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그 후] '대통령 통역관 사칭' 공무원 강의 강사 이름은 김민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1.06.0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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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톱은 지난 2월 <[팩트체크] '대통령 전담통역관' 사칭한 가짜 고대교수, 공무원에게 청렴강의했다> 기사를 통해 경력 대부분을 사칭해 수백회의 공무원 교육을 포함한 모두 700여 차례 강의에 나선 K씨의 사례를 보도했다. 경력을 사칭해 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불량 강사에게 내 세금을 한 푼도 주기 싫은 마음에서였다.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불철주야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청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뉴스톱은 첫 보도에서 K씨를 실명을 공개할지 여부를 두고 토론을 거쳤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실명을 공개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있어 이니셜로 쓰자는 의견도 있었다. 익명이더라도 기사가 나가면 공무원 조직이 알아서 경력 사칭한 강사를 검증할 것이란 기대를 하면서 결국 익명 보도를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랐다. 뉴스톱의 직접 취재대상이 된 지자체와 공무원 교육기관은 더 이상 K씨를 부르지 않았지만 다른 곳에선 이 사실을 모르거나 무시하고 계속 K씨를 강사로 초청해 공무원 대상 강의를 맡긴 것이다. 

뉴스톱은 K씨 같은 '경력 사칭자'들을 공무원 교육에서 배제시킬 수 있는 실효적 방법을 고민했다. 사법 당국에 고발하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고발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취재 인력이 낭비될 소지도 컸다. 공무원 교육기관 또는 지자체들은 타 기관에서 강사 활동 경력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때문에 공무원 교육기관을 대상으로 수백 차례 강의를 진행한 K씨는 강사 초빙 단골 손님으로 꼽힌다. 일선 기관에서 강사를 섭외할 때 경력 사칭 여부를 가려내려면 본인의 동의를 받고 범죄경력조회, 경력증명 등 개인정보를 조회하는 방법 뿐이다. 때문에 K씨가 스스로 고백하지 않고는 지자체와 공무원 교육기관이 경력 사칭 여부를 알아낼 방법은 사실상 없다. 

결국 뉴스톱은 세금 낭비를 막고 가짜 경력자의 사기행각을 막기 위해 위해 K씨의 이름을 공개하기로 했다. 그의 이름은 김민이다. 데일리폴리 연구소장이라는 직함을 쓰고 있었다(현재는 가치공감연구소로 이름을 바꿨다). 아래는 첫 보도 후 김민씨의 행적이다. 

 

◈ 뉴스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철회한 김민

김민씨는 뉴스톱을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이하 언중위)를 통해 정정·반론보도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뉴스톱 기사에 언급된 '고대 정외과 졸업?' 부분을 정정하고, '대통령 전담 통역관?' 부분에 대해선 반론을 게재하고, 1억원의 손해배상금을 달라는 취지였다. 기사의 다른 부분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뉴스톱은 언중위에 출석해 기사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충분히 정정하고 반론을 게재할테니 근거를 제시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김민씨가 제시한 서류는 고려대학교 졸업장 하나 뿐이었다. 청와대 근무 경력을 입증하는 자료라면서 당시 함께 근무했던 인사의 확인서가 있다며 모종의 문건을 언중위에 제출했지만 뉴스톱에는 공개를 거부했다.

뉴스톱은 김민씨의 설명에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문건을 공개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언중위는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을 내렸다. 김민씨가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한 사실이 있기에 해당 기사를 정정하고, 청와대 대통령 전담 통역관으로 재직한 경력이 있다고 알려왔다는 내용을 게재하라는 내용이었다.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이란 중재위의 결정을 받아들여 이행하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하는 조치이다. 당사자 중 어느 한쪽이 이의를 제기하면 결정은 효력을 상실하고 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간주돼 사건기록이 관할 법원으로 송부된다.

 

출처: 김민씨와의 이메일 교신 내역 중 일부
출처: 김민씨와의 이메일 교신 내역 중 일부

 

그러나 뉴스톱은 중재위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뉴스톱이 3중 4중으로 확인하고 본인 확인도 거쳐 작성된 기사 내용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고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뉴스톱은 소송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소장은 날아오지 않았다. 언중위 확인 결과 K씨는 소송을 취하했다. 결과적으로 뉴스톱 보도에 사실과 다름이 없음이 입증된 셈이다.

 

◈ 다시 공무원 강의를 재개한 허위 경력자

김민씨는 언중위 결정 이후 한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공무원 상대 강의에 나섰다. 4월 20일에는 나주시청 공직자 100여명을 대상으로 '토탈 바이러스 인문학' 강의를, 5월 17일에는 전라남도 해양수산과학원 동부지부에서 소속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득의 심리학' 강의를, 5월 25일에는 충청소방학교 제5기 긴급구조통제단 운영실무반을 대상으로 '스트레스&갈등관리' 강의를 했다. 5월 27일에는 전남화순교육지원청 주관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부모의 역할' 이란 학부모 대상 강의를 했다.

뉴스톱은 해당 기관들 모두에 김민씨를 강사로 선임한 이유를 물었다. 한결같이 "경력을 사칭한 사실이 있는지 몰랐다. 사전에 알았으면 강사로 초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한 기관 관계자는 향후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질문에 대해 "누군가 경력을 사칭하고 다닌 것이 적발됐다고 해도 실명이 공개되지 않는 한 교육기관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K씨 사례를 실명으로 보도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모든 기관이 "경력을 사칭한 사람에게 공기관이 강의를 맡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향후 강사 초빙 과정에서 경력 사칭 여부 등을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일선 기관에선 경력 검증을 시도한다면 어렵게 섭외한 강사가 혹시 기분이 나빠져 강의를 맡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력서 등 경력 자료를 받아도 본인에게 불리한 내용은 적어넣지 않으면 그만이다. 여러 기관을 취재한 결과 일회성 강연의 강사 초빙 과정에선 주변 기관의 추천을 받는 정도 이외에는 별도의 검증을 거치지 않는다. 

 

출처: 김민씨 블로그
출처: 김민씨 블로그

김민씨를 우수강사로 홍보하며 공무원 교육기관에 소개하던 강사 소개 사이트 '강사야'는 뉴스톱의 취재 이후 김씨를 강사 추천 명단에서 삭제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김씨가 경력을 사칭했는지는 알 수 있는 길이 없었다. 뉴스톱 보도 이후 김씨를 추천 명단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치했다. 추후 강사 경력에 대해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여전히 엉망인 공직사회의 경력 검증

강사 선임을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는 공무원 교육기관의 담당자들은 이 기사를 꼭 볼 필요가 있다. 허위 경력을 팔아먹으며 공무원을 상대로 강의하다 들통이 난 뒤에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다시 공무원 상대로 강의를 수주하고 다니는 김민씨에게 세금으로 강의료를 주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

김민씨는 뉴스톱 보도 이후 닫아 걸었던 자신의 블로그를 다시 열었다. 허위 경력을 홍보했던 곳이기도 하고, 여태껏 그가 출강했던 기록을 모아놓은 곳이기도 하다. 그는 연구소 이름을 바꾸면서 일부 글도 삭제하고 허위 경력 소개도 없앴다. 그러나 아직까지 다 지우지 못한 허위 경력 관련 글이 넘쳐난다. 그는 다시 문을 연 블로그에 "아쉽지만 박사학위는 없다. 그 흔한 교수 타이틀도 없다"고 적었다. 

그렇지만 여태까지의 경력 사칭에 대한 반성과 사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설사 아무리 반성한다고 해도 그가 경력을 사칭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김씨와 같은 경력 사칭자를 공무원 대상 강사로 초빙해 세금으로 강연료를 지불하면서 '청렴 강의'를 듣게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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