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정년 연장, 청년 일자리 뺏는다? 쟁점 총정리

  • 기자명 이강진 기자
  • 기사승인 2021.10.0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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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내용의 청원이 ‘국회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올라왔습니다. 곧바로 다음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완성차 3개사 정년연장 법제화 청원에 반대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등장했습니다. 본인을 ‘완성차 업체에서 근무 중인 MZ세대 현장직 사원’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젊은 세대를 생각하지 않고 산업의 장기적 관점보다는 단기적 관점으로 추진하는 (완성차) 3개사 정년연장 입법 청원에 반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3월 한국 완성차 3사 노조가 ‘정년 65세 법제화’를 국회에 요구한 이후, 정년 연장 문제는 또 다시 세대 갈등 문제로 번졌습니다. 여러 언론들도 ‘586세대’와 ‘MZ세대’를 대립시키며 정년 연장 문제를 ‘밥그릇 싸움’으로 묘사했습니다.

네이버 뉴스에서 갈무리
네이버 뉴스에서 갈무리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에게 ‘정년 연장’은 취업을 방해하는 또 다른 걸림돌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균 수명의 증가’와 ‘저출산·고령화’, ‘노인 빈곤 문제’ 등으로 정년 연장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습니다. 정년 연장 의제를 단순히 세대 갈등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더 정밀한 진단과 논의가 필요한 때입니다. 뉴스톱에서 정년 연장의 쟁점이 되는 사안들을 하나씩 짚어봤습니다.

 

① 정년이 ‘65세’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연금의 지급 시기 때문입니다. 1998년 국민연금법이 개정됨에 따라, 2014년 기준 60세(1952년생)였던 ‘연금수급개시연령’이 4년마다 1세씩 증가해 2033년부터는 ‘65세’가 됩니다. 퇴직 후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소득이 없는 기간을 ‘소득 크레바스’라고 하는데, 이때 생계유지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뜻의 ‘크레바스 공포’가 ‘한경 경제용어사전’에도 명시돼 있습니다. 현 60세 정년 제도가 유지될 경우, 2033년부터는 정년퇴직 후 5년 동안 연금을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완성차 3사 노조가 2033년까지 국민연금 수급 연령에 맞춰 단계적으로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출처: 한경용어사전
출처: 한경용어사전

 

②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구체적인 근거는?

간단하게 표현하면,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노후 준비는 미흡’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발표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자료에 따르면, 1970년부터 2018년까지 우리나라의 ‘고령화 비율 연평균 증가율’은 ‘3.3%’로 OECD 37개국 중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출처: 한국경제연구원
출처: 한국경제연구원

고령 인구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년 근로자의 노후 준비 상황은 어떨까요? 지난해 5월, '하나금융그룹 100년행복연구센터'에서 서울·수도권과 5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50세 이상 남녀 퇴직자를 대상으로 ‘노후자금 준비 수준’에 대해 조사한 결과, ‘8.2%’만이 노후자금이 ‘충분하다’고 답했고, ‘66.0%’는 ‘불충분하다’고 답했습니다.

출처: 100년행복연구센터 생애금융보고서
출처: 100년행복연구센터 생애금융보고서

노후자금이 충분하지 못하다 보니, 퇴직 후에도 일하는 고령층은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한국보건연구원의 ‘2020년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36.9%’가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4년 ‘28.9%’에서 2017년 ‘30.9%’로 3년 동안 2%p 늘어났던 수치가, 그 이후 3년 동안은 ‘6%p’ 늘어나 일하는 고령층의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크레바스 공포’뿐만 아니라 고령 인구 비율이 빠르게 증가한다는 점, 또한 퇴직자의 과반수가 ‘노후자금이 불충분하다’고 느끼며, 실제로도 65세 이상 근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점 등이 “정년을 65세로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의 대표적인 근거입니다.

 

③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정년 연장의 상관관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저출산으로 인해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한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생산인구가 감소하면 노년부양비가 증가해 사회적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실제로 2019년 통계청의 『2019년 장래인구특별추계를 반영한 내·외국인 인구전망: 2017~2040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생산연령인구 1백 명당 '19.3명'이었던 노년부양비가 2040년에는 ‘61.6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럽게 ‘기존의 고령 근로자들이 더 오랫동안 일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7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대학에 입학한 2002년생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시기인 2027년경이면 우리나라도 기업이 일 할 사람을 구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 할 수 있다”며, “정년연장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이유”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생산연령인구에 대한 우려가 ‘과대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인구학자인 서울대 경제학부 이철희 교수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생산가능인구가 아니라 성별·연령별·학력별 생산성(실질적 노동력)을 반영한 미래 경제활동인구를 추계해야 한다”며, “2019년 성별·연령별·학력별 경제활동 비율을 기준으로 노동인구 변화를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앞으로 20년 동안은 경제활동인구 자체가 크게 줄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이 교수는 “여성과 장년층에서 경제활동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경제활동인구는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며, “또 우리나라는 앞으로 20~30년 동안 고학력화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는데, 이 흐름이 고령화 효과를 상쇄하게 될 것이다”라고 예측했습니다.

 

④ 기존 '60세 정년 제도'는 실효성이 있었는가?

‘정년 65세 연장’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전에, 기존 60세 정년 제도는 실효성이 있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60세 정년 제도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해야, 65세 정년을 논의하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55~64세) 평균 근속기간’은 ‘15년 2.1개월’로 전년동월대비 4.9개월 감소했고, 그만둘 당시 평균 연령은 ‘49.3세’로 전년동월대비 0.1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60세 정년’이란 말이 무색하게 평균 퇴직 연령은 50세에도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

출처: 통계청
출처: 통계청

『베이비붐세대와 정년연장 혜택의 귀착(석재은, 이기주. 2014)』에서는 베이비붐세대 중에서 정년 연장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비율을 '11.4%'로 추정했습니다. 또한 정년연장제도 시행으로 혜택을 받게 될 대상은 ‘여성보다는 남성’, ‘안정적 지위를 선점한 고연령층’,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 ‘민간기업보다는 공공 및 정부 기관 근로자’, ‘노동조합이 조직된 기업의 근로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년 제도는 '특정한 부류'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퇴직하는 평균 연령이 49.3세이지만, 일하는 노령인구는 여전히 많습니다. <OECD국가의 인구 고령화와 고령자 고용정책(Working Better with Ages)>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인이 노동시장에서 은퇴하는 연령은 ‘72.3세’로 OECD 회원국 중 1위입니다. 은퇴 시기는 매우 이르지만, 또 다른 일터를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인구가 그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2016년에 시행된 ‘60세 정년’조차 아직 실효성이 크지 않은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⑤ 기존 '60세 정년 제도'는 신규 청년 고용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한국개발연구원 정책연구시리즈’로 간행된 『60세 정년 의무화의 영향: 청년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한요셉)』는 2013년부터 2019년 3월까지 고용보험에 가입된 모든 사업체와 근로자의 정보를 수록한 <고용보험DB>를 분석했습니다. 2013년에 ‘60세 정년’이 입법화되고, 2016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됐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의 연구를 통해 정년 연장이 청년(15~29세) 고용에 미친 영향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민간기업의 정년 연장으로 인해 고령 고용이 1인 증가하면, 평균적으로 청년 고용은 0.2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감소세가 더 뚜렷한 산업군도 있었습니다. 정년 연장으로 고령 고용이 1명 증가할 때, ‘제조업’은 ‘0.3명’, ‘사업시설 관리·사업지원 및 임대 서비스업’은 0.4명, ‘교육서비스업’과 ‘금융·보험업’은 약 0.6명 이상의 청년 고용이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이 결과는 60세 정년 연장 도입 초기의 데이터이므로 더 장기적인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필요합니다.

한요셉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
한요셉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

 

⑥ ‘65세 정년 연장’은 청년 고용에 영향을 끼칠까?

지난 13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전국의 20대 청년을 대상으로 시행한 '청년 일자리 인식 설문조사'의 결과를 보면, '63.9%'의 청년이 ‘정년연장이 청년 신규채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65세 정년 연장 제도'가 정착되면, 지금 '2~30대 취업준비생’의 신규 채용에 악영향을 끼칠까요?

출처: 한국경제연구원
출처: 한국경제연구원

일단, 현실적으로 65세 정년이 법제화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7월 ‘인구구조 변화 영향과 대응 방향’에 대해서 논의한 <제40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 자료를 보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노년부양비가 세계에서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지적하면서도,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한 거대 양당의 각 유력 대선 후보들의 정책 토론과 공약에서도 ‘정년 연장 의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조영태 교수는 “지금부터 정년 연장을 준비해도, 수많은 난제 때문에 실제 제도가 시행되는 것은 빨라도 2027년이나 2028년쯤에나 가능할 것”이라며, “제도가 시행될 7∼8년 후에 이들 세대는 노동시장의 핵심을 이루고 있을 것이고, 그때 노동시장에 새로 편입될 2000년대 초반 출생자들은 생산 인력 감소로 일자리 사정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국가통계포털 통계자료'에 따르면, 현재 취업 시장에 나와 있는 90년대 출생자 수에 비해, 2000년대 초반 출생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KOSIS(국가통계포털)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
KOSIS(국가통계포털)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

심지어 '고령 고용과 청년 고용이 대체 관계가 아니다'는 것을 드러낸 연구도 있습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서 2012년 발간한 『청년고용과 중·고령층 고용의 대체 관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실증연구는 ‘세대 간 일자리 대체설’과는 달리, '고령층 일자리와 청년층 일자리는 보완관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출처: 한국노인인력개발원

 

⑦ ‘정년 연장 논의’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

정년 연장이 기업의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원인은 '근속연수가 길수록 임금 또한 함께 높아지는 연공서열식 임금 체계' 때문입니다. 지난 27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대·중소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중장년 인력관리에 대한 기업실태’를 조사한 결과, 정년 60세 의무화로 인해 중장년 인력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응답이 '89.3%'였고,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인 항목은 ‘높은 인건비(47.8%)’였습니다. 한국 기업의 ‘연공서열식 임금 체계’ 하에서 정년이 연장되면, 기업의 고용 유지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기업의 부담이 신규 채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에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정년 연장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출처: 중앙일보
출처: 중앙일보

앞서 언급했던 서울대 경제학부 이철희 교수는 “단순히 한 직장, 같은 자리에서 더 오래 일할 수 있게 하는 기계적 정년 연장은 무의미하다”며, “산업별 노동력 이동이 용이하도록 노동 공급의 '탄력성'을 획기적으로 키우고, 노동시장 경직성을 강화하는 연공서열에 기반한 임금제도부터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 근로자가 ‘가장 오래 근무한 기업’에서 퇴직하는 시기가 이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기업이 '장기근속자의 인건비는 계속 오르지만, 생산성은 낮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희망퇴직이나 권고사직으로 인력을 감축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앞서 언급했던 ‘OECD 연구자료’에 따르면, “연공급적 임금체계가 고령자에 대한 수요를 저해하는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또한 ‘한요셉의 연구’에서도 “정년 연장으로 인한 노동비용 상승의 부담을 피하기 위한 선제적 고령 고용 감소”가 관찰됐다고 밝혔습니다.

고령에 접어들수록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높은 임금이 보장되는 ‘연공서열식 임금 체계’는 정년 연장의 논의를 가로막는 가장 큰 방해물입니다. 급속한 고령화로 인해 정년 연장에 대한 토론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연공서열식 임금 체계 개편'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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