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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욕망'이 서구 문명을 키웠다[탁재형의 인사이트] '미지로의 여행'의 역사

새해 첫날을 맞이해 산에 오른 분들이 많을 것이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은 한결같다. 네모진 ‘아파트’들과 길을 메운 ‘세단’과 ‘SUV’들. 심지어 산을 오른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아도 온통 ‘고어 재킷’에 ‘플리스’에 ‘다운 패딩’ 차림이다. 산을 내려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회사에 출근해 사무실의 ‘랩탑’으로 보고서용 ‘엑셀 파일’과 ‘워드 파일’을 작성해 ‘이메일’로 보내고, 상사 앞에서 ‘파워포인트’로 ‘프리젠테이션’을 한다. 이런 것이 우리가 아는 ‘세상의 모습’이다. 팔작지붕과 한복과 붓글씨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존재 자체를 지키는 것에 만족하고 있을 뿐, 생활의 중심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1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서구를 중심으로 짜여진 세상 속에서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며 살아간다.

북한산에서 내려다 본 서울 전경. 아파트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우리가 아는 세상은 왜 이다지도 서구적으로 생겨먹은 것일까? 현대 사회를 이루고 있는 기본 개념들을 태어나게 만든, ‘근대’는 왜 서구를 중심으로 만개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필자의 관점에서는 ‘서양 사람들이 일찍부터 여행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독하게, 목숨을 걸고, 조직적으로, 때론 무모하게.

‘여행’이라는 것 역시 수많은 정의를 내릴 수 있겠지만, ‘기지(旣知)의 세계를 떠나 미지(未知)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야말로 그 본질적인 속성 중 하나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서양은 언제나 여행의 최전선에 서 있었고, 이 전선의 확장을 줄곧 이끌어 왔다. 그 바탕에는 인간의 여러 욕망이 복합되어 꿈틀대고 있었다. 처음 가보는 곳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새로운 세계에 나의 가치관을 이식하고 싶은 욕구(이를테면 기독교), 남들이 모르는 자연과 자원을 발견해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명예욕, 그리고 이제껏 보지 못한 값나가는 것을 발견해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까지, 이 모든 것이 뒤섞이며 서구인들을 망망대해로 이끌었다.

근대 이전의 유럽에서는, 돈 되는 것은 동양에서 온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중국에서 생산되는 비단과 도자기, 그리고 인도와 몰루카에서 생산되는 향신료였다. 지금에야 대형 마트의 향신료 코너에 가보면 넛메그(육두구)나 정향 따위가 한 병에 5천원도 안 하지만, 한 때 이들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싼 사치품 중의 사치품이었다. 잘 말리기만 하면 보존성이 좋아 긴 여행에도 변질되지 않고, 다른 상품에 비해 적은 부피로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으니, 대륙간 무역에 이보다 더 적합한 품목도 없었다. 유럽 사람들은 일찍부터 후추, 시나몬, 정향, 넛메그 같은 향신료의 약효와 향에 매료되었고, 도무지 어디서 나는 것인지도 모른 채 이들을 구입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이들이 재배되는 곳에 직접 가본 이가 없었기에, 혹자는 홍해에 그물을 던지면 이런 것들이 걸려 나온다고 했고, 혹자는 인도 어딘가의 원숭이들이 이것들을 따서 모아온다고 믿었다. 14세기 이전까지,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는 이 동방의 산물은 삼각돛을 단 아랍의 배에 실려, 혹은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의 등에 실려 지금의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모여들었다. 이후 이 곳에서부터 유럽까지의 수송은 이탈리아, 그 중에서도 베네치아 인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산업 보호의 측면에서, 베네치아의 배들은 자국의 함대에 보호를 요청하지 않은 배들에 대해선 해적이나 다름없는 태도를 취했다. 강력한 함대와 발전된 항해술을 바탕으로, 그들은 타국의 배를 닥치는대로 나포하고, 물건을 빼앗고, 격침시켜버렸다.

인판트 동 엔히끄는 엔히끄 항해왕자로 알려져 있다. 출처:위키백과

베네치아의 바다가 되어 버린 지중해를 기웃거리지 않고, 그 너머에 대체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망망대해를 건너 향신료의 나라로 직접 통하는 항로를 개척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유럽의 서쪽 끝에서 태어난 한 왕자였다. 인판트 동 엔히끄(Intante Dom Henrique 1394~1460). 우리에겐 ‘항해왕자 엔리케’로 더 익숙한 이 인물은 1394년, 포르투갈 왕실의 셋째 왕자로 태어났다. 왕위 계승 서열에서 한 발 비켜나 있었기에, 엔히끄 왕자는 오히려 더 유연한 사고와 넓은 시야를 지닌 인물로 성장했다. 당시만 해도 지중해 무역으로부터 소외되어 변방 취급을 받던 포르투갈의 미래를 위해, 그가 ‘신성장 동력’으로 설정한 것은 동방 항로 개척이었다. 베네치아와 이슬람 상인들을 통하지 않고, 값나가는 향신료들이 널려 있는 인도로 향하는 직항로를 열겠다는 대담한 구상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사그레스에 ‘항해도서관’을 짓고, 당시의 최신 항해도 및 항해 관련 서적을 모으기 시작했다. 또한 국적을 가리지 않고, 능력있는 선원과 조선기술자, 해양학자를 최고 대우로 초빙했다. 그리고 대규모 선단을 편성해, 아프리카의 서해안을 따라 지속적으로 내려 보내기 시작했다. 그의 휘하엔 모험심과 열정으로 가득한 당대 최고의 뱃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은 1460년 엔히끄가 사망한 이후에도 변함없이 그의 뜻을 이어나갔다.

1471년, 마침내 포르투갈의 함대는 적도를 넘어섰고,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1488년엔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의 남쪽 끝, 희망봉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다시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포르투갈의 배는 꿈에 그리던 인도의 캘리컷에 입항하는 데 성공한다. 이 함대의 지휘를 맡았던 이가 바로 바스코 다 가마다. 1499년 9월 18일 리스본으로 돌아오기까지, 총 2년 하고도 2개월이 걸린 이 항해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떠날 때의 1/3에 불과한 55명이었다. 돌아올 때 역풍을 거슬러 항해하느라 인도양 위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했고, 이에 따른 식량과 영양의 부족이 괴혈병이라는 결과로 나타난 참극이었다. 하지만 이런 희생에 굴하지 않고 포르투갈은 계속해서 제 2, 제 3의 함대를 인도로 파견했고, 마침내 아랍 상인들을 몰아내고 인도-유럽간의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게 되었다. 이것의 결과가 일확천금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바스쿠 다 가마가 항해를 시작한 위치에 세워진 리스본의 발견기념비.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 우뚝 선 엔히끄 왕자 뒤로, 바스쿠 다 가마, 마젤란, 바르톨로뮤 디아스 등, 포르투갈의 동방항로 개척을 이끈 영웅들의 석상이 위치해 있다. ⓒwikimedia

포르투갈의 성공에 고무된 유럽 국가들은 속속 바다 건너 미지의 땅으로 자국의 배를 띄웠다. 에스파니아가 경쟁에 나섰고, 네덜란드, 영국이 뒤를 이었다. 근대가 오기 전까지, 이들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어느 곳에 돈이 되는 것이 있는지, 어디의 것을 어디로 운반해 팔면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지식을 축적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아예 신대륙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들도 많았다. 착취가 되었건, 교역이 되었건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부가 유럽으로 집중되기 시작했고 이는 18세기 영국 산업혁명의 토대가 되었다. 그 이후의 세계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방향대로 돌아가기 시작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미지의 세계와 조우한 이후 서양이 보여줬던 방법론이 모두 옳다는 소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자기 내면의 소리를 좇아 미지의 세계로 나섰던 사람들의 용기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새로운 해가 밝았다.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2019년은 미지의 영역이다. 저마다의 마음 속에서 솟구치는 에너지의 흐름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고, 방향이 정해지면 힘차게 돛을 올리고 떠나 보아야 할 때다. 우리 눈 앞에 놓여 있는 것이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라고 할지라도, 저마다의 항해를 시작해 보자. 결과를 알 수 없는 그 항해에 몸을 맡기는 이야말로, 세상의 모습을 조금씩 바꿔가는 사람일지니.

탁재형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이자 작가. 14년간 50개국을 취재하며 해외 다큐멘터리를 주로 제작했다. 2013년부터 여행부문 1위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를 진행해오고 있다. 전 세계의 술 이야기를 담은 <스피릿 로드>와 여행 에세이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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