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방송국이 '북한 홍보'하면 방통위 가점받는다?

  • 기자명 이강진 기자
  • 기사승인 2021.10.2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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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방송통신위원회가 북한을 홍보하면 가점을 주는 방송 평가 조항 신설을 추진 중"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김 의원이 방통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남북 관련 프로그램'을 편성하면 가점 5점을 주고, 편성 시간대별로 추가 5점을 준다는 것이 신설된 평가 조항의 내용이었습니다. '방송 평가'는 방송사가 재허가·재승인을 받을 때 필요한 절차이며, 기준점에 미달될 경우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평가 조항은 방송사의 프로그램 제작과 편성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요소입니다. 이에 김 의원은 “친북 정권이라도 북한의 도발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데 북한 홍보 프로그램 편성에 왜 가점을 주려는지 의문”이라며, “방송 편성의 자율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조속히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영식 의원의 보도자료를 소개한 언론 기사가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퍼지면서, 북한을 홍보하는 방송국에 가점을 주겠다는 방통위의 결정에 거센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방통위의 새로운 평가 조항이 ‘북한을 홍보하는 방송을 편성하면 가점을 준다’는 내용일까요?

네이버 뉴스에서 갈무리
네이버 뉴스에서 갈무리

 

‘남북 관련’ → ‘북한 홍보’, 와전된 방통위의 의도

김영식 국회의원실 제공
김영식 국회의원실 제공

우선 방통위가 사용한 단어는 ‘북한 홍보’가 아닌 ‘남북 관련’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방통위가 ‘남북 관련 프로그램’의 예시로 언급한 것은 올해 폐지된 TV조선의 <모란봉 클럽>과 현재 방영되고 있는 KBS의 <남북의 창>, MBC의 <통일전망대>입니다. 따라서 이 세 프로그램의 성격과 내용을 살펴보면 방통위가 생각하는 ‘북한 관련 프로그램’이 무엇인지에 대한 윤곽을 잡을 수 있습니다.

지난 5월 폐지된 TV조선의 <모란봉클럽>은 북한의 일상이나 탈북 과정 등 북한과 관련된 이야기를 북한 이탈 주민의 목소리로 직접 들려주는 컨셉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모란봉클럽>의 주인공은 북한에서 몸소 ‘탈출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에서 북한 홍보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북한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합니다. 또한 <모란봉클럽>은 대표적인 보수 방송국인 ‘TV조선’에서 제작·편성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 홍보'가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출처: TV조선 '모란봉클럽' 공식 홈페이지
출처: TV조선 '모란봉클럽' 공식 홈페이지

KBS <남북의 창>은 1989년부터 30년 가까이 방영해온 북한 전문 프로그램으로, 보수당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도 꾸준히 방영된 프로그램입니다.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본방송과 편집 영상들이 업로드 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문화와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KAL 폭파 사건’, ‘북핵 문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등 정치적 사안들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KBS '남북의창' 공식 홈페이지
KBS '남북의창' 유튜브 채널에서 갈무리

1989년 첫 방송을 한 MBC <통일전망대>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프로그램의 성격과 방향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최신 뉴스와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을 기획 의도로 삼고 있는 <통일전망대>는, 북한의 의식주 문화뿐만 아니라 ‘권력 서열’이나 ‘탈북 이슈’ 등 북한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입니다.

MBC '통일전망대' 유튜브 채널에서 갈무리
MBC '통일전망대' 유튜브 채널에서 갈무리

앞서 언급한 프로그램들은 ‘남북 관련 프로그램’이라는 방통위의 말 그대로, 북한과 관련만 있다면 가볍고 일상적인 이야기든, 무겁고 비판적인 이야기든 폭넓은 주제의 북한 이슈를 전달했습니다.

방통위는 평가 항목을 개정한 취지로, “남북 간의 이해를 증진하고, 민족 동질성 확보를 위한 프로그램 편성이 줄고 있어 이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문화와 기술, 자연 등 일상생활을 소개한다고 해서 이를 ‘친북 정권의 북한 홍보’로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입니다. 외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국내 방송을 보면서 그것을 ‘정치적 목적을 가진 홍보 방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을 것입니다. 즉, 북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제작된 '남북 관련 프로그램에 가점을 준다'는 것을 ‘북한을 홍보하면 가점을 준다’고 단정 짓는 것은 섣부른 판단입니다.


정리하자면, 가점을 받을 수 있는 ‘남북 관련 프로그램’의 예시로 거론된 프로그램들을 살펴본 결과, 북한의 소소한 일상과 기술, 문화뿐만 아니라 북한의 어두운 면모를 드러내고 비판하는 콘텐츠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방통위가 북한을 홍보하는 방송사에 가점을 주는 평가 조항을 신설했다”는 김영식 의원의 주장은 ‘대체로 거짓’으로 판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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