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남성은 유시민의 '농담'에 화가 난 것이다

  • 기자명 한윤형
  • 기사승인 2019.01.07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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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매체 뉴스톱에서 송영훈 펙트체커가 '유시민은 20대 남성 비하 안했다'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언론사 기사에 대한 팩트체크가 문제의 핵심이라면, 그 기사 내용에도 틀린 바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문제는 이 문제의 핵심이 언론기사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20대 남성들이 유튜브 영상을 보고 화를 낸 것이 먼저이고 기사화는 이후에 됐다. 보수언론이 유시민을 흠집내고 싶어 하는 건 분명하지만, 20대 남성들이 화내지 않았다면 그들이 그 국면에 화를 낼지 예측도 못했을 것이다. 송영훈의 기사는 기자들이 그 영상을 보지도 않고 기사를 썼을 거라고 말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20대 남성들 중 상당수는 영상을 보고 화를 냈다.

그러면 이제 왜 화를 냈는가를 물을 수 있는데, 나는 여기에도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회문제를 보는 관점에서는 이런 식으로 이유를 밝혀보는 쪽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지금부터 나는 내가 이해하고 추측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는데, 글이 좀 길다. 그래서 중심요지 몇 개를 먼저 서술하고 이 순서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첫째, 20대 남성들은 유시민이 농담을 했다는 걸 몰라서 화를 낸 것이 아니다.
둘째, 이는 최근 페미니즘 조류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게 되는 ‘농담의 불균형’ 문제와 관련이 있다.
셋째, 농담은 비하와 관련이 있고, 그래서 전통 사회의 남성은 여성비하와 장애인비하로 농담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넷째, 페미니즘과 ‘정치적 올바름’ 조류에서 이것이 금지될 경우, 농담의 횟수는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농담을 할 경우 안전한 대상인 ‘남성’에 대해서 하게 된다.
다섯째, 이러한 일이 반복될 경우, 이전 시대에 대한 기억이 희박한 남성들, 특히 젊은 남성들은 오히려 본인들이 차별당한다고 느끼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여섯째, 젊은 남성들의 이러한 심리에는 상당한 타당성이 있는데, 이 사실이 존재하는 것조차 모르는 진보 미디어들의 어긋난 진단이 이들의 분노를 끝간데 없이 부추기고 있다.

즉, 나는 그들이 유시민이 농담을 했다는 걸 몰라서 화를 낸 것이 아니고, 오히려 농담이라는 걸 정확히 알았기에 화를 냈다고 생각한다. 송영훈의 글은 유시민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을 온전히 놓치고 있다.

유시민은 2019년 초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를 시작했다.

 

20대 남성이 유시민에게 화난 건 그의 농담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페미니스트들의 제지를 전혀 경험하지 않은, 고전적인 미소지니(여성혐오)를 담지한 남자의 농담’을 생각해보자. 이 사람이 드는 사례나 농담의 상당수가 여성에 관한 것일 게다. 그는 본인이 여성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그 말도 맞다. 한편으로는 페미니스트들은 이게 그의 미소지니를 반영한다고 말할 것인데, 미소지니란 말의 개념을 본다면 그 말도 맞다. 그리고 나는 여기에 실제로 ‘얕잡아보기’ 내지는 ‘우습게 보기’가 호감과 함께 작동한다고 본다.

이런 남성은 이제 나 같은 사람 주위에는 거의 출몰하지 않지만, 약간만 조건을 바꾸어버리면 아직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고학력자 집단을 떠나서 군대를 가보거나 당구장에 가보거나 시골로 내려가면 아직도 이런 남성들이 많다.

그러다가 페미니즘 조류가 불어오면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농담은 근절되어야 한다는 의식과 요구가 확산된다. 그 농담은 어떤 남성들에겐 금기가 되고, 지속하는 다른 남성들은 누군가들에게 항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일이 어떻게 되는가. 이 문제로 넘어가기 전에, 농담이란 게, 사람을 웃긴다는 게 어떻게 이뤄지는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농담은 비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농담 자체가 비하는 아니지만, 비하는 쉬이 농담이 된다. 비하없이 농담을 하는 건 대단한 재능이다. 그래서 고전시대 남성들의 농담의 대부분은 여성의 무능을 놀리는 것과 장애인을 비하하는 걸로 구성되어 있다.

이걸 벗어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돌파구 중 하나는 자기비하다. 나는 어려서 농담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요즘은 어느 그룹에 가느냐에 따라서 그들을 자주 웃기기도 한다. 나는 주로 자기비하를 사용한다.

그런데 자기비하가 농담으로 성립하려면 상당히 높은 허들이 있다. 내 캐릭터가 형성되어 있고, 사람들이 그걸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농담에 웃는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면 나는 십대 시절과 마찬가지로 웃기는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비하 이외의 방식으로 사람을 웃길 재주를 타고나지 않았으니까.

 

김구라는 무명시절 황봉알, 노숙자와 같이 방송을 했다. 당시 김구라가 '자학개그'를 한다고 해서 뜰 수가 있었을까. EBS 캡처

이를테면 방송인 김구라를 생각해보자. 지금의 김구라는 자기비하로도 사람을 웃길 수 있다. 우리는 김구라가 누구인지 다 아니까. 그런데 김구라는 어떻게 본인의 인지도를 쌓았던가? 2천년대 초반에 황봉알과 함께 인터넷 방송에서 남 욕하면서 쌓았다. 미국인 쇼트트랙 선수 안톤 오노의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한국말로 욕하는 등, 아주 무례하고 우스운 짓까지 하면서 그렇게 했다.

그랬던 김구라가 이제와서는 본인의 과거를 반성한다면서 이제부터 그런 농담은 하지 말자고 한다면, 누군가에겐 ‘사다리 걷어차기’(본인은 사다리를 올라온 후 후발주자는 올라오지 못하도록 걷어차버리는 행위)로 여겨지지 않을까?

비웃어도 '안전한' 남성이 주로 비하적 농담 대상으로 등장

다시 돌아와, 미소지니와 장애인 비하가 도덕적으로 금지된 세상의 일상생활에 대해 보도록 하자. 어쩔 수 없이 농담의 횟수가 비약적으로 준다. 그런데, 아주 없애지는 못한다. 인간의 의사소통에서 농담은 분명히 기름칠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직업적 개그맨이 아니라 비하 없이 사람을 웃길 재능은 없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사람을 웃겨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안전한 대상으로 농담을 하게 된다. 남자는 그 점에서 꽤나 안전한 대상이다. 여성을 두고 농담을 하면 미소지니스트가 된다. 게이를 두고 농담을 하면 호모포비아가 된다. 하지만 평범한 이성애자 남성을 대상으로 두고 농담을 했을 때 비난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면 사람은 어떻게 살게 되는가. 도덕적 비난을 받기 싫은 사람은, 되도록 농담을 하지 않고 살다가, 굳이 농담을 해야 할 때가 온다면, 남성을 비하하면서 한다. 유시민이 그 문제의 순간 했던 짓이 정확하게 그거다.

다시 정리해보자. 페미니즘이 대중화된 이후의 세상에선 여성을 소재로 농담을 하는 것은 금지된다. 혹은 비난받는다. 그렇기에, 남성만이 희화화된다. 이걸 자꾸 겪다 보면 남성들은 화가 나게 된다. 특히 젊은 남성들이.

젊은 남성들이 더 화를 내게 되는 이유는 뭐냐 하면, 그들은 남성이 ‘제1의 성’이라 인지되었던 때의 기억이 아예 없거나 지극히 희박하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중고교시절 학부모와 교사들이 남학생들을 좀 다르게 취급했다는 식의 기억이 남아 있다. 그것은 당시의 내가 명확히 언어화할 수 없었지만, 세상의 주인은 너희들이라는 암시였다라고 이해한다. 최상위권은 여학생들이 공부를 더 잘했지만, 학부모와 교사들은 그녀들에겐 큰 관심없이 남학생들끼리의 전교 등수에만 신경을 썼다.

이런 불균형 속에서 자라난 이들은 농담의 불균형 정도는 받아들인다. 하지만 한도는 있다. 나도 중년 남성들처럼 생각하지는 못한다. 나 역시도 ‘니거(Nigger)’라는 말은 못 쓰게 하면서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라는 말은 거듭 쓰게 해서 다소 짜증이 나 있는 백인남성과 비슷한 상태가 되어 있다.

특권 경험 못한 20대 남성 '농담의 불균형'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러니 나보다 뒤에 태어난 남성들이 이 불균형 상태가 얼마나 짜증이 날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이걸 왜 중년남성들이 이해 못하는지에 대해서, 나는 양쪽으로 감정이입할 여지가 있다. 둘 다 내 마음 안에 있는 감정들이며, 그걸 증폭해서 대입해보면 된다.

그래서 쉽지 않다. 20대 남성이 40대 남성을 이해할 수 없는 만큼이나, 40대 남성도 20대 남성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인터넷 커뮤니티라도 하면 20대 남성의 분노를 겪고 대화를 해보려고 하지만 현실세계의 40대 남성들은 이게 정말 아득히 먼 경험이다. 농담이 아니고 그냥 20대 남성이 일베라서 그런 줄 안다. 물론 일베 링크를 올리는 것만으로 비난하고 차단하던 모든 연령대의 남초 커뮤니티들이 반문정서로 들끓게 된 작금의 사태는 일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가 위에 적은 것들은 내가 느끼기엔 아전인수가 아니다. 화를 낸 이들은 나와 다른 베이스의 지적 토양을 가지고 있기에 위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을 못해서 그렇지, 인터넷 반응 보면 정확히 위의 이유로 화를 냈다. 송영훈 팩트체커는 유시민의 농담의 순간 현장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고 기술했지만, 그들은 그 지점에서 ‘여자들만 웃던데?’라고 반문한다.

이 분노가 본인의 세계관에서 이해가 안 간다고 품평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위의 구조 때문에 분노했다는 사실 자체는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 글쟁이 리그에서 그런 사람은 사실상 하나도 없다시피하다. 몇 명 있기는 한데 아무도 상대를 해주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진보적 미디어 생태계, 인문사회 전공 기반 논의, 그리고 페미니즘은 논리적으로는 별개다. 하지만 분명히 논의 방식에서 친화성이 있고, 요즘은 친화성 수준을 넘어 한 덩어리로 인식될 만한 행동을 한다. 지나치게 모든 것을 옹호하며, 서로 간에 어떠한 지적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참여자들은 본인들이 남들을 주변화시킨다고 생각하고, 젊은 남성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하지만, 관점을 뒤집어보자면 그들이 주변화되고 있는게 아닐까.

또한 젊은 남성들이 단행본 시장에서 멀어진 건 아무리 짧게 잡아도 십 년 전부터 출판사들이 당장 책을 사볼 독자층을 겨냥한 기획들을 쏟아낸 탓이기도 하다.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출판사들의 행태를 쉬이 비난할 수야 없겠으나, 마치 젊은 남성들이 읽지 않아서 문제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도 순리에 어긋난다. <백래시>란 책이 번역된 것만으로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는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

필자 한윤형 한국 사회의 청년세대 문제, 미디어 문제, 그리고 현실 정치에 관한 글을 주로 써왔다. 매체비평 전문지 <미디어스>에서 2012년부터 3년 간 정치부 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프리랜서다. 주요 저서로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2013), 《미디어 시민의 탄생》(2017)이 있다. hanyhy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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