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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량소비사회의 출발은 '돼지 도살'[김신의 인사이트] 돼지도축 공장과 포드 컨베이어벨트의 등장

돼지의 해에 새삼스럽게 돼지의 비극에 주목한다. 환경운동연합이 발행하는 월간지 <함께사는길>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도축된 돼지는 총 1673만 마리다. 날마다 4만5836마리, 1분마다 31.8마리의 돼지가 죽은 셈이다. 이 정도면 대학살이다. 이렇게 많은 돼지를 도살하고 부위별로 고기를 나누려면, 엄청나게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돼지 고기의 가격이 치솟을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 식당의 경우 삼겹살 1인분이 1만2000원 정도인데, 재래식 방식으로 도축한다면 소고기 등심 가격만큼 높아질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돼지고기가 지금과 같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돼지의 도축 과정이 대량생산 방식을 따르기 때문이다.

대량생산은 18-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더욱 효율적인 대량생산은 20세기 초반에 포드 자동차에서 실현되었다. 포드 자동차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조립라인 생산방식을 도입한 회사로 기록된다. 컨베이어벨트 위에 자동차 차대가 올려지고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차대가 움직이면서 차례대로 부품이 결합돼 완성되는 방식이다.

신시내티에 있는 돼지 도축과 포장 공장의 모습, 1873년. 미국에서는 19세기 말부터 돼지 도축과 포장 산업이 꾸준히 진화를 해서 대량 도축을 위한 해체라인 방식이 확립되었다.

이 조립라인 방식은 헨리 포드가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립라인을 완성한 것은 엔지니어지 사업가인 헨리 포드가 아니다. 단 헨리 포드가 처음으로 그런 방식을 제안한 것은 사실이다. 헨리 포드가 조립라인이라는 혁신적인 방식을 떠올리게 된 것은 시카고의 돼지 도축장을 구경한 뒤다. 돼지 도축장은 이미 19세기 말에 대량생산 방식을 도입했던 것이다.

돼지 도축장에는 천정 아래로 금속 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그 레일에 돼지들이 거꾸로 매달려 이동하도록 되어 있다. 돼지들은 이동을 하면서 먼저 죽임을 당하고, 머리가 절단되고, 배가 갈리고, 내장이 적출되고, 몸이 반으로 잘리고, 검사를 받는다. 또 레일을 따라 가공공장으로 이동된 뒤 부위별로 해체된다. 이렇게 살아 있는 돼지가 부위별 고기로 해체되기까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오늘날과 같은 최신식 도축장에서는 한 마리의 돼지가 죽음부터 해체 냉장보관까지 3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에 따른 조립라인의 개념도. 헨리 포드는 돼지 도축 해체라인을 보고 영감을 얻어 조립라인을 자동차 공장에 도입할 것을 지시했다.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에 따른 조립라인의 개념도. 헨리 포드는 돼지 도축 해체라인을 보고 영감을 얻어 조립라인을 자동차 공장에 도입할 것을 지시했다.

헨리 포드는 20세기 초 시카고의 돼지 해체라인에서 아주 중요한 원리를 발견했다. 그것은 ‘노동의 조직화’다. 라인 방식의 도축장에서 노동자들은 한 곳에 서서 한 가지 일만 한다. 어떤 노동자는 하루 종일 돼지의 목만 딴다. 어떤 노동자는 내장만 빼낸다. 어떤 노동자는 칼로 배만 가른다. 포드는 이런 도축장의 해체라인을 자동차 공장에서는 조립라인으로만 바꾸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노동자가 도구를 가지러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동 시간이 단축될 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그를 대신해 움직이는 컨베이어벨트에 매여 끊임없이 일을 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1913년에 이 라인 생산을 처음 도입했을 때 포드 자동차는 단번에 생산성이 40% 상승했다. 포드의 조립라인 생산방식은 수 년에 걸쳐 진화를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자동차의 가격은 3배 가까이 떨어졌다. 조립라인에 따른 대량생산은 자동차에서 다른 산업으로 곧바로 전이되었다. 20세기 초반에 확립된 조립라인에 따른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는 인류 사회를 영구적으로 바꿔놓았다.

포드 하이랜드 파크 공장의 조립라인에서 자동차가 제작되고 있다.
포드 모델 T, 생산: 1908-1927년. 이 자동차는 1913년부터 조립라인으로 생산되면서 자동차의 대중화를 실현시켰다. 이로써 사치품이던 자동차는 시골의 농부나 공장의 노동자들도 살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의 대량소비사회를 낳은 기술의 출발이 돼지의 대량 도축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단 식량 생산에서 대량생산 방식이 이루어진 것이다. 문명의 발전도 이와 비슷하다. 농사란 식량 생산의 혁신이었다. 사냥은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지만, 농사는 통제가 가능해서 식량을 축적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뒤 가축을 키웠다. 그렇게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한 뒤에 비로소 기술과 문화가 발전했다. 배가 불러야 어려운 철학도 하고 엉뚱한 공상도 하고 아름다운 예술도 하고 호기심을 진작시켜 과학을 발전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음식 가격은 가장 강력한 통제의 대상이었다. 음식의 결핍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주식인 곡물은 더욱 그렇다. 현대에 들어와서 고기 역시도 안정된 가격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이 ‘해체 라인disassembly line’이라는 것을 발명케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것은 헨리 포드 같은 사업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조립 라인assembly line’을 탄생시켰다. 이로써 일상 용품의 가격 마저도 떨어뜨렸다. 인간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었을 지 모르지만, 라인생산 방식은 돼지에게 끔찍한 재앙이 되었다. 더 많은 돼지를 아주 쉽게 효율적으로 도축할 수 있게 되자 더 많은 돼지가 살해되었다. 돼지의 원래 수명은 15-20년이지만 사육 돼지의 수명은 6개월이라고 한다. 돼지의 해에 돼지의 비극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는 과연 돼지에게만 재앙일까?

김신 팩트체커  kshin2011@gmail.com    최근글보기
디자인 미술 비평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을, 20011-2013년까지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다. 디자인사, 디자인론, 디자인기호론,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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