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바람 피워' 이혼한 배우자에게 내 국민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 기사입력 2021.10.13 14:38
  • 최종수정 2023.03.07 12:06
  • 기자명 신다임 기자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유책배우자의 국민연금 분할 지급을 멈춰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청원인은 이혼한 유책 배우자가 자신의 국민연금에 대해 분할 지급을 신청해 수급 받고 있으나, 그럴 자격이 없다며 분할 지급을 멈춰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면서 “본인과의 혼인 기간만을 내세워 책임과 의무를 저버리고 부양의 의무를 하지 않은 자도 연금을 받아 갈 자격을 주는 게 대한민국의 국민연금법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해당 청원은 지금까지 10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법은 이혼한 유책배우자에게도 분할연금 수급권을 인정하고 있을까요? 뉴스톱이 확인했습니다.

 

대한민국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 캡쳐
대한민국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 캡쳐

 

■분할연금제도란

국민연금법 제64조에 따라 이혼한 배우자의 국민연금 중 노령연금을 나눠 받는 제도입니다. 앞서 1999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민연금의 당연가입제가 실시되면서 이혼 증가 추세를 감안하여 도입됐습니다. 혼인기간 동안 재산형성에 공동 기여한 부분을 인정하고, 이혼으로 인하여 초래될 수 있는 노후생활 불안정, 특히 소득활동을 하지 않던 배우자의 노후 빈곤에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조건이 있습니다. 혼인기간이 5년 이상이었던 자가 △배우자와 이혼하였을 것 ​△배우자였던 사람이 노령연금 수급권자일 것 △60세가 되었을 것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합니다. 이를 모두 충족한 상태에서 5년 이내에 분할연금을 신청하면 그때부터 배우자였던 자의 노령연금에서 일정한 금액을 지급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혼인기간은 배우자가 실종이나 거주불명 등으로 등록된 기간, 당사자 간 따로 살았다고 합의한 기간, 법원 판결로 혼인관계가 없었다고 인정되는 기간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비율은 조정가능  

과거 연금을 나누는 비율은 일률적으로 50대 50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혼인 기간 중 실질적으로 부부공동생활을 하지 않은 배우자가 상대 배우자의 노령연금을 균분하여 지급받는 것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혼인 기간 중 상대방 배우자의 연금 형성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기 위해 마련된 분할연금제도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것입니다. 

이후 특례조항이 신설되면서 2016년 12월 30일 이후에는 당사자 간 협의나 재판을 통해 분할비율을 정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정부는 이혼 책임이 큰 배우자에게까지 노후자금인 연금의 절반을 떼어주는 것은 불합리하고 억울한 일이라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분할 비율을 100대 0으로 정하면, 어느 한쪽 배우자가 자신의 분할연금 수급권을 포기하고 다른 한쪽 배우자에게 온전히 귀속시키는 것도 가능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유책배우자 제한 조항은 없어

한편 국민연금법에 유책배우자를 제한하는 조항이 따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국민연금은 국가에서 보장하는 사회보험 중 하나로, 헌법 제34조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한 재산권적 성격을 넘어서 사회보장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분할연금제도도 이혼한 배우자가 혼인 기간 중 재산 형성에 기여한 부분을 청산ㆍ분배하는 재산권적 성격과 이혼배우자의 노후를 보장하는 사회보장적 성격을 함께 가집니다. 혼인의 파탄 사유나 기여 정도와 상관없이 이혼한 배우자에게 일정액을 보장해주는 이유입니다.

분할연금을 둘러싼 논란들은 주로 이 두 성격 사이의 줄다리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분할연금제도는 재산권적 성격과 사회보장적 성격을 함께 가지므로 입법자는 이 두 요소를 고려하여 분할연금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할 수 있고 두 요소 중 어느 요소를 더 중시할지는 기본적으로 입법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 다만 입법형성권의 재량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입법자는 분할연금제도를 형성함에 있어 위 두 요소 중 어느 하나를 완전히 무시하여서는 아니 된다. 만약 어느 한 요소를 간과한다면 이는 분할연금제도의 도입 취지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재산분할과는 별도로 명시해야

이혼 시 ‘배우자에게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겠다’고 합의한 경우에는 어떨까요. 2019년 대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재산분할에 대한 합의는 분할연금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분할연금 수급권은 국민연금법에 따라 이혼배우자가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직접 수령할 수 있는 이혼배우자의 고유한 권리이므로, 민법상 재산분할청구권과는 구별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설명입니다. 따라서 국민연금 분할에 대한 조항이 이혼 시 조정조서에 별도로 명시되어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분할연금 수급권이 인정됩니다.

 

대법원 2018두65088 판결문 갈무리
대법원 2018두65088 판결문 갈무리

 

정리하면, 국민연금법은 유책배우자를 제한하는 조항이 없는 동시에 사회보장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조건을 갖춘다면 누구든 분할연금을 수급할 수 있습니다. 이혼 시에 재산분할에 대해 합의했다고 해도 분할연금은 별도의 권리로 인정됩니다. 그러나 이혼 과정에서 당사자 간 합의나 법원의 결정을 통해 국민연금에 대한 분할비율을 명시하면 (유책)배우자의 분할연금 수급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이혼에 대한 귀책사유가 배우자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조건을 갖추면 기본적으로는 국민연금의 절반은 지급해야 하다는 겁니다. 

다만 이는 청원인에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소급 적용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청원 게시글에 따르면 청원인은 2004년에 유책배우자와 이혼했습니다. 그러나 분할비율을 조정할 수 있게 한 특례법은 2016년 12월 30일부터 시행됐습니다. 이에 따라 효력도  시행 후 최초로 분할연금 지급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만 적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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