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당의 '정체성 정치', 그리고 주목받는 후보들

  • 기자명 윤재언
  • 기사승인 2021.10.2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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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를 얘기할 때마다 한국에선 “어차피 자민당”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2009년을 제외하고 늘 ‘자민당이 얼마나 이길지’가 관건이었으니 이해가 가는 반응이다. 그럼에도 일본에 야당이 없는 건 아니고 실제로 몇몇 선거구에선 야당이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번 글에서는 개인적으로 관심 있게 보고 있는 10월 31일 총선거의 야당 후보(주로 여성 후보)와 선거구 초반 정세에 대해 설명해드릴까 한다. 한국 독자분들께 ‘일본 선거에도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는 차원이기도 하다.

일본에는 현재 다수의 야당이 난립해 있다. 제1야당은 입헌민주당(立憲民主党)으로 일본 정치 성향을 좌우로 나누는 중심축인 ‘헌법개정’과 관련해 ‘반대측’에 서 있다. 이름(입헌)에서도 알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명칭에서 다소 거리감이 있을지도 모르는 공산당(共産党)이 있다. 사실 일본에서 역사로 치면 자민당보다도 오래 된 당이다. 무려 '1922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당연히 헌법개정에는 반대이고 과거엔 천황제 폐지나 혁명추구 의혹(?)을 받았으나 최근 강령개정 등을 통해 다소 온건해졌다. 특이하게 ‘반중’이며 북한(아웅산 묘소 테러 이후 갈라섬)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

이 밖에 과거 민주당 정권 때 주로 안보 관련해 오른쪽 입장을 취했던 이들이 만든 국민민주당(国民民主党)도 있고, 냉전시기 제1야당 사회당 좌파(동구권 용인세력)의 명맥을 잇는 사민당(社民党)도 아직 소수정당으로 남아 있다. 배우 출신 야마모토 타로가 창당한 레이와신센구미(れいわ新選組)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나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한 상황이다. 현재는 국민민주당을 제외하고 1996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처음 상당수 지역구에서 야당 단일화가 이뤄져 있다.

최근 이들 정당의 공통점을 하나 들자면 ‘반자민당’ 외에 나름의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성적 다양성 / 저연령’을 내세워 후보자들을 공천하는 경향이 확연히 나타난다. 당연히 반대 이미지인 자민당과 대척점으로 삼기 위해서다. 아직 자민당의 지역 조직이나 굳건한 보수 지지층을 뚫기엔 역부족이나 그래도 작으나마 변화의 양상도 확인되는 상황이다. 이번 글에는 이들 주목할 만한 야당 후보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자민당 세습정치가에 도전한 25세 여성후보

첫번째는 기후현 제5선거구에 출마한 이마이 루루(今井るる, 트위터, 홈페이지) 후보다. 기후현은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당연히 자민당세가 강하다.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2009년을 제외하고 자민당 후루야 케이지(古谷圭司)가 큰 아버지 대를 이어 의원을 하고 있다. 여기에 도전한 이마이 후보는 ‘1996년생 25세 여성’이다. 해당 선거구 출신이긴 하지만 도쿄에서 추오대를 졸업한 뒤 회사에서 일하고 선거 출마를 결심했다고 한다. 대지진이 있었던 도호쿠 지역 지원 활동을 하면서 느낀 문제의식을 고향에서 살리고자 한다고 한다. 거리 연설에서는 “지역기반도 간판도 돈도 지명도도 없지만 강한 의지와 뜻이 있다”고 어필하고 있다.

이런 신선함이 먹혔는지 일본 언론 초반 정세조사(일본에서는 구체적인 수치로 선거 여론조사를 발표하지 않고 해당 언론사가 조사한 숫자에 현지 취재를 더해 서술식으로 정세를 전한다, 정세조사를 정리해둔 일본 블로그 참고)에서는 ‘접전’ 내지는 이마이 후보가 ‘열심히 따라잡고 있다(激しく追う)’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역전까지는 모르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비례부활(한국과 다르게 소선거구제와 비례명부에 모두 이름을 올릴 수 있고 석패율에 따라 소선거구에서 지고도 당선가능)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마이 루루 후보 프로필 사진
이마이 루루 후보 프로필 사진
지역구에서 선거 운동을 하는 모습
지역구에서 선거 운동을 하는 모습

 

‘차별 반대’ 내세우는 공산당 후보

다음은 도쿄로 옮겨가 보자. 도쿄 북쪽 지역을 메인으로 하는 도쿄12구 선거구다. 여기에서는 여당 공명당(자민당과 단일화)과 공산당이 격돌하고 있다. 후보자인 39세 공산당 이케우치 사오리(池内さおり, 트위터, 홈페이지) 후보는 대학생때부터 당 조직에 관여하면서 젠더나 인종차별(혐오발언반대 등) 문제에서 목소리를 높여왔다. 앞서 적었듯 공산당은 역사도 역사거니와 냉전시대 보여준 과격성으로 현재 일본인들에게는 거부감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확고한 지지층(선거구마다 수만에서 수천명의 열성 당원이 존재)을 기반으로 소선거제 이후 야당표를 깎는 역할에 그쳤는데, 이번에는 200개가 넘는 선거구에서 국민민주당 제외 야당 단일화가 이뤄졌다. 

이케우치는 나름 세련된 방식으로 차별 문제를 적극 제기해온 사람이다. 2014년 비례후보로 처음 당선된 뒤 해당 선거구에서 정치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7년 총선에선 38.32%를 얻었지만 당시 장관 출신 공명당 후보에게 패해 의석을 잃었다. 이번에는 초반 판세가 ‘접전(競り合う)’으로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도쿄 민심의 ‘좌향좌’를 가늠해볼 수 있는 선거구의 하나로 생각된다. 실제 소선거구 당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케우치 사오리 후보 프로필 사진
이케우치 사오리 후보 프로필 사진
도쿄도 내 여성 기초의원들과 함께 하는 이벤트
도쿄도 내 공산당 여성 국회, 지방의원들과 함께 하는 이벤트

 

동정표와 야권 단일화로 이시하라 신타로 아들 꺾을 수 있을까

과거부터 시민운동 중심지였던 도쿄8구(스기나미구)에 출마한 입헌민주당 요시다 하루미(吉田晴美, 49, 트위터, 홈페이지) 후보 역시 관심을 받고 있다. 선거 초반 야마모토 타로가 일으킨 ‘평지풍파’ 영향이 컸다. 야마모토는 야당 단일화를 고려치 않고 뜬금없이 해당 선거구에 출마한다고 선언했고(출마한 적이 있기에 완전히 뜬금없는 건 아니지만), 야당 성향 유권자를 중심으로 “여태까지 지역 기반을 닦아온 요시다를 생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있었다. 결국 야마모토가 양보하는 자세를 보이고 비례 대표에만 출마하겠다고 물러서자 동정을 받던 요시다가 반대로 주목받는 결과를 낳았다. 현재 야마모토는 직접 “야당 단일후보는 요시다”라고 지원 유세에도 나선 상황이다.

관심이 가는 건 도쿄8구 자민당 후보가 장관까지 지낸 거물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라는 점이다. 노부테루는 한국에도 악명이 높은 전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의 아들이자 자민당 도쿄도당위원장(東京都連会長)을 지냈다. 2009년 정권교체 당시에도 의석을 지킬 정도로 지역 기반도 있다. 그러나 초반 판세는 요시다가 ‘접전 우위’인 결과가 전해지고 있다. 그동안의 지역 활동과 야마모토 타로로 인한 관심, 동정표가 모인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승리한다면 이변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요시다 하루미의 프로필 사진
요시다 하루미의 프로필 사진
도쿄도내 지역 의회 의원들과 이벤트
도쿄도내 지역 의회 의원들과 이벤트
요시다와 야마모토 타로의 동시 유세
요시다와 야마모토 타로의 동시 유세

스가 전 총리와 격돌한 여성 후보

마지막으로 현시점에 승리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으나 그래도 주목할 만한 곳이 요코하마시 남서부 가나가와2구다. 여기는 직전까지 수상을 하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가 출마해 있다. 맞서는 상대는 시의회의원 등을 지낸 입헌민주당 오카모토 히데코(岡本英子, 57, 트위터, 홈페이지) 후보다. 현재 판세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지만 최근 일본 전국적으로 ‘야당 바람’이 불고 있어서 얼마만큼 ‘반 스가표’를 모을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만약 여기서도 상당한 표(40%이상)을 획득한다면 그 정도로 민심 이반이 심각하다는 걸 확인하는 지표가 될 수 있을 듯싶다.

연설하는 오카모토 후보
연설하는 오카모토 후보

자민독 단독과반 붕괴 가능성?

그 밖에도 아마리 아키라 현 간사장과 같은 자민당 거물들이 의외로 접전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하고 전통적으로 야성(특히 공산당)이 강한 교토 소선거구(교토1구,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 시내지역)에서 공산당 후보가 선전하는 정세조사도 나오는 등 다음주 선거 결과가 어떨지 관심이 간다. 특히 24일에 있었던 시즈오카현 참의원(상원) 보궐선거에서 40세 야당 남성 후보가 자민당 후보를 꺾는 예상외 결과로 정치권에는 충격이 번지는 상황이다. 현재 시즈오카는 8개 선거구 중 7개가 자민당 내지는 자민당 성향 후보가 현직 의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당 참의원 선거에는 공산당 후보까지 출마해 야당 단일화도 이뤄지지 않았었다. 

이 때문에 현지에서는 자민당 단독 과반 붕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요미우리 신문 10월 21일자, 다만 10월 26일자 아사히신문에 정반대 결과가 나왔는데 이는 여론조사 방법 변경 때문으로 보여 인터넷 상에서 비판이 많은 상황이다). 물론 공명당과의 연립으로 여당 과반은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야당 약진에 대해서는 대체로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다만 오사카를 중심으로 의석을 현재의 2배 이상인 30석 넘게 늘릴 것으로 보이는 지역 극우 정당(사실 극우라고 하기보다는 무개념에 가깝다고 생각되나) 오사카유신회(大阪維新の会)가 차기 국회에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지도 향후 일본 정치의 관전 포인트가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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