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시발노무색기'가 중국 고사성어라고? 부끄러운 한국 언론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21.07.0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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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자회사 IT조선은 6월 28일 <'시발노 무색기' 가상자산 거래소>라는 데스크칼럼을 발행했다. 

칼럼은 "시발노 무색기(始發奴 無色旗). 쌍욕처럼 보이지만 중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사성어이자 교훈이다. 이 말의 자세한 유례는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많이 나오니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혼자 행동한 결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행동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룰을 지키지 않거나 이를 무시하는 이들 또는 혼자 잘나고 똑똑하고 안하무인인 이를 보고 이렇게 지적한다는 유례가 생겼다고 한다"라는 문단으로 시작한다. 

이 칼럼은 큰 논란을 일으켰다. '시발노 무색기'라는 중국 고사성어가 정말 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7월 4일 오후 이 칼럼은 삭제된 상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시발노 무색기'라는 고사성어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칼럼이 대한민국 1등 신문이라는 조선일보가 발행하게 된 것일까. 이 고사성어의 유래를 뉴스톱이 확인했다. 

IT조선의 ['시발노 무색기' 가상자산 거래소] 기사 캡처.
IT조선의 ['시발노 무색기' 가상자산 거래소] 기사 캡처.

공식적으로 '시발노 무색기'가 언론에 처음 실린 때는 2003년이다. 오마이뉴스는 2003년 3월 11일 <한국 언론계의 '시발노무색기'를 찾아라>라는 기사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 지부 이은우 사무국장이 '최동윤의 고사성어'를 인용해 관련한 글을 노보에 실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기사에 실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옛날 중국 고사에 삼황오제의 이야기가 있다. 그중 복희씨는 주역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길흉화복을 점치는 법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어느날 복희씨가 다스리던 태백산의 한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그래서 복희씨는 그 마을로 향하게 되었는데, 그 마을은 황하의 물이 시작되고 있는 곳이라 하여 시발현(始發縣)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마을에 도착한 복희씨는 전염병을 잠재우기 위해 3일 밤낮을 기도했다.

3일째 되는 밤에 웬 성난 노인이 나타나서 "나는 태백산의 자연신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곡식을 거두고도 자연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으니 이를 괘씸히 여겨 벌을 주는 것이다. 나는 집집마다 피를 보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했다.

복희씨는 이 말을 듣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 "자연신의 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집집마다 동물의 피로 붉게 물들인 깃발을 걸어두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마을 사람 중 한 사람인 현(縣)의 관노(官奴)가 '귀신은 본디 깨끗함을 싫어하니 나는 피를 묻히지 않고 깃발을 걸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대로 시행했다.

그날 밤 복희씨가 다시 기도를 하는데 자연신이 또 나타나 노여워하며 말하길 "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정성을 보여 내가 물러가려 했으나 한 놈이 나를 놀리려 하니 몹시 불경스럽다. 내 전염병을 물리지 않으리라" 했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 그 마을에는 전염병이 더욱 기승을 부려 많은 이가 죽었다.

이에 대해 복희씨는 "이 마을(始發縣)의 한 노비(奴婢)가 색깔없는 깃발(無色旗)을 걸었기 때문이다(始發奴無色旗)"라고 말했다. 그 다음부터 혼자 행동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 始發奴無色旗(시발노무색기)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최동윤의 고사성어 중에서.

일단 '시발노 무색기'의 출처가 <최동윤의 고사성어>라는 글은 인터넷 곳곳에서 발견된다. 2001년 동아일보는 <톡톡인터넷...추천사이트>라는 기사에서 "800여개의 이상의 고서성어의 출전과 유래를 수록하고 있는 사이트"라며 "현직교사가 중고등학생들을 위해 구축 운영하고 있는 이 사이트에는 고사성어 관련 Q&A 게시판도 운영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최동윤의 고사성어'의 원래 인터넷 주소는 끊겨 있다. 원전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2021년 7월 6일 오후 6시 40분 추가: 독자의 제보로 <최동윤의 고사성어>가 '인터넷 아카이브'에 보존된 것을 확인했다. '시발노무색기'는 [유머 카테고리]에 있는 글이다.)

인터넷 아카이브에 있는 '최동윤의 고사성어' 사이트 캡처.
인터넷 아카이브에 있는 '최동윤의 고사성어' 사이트 캡처.

 

그러면 '시발노무색기' 고사성어는 신빙성 있는 내용일까. 이 글은 1990년대 후반에 처음 인터넷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며 2000년대 중후반에 크게 유행했다. '시발노무색기'를 소개한 한 블로그는 施罰勞馬(시벌로마), 趙溫馬亂色氣(조온마난색기), 足家之馬(족가지마), 漁走九里(어주구리), 善漁夫非取(선어부비취), 燕母去(연모거), 族發揮(족발휘), 十軋索其(십알색기), 改璽技(개새기) 등 20개의 고사성어를 소개하고 있다. 전부 욕/비속어를 한자로 표현한 뒤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 것이다. 

기자가 중국 1위 포털 바이두를 비롯해 주요 포털에 '始發奴 無色旗'라는 단어를 검색했지만 검색결과에는 한국어만 나온다. 검색 결과에는 韩语笑话(한국어 유머)라고 나와 있다. 결국 중국에 있지도 않은 '가짜 고사성어'를 조선 디지털경제부장이 데스크 칼럼으로 인용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시발노 무색기' 가짜 고사성어가 이미 여러 차례 언론에 진지하게 보도됐다는 점이다. 2014년 기호일보,  2019년 남해신문, 2019년 인천일보에 보도됐고 2021년 3월에는 상장례산업뉴스에 '시벌로마' '조온마난색기' 등의 가짜 고사성어와 함께 보도가 됐다. 이 칼럼의 필자 이상길씨는 스스로를 성균관 부관장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유머로 올린 것인지 진지하게 올린 것인지 칼럼만 보고는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단순 해프닝이 아니다. '베껴쓰기'라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를 드러낸 것이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돌던 내용을 언론이 검증없이 보도하는 경향은 최근 들어 더욱 심해졌다. 그리고 일단 기사로 나오면 팩트체크가 된 것으로 생각해서 언론이 그냥 가져다 쓰는 관행이 부른 참사다. 심지어 대한민국 1등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까지 이런 '가짜명언'에 낚였다. 

이런 식으로 와전되어 잘못 알려진 명언/고사성어가 정말 많다. 뉴스톱은 <가짜명언 팩트체크>를 통해 잘못 알려진 명언 혹은 고사성어를 바로 잡고 있다. 내용 팩트체크 특별한 업무가 아니다. 당연히 해야하는 언론의 책무다. 촌각을 다투는 스트레이트 기사도 아니고 데스크 칼럼에 저런 내용이 실렸다는 것이 황당할 뿐이다. 저널리스트로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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