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필름이 오키나와 낡은 극장에서 돌았다...추억이 돌아왔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9.01.16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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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기는 스크린에 빛을 투사한다. 이제 마술 환등, 판타스마고리아(fantasmagoría)의 빛이 영화관을 장악한다. 스크린 위엔 세상물정을 담은 ‘인생극장’이 펼쳐진다.”
- 노명우, 『인생극장』 중에서.

 

수은주가 빙점하로 급전직하했던 전날의 기온 때문일까, 안개를 동반한 겨울비가 따듯하게 느껴지던 일요일이었다.

2017년 12월 3일.

날짜와 날씨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취재라는 생업으로 몸에 익은 메모하는 습관 때문이나, 이날의 기억이 유독 생생한 이유는 따로 있다.

세계에서 가장 늦게 개최된(12월 23일부터 31일까지) 제13회 제주영화제 프로그램 팀으로부터 감독 초청과 번역을 의뢰받은 한 편의 영화 때문이었다. 세계 섬 지역의 우수 작품을 초청한다는 취지에 따라 오키나와국제영화제교토국제영화제를 거쳐 제주에 온 <류큐 시네마 파라다이스>. 빗줄기가 흩뿌리던 거리를 가로질러 카페로 들어설 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러닝 타임 25분의 이 다큐멘터리가, 필자에게, 그 짧은 분량에 비해 상상하기조차 힘든 크기의 임팩트를 남기는 작품이 되리라는 것을.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오키나와 나하 시에서 나고 자란 킨조 마사노리라는 사내가 있다. 아메리카인디언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외모에 단단한 체구, 질끈 동여맨 백발이 인상적인 그는 1950년 할아버지가 세운 오키나와 최고(最古)의 영화관, 슈리극장을 홀로 꾸려가고 있는데, 그런 그에게 평생 함께해 온 필름과 결별하고 디지털시네마를 선택해야 하는 날이 찾아온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슈리극장에서 마지막 필름 상영이 이뤄지던 그날, 즉, 필자가 홍대 앞 카페에서 스크리너(screener)를 보던 날로부터 3년 전인 2014년 12월 3일의 풍경을 담아낸다.

헤드셋을 착용한 채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가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주뼛거리며 관객들 앞에 선 킨죠 관장이 끝내 “눈물... 눈물 없이는 드릴 수 없는 말씀입니다만 오랜 세월 정말로 감사했습니다”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에 감정이 북받쳐서 였다. 그렇게 필자에게 2017년 마지막 날의 초청상영과 2018년 첫날 공항철도에서 연출자인 하세가와 료 감독과 첫 새해인사를 나누는 경험을 선사한 <류큐 시네마 파라다이스>는 같은 해 5월 칸국제영화제, 10월에는 파리 ISDN(Festival International Signes de Nuit)에 초청되었다.

그리고 며칠 전, 올해 들어 첫 회차(回次)의 차기작 촬영을 시작한 하세가와 감독을 만났다.

열도의 서쪽 끝, 오키나와 요나구니 섬에 선 하세가와 감독. 그에게 오키나와는 바람처럼 살다 간 사진가이자 에세이스트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Masahiro Higashi

홍상현:

세 가지 화두로 시작해 보자.

우선은 ‘반전이미지’. (스테레오타입일지 모르지만)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칠 것 같은, 영화저널리스트로서의 이미지와 달리, 대학(와세다대학교)에서 체육학을 전공했고, 프로로 데뷔한 킥 복서에 한국에서는 드문 격투기저널리스트다.

하세가와 료:

어린 시절 천식으로 몸이 약하다 보니 늘 강인함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프로레슬링과 영화를 좋아해서 안토니오 이노키와 실베스터 스탤론을 동경했고.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즈음 천식 증상이 호전되면서 격투기를 시작했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할까도 고민했지만 당시에는 일견 주먹다짐처럼 보이는 격투기에 숨어있는 기술과 전략적 사고,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인간드라마 등에 매료되어 ‘어떻게 트레이닝 하면 강해질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스포츠과학과에 진학했다. 당초 트레이너나 대학원 진학을 생각했지만, 개체차(個體差)나 개인차로 결론내리는 것이 많은 스포츠과학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 느끼면서 다시 영화에 대한 열망이 강해졌다.

그 뒤로 취업을 하지 않고 단기 세미나나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영화의 길을 모색했지만 쉽지 않았다. 2002년부터 격투기 매거진 편집부에서 3년간 일하다 프리 저널리스트로 독립, 지금껏 글 쓰는 일을 해오고 있다.

프로 라이센스를 취득해 데뷔한 것은 취재를 다니다 만난 킥복싱 체육관장과의 인연 때문이다. 경기에는 두 번 나갔는데 한 번은 KO승을 거두고, 한 번은 판정패했다.

 

홍상현:

다음은 ‘오키나와’. 도쿄도 출신으로 오키나와와 아무 인연도 없이 살던 당신이 ‘류큐(琉球, 오키나와의 옛 이름)’로 향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미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이전에 몇 번이나 오키나와를 방문했다.

하세가와 료: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처음 가본 이후 서른 번 넘게 방문했다. 기압의 변화에 민감한 천식환자인 까닭에 1년 내내 따듯한 오키나와에서는 늘 컨디션이 좋다. 물론 바다도, 하늘도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보니 처음에는 관광지로서의 매력에 끌렸지. 하지만 몇 번이고 걸음을 하다 친구가 생기면서 선조,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는 오키나와 주민들의 따듯한 심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런 ‘매혹의 프로세스’가 있었다.

 

홍상현:

마지막은 ‘극장, 영화관’이다. 한동안 꽤 유명한 영화저널리스트이자 격투기저널리스트로 지내다 영화인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보이는 차별점은 당신이 1990년대 이전 청년기를 보낸 세대라면 보편적으로 기억하는 ‘극장’에 대한 애착이 유난히 강하다는 점이다.

하세가와 료:

어린 시절의 체험과 추억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당시는 지금과 같은 멀티플렉스가 없고, 영화관 자체의 수도 적었기 때문에 극장은 특별한 장소였다. 친구들과 소풍가는 기분으로 먼 동네에 있는 영화관을 찾았다.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느낌으로 영화를 보러 가는 일 자체가 하나의 모험이었던 거다. 그렇게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만끽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영화는 극장에서 보려고 한다. 내게 있어 영화란 ‘영화관에서 보는 것’이며, 극장과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니까.

영화저널리스트, 그리고 감독이라는 프로필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하세가와 감독은 이미 데뷔전을 치르고 전적까지 보유하고 있는 킥 복서다. 사진: 하세가와 료 제공

홍상현:

2016년에는 격투기 저널리스트답게 록키 시리즈로 복싱 마니아들에게 쿵푸의 부르스 리 같은 위상을 갖는 스텔론에 대한 다큐멘터리 <We love you, Stallone>을 만들었다. 일종의 ‘워밍업’같은 작품이었나?

하세가와 료:

2011년부터 영화저널리스트로서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화제를 취재하러 가서 창작자들의 열의를 접할수록 나 또한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함께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주제를 가지고 제작한 것이 <We love you, Stallone>이다. 결과적으로는 가까운 지인들과 시사를 하는 정도로 마무리되었지만. (쓴웃음) 그래도 이 프로젝트는 제게 큰 의미가 있는 까닭에, 앞으로 재편집 판이나 파트 2를 만들 계획이 있다. 최종적으로는 스탤론을 만나거나 그의 집에 초대되는 것이 목표다. (웃음) 그로부터 “Never give up”의 정신을 배웠으니 저도 이 작품을 쉽게 단념하지 않으려 한다.

 

홍상현:

아직까지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동경의 대상이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웃음) 드디어 당신의 대표작이자 출세작, 게다가 앞으로의 영화인생에서의 시금석이 될 <류큐 시네마 파라다이스>의 이야기다. 작품의 러닝 타임은 25분이지만, 제작에 걸린 시간은 최소 3년 이상이다. 보통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비효율성에 일단 놀라게 되는데(웃음), 상품으로서의 면만을 생각한다면 장편 시리즈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엄청난 용기다.

하세가와 료:

‘비효율적’이라고 콕 집어 말씀해주셨는데, 역시 그렇다. (웃음) 그래도 영화를 만드는 것은 12살 무렵부터의 제 꿈이다. 이것만 생각해도 3년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돈 버는 일도 병행하는 가운데 오키나와를 오가며 제작한 까닭에 시간이야 걸렸지만, 기사처럼 마감이 정해져 있는 작품이 아니었기에 이것저것 신경을 쓰지 않았다. 굳이 ‘용기’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만한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웃음) 다만, 필요 이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려 애쓰기보다 심플한 구성에 주안점을 두고 싶었다.

 

홍상현:

이 작품의 프로듀서는 영화 저널리스트로 상당한 지명도를 가진 미부 토모히로다. 하지만 감독의 연출의도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평단의 지지를 받는 작품을 만들기 위한 조언은 따로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하세가와 료:

미부 씨는 영화 저널리스트로서는 제게 선배가 된다. 조금 전 이야기에서도 언급했지만 제가 영화제작 경험이 일천하다 보니 촬영이나 편집에 동행하거나 어드바이스를 해주었다. 물론 최종적인 판단은 감독인 제 몫으로 남겨놓고 작품을 완성했지만, 큰 힘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한때 무대극도 공연하는 종합예술문화시설이었던 슈리극장. 현재는 단돈 8백엔에 세 편을 동시 상영하는 핑크영화 전용관이 되어있다. 킨죠 관장은 슈리극장의 유일한 매니저이자 스태프다. 사진: 하세가와 료 제공

홍상현:

영화의 무대인 슈리극장은 오키나와에 현존하는 유일의, 전통적인 의미의 ‘영화관’이다. 이 극장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하세가와 료:

슈리극장과 만난 것은 2014년의 일이다. 당시 15번째로 오키나와를 방문했는데 조금 다른 오키나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주민이 안내하는 투어에 참가했다. 그 일정 중에 슈리극장에 들르는 게 있었는데 자료에 소용돌이치는 구름 아래 자리 잡은 슈리극장의 사진이 게재되어 있더라. <터미네이터>의 라스트 신에서 사라 코너가 차를 몰고 향하던 원경(遠景)을 연상시켰지.

실제로 찾아가 보니 TV 보급 이전, 영화 황금시대의 공기가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은 강렬함이 느껴졌다. 마치 그 장소만 타임 슬립이라도 한 것처럼. 적지 않은 나이에, 경험마저 일천한 인간이 영화까지 만들 정도였으니 그 충격이 어느 정도였을 지는 예상하실 수 있으리라 본다.

 

홍상현:

주인공인 킨죠 관장은 <류큐 시네마 파라다이스>의 마니아까지 출현하는데 압도적으로 공헌했다.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 같은 존재라 할까. 캐릭터를 설명하는 짧은 시퀀스만으로도 수많은 인생스토리가 느껴진다. 또한 필름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하세가와 료:

금방 아실 수 있듯이, 영화의 타이틀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시네마 천국>에서 딴 것이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킨죠 관장을 알프레도에 위치시킨 면도 있다. 또, 킨죠 관장은 유머러스하신 분이라 직접적으로 비장감을 드러내지 않지만 제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극장을, 설령 시대에 뒤처진 것처럼 느껴지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지켜나가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제게는 그 모습이 다카쿠라 켄이 출연하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그런 삶이 방식에서 배어나오는 멋을 한국의 관객 여러분도 분명 느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슈리극장도, 킨죠 관장도 알면 알수록 영화적이다.

영화 <류큐 시네마 파라다이스>의 한 장면. 마지막 필름 상영 날. 평생을 함께해 온 영사기 옆에서 포즈를 취한 킨죠 관장. “영화인생이네요”라는 하세가와 감독의 말에 그는 답한다. “‘영화관 인생’이죠”라고. 사진: 하세가와 료 제공

홍상현:

이상의 내용에서 떠오르는 표현은 ‘추억의 힘’이다. 이 작품이 관객의, 특히 40대 이상 세대의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지금은 어떤 건물에도 남아있지 않은 ‘가기 꺼려지는’ 낡은 화장실마저 추억의 클리셰(cliché)로 작용한다.

하세가와 료:

저도 그렇지만,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고향’이 느껴지는 장소를 거의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런 까닭에 저 자신 소년기의 여러 가지 추억들을 남겨주고 저를 성장시켜준 영화, 그리고 영화관이 ‘고향’처럼 느껴진다. 또한 ‘추억’은 때때로 우리를 북돋아주거나, 위로해준다. 영화, 영화관이 내게 그런 것처럼, 아무쪼록 제 작품을 통해 관객 여러분께 그 자신의 ‘추억’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해드리고 싶었다.

 

홍상현:

<류큐 시네마 파라다이스>를 통해 당신의 작품세계와 관련한 두 가지 테마가 완성되었다. ‘극장’과 ‘오키나와’. 전자와 관련된 차기작은 이미 2년 이상의 제작기간을 거쳐 올해 말 완성을 앞두고 있다. 이른바 「극장전(劇場傳)」 2탄이랄까.

하세가와 료:

온천으로 유명한 벳푸에 있는 벳푸블루버드극장과 그 극장의 오카무라 테루 관장을 취재한 작품이다. 블루버드는 슈리극장보다 1년 빠른 1949년 창업했는데 올해 88세가 되시는 할머니, 오카무라 테루 관장이 가족 친지들과 힘을 합쳐 운영하고 있다. 테루 관장은 대단히 매력적인 분으로 고향 벳푸를 사랑하고, 지금도 시부와 남편이 남겨준 극장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신다. 블루버드도 오늘을 살아가는 분들께 제가 어린 시절 체험한 영화관의 분위기를 전해줄 수 있는 멋진 극장이라고 생각한다.

 

홍상현:

「오키나와전(沖縄傳)」의 2탄도 동시에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하세가와 료:

오키나와의 공예품과 그 장인들을 취재한 작품이다. 장인들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술과 작품에 긍지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나의 공예품은 수많은 사람의 지혜와 기술, 연구의 결정체다. 이를 소중히 하는 일은, 내가 ‘추억’과 ‘추억의 힘’을 믿는 것과도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차기작의 무대는 슈리극장보다 1년 먼저 개업한 온천지 벳푸의 벳푸블루버드극장이다. 하세가와 감독의 「극장전」은 아직 첫 번째 시리즈가 발표되었을 뿐이지만, 그 유럽 관객들로부터 높게 평가받은 영화적 완성도와 문화사적 의미로 인해 국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 하세가와 료 제공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필자는 하세가와 감독에게 두 편의 작품을 동시 제작하면서 맞는 새해 포부를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1996년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20여 년간 현지에서 활동하며 알래스카의 자연을 카메라에 담았던 사진가이자 에세이스트 호시노 미치오의 이름이었다. 하세가와 감독은 한 구절의 시를 암송하듯 호시노가 자신의 저서에 적어놓은 “변해가는 알래스카에서 카리부가 계속 계절여행을 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딘가에 남게 되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당장 그 광경을 기록해들 필요성을 느꼈다”는 구절을 인용하고는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영화도, 영화관도, 예컨대 동영상 다운로드 서비스 같은 변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어쩌면 그 과정에서, 모두 다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기록해야지요. 지난해 다시 한 번 호시노의 사진전을 보러가고 슈리극장을 촬영한 것은 그런 제 나름의 사명감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영화’라는 수단을 통해 호시노와 같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20년 넘는 세월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힘이 되는 추억’은 다르겠지만, 앞으로 그런 추억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국의 관객 여러분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가 마지막 말을 마치고 난 뒤, 나는 녹음기를 끄는 것도 잊은 채 그를 바라보며 유쾌한 미소를 지었다. 별다른 설명은 하지 않았다. 필자와는 이미 좋은 친구가 되어 있는 그도 의미를 잘 알고 있으리라고 믿었으니까. 무척 오랜만의, 큰 흐뭇함과 깊은 공감과 의미가 담긴 웃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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