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포ㆍ어뢰 탑재'한 2차대전 탱크? 한국 언론의 엉터리 번역

  • 기자명 우보형
  • 기사승인 2021.06.1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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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는 529일자로 '별장 지하에 '나치 시대' 40t 탱크가?독일 노인 법정에'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기사 처음에 올라온 전차의 사진만으로도 당시 제법 유명세를 탔고, 개인적으로도 흥미롭게 본 사건에 대한 재판 관련 기사일 것이기에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링크를 클릭했더니 눈 앞에 아래같은 기사가 펼쳐졌다.

 

사진1. 2021년 5월 30일 오후 12시에 캡처한 세계일보(모바일 버전) 기사.
사진1. 2021년 5월 30일 오후 12시에 캡처한 세계일보(모바일 버전) 기사.

 

위에 캡처한 세계일보 기사를 정리해보면 신원 미상의 어느 독일 남성이 키일 근처의 별장에 나치시대의 무기들 - 구경 8.8대공포와 어뢰를 탑재한 무게 약 40t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 탱크, 구경 5기관총, 돌격소총, 반자동 권총, 자동 권총, 1000발 이상의 탄약- 을 비축한 죄목으로 기소됐다.“고 서술한다. 그런데 구경 8.8대공포와 어뢰를 탑재한 무게 약 40t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 탱크라는 세계일보의 서술과 일치하는 독일제 전차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기사의 사진에 나오는 전차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쓰던 판터 전차로 45~46, 40톤대 중량이긴 하지만 구경 8.8대공포라던가 어뢰를 탑재한 적이 없다. 두 번째로 필자의 페친이자 뉴스톱 팩트체커인 임영대님이 주목했던 "구경 5기관총" 이라는 서술 또한 대상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 불분명하다. 말 그대로 진짜 5cm 기관포인지, 아니면 국내 매체가 늘 그래왔던 대로 다른 것을 오인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기사가 서술한 사건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기사가 서술한 무기들이 실제론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팩트를 체크해보기로 했다.

 

팩트 체크를 위해 기사의 의문점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이 사건의 개요는 무엇인가? 어떤 일이 벌어졌고 사건당사자는 어째서 법정에 출두했는가? 그리고 20157월에 대체 무슨 일이 생겼는가?

② 기사의 구경 8.8대공포와 어뢰를 탑재한 무게 약 40t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 탱크는 실제로 존재했는가?

③ 기사의 "구경 5기관총"은 실제로 존재했는가? 그렇다면 5cm 기관포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과 헷갈린 것인가? 오해가 빚어졌다면 대체 어떤 이유에서인가?

 

이번 팩트 체크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을 진행할 것이다. 팩트체크를 위해서는 독일쪽 매체들을 주로 참조했는데 사건이 벌어진 당사국이라 사건을 정확하게 전달해줄 것이고, 용어상의 차이로 인한 오류가 가장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독일 매체들의 기사들을 검색해보니 독일 슈피겔지에서 해당 사건을 다룬 기사를 찾을 수 있었는데, 그 기사를 살펴보니 세계일보의 저 오해로운 기사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도 미뤄 알 수 있었다. 그럼 팩트 체크를 시작해보자.

 

① 이 사건의 개요는 무엇인가?

사진2. 오른쪽의 더블 블래스트 자켓을 입은 사람이 이번 사건의 당사자이자 무기 수집품의 소유주인 플릭 클라우스-디터 씨다.
사진2. 오른쪽의 더블 블래스트 자켓을 입은 사람이 이번 사건의 당사자이자 무기 수집품의 소유주인 플릭 클라우스-디터 씨다.

 

독일의 매체. 슈피겔은 '부유한 연금생활자는 어떻게 지하실에 독일국방군의 전차를 숨겼는가(Wie ein betuchter Rentner einen Wehrmachtspanzer im Keller versteckte)' 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 사건을 다뤘다. 해당 기사를 간단히 요약하면 20157월, 독일 정부가 군을 동원하여 하이켄도르프에 소재한 빌라의 지하실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차, 대공포 등을 위시한 각종 무기들을 끌어냈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슈피겔은 '독일연방군이 동해(발트해를 말한다)에 연한 빌라에서 전차와 대공포를 끌어내다(Bundeswehr birgt Weltkriegs-Panzer aus Ostsee-Villa)' 제목의 201573일자 기사로 소개했고, 이 외에도 BBC를 비롯한 여러 매체들이 소개한 바 있다.) 

사건의 무대가 된 하이켄도르프Heikendorf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Schleswig-Holstein 주의 주도인 킬kiel(세계일보 기사는 키엘이라고 포기했는데 독일어에선 현재 한국어 표기법에선 잘 쓰지 않는 장모음으로 키일....하는 식으로 발음된다. 키엘이란 표현은 독일어가 아니라 에스페란토어 발음에서나 나타난다.)에서 북동쪽으로 10km 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휴양도시로 여기에 소재한 빌라의 지하실에 이 대량의 무기를 소유하고 있던 사람이 위 사진 오른쪽의 플릭 클라우스 디터 Klaus-Dieter씨다. 그는 예전에 킬 지방 법원에서 근무했던 법률가이자 금융관련 중개업을 했던 부자로 슈피겔 기사가 말하는 은퇴한 연금생활자다.

 

팩트 체크의 질문에 맞춰 사건을 육하원칙에 따라 정리해보면 세계일보의 기술대로 신원 미상의 어느 독일 남성이 키일 근처의 별장에 나치시대의 무기들 - 구경 8.8대공포와 어뢰를 탑재한 무게 약 40t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 탱크, 구경 5기관총, 돌격소총, 반자동 권총, 자동 권총, 1000발 이상의 탄약- 을 비축한 죄목으로 기소된 것"이 아니다. 

201573,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주의 주도인 킬 인근의 휴양도시, 하이켄도르프에 소재한 클라우스-디터씨의 빌라 지하실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무기들을 다수 압류했는데 그가 수집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썼던 무기들이 독일 정부의 전쟁무기 통제법을 위반했는가의 여부를 다투는 재판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클라우스-디터씨가 전쟁무기 통제법의 어느 항목을 위반했는지는 불분명하나 저런 옛날 무기들도 무기로 동작하지 않는다면. 바꿔 말해 약실에서 탄환을 발사할 수 없게 만든 상태라면 골동품이나 예술품으로 개인 소장이 가능(실제로 독일에도 개인 소장한 판터의 사례가 있으며. 이는 동시에 클라우스-디터씨가 영국에서 고철이란 명목으로 판터를 들여올 수 있었던 이유기도 하다)하므로  (독일쪽) 기사 내용을 볼 때 세계일보의 서술처럼 무기를 개인이 소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저 무기들이 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는가를 살펴보는 재판으로 보인다. 때문에 이 부분은 굳이 팩트여부를 따질 수는 없겠지만 세계일보가 사건 개요, 즉 사건이 벌어진 일시, 장소, 당사자, 그리고 개요를 모호하게 기술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② 구경 8.8대공포와 어뢰를 탑재한 무게 약 40t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 탱크는 실존했는가?

세계일보 기사의 이 서술을 접했을 때 조금은 당황했었다. 이 서술에 맞는 차량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20157, 클라우스-디터씨의 무기 컬렉션이 끌려나온 사건을 다루는 기사들에서도 판터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되지만 구경 8.8대공포와 어뢰를 탑재한 무게 약 40t의 다른 전투차량은 띠로 언급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판터에 구경 8.8대공포와 어뢰를 탑재한 사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경 8.8대공포와 어뢰를 탑재한 무게 약 40t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 탱크의 정체는 무엇인가? 세계일보가 주로 참조했다던 DPA 통신의 기사에는 구경 8.8대공포와 어뢰를 탑재한 무게 약 40t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 탱크로 볼만한 구절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슈피겔 기사를 보니 금새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사진3. 클라우스-디터Flick Klaus-Dieter 소장품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독일국방군의 5호전차 판터. 70구경장에 달하는 긴 포신을 가진 7.5cm 전차포, 독일제 전차 가운데 처음으로 차체와 수퍼스트럭처에 일체식 경사장갑을 채용, 45톤에 달하는 중량을 갖고 있지만 최대 700미력의 HL230P30 엔진으로 기동성까지 확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고의 주력 전차로 꼽힌다.
사진3. 클라우스-디터Flick Klaus-Dieter 소장품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독일국방군의 5호전차 판터. 70구경장에 달하는 긴 포신을 가진 7.5cm 전차포, 독일제 전차 가운데 처음으로 차체와 수퍼스트럭처에 일체식 경사장갑을 채용, 45톤에 달하는 중량을 갖고 있지만 최대 700미력의 HL230P30 엔진으로 기동성까지 확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고의 주력 전차로 꼽힌다.
사진4. 클라우스-디터Klaus-Dieter 씨의 소장품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독일국방군의 5호전차 판터를 회수하기 위해 작업중인 독일 연방군 군인들.
사진4. 클라우스-디터Klaus-Dieter 씨의 소장품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독일국방군의 5호전차 판터를 회수하기 위해 작업중인 독일 연방군 군인들.
사진5. 하이켄도르프 판터로 불리는 클라우스-디터Klaus-Dieter 씨가 소장했던 판터가 독일 연방군의 전차회수차량 베르게판저Bergepanzer 2에 견인되는 광경을 촬영하는 인근 주민들.
사진5. 하이켄도르프 판터로 불리는 클라우스-디터Klaus-Dieter 씨가 소장했던 판터가 독일 연방군의 전차회수차량 베르게판저Bergepanzer 2에 견인되는 광경을 촬영하는 인근 주민들.

질문에 맞춰 정리하자면 세계일보 기사가 서술한 구경 8.8대공포와 어뢰를 탑재한 무게 약 40t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용 탱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용한 40톤급 전차인 판터 한 대, 8.8cm 대공포 1, G7A 유도식 어뢰가 있었을 뿐이다실제로 당시 촬영된 사진들 가운데에는 8.8cm 대공포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6. 클라우스-디터Klaus-Dieter 씨의 소장품에서 두 번째로 관심을 끌었던 독일국방군의 8.8cm 대공포. 포가를 접어놓은 데다 상세 촬영이 이뤄진 것도 아니어서 정확한 형식, Flak 36인지, 37인지는 불분명하지만 8.8cm 대공포가 있던 것은 분명하다.
사진6. 클라우스-디터Klaus-Dieter 씨의 소장품에서 두 번째로 관심을 끌었던 독일국방군의 8.8cm 대공포. 포가를 접어놓은 데다 상세 촬영이 이뤄진 것도 아니어서 정확한 형식, Flak 36인지, 37인지는 불분명하지만 8.8cm 대공포가 있던 것은 분명하다.
사진7. 클라우스-디터Klaus-Dieter 씨의 소장품들 중 8.8cm 대공포를 회수하기 위해 작업중인 독일 연방군 군인들.
사진7. 클라우스-디터Klaus-Dieter 씨의 소장품들 중 8.8cm 대공포를 회수하기 위해 작업중인 독일 연방군 군인들.

즉 세계일보의 기술은 무지와 오역으로 인한 거짓이다.

 

"구경 5기관총"이란 것이 존재했는가?

"구경 5기관총"이란 표현을 보고 필자가 처음에 떠올렸던 것은 아래 사진들의 5cm MK214A였다. 3호전차나 sd.kfz 234/2 푸마의 60구경장 5cm 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관포로 아래 사진 처럼 Me262Me 410에 장착, 폭격기 요격용으로 쓰였던 항공기용 기관포다. 사실 생산수가 많지는 않지만 클라우스-디터씨의 컬렉션이 워낙 풍부했던지라 이게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저 5cm 기관포라는 것이 5cm MK214라면 아래 사진들의 중간과 아래 사진 대로 싱딩히 커다란 녀석, 제원상으론 전체 길이가 4.16m나 되는 대형 기관포니 클라우스-디터의 소장품을 압류할 때 사진으로 남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니 세계일보 기사의 "구경 5기관총"5cm MK214가 아니다.

사진8. 5cm 기관포 MK214A(맨 위)를 장착한 Me262A-1/U4(중간)와 Me 410(이래) 의 모습. 폭격기 요격용으로 소수가 사용되었다.
사진8. 5cm 기관포 MK214A(맨 위)를 장착한 Me262A-1/U4(중간)와 Me 410(이래) 의 모습. 폭격기 요격용으로 소수가 사용되었다.

 

그럼 구경 5기관총"은 대체 무엇일까? 만약 세계일보 기사의 원문이 독일어였다면 해당 표현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 표현은 아마도 독일제 무기와 용어와 개념이 약간 다른 언어권즉 영문판을 번역하면서 중역 오류가 나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5cm 기관포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세계일보 기사의 원 출처를 찾아야 했다. 아마도 그 원문 기사는 독일어가 아니라 영어권 매체에 올라온 5-m calibre mortar machine guns라는 표현을 번역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좀 더 검색해보니 세계일보가 참조했다던 DPA 통신의 '탱크를 포함한 나치 시대의 무기를 모은 84세 노인이 법정에 섰다(Nazi weapons hoard, including tank, lands 84-year-old man in court) '라는 제목의 기사도 나왔다. 그런데 여기서는 “a 5-centimetre calibre mortar machine guns and assault rifles”라는 표현이 있다쉼표가 없으니 내용을 알기가 좀 힘든데 내용을 알면서 정확하게 번역했다면 5cm 구경의 박격포, 기관총들, 돌격총들로 번역해서 기술했을 테지만 내용을 잘 모른 채 글자로만 해석, 아니 번역기만 돌린 경우라면 5cm 구경 기관총과 돌격총들이란 표현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긴 하다. 분명한 사실은 이것만으론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에도 슈피겔 기사가 답을 제시했다. 슈피겔 기사는 해당부분을 이렇게 기술했다. 365cm 36형 빅격포 eines Mörsers Typ »5 cm Granatwerfer 36« 1, 기관총, 돌격총, 로켓무기(판저파우스트나 대전차로켓을 의미할 것이다.) 반자동 자동 선택이 가능한 기관단총halb- und vollautomatische Pistolen1000여발의 탄환 (후략)... 이다.

사진9. 5cm Granatwerfer 36을 사용하는 독일 보병들의 모습. 작고 가벼워 산악병들이 애용했던 경박격포다.
사진9. 5cm Granatwerfer 36을 사용하는 독일 보병들의 모습. 작고 가벼워 산악병들이 애용했던 경박격포다.

 

이 또한 질문에 맞춰 정리하자면 세계일보가 기술한 구경 5cm 기관총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실제로는 5cm 기관총이 아니라 위 사진의 5cm 36형 박격포를 의미한다. 그러니 세계일보의 구경 5cm 기관포라는 기술 또한 오역이 빚어낸 오류로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그 외의 기술들은 DPA 통신의 기사를 번역해보니 딱히 틀린 부분은 없는 것 같다.

세계일보의 이 기사가 가짜뉴스 같은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기사를 쓰는 기자라면 사건 내용을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할 의무같은 게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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