가지고 행복하게 한 해를 시작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또는 한 해의 농사를 끝내고 푹 쉬는 것으로 한 해를 시작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삼는 문명도 많았습니다. 해가 뜨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정도가 심해지는 북쪽 지방이 더했습니다. 마침내 해가 가장 짧은 시기를 지나면, 다시 해가 부활하듯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의미를 담은 것. 그믐을 한 달의 시작으로 잡은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현대의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춘분은 농사를 시작한다는 의미이니 그런 의미에서 추분이나 동지보다는 훨씬 안정된 분위기의 행사가 열렸습니다. 춘분은 1년의 시작으로 삼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지만 추분이나 동지만큼 맹렬히 축하해야할 시기는 아니었나 봅니다. 로마에서처럼 1년의 시작이 된 적도 있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를 시작으로 잡은 문명은 없었습니다. 이집트의 경우에는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은 열대 건조 기후라서 이런 구분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건기, 우기, 홍수기로 한 해를 구분했고, 시리우스가 태양과 동시에 뜨는 날을 한 해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추분이나 동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적도 부근에선 의미없는 일이었지요.

그리하여 매년 우리는 365일의 날을 가집니다. 일주일이 쉰 두 번 지나면 364일이니 쉰 두 주하고도 하루가 남는 날이지요. 그래서 윤년이 아닌 매년의 1월 1일과 12월 31일은 항상 같은 요일이기도 합니다. 시작과 끝이 같은 요일인 것은 우연의 산물이지만 나름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어찌되었건 시간은 비가역적이어서 지나면 아쉽고 그립지만, 아쉬움은 아쉬운 대로, 그리움은 그리운 대로 남기고 우리는 시간을 따라 가야겠지요. 그런 마음이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에 눈금을 새기고 매듭을 묶어 새로운 시작을 표시하나 봅니다. 다가올 시간도 지나면 아쉽고 그립겠지만 조그마한 행복들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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