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만 전달하는 교도통신, '프레임'을 만드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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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만 전달하는 교도통신, '프레임'을 만드는 연합뉴스
  • 윤재언
  • 승인 2021.09.2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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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히 ‘도매상’에 머무르는 日 교도통신을 생각하며

길지 않은 경제지 기자 생활에서 처음 2년은 사회부에서 일을 했다. 첫 출입처는 서울중앙지법을 위시한 서초동 법원이었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재판 일정과 다른 법조팀 선배들과 함께 하는 이른바 ‘높으신 분들’과의 점심, 저녁 약속 자리는 초년생 기자에게 버거움과 동시에, 한편으론 정신없이 이뤄진 적응의 시간이었다. 

법원에 출입하고나서 가장 먼저 깨달은 건 ‘연합뉴스’의 강력함이었다. 초반에는 영문도 모른 채 사내에서 걸려오는 ‘연합에 떴는데 어떻게 됐냐’는 전화에 쩔쩔매기 일쑤였다. 당시는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으로 연합뉴스는 아직 ‘도매상’느낌이 더 강했다. 물론 현장 기자에게 연합뉴스는 강력한 정보망과 물량(인원수가 보통 다른 언론사보다 더 많고 출입처 간사를 하는 일도 적지 않다)때문에 ‘갑’의 위치에 있긴 했지만. 

전혀 챙기지 못하던 내용이 사내 연합뉴스 단말기에 뜬다거나 연합뉴스와 다른 관점(이른바 ‘야마’)으로 기사를 쓰는 건 어느 정도 용기와 경력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기사 밸류 판단을 하며 “연합 내용/야마는 잘못됐다”고 사내에 어필할 수 있게 됐지만 그럼에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법원출입 뒤인 2012년엔 사건팀에서 경찰기자 생활을 1년여 했다. 2012년은 이명박 정권의 무리한 언론사 개입으로 상당수 언론사가 파업을 진행하던 시기였다. 종로경찰서 기자실에 어느 날부터 MBC 기자가 오지 않았고 거기에 연합도 가세했다.

그때까지 ‘연합뉴스 없는 사회부 기사’는 상상할 수 없었다. 대수롭지 않은 단신 기사는 연합뉴스를 조금 바꿔 쓰는(이른바 ‘우라까이’) 게 관행화됐었고 혹시라도 큰 사건이 있을 때는 연합뉴스의 기초취재가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챙기지 못한 내용이나 야마로 시달리는 것도 적지 않아 ‘조금 편해지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실제는 어땠을까. 종로경찰서 기자실은 의외로 ‘연합 없는 평화’가 찾아왔다. 이 때는 연합뉴스가 단말기 외에 스마트폰 앱에서도 빈번히 뉴스를 속보로 날리던 시절로 어느 정도 ‘소매상화’해 있었다. 이는 현장 기자에겐 더 큰 압박이기도 했다.

연합 뉴스의 기능정지를 통해 파업 대의에는 동의하면서도 그 존재가 얼마만큼 한국언론 전체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지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정말 연합뉴스는 필요한 걸까’ 하는. 올 9월 들어 연합뉴스가 한시적으로 포털에서 검색되지 않게 되면서 과거의 일을 다시금 떠올리게 됐다.

서론이 다소 길어졌다. 일본에서 연구, 조사를 위해 언론사 기사를 참고할 일이 많다. 하지만 모든 일본 언론사 기사를 한국처럼 포털이나 KINDS와 같은 사이트에서 쉽게 검색할 순 없고(대표적으로 무료로 검색되는 건 우익 산케이신문 정도다) 대부분 자체 아카이브를 이용해야 한다(유료라 학교를 통해서 접속해야 하고 그나마도 엄격한 동시접속 인원제한이 있다). 다만 통신사 기사(교도통신, 지지통신)는 보통 도움이 안 된다. 검색해서 잘 나오지도 않거니와 나오는 기사도 대부분 단신(스트레이트)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교도통신은 자체 앱도 없다. 철저히 ‘도매상’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교도통신 웹사이트를 보면 정치와 사회 같이 주된 ‘상품’은 아예 실려 있지 않다. 대신 전국의 지방지와 함께 2006년 만든 별도 사이트인 47NEWS(47은 일본내 지자체숫자, 별도 앱도 있다)에서 기사를 실시간으로 내보내고 있고, 트위터 계정에서 발신하고 있다. 기사의 형식은 철저히 스트레이트에 머물러 있다. 기자의 주관이 담긴 기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9월 29일 새벽 2시쯤 47NEWS에 올라와 있는 교도통신과 홈페이지에 실린 연합뉴스 정치 기사 제목을 몇 개 비교해볼까 한다. 굳이 선별하지 않고 맨 위에 올라와 있는 기사를 골랐다.

47NEWS 정치란에 올라와 있는 교도통신 뉴스 제목들
47NEWS 정치란에 올라와 있는
교도통신 뉴스 제목들

수상, ‘설명부족’불식 못해…마지막 기자회견
자민당 신총재, 29일에 선출…고노, 기시다씨가 결선 전망
병상확보로 법개정 검토키로…정부, 강제력 있는 조치 신설

연합뉴스 홈페이지 정치란에 올라와 있는 기사들
연합뉴스 홈페이지 정치란에 올라와 있는 기사들

또 난타…洪 “대북정책, 文석열” 尹 “직접 만든 말 아닌가”
김만배 누나, 尹부친 자택 매입…尹측 “신상 몰랐다”
與주자, 대장동 설전…“제2수서사태” “국힘과 쿵짝”

 

연합뉴스는 비록 정치인들의 발언을 땄다고는 하나 상당히 자극적인 표현을 인용하고 (‘난타’, ‘文석열’, ‘쿵짝’) 되도록 대립각을 만들려고 하는 관점이 눈에 띈다. 그에 비해 교도통신 기사는 발생한 내용을 담담하게 제목에 뽑은 느낌이다. 당장 29일에 자민당 총재선거가 있음에도 ‘대립 프레임’은 없다. 연합뉴스가 대립 프레임으로 야마를 제시하면 적지 않은 언론사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물론 다는 아니라고 본다). 내용까지 읽어보지 않더라도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프레임을 인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언론은 정치권을 제대로 비판 못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일본 내 신문사와 방송사는 나름대로의 프레임으로 총재선거를 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진보계열 아사히신문은 ‘총재선거, 원전 장래에 큰 차이…표류끝에 논의 피해온 정권(해당기사)’이라 전하고 있고, 보수계열 요미우리신문은 ‘결선투표 ‘가능한한 뭉쳐서 대응하고자 한다’…파벌의 힘 보여주는 호기라 보는 각파벌’(해당기사)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총재선거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아사히와 굳이 그런 점을 다루지 않고 파벌의 역할을 중시하는 요미우리의 차이가 보인다(물론 한국 언론에 비해 최근엔 권력을 집요하게 추궁하지 않는 건 사실이다. 이번 글 논점은 아니기에 이는 다른 기회로 돌리고자 한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면 ‘가장 빠르고 정확한 뉴스 생산’이 역할로 여겨지는 통신사가 굳이 다른 언론사에 ‘프레임’까지 제시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과거에 건너듣기로는 연합 기사 야마나 내용을 다른 언론사가 추종보도(‘받는다’고 표현한다)할수록 내부에서 평가받는다고 한다. 기자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평가인 듯싶으면서도 어떨 때는 그게 유독 연합뉴스에선 과도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미국 현지 사정을 잘 몰라 자세하게 쓰긴 어렵지만 현재 사용하는 AP통신사 앱 속보 타이틀 대부분은 사실 전달이 중심이다(앞서 언급했듯 교도통신은 단독앱 자체가 없다). 그러나 연합뉴스는 정해진 시각에 내보내는 ‘이시각 연합뉴스’에서 기자 개인의 주관이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드는 제목이 적지 않다. 아래 사진의 윗 기사(대장동 의혹)는 특히 그런 느낌이 강하다.

AP 스마트폰 앱 속보.
AP 스마트폰 앱 속보.
연합뉴스 스마트폰 앱 속보.
연합뉴스 스마트폰 앱 '이 시각 연합뉴스'.

연합뉴스를 거론할 때 ‘국가기간통신사’라는 말을 쓴다. 연합뉴스는 매년 거액의 정부지원(300억원대, KBS기사)을 받으면서 동시에 대부분의 언론사와 기사 공급 계약을 맺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연합뉴스는 권력 비판이나 기자 주관이 담긴 기사 작성(그것이 권력 비판이든 야당 비판이든)보다는 오히려 사실보도, 최대한의 객관성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연합뉴스의 ‘자체 프레임 보도’는 그 본분을 잊은 것이라고 밖엔 생각되지 않는다.

윤재언   shaprly2u@gmail.com    최근글보기
일본 히토츠바시대 강사, 전 신문기자. 연세대에서 사회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뒤 2010년 매일경제신문 입사. 예전부터 갖고 있던 ‘일본을 알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자일을 뒤로 한 채 2015년 훌쩍 바다를 건넘. 2021년 히토츠바시대에서 박사 학위 취득 뒤 연구자의 길에 접어듦. 전공은 국제관계(국제정치경제)지만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정치 / 경제 / 사회(특히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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